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끝까지 간다> 김성훈 감독이 만든 재난 영화
짧은 예고편만 봐도 <터널>은 <끝까지 간다>와 스타일이 다른 영화입니다. 자동차 영업대리점에서 일하는 정수(하정우)가 퇴근하고 집에 가던 길에 갑자기 터널이 무너지면서 터널 안에 갇히게 되는 이야기입니다. 사방이 콘크리트 잔해로 막혀 어디로도 움직일 수 없는 그에게 주어진 건 휴대폰과 생수 두 병 그리고 딸 생일 선물로 산 케이크가 전부입니다.
터널 밖에선 정수의 아내 세현(배두나)이 언제 터널 밖으로 나올지 모를 남편을 걱정하느라 발을 동동 구르고 있어요.
사고 대책반의 구조대장인 대경(오달수)은 꽉 막힌 터널에 들어가 정수를 구출하기 위해 온갖 방법을 다 시도해봅니다. 구조 진행이 여의치 않고, 구조 작업이 완공을 눈앞에 둔 인근 새 터널에 차질을 줄 수 있다는 이유 때문에 "꼭 정수를 구해야 하냐"고 되묻는 여론도 생겨났습니다. 최근 대한민국에서 벌어진 여러 재난들을 떠올리게 하는 대목이네요.
"<터널>은 <캐스트 어웨이>처럼 희극과 비극이 잘 버무려진 영화."
어쨌거나 서두가 길어졌는데, 칸에 가기 직전에 만난 적 있는 하정우씨는 에디터에게 <터널>이 “마냥 심각한 영화는 아니”라고 귀띔을 해줬어요. 그가 해준 말을 그대로 옮겨놓을게요. 정수는 우리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삼촌이나 형 같은 사람입니다. 터널 밖에서 터널 안에 갇힌 사람을 바라보면 가족들이 1분, 1초도 못 견딜 만큼 애절하고, 누가 봐도 큰 비극이 맞죠. 하지만 <캐스트 어웨이>(감독 로버트 저메키스, 2000년)의 주인공 톰 행크스가 그랬듯이, 정수는 터널 안에서 살아남기 위해 나름의 보금자리를 만들어요. 그 지점에서 발생하는 블랙코미디와 아이러니가 영화의 코미디와 비극을 잘 버무려요. 이야기 안에서 철저하게 재단된 연기를 했던 <아가씨>와 달리 하정우씨는 <터널>에서는 즉흥 연기를 굉장히 많이 했다고 합니다. 아무래도 터널 안에서 혼자서 무언가를 하는 상황이 많았기 때문에 배우가 상황에 맞는 연기를 다양하게 했다는 얘기입니다. <터널>이 어떤 영화인지 감이 오시나요?
<터널>의 관전 포인트 두 가지
하정우씨의 말을 단서 삼아 <터널>이 어떤 영화인지 추측해본다면 두 가지 관전 포인트가 있어요. 하나는 이거예요. 터널 안에 갇힌 정수가 살아남기 위해 자신에게 주어진 자원을 최대한 활용해 수명을 연장시키는 생존 게임이 꽤 흥미진진할 거라는 사실.
<캐스트 어웨이>에서 무인도에 갇히게 된 택배 회사 페덱스 직원 척(톰 행크스)은 스케이트 날을 이용해 열대 과일을 쪼개고, 덩굴 껍질을 벗겨 밧줄을 꼬고, 나무를 나무에 마찰시켜 불을 만들기도 했어요. 심지어 스케이트 날을 거울 삼아 자신의 얼굴을 보기도 했죠. 여러 도구를 활용해 뗏목을 만든 뒤 무인도에서 탈출하기까지 무려 4년이나 걸렸어요.
하정우씨가 연기한 정수에게 주어진 건 배터리가 78% 남은 휴대폰과 생수 두 병 그리고 케이크밖에 없다고 앞에서 밝힌 바 있어요. 아무리 아껴 써도 휴대폰은 하루가 지나면 꺼집니다. 낮과 밤이 있는 <캐스트 어웨이>와 달리 사방이 암흑천지인 터널 안에서 케이크 하나와 생수 두 병에 의존한 채 밖에서 구출해주기까지 버티는 건 아무래도 쉽지 않습니다.
참, 척이 피 묻은 배구공 ‘윌슨’(영화에서 척이 배구공에게 지어준 이름)을 말동무 삼아 외로움을 달랬던 <캐스트 어웨이>처럼 <터널>의 정수에게는 강아지가 함께한다고 합니다. 영화가 개봉하기 전에 강아지에 대해 자세하게 말씀드리긴 어렵지만, 분명한 건 극도로 외로운 상황에 처한 정수가 이 강아지를 통해 위안을 얻는다는 사실이에요. 영화를 보시면 무슨 뜻인지 아시게 될 겁니다.
우리 주변에서 계속 벌어지고 있는 재난
또 다른 관전 포인트도 있어요. 터널 밖에서 당연히 구해야 할 국민의 생명을 두고 여러 이해관계 때문에 정부와 여론이 갑론을박하는 우스꽝스러운 풍경이 현재 한국 사회를 풍자해요. 예고편 마지막에 “국민들이 이제 (구출 작업을) 그만하자고 하지 않습니까”라는 대사가 나와요. 이해가 가는 말인가요? 하정우씨가 “제가 아직 살아있다”고 말합니다. 제가 정수라면 꽤나 억울할 것 같아요.
영화 속 재난 상황은 남 얘기가 아니에요. 지금도 우리 주변에서 일어나고 있어요. 어쨌거나 <터널>이 개봉하기 전에 하정우씨가 단서로 던져준 <캐스트 어웨이>를 미리 감상하시면 <터널>을 좀 더 재밌게 볼 수 있지 않을까 합니다.
씨네플레이 에디터 펩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