<도리를 찾아서>가 개봉합니다. <도리를 찾아서>는 픽사 애니메이션입니다. 모든 픽사 애니메이션은 한 사람의 최종 OK 사인을 받아야 합니다. 사실 픽사 애니메이션뿐만 아니라 디즈니 애니메이션도 같은 사람이 총괄합니다. 누군지 알 것 같나요? 그는 픽사와 디즈니 애니메이션 스튜디오의 CCO(Chief creative officer, ‘최고창의성책임자’로 번역하기도 합니다.) 존 라세터입니다. 맞습니다. 최초의 풀 CG 애니메이션 <토이 스토리> 시리즈의 감독 존 라세터입니다. 그는 어떤 사람일까요? 한마디로 표현해보라고 한다면 이렇게 답할 겁니다. ‘성공한 덕후!’라고.
디즈니 덕후
존 라세터는 1957년 미국 로스엔젤레스 할리우드에서 태어났습니다. 어머니는 미술 교사였고 아버지는 쉐보레 자동차 딜러였습니다. 그는 어머니의 영향으로 그림에 취미를 갖게 됐습니다. 어린 시절 교회 소식지 등에 카툰을 그리기도 했죠. 라세터는 1963년 개봉한 디즈니 애니메이션 <아더왕 이야기>를 보고 애니메이터가 되기로 결심합니다. 고등학생 때는 밥 토마스가 쓴 디즈니 애니메이션의 역사를 담은 <애니메이션의 예술>(Walt Disney The Art Of Animation: The Story Of The Disney Studio Contribution to A New Art)을 읽으며 꿈을 키웠습니다.
라세터는 페퍼다인 대학에 회화 전공으로 입학합니다. 대학 생활 도중 캘리포니아 인스티튜트 오브 디 아츠(California Institute of the Arts) 줄여서 칼아츠(CalArts)라고 불리는 학교가 생깁니다. 월트 디즈니가 만든 학교입니다. 디즈니 덕후인 그는 당장 학교를 옮깁니다. 칼아츠에는 ‘나인 올드 맨’(Nine Old Men)이라 불리는 디즈니의 전설적인 애니메이터들, 올리 존스톤, 프랭크 토머스 에릭 라르손 같은 선생님이 있었습니다. 캐릭터 애니메이션 전공으로 칼아츠에 입학한 존 라세터는 초기 실험 프로그램에 입학이 허용된 두 번째 학생이었습니다.
A113 덕후
칼아츠는 존 라세터에게 매우 중요한 공간입니다. 선생님들뿐만 아니라 그와 함께 공부한 동료들의 이름을 기억할 필요가 있습니다. <인크레더블>(2004), <라따뚜이>(2007), <미션 임파서블: 고스트 프로토콜>(2011) 등을 연출한 브래드 버드, <인어공주>(1989), <알라딘>(1992), <공주와 개구리>(2009) 등을 연출한 존 머스커, <크리스마스 악몽>(1993), <코렐라인: 비밀의 문>(2009) 등을 연출한 헨리 셀릭, <겨울왕국>(2013)을 연출한 크리스 벅 그리고 <가위손>(1990), <찰리와 초콜릿 공장>(2005) 등을 연출한 팀 버튼과 함께 공부했습니다. 칼아츠의 위엄이 어마어마하네요. 존 라세터는 칼아츠 시절을 잊지 못하는 것 같습니다. 픽사 애니메이션에는 항상 ‘A113’이라는 번호가 등장합니다. 이 A113이라는 번호는 존 라세터가 칼아츠에서 공부한 클래스룸 번호입니다. 그렇게 애정이 많은 공간인 칼아츠 시절에 존 라세터는 두 편의 단편 애니메이션을 발표합니다. <레이디 앤 더 램프>(1979)와 <나이트메어>(1980)입니다. 두 작품 모두 학생 부문 아카데미 어워즈에서 수상했습니다.
존 라세터의 작품을 유심히 본 디즈니는 당연히 그를 채용했습니다. 그렇게 디즈니 덕후가 디즈니 직원이 돼서 5년을 일했습니다. 참, 칼아츠 시절 존 라세터는 여름방학을 기간 중 디즈니랜드에서 알바도 했습니다. ‘정글크루즈’에서 일했다고 합니다. 이때 라세터는 이용객을 관찰하며 코미디에 대한 감각을 익혔다고 합니다.
컴퓨터애니메이션 덕후
디즈니 덕후 존 라세터는 디즈니에 입사하고 마냥 행복한 시절을 보내야 할 것 같은데 사실 그렇지 못했습니다. 당시 태동기에 있던 컴퓨터 그래픽, 컴퓨터 애니메이션의 세계에 빠져버리고 말았기 때문입니다. 컴퓨터 그래픽이 접목된 영화 <트론>(1982)을 보고는 기존 애니메이션과 다르게 배경을 3D(<아바타>의 3D 아닙니다)로 만들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존 라세터는 디즈니에서 CG 애니메이션 프로젝트를 진행하다가 해고 당하고 맙니다. 라세터가 만든 <용감한 작은 토스터>에서 CG 애니메이션의 우수성을 본 당시 디즈니의 CEO 론 밀러는 사람이 하던 일을 컴퓨터에 빼앗길 것 같은 두려움에 사로잡혔습니다.
디즈니에서 해고 당한 라세터는 애드윈 캣멀을 만납니다. 이후 픽사 CEO가 되는 그는 루카스필름에서 컴퓨터 그래픽 기술을 연구하는 공학자이자 컴퓨터 그래픽 기술자였습니다. <스타트랙2> <스타워즈: 제다이의 귀환> 등에 사용된 컴퓨터 그래픽 기술이 여기서 탄생했습니다. 캣멀의 권유로 루카스 필름의 프로젝트에 참여하게 된 라세터는 디즈니에서 해고되면서 자연스레 자리를 옮기게 됐습니다. 라세터는 캣멀과 힘을 합쳐 첫 CG 애니메이션 <안드레와 월리 꿀벌의 모험>(1984)을 만들어냅니다. 라세터는 애초에 배경만 3D로 만들려고 했는데 하다보니까 캐릭터까지 3D로 만들 수 있다는 걸 알게 됐죠. 그런데 1986년 라세터가 일하던 루카스 필름의 컴퓨터 그래픽 그룹이 시장에 매물로 나오게 됩니다. 이혼 문제를 겪고 있던 조지 루카스가 팔려고 내놓은 거죠. 이 매물을 1000만 달러라는 헐값에 사드린 사람이 스티브 잡스입니다. 바로 픽사가 탄생한 순간입니다.
픽사 덕후
라세터와 잡스는 묘하게 닮았습니다. 라세터는 자신이 그토록 열망했던 디즈니에서 쫓겨났고 잡스는 자신이 설립한 애플에서 해고당했으니까요. 그리고 두 사람은 다시 자신이 속했던 회사에 들어가서 대성공을 이끌어냅니다. 잡스의 스토리는 아실 테고 라세터의 스토리는 계속됩니다.
픽사 초창기 라세터는 픽사의 상징이 된 단편 <룩소 주니어>를 만듭니다. 픽사의 애니메이션이 시작되기 전 나오는 PIXAR라는 글자 가운데 I 위에 올라가 퉁퉁 튕기다 찍 밟고 서는 바로 그 램프가 룩소 주니어입니다. 그해 아카데미상 후보에 지명된 작품이기도 합니다. 또 중요한 작품이 있습니다. <틴 토이>(1988)라는 단편입니다. 괴물(같은) 아기와 양철 장난감 병정의 이야기입니다. 장난감 병정의 입장에서 본 아기는 어른 인간들이 보는 것과 달리 엄청난 공포를 준다는 설정입니다. 이 작품이 중요한 이유는 <토이 스토리>가 이 작품에서 확장된 것이기 때문입니다. 아카데미 단편애니메이션상을 받았습니다.
라세터는 픽사 창립 10년 만에 <토이 스토리>(1995)를 내놓았습니다. <토이 스토리>는 혁신이었습니다. 애니메이션 전체를 CG로 만들었으니까요. 이후 픽사의 스토리는 잘 아실 겁니다. 라세터는 <토이 스토리>의 대성공 이후 <벅스 라이프>, <토이 스토리2>, <카>, <카2>를 연출했습니다. 다른 픽사의 작품에는 총괄프로듀서로 참여했습니다. <도리를 찾아서>에서 그랬던 것처럼 말입니다. 현재 라세터는 2018년 개봉 예정인 <토이 스토리4>를 준비 중이라고 합니다.
다시 디즈니 덕후?
2006년 디즈니는 픽사를 47억 달러에 사들입니다. 스티브 잡스가 1000만 달러에 샀던 회사 맞습니다. 20여년 전에 디즈니에서 해고 당한 라세터가 복귀하게 됩니다. 당시 디즈니는 고전을 면치 못했습니다. 자신을 쫓아낸 회사를 살릴 임무를 띤 라세터는 자신이 좋아하던 예전 디즈니 애니메이션 <미녀와 야수>, <인어공주> 같은 ‘디즈니스러운’ 작품으로 승부를 겁니다. 2004년 이후 디즈니에서 만들지 않던 2D 애니메이션을 다시 만들게 한 겁니다. 디즈니를 떠났던 수석 애니메이터들과 칼아츠 동기인 존 머스커 등을 복귀시켰습니다. 그렇게 <공주와 개구리> 같은 애니메이션이 탄생했습니다. 그리고 이때부터 디즈니는 부활하기 시작합니다. 라세터는 지금 디즈니의 전성기를 이끌고 있습니다. <라푼젤>, <주먹왕 랄프>, <겨울왕국>, <주토피아> 같은 애니메이션 다 보셨을 거라 믿습니다. 이렇게 라세터는 잡스가 그랬던 것처럼 자신을 버린 회사를 극적으로 살려냈습니다.
지브리 덕후
네이버 영화에서 존 라세터를 검색해서 필모그래피를 보면 의아한 작품 하나가 발견됩니다. 지브리 스튜디오가 만든 <하울의 움직이는 성>(2004)입니다. 도대체 어떻게 된 일일까요. 라세터는 지브리 스튜디오의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의 광팬입니다. 1981년 미야자키 감독이 디즈니를 방문했습니다. 당시 디즈니 직원이던 라세터는 미야자키 감독을 만나지 못했지만 일행이 남긴 <루팡3세 칼리오스트로의 성>(1979) 비디오 테이프를 얻었습니다. 그는 이 애니메이션의 자동차 추격신을 보고 단박에 지브리의 팬이 됐습니다. 아, 그리고 라세터는 이 비디오를 자신이 좋아하던 여성에게 보여줍니다. 그 여성도 이 영상에 감명받는 것을 보고 라세터는 “이 여자다!”라고 생각했습니다. 그 여성은 라세터의 아내가 된 낸시 라세터입니다.
1986년 그는 일본 지브리에 방문합니다. 무작정 찾아간 지브리에서 그는 자신의 우상인 미야자키 감독을 만났습니다. 당연히 사인을 받았지요. <이웃집 토토로>의 컨셉아트가 붙은 작업실 사진을 허락도 없이 막 찍기도 했습니다. 나중에 유명 감독이 된 라세터는 미야자키 감독 작품의 영어 번역과 북미 배급에도 관여하기 시작했습니다. <하울의 움직이는 성>에 크레딧을 올린 게 이제 이해가 되시나요? <토이 스토리 3>에 토토로 인형을 슬쩍 집어 넣은 건 지브리 덕후 인증이죠. 라세터는 지브리뿐만 아니라 일본도 좋아합니다. <빅 히어로>의 배경도시 이름은 ‘샌프란소쿄’입니다. 샌프란시스코와 도쿄의 합성어입니다. 자신이 연출한 <카2>는 자동차들이 도쿄를 방문하기도 합니다. <카>에 나오는 루이지란 캐릭터는 미야자키 하야오의 오마주이며 <루팡3세 칼리오스트로의 성>의 주인공이 타고 다니는 자동차와 같습니다.
하와이안 셔츠 덕후
라세터는 1000벌이 넘는 하와이안 셔츠를 보유 중입니다. 어딜 가나 그는 하와이안 셔츠를 입습니다. 재킷을 입기도 하지만 재킷 안에는 늘 하와이안 셔츠입니다. 다시 한번 (검은 터틀넥 셔츠만 고집하던) 스티브 잡스가 떠오르네요. 흠.
자동차 덕후
쉐보레 딜러였던 아버지의 영향인 것 같습니다. 라세터는 자동차 마니아입니다. 왜 그가 <카>, <카2>를 연출했는지 알 것 같습닌다. 클래식 자동차를 수집하는 그는 자신의 집 근처에 있는 자동차 경기장(소노마 레이스웨이)에도 자주 간다고 합니다. 1952년식 까만색 재규어 XK120을 가장 아낀다고 전해집니다.
장난감 덕후
장난감을 좋아하지 않는 사람이 <토이 스토리>를 만들 수 있었을까요? <토이 스토리>가 단편 <틴 토이>에서 시작됐다는 얘기를 했습니다. <틴 토이>는 라세터가 일본 요코하마에 있는 장난감 박물관에 갔다가 영감을 받은 작품이라고 합니다. 라세터가 장난감 덕후라는 건 이 사진 한장이면 사실 족합니다. 그의 사무실 사진입니다.
씨네플레이 에디터 두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