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주엔 유독 눈여겨 볼 만한 개봉작들이 많다. 오늘은 작품의 가치에도 불구하고 거대 개봉작들에 밀려 상대적으로 주목이 덜한 다섯 작품을 소개해보고자 한다. 북미에서 일찌감치 호평 받은 스릴러 <언더 워터>, 북유럽에서 온 재난영화 <더 웨이브>, 제이크 질렌할의 연기가 일품인 <데몰리션>, '청춘'과 '음악'이 유쾌하게 어우러진 <에브리바디 원츠 썸!!>, 가시적인 폭력 없이도 전쟁의 현실을 고스란히 드러내는 <아이 인 더 스카이> 다섯 편이 바로 그것이다.
<언더 워터>
(The Shallows, 2016)
감독 자움 콜렛 세라
출연 블레이크 라이블리, 오스카 자에나다
줄거리
멕시코의 숨은 명소, 해변 '파라다이스'. 의대생 낸시(블레이크 라이블리)는 한가로이 서핑을 즐기던 중, 바닷속 상어에게 습격 당한다. 가까스로 근처 암초로 겨우 피신했지만, 바다 밑에는 초속 11.3미터로 움직이는 상어가 그녀를 맴돌고 있다. 암초부터 해변까지 200미터밖에 되지 않지만 돌아갈 길은 묘연하고, 밤이 다가올수록 암초는 물에 잠겨간다.
기대 포인트
<언더 워터>는 지극히 한정된 배우와 공간만으로 86분을 끌고 간다. 줄거리만 보면 재난영화의 작법을 따르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주인공은 한정된 공간 안에서 갇혀 지금 처한 상황을 최소한의 조건으로써 헤쳐가야 한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낸시가 의대생이라는 사실. 그녀는 자신의 육체를 보호할 만한 지식을 갖고 있고, 의학을 공부할 만큼 지능도 높다. 예고편을 보면, 낸시는 바다 한가운데서 활용할 수 있는 갖가지 물건들을 활용해 목숨을 부지하고 있다.
자움 콜렛 세라이라는 감독의 낯선 이름을 검색해보니, 필모그래피에 잘 만든 호러 <하우스 오브 왁스>(2005)와 <오펀: 천사의 비밀>(2009), 리암 니슨 주연의 액션 <논스톱>(2014), <런 올 나이트>(2015)를 연출한 흔적이 보인다. 호러와 액션을 아우를 만한 스릴만큼은 제대로 끌어낼 수 있을 거란 믿음이 확실해진다.
<더 웨이브>
(Bølgen, 2015)
감독 로아 우다우그
출연 크리스토퍼 요너, 아네 달 토르프, 조나스 호프 오프테브로
줄거리
노르웨이 피오르 지진 통제센터의 연구원 크리스티안(크리스토퍼 요너)은 회사를 그만두고 대도시로 이사할 계획을 세우고 있다. 이사를 불과 며칠 앞두고 주변에서는 산사태의 징후가 끊이질 않는다. 그리고 곧 땅속에서 균열이 시작되고, 수십만 세제곱미터의 산사태와 함께 시속 600km의 쓰나미가 몰려온다. 대피할 수 있는 시간은 고작 10분. 크리스티안은 가족을 데리고 해발 80미터로 올라가야 한다.
기대 포인트
'노르웨이에서 만들어진 영화' 하면, 우리가 흔히 기억하는, 드넓은 연못을 푸르른 산이 둘러싸고 있는 평화로운 분위기를 기대할지 모르겠다. 하지만 <더 웨이브>는 그와는 저만치 떨어져 있다. 산사태와 쓰나미에 몰아닥쳐 산은 무너지고, 주변은 온통 폐허다. 평화와는 조금도 관련 없는 풍경이다.
<더 웨이브>는 노르웨이에서 박스오피스 5주 연속 1위를 기록하는 진기록을 세웠다. 예고편만 봐도 어마어마한 산사태가 작은 도시를 집어삼키는 스펙터클이 단번에 시선을 사로잡는다. 노르웨이의 국민배우 크리스토퍼 요너, 아네 달 토르프를 주인공 부부로 내세운 <더 웨이브>가 강조하고 있는 건 다름아닌 가족애다. 대피 가능한 10분이 지난 후, 다시 물에 잠긴 마을로 돌아가 미처 탈출하지 못한 가족을 구하는 아버지의 뜨거운 사투가 <더 웨이브>를 떠받치는 또 다른 힘이다.
덧. <더 웨이브>의 감독 로아 오다우그는 알리시아 비칸데르 주연의 새로운 <툼 레이더> 시리즈를 연출할 계획이다.
<데몰리션>
(Demolition, 2015)
감독 장 마크 발레
출연 제이크 질렌할, 나오미 왓츠, 크리스 쿠퍼
줄거리
투자분석가 데이비스(제이크 질렌할)는 교통사고로 아내를 잃었다. 다음날 아무렇지 않게 출근한 그를 보고 사람들은 수군거리고, 데이비스는 그때서야 자신이 아무런 감정도 느끼지 못하며 살아가고 있음을 깨닫는다. 아내가 눈을 감은 병원의 자판기에 돈을 잃은 그는 항의 편지에 속마음을 털어놓고, 며칠 후 고객센터 직원 캐런(나오미 왓츠)에게 전화를 받는다. 캐런과 그녀의 아들을 만난 데이비스는 아내와의 추억이 남아 있는 집을 부수기 시작한다.
기대 포인트
"주인공이 어마어마한 (마음의) 병을 앓고 있겠군." 감독 장 마크 발레의 이름을 보면 능히 예상되는 바다. 호평 받은 전작 <카페 드 플로르>(2011), <달라스 바이어스 클럽>(2013), <와일드>(2014) 속 주인공이 모두 '인간극장'에 등장해도 손색이 없을 만큼 처참한 사연을 품고 사는 사람들이었기 때문이다. '파괴'를 가리키는 제목에서 알 수 있듯 <데몰리션> 역시 그 공통분모는 계속 이어진다.
매튜 매커너히, 리즈 위더스푼에 이어 제이크 질렌할이 주인공으로 낙점됐다. 이번엔 그가 '인생연기'를 펼친다. 제이크 질렌할은 <나이트 크롤러>(2014)와 <사우스포>(2015)를 거치며 연기력이 물이 오를 대로 올라 있는 상태. 하지만 <데몰리션>에서는 사뭇 다른 연기를 선보인다. 전작에서 언론의 부패한 현실을 반증하는 듯한 몰골(<나이트 크롤러>)과 복싱 세계챔피언의 고난(<사우스포>)을 온몸으로 보여준 제이크 질렌할은, 데이비스의 메마른 감정에 드러내는 데에 집중한다. 어떤 편이 그에게 더 어울리는 길일지 판단하는 건 관객의 몫일 터. 하지만 데이비스가 우리가 지금껏 보지 못한 제이크 질렌할인 것은 분명하다.
<에브리바디 원츠 썸!!>
(Everybody Wants Some!!, 2016)
감독 리처드 링클레이터
출연 블레이크 제너, 조이 도이치, 글렌 포웰
줄거리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야구부 숙소로 이사 온 신입생 제이크(블레이크 제너)는 전국 최고의 실력을 자랑하는 야구팀이 모인 룸메이트들과 몰려 다닌다. 그들은 어색함을 느낄 새도 없이 여자들에게 '작업'을 거는 데에 혈안이 돼 있다. 개강 전까지 3일 하고 15시간, 주류 반입과 숙소 여자를 들이는 걸 금지한 코치의 규칙따위 무시하고, 매일 밤 신나는 파티를 벌인다.
기대 포인트
리처드 링클레이터 감독이 걸작 <보이후드>(2014) 이후 2년 만에 <에브리바디 원츠 썸!!>으로 돌아왔다. 그런데 어쩐지 익숙한 줄거리다. 맞다, <에브리바디 원츠 썸!!>은 리처드 링클레이터의 1993년 작 <멍하고 혼돈스러운>의 80년대 버전으로 만든 작품이다.
80년대 초 전성기를 누린 하드록 밴드 밴 헤일런의 노래에서 따온 제목에서 가늠할 수 있듯이, <에브리바디 원츠 썸!!>은 80년대를 살았던 젊은이들이 누린 자유로움을 만끽할 수 있다. 술과 음악, 그리고 걸쭉한 사랑(!)까지 천국과 같은 시간을 보내는 모습을 보고 있자면, "아, 딱 5년만 젊었으면..." 하고 중얼거리게 될 게 분명하다. 락 음악에 대한 애정으로 가득한 <스쿨 오브 락>(2003)을 연출한 감독인 만큼, <에브리바디 원츠 썸!!>의 사운드트랙 역시 80년대의 공기를 세심하게 신경 쓴 공이 역력하다.
<아이 인 더 스카이>
(Eye in the Sky, 2015)
감독 개빈 후드
출연 헬린 미렌, 아론 폴, 앨런 릭먼
줄거리
케냐에 숨어 있는 테러 조직을 잡기 위해 영국, 미국, 케냐 세 나라가 합동 드론 작전을 실시한다. 영국 합동사령부 작전지휘관인 파월 대령(헬렌 미렌)은 테러 집단의 자살폭탄테러 계획을 알게 되고, 생포가 아닌 사살작전을 펼치기로 한다. 하지만 미국 공군기지에서 미사일 발사를 준비하던 드론 조종사 와츠 중위(아론 폴)는 폭발 범위로 들어온 소녀를 보고, 작전 보류를 요청한다.
기대 포인트
전쟁 기운이 넘쳐나는 상황 한복판에서 진행되는 영화지만, 하지만 전쟁영화 특유의 부수고 폭파시키는 신들은 좀체 보이지 않는다. 당연하다. <아이 인 더 스카이>는 전투보다는 전투가 실행되기 직전의 고뇌를 그리는 영화다.
눈에 보이는 싸움보다 계속되는 대화로 서사를 끌어가는 작품이지만, <아이 인 더 스카이>는 조금도 느슨할 틈이 없다. 작전을 하느냐 마느냐 각자 다른 의견을 가진 두 축의 대화 하나하나가 매우 중요하기 때문에 한시도 긴장을 놓칠 수가 없다. 제목 'Eye in the Sky'는 곧 드론의 은유다. 영화는 드론의 시점을 적극 배치하면서 일촉즉발의 현장을 생생하게 보여준다. 눈대중으론 셀 수 없는 다수의 목숨을 구하는 것이 아니라, 저기 위험 지역에 있는 소녀 단 한 명의 목숨이 달린 일이기에, 더 큰 몰입과 공감을 요구한다. 전쟁을 둘러싼 당대의 현실을 파고드는 건 물론, 인간과 전쟁의 역사까지 고민하는 진중한 영화라는 것이 다수의 평이다.
씨네플레이 에디터 문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