몬스터 콜 / 인비저블 게스트

여름 시즌이 끝나고 추석 전까지 잠깐 동안의 흥행 비수기가 시작됐다. 하지만 말만 비수기일 뿐 개봉작 수는 오히려 다른 주를 상회한다. 그간 블록버스터나 화제작들에 밀려 개봉하지 못했던 중소 규모의 영화들이나 예술영화, 독립영화, 그리고 제3세계 영화들이 앞다퉈 대방출 중이다. 톰 크루즈 주연에 덕 라이만이 연출한 <아메리칸 메이드>나 미국에서 늦여름에 개봉해 1억불이 넘는 수익을 기록했던 슬리퍼 히트작 <베이비 드라이버>, 그리고 25년 전에 개봉했던 <라스트 모히칸>도 그 리스트에 올라있다. 그리고 이번에 얘기할 주인공이 음악을 맡은 두 편의 스페인 영화 <몬스터 콜><인비저블 게스트> 역시 이 시기에 개봉한다.


스페인 영화음악가들이 뜬다!

<오퍼나지- 비밀의 계단><더 임파서블>을 연출했던 후안 안토니오 바요나 감독의 세 번째 장편인 <몬스터 콜>은 패트릭 네스의 유명한 동명의 청소년 소설을 영화화한 작품이고, <인비저블 게스트><줄리아의 눈>의 작가이자 데뷔작 <더 바디>로 할리우드 리메이크를 이끌어낸 바 있는 오리올 파울로 감독의 지적인 스릴러다. (<더 바디><인비저블 게스트>는 국내에서도 리메이크되고 있단 사실이 밝혀져 더 화제가 됐다.) 두 작품은 작년과 올 초 해외에서 공개돼 좋은 평가를 받았다. 스페인 출신의 1975년생 동갑내기 감독인 그들은 길예르모 델 토로와 인연이 있다는 점 외에도, 음악에 페르난도 벨라즈퀘즈를 기용했다는 공통점이 있다.

페르난도 벨라즈퀘즈

호세 니에토와 알베르토 이글레시아스로 양분되던 스페인 영화음악계에 로케 바뇨스나 하비에르 나바레테, 빅터 레예스, 그리고 최근의 루카스 비달 등 다양한 작곡가들이 두각을 나타내며 자국을 벗어나 세계적으로 활약하고 있다. 과거 영국과 프랑스, 이탈리아와 독일 출신의 작곡가들이 할리우드에서 한창 잘나갔던 것에 비하면 꽤나 늦은 진출이자 새로운 발견이기도 한데, 탄탄한 실력과 강렬하면서도 서정적인 선율, 기존 영미권 출신들이 가지지 못한 특유의 열정과 색채감으로 감독과 제작자 그리고 관객들을 사로잡고 있다. 페르난도 벨라즈퀘즈 역시 그들 못지않은 실력으로 스페인 영화음악가의 전성시대를 이어갈 것으로 평가받는다.

몬스터 콜

감독 후안 안토니오 바요나

출연 루이스 맥더겔, 시고니 위버, 펠리시티 존스, 리암 니슨

개봉 2016 미국, 스페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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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해 둘 필요가 있는 영화음악가,
페르난도 벨라즈퀘즈
페르난도 벨라즈퀘즈 / 오퍼나지 - 비밀의 계단

현재 자국인 스페인뿐만 아니라 할리우드에서도 적극적으로 구애가 이어지고 있는 이 1976년생의 작곡가는 첼로 연주자로 시작해 다양한 오케스트라에서 경험을 쌓았고, 동시에 스페인 왕립음악학교에서 작곡을 수학하며 자신의 능력을 꽃피우기 시작했다. 1999년부터 여러 단편영화에 참여하며 일찌감치 영화음악에 뛰어들었고, 이 시절 후안 안토니오 바요나 감독과도 인연을 맺게 되었다. 장편 영화음악을 처음 맡았던 건 2006년 게리 올드만이 주연한 영국과 스페인 합작 영화인 <백우즈>. 그러나 영화음악가로서 페르난도 벨라즈퀘즈라는 이름을 각인시킨 건 다음해 친구인 후안 안토니아 바요나가 장편 입봉한 <오퍼나지- 비밀의 계단>에서였다.

마마 / 크림슨 피크

여기서 전통적인 오케스트라를 활용해 아름다우며 애잔한 호러 스코어를 작곡한 벨라즈퀘즈는 단숨에 기대주로 떠오르며 각종 영화상 후보에 지명됐다. 이후 <쉬버><캠퍼스 킬러>, <줄리아의 눈> 등 자국 호러/스릴러 영화음악들을 이어가며 자신의 스타일을 확립해갔고, 할리우드에서도 주목해 M. 나이트 샤말란이 각본을 쓰고 제작한 <데블>의 음악감독으로 기용되며 역시 좋은 평가를 받았다. 특히나 길예르모 델 토로가 제작한 일련의 호러영화들 <오퍼나지><줄리아의 눈>, <마마> 그리고 델 토로 본인이 직접 감독한 <크림슨 피크>에서 탁월한 실력을 발휘했는데, 특유의 고전적이면서도 고딕적인 풍취를 자아낸 심포닉 사운드는 호러의 격을 달리했다.
 

  스페인을 넘어 할리우드와 세계 각국으로...
가르보: 더 스파이 / 게르니카

물론 호러/스릴러 장르에 강점을 보인 게 사실이지만 벨라즈퀘즈가 이쪽에만 목을 맨 건 아니다. 스페인의 셰익스피어로 알려진 로페 데 베가의 일대기를 담은 <로페>나 스페인 내전을 다룬 <게르니카> 같은 시대극에서부터 스페인의 대표적인 코믹스 지피와 자페시리즈를 영화화한 <쌍둥이와 마블갱><마이더스 어드벤쳐> 같은 가족 모험물, 그리고 <스페니쉬 어페어><스패니쉬 무비> 같은 코미디나 <더 임파서블>처럼 가슴 찡한 휴먼 드라마, 2차 대전 때 독일과 영국에서 각각 훈장을 받은 기막힌 인물을 다룬 <가르보: 더 스파이같은 다큐는 물론, 애니메이션 <마이펫 오지>에 이르기까지 장편 데뷔 10년이 조금 넘은 시간 동안 정말 다양한 작품들을 소화해냈다.

이런 전도유망한 인재를 할리우드가 놓칠 리 만무하다. 드웨인 더 락존슨이 나왔던 호쾌한 액션물 <허큘리스>를 비롯해, 좀비 버전의 오만과 편견<오만과 편견 그리고 좀비>, 다국적 자본이 투입돼 칠레의 군사 독재 시절 사이비 종교 시설 실화를 바탕으로 만들어진 <콜로니아> 등 국적을 초월한 다양한 장르의 영화들에서 뜨겁고 생생한 음악을 제공했다. 감성을 자극하는 서정적인 멜로디 감각에, 익숙하고 전형적인 한계와 지루함을 뛰어넘는 전개와 스타일, 거기에 최적화되어 있는 심포닉 사운드의 자극은 그의 음악을 더 기대하게 만든다. 길지 않은 시간 동안 실망보다는 놀람을 더 들려준 그의 사운드트랙은 신뢰감의 상징이 되어간다.
 


고야상을 석권한 <몬스터 콜>

벨라즈퀘즈에게 스페인의 아카데미상이라 부를 수 있는 고야상을 처음으로 안겨준 <몬스터 콜>은 후안 안토니오 바요나 감독과의 파트너십이 절정에 이른 작품으로, 호러적인 색채와 환상적인 분위기의 판타지, 가슴 아픈 성장담이 동시에 어우러져 보는 재미 못지않게 듣는 재미도 선사한다. 첼리스트였던 이력이 말해주듯 스트링 편성에 도가 튼 솜씨를 들려주는데, 이 화려하고 변화무쌍한 연주에 피아노와 플루트 위주로 풀어내는 서정성은 전체적으로 다크하고 우울하며 기괴한 분위기와 만나 더욱 극대화된다. 여기에 합창과 브라스를 곁들이며 장중한 고딕 톤을 자아내는 소리들이 소년의 슬픔과 두려움을 청각화하며 관객을 동화시킨다.
 
하지만 벨라즈퀘즈는 바요나 감독의 다른 영화 <오퍼나지><더 임파서블>에서처럼 슬픔과 아픔을 통해 희망을 이야기하고, 현실을 위로하며 다시 발을 내밀 수 있게 등을 떠밀어준다. 그것이 바로 인생이라는 듯 단순한 진리를 숭고하면서도 강력하게 설파하는 그의 음악은 감동적이고 아름답다. 여기에 밴드 킨이 불러주는 치유의 진군가 ‘Tear Up This Town’도 빼놓을 수 없다. 4집의 ‘Disconnected’ 뮤직비디오를 바요나 감독이 찍은 인연으로 이 영화의 주제곡까지 맡게 되었는데(물론 이 뮤직비디오에 걸맞게 킨의 음악을 응용한 것도 벨라즈퀘즈였다), 킨만의 사이다(!)스러운 상쾌한 매력이 철철 넘치는 노래다.
 

모처럼만에 나온 지능적인 스릴러
<인비저블 게스트>

스페인에서 올 초 공개된 <인비저블 게스트>는 개봉 당시 쟁쟁한 할리우드 흥행작들을 제치고 박스오피스 1위를 기록해 화제를 모았던 작품으로, 지적인 웰메이드 스릴러가 어떤 것인지 손수 증명해내는 영화다. 고급스런 추리물을 보듯 관객들을 단박에 사로잡는 데는, 기발한 스토리와 강력한 모티브, 좋은 연기와 연출이 어우러진 것도 있지만, 바로 버나드 허만의 재림이라 할 수 있을 만큼 강렬한 서스펜스 스코어를 깔아준 벨라즈퀘즈의 공도 무시할 수 없다. 그간의 오케스트럴 사운드에서 한발 나아가 과감히 일렉트릭 요소들을 차용해 공존시키는데, 마치 샤말란 영화에서 맘껏 날아다녔던 제임스 뉴톤 하워드의 스코어를 연상케 한다.

묵중하니 힘 있는 활시위의 스트링이 긴장감을 자아내고, 그 위로 불안함을 감지한 서늘한 피아노와 파리한 목관부가 신경줄을 자극하며 사건 속으로 쉽게 몰아간다. 진술에 의해 사건의 진상이 드러나고 또 재구성되는 만큼 구조적인 미학과 타임어택의 박진감을 동시에 갖고 있는데, 이를 효과적으로 붙이고 살리는 건 음악의 힘이다. 벨라즈퀘즈는 자칫 뻔해지고 쉬워질 수 있는 영화의 강약과 흐름을 조율하며 관객과의 게임을 정정당당하게 이끈다. 여기에 감정적인 부분까지 세심하게 짚어주는 스코어는 막판에 이르러 점차 크레센도 되어가며 예측할 수 없는 결말로 몰아붙인다. 비로소 끝이 났을 때 터져나오는 한숨은 자하라가 부르는 엔딩곡 ‘Nadie va a venir a buscarte’에 녹아들며 경탄의 박수를 치게 만든다.

인비저블 게스트

감독 오리올 파울로

출연 마리오 카사스, 안나 와게너, 바바라 레니, 호세 코로나도

개봉 2016 스페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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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운드트랙스 / 영화음악 애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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