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티브 잡스가 세상을 떠나고 6년이 지났다. 하지만 혁신을 논할 때 잡스는 여전히 가장 먼저 호명되는 인물이다. 영화 같은 잡스의 인생과 특유의 리더십은 영화의 매력적인 소재가 돼 왔다. 10월 5일, 잡스의 기일을 맞아 스티브 잡스의 인생을 다룬 영화 네 편을 소개한다. 잡스의 인생사를 빠르게 훑어보는 영화부터 잡스의 깊은 속내를 담은 인터뷰 영화까지 다채롭게 꾸려봤다.


잡스와 애플의 역사, <스티브 잡스: 미래를 읽는 천재>

스티브 잡스 사망 1주기 즈음 개봉한 <스티브 잡스: 미래를 읽는 천재>(2011)는 잡스학의 개론서 격 다큐영화다. 56분의 러닝 타임엔 잡스가 이룬 성취들이 알차게 들어선다. 특히 마케팅 전문가나 잡스 관련 저술가, 잡스의 동료들을 주요 인터뷰이로 설정해 스티브 잡스의 리더십과 비전을 명확한 언어로 풀어낸다. 경영진에 의해 '리사' 프로젝트가 중단되고, ‘복수’의 도구로 '매킨토시'를 개발하던 대목에선 잡스 특유의 추진력을 확인할 수 있다.

잡스는 회사에서 최고의 엔지니어들만 골라 '매킨토시' 팀을 꾸리고, 자신들은 '해적'으로, 다른 팀 직원들을 '해군'으로 칭하며 팀원들에게 '반항심'과 '기업가정신'을 주입한다. 그 덕에 동료들 사이에선 "일하긴 까다롭지만 존경스러운 인물"로 통하게 된다. 제품에 관한 잡스의 비전은 일관적이다. ‘제품은 쉽고, 매력적이어야 한다’는 것. "기존에 있는 것들을 개선하는 데 탁월했던" 잡스는 "더 멋진 디자인", 그리고 "필요 없어도 갖고 싶어지게 하는" 소비자들의 마음을 부추기며 1996년 애플에 복귀한 후에도 성공적으로 제품들을 런칭한다.

스티브 잡스 : 미래를 읽는 천재

감독 타라 피리나

출연

개봉 2011 미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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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아는 잡스, <잡스>

<잡스>(2013)는 컴퓨터 제작부터 명상, 캘리그라피까지 다양한 분야에 관심을 쏟던 스티브 잡스의 20대 청년시절부터 애플 CEO가 되어 아이팟을 런칭하는 40대 시절까지를 다룬다. 스티브 잡스 역을 맡은 애쉬튼 커쳐는 수염, 헤어스타일 같은 외모의 디테일부터 상체가 조금 앞서는 잡스의 걸음걸이까지 제 몸에 고스란히 옮겨온다.

인상적인 고증에 비해 영화는 잡스의 새로운 면모나 속내까지 담아내진 못한다. 동료를 대하는 오만한 태도, 예상치 못한 난관 앞에서 분노하는 모습만이 반복된다. 애플1에서 시작해 아이팟으로 이어지는 화려한 제품의 역사를 따라가면서도 아이디어가 제품으로 진화해가는 과정을 촘촘히 그려내는 것도 아니다. 9:1 가르마를 곱게 타고 잡스를 위협하는 애플의 이사, 아서 역의 J. K. 시몬스 등장 정도가 인상적이다.

잡스

감독 조슈아 마이클 스턴

출연 애쉬튼 커쳐, 조시 게드, 더모트 멀로니, 매튜 모딘

개봉 2013 미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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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레젠테이션 귀재의 무대 40분 전, <스티브 잡스>

전기 영화의 전형을 피하고 싶었던 대니 보일 감독과 시나리오 작가 아론 소킨은 잡스가 했던 세 번의 프레젠테이션을 중심으로 3막 구조의 영화를 완성했다. 영화 <스티브 잡스>(2015)는 1984년 리사, 1988년 넥스트, 1998년 아이맥의 제품 소개 프레젠테이션 직전 40분을 리얼 타임으로 따라간다. 리사를 발표할 때만 해도 잡스는 애플2의 성공에 힘입어 승승장구했다면, 애플에서 쫓겨난 잡스는 스스로의 존재를 증명하기 위해 넥스트를 내놓아야했고, 애플의 CEO로 화려하게 재기해서는 그간의 역량을 집대성한 아이맥을 소개한다.

마이클 패스밴더가 연기하는 스티브 잡스는 1막에선 독단적이고 강박적인 면모로 일관한다면, 여러 곡절을 겪은 3막에서는 미묘하게 인간적인 지점들을 드러낸다. 영화 <스티브 잡스>가 특별한 건 잡스뿐만 아니라 잡스를 가까이 겪었던 인물들이 영화의 공동 주연으로 등장한다는 점이다. 유능한 마케터 조안나 호프만(케이트 윈슬렛), 잡스의 친구이자 천재 개발자 스티브 워즈니악(세스 로건), 잡스와 애증 관계의 애플 CEO 존 스컬리(제프 다니엘스), 개발자 앤디 허츠펠트(마이클 스털버그)와 프레젠테이션 매니저 앤디 커닝햄(사라 스누크), 그리고 잡스의 딸 리사는 3막 모두에 등장해 잡스와 격렬하고 때로는 뭉클한 대화를 나눈다. 휴대용 단말기와 인터넷이 지배하는 21세기를 예견한 SF 거장 아서 C. 클라크, 애플 광고에도 등장했던 앨런 튜링 등 PC 역사에 관해 빼놓을 수 없는 인물들에 대한 언급도 흥미롭다. 다만 대사가 빠르고 방대해 사전 지식을 익히고 볼 때 훨씬 재밌게 즐길 수 있다.

스티브 잡스

감독 대니 보일

출연 마이클 패스벤더, 케이트 윈슬렛, 세스 로건

개봉 2015 미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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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고에서 발견된 미공개 인터뷰, <스티브 잡스: 더 로스트 인터뷰>

1995년 다큐멘터리 감독 폴슨은 PC의 탄생에 관한 TV시리즈 '괴짜들의 승리'를 만들며 스티브 잡스를 인터뷰했다. 당시 인터뷰는 일부분만 프로그램에 사용됐고 나머지 녹화분은 실종됐는데, 2011년 잡스 사망 직후 감독의 차고에서 극적으로 VHS 복사본이 발견됐다. 이 테이프를 현대 기술로 다듬어 정리한 영화가 <스티브 잡스: 더 로스트 인터뷰>(2011)다. 95년 당시 잡스는 자신이 영입한 애플 CEO 존 스컬리에 의해 애플에서 해고되고 컴퓨터 회사 넥스트를 운영하고 있었다. 잡스는 이 인터뷰에서 워즈니악과 함께 교황한테 장난전화를 건 에피소드부터 제품개발에 얽힌 비하인드 스토리, 작업 철학 등을 두루 털어놓는다. 스티브 잡스라는 인물을 이해하기엔 더없이 좋은 자료다.

여러 흥미로운 질문 중 스티브 잡스를 움직이는 동력을 묻는 질문에 대해 잡스는 이렇게 대답한다. “삶이란 부모가 살아가는 방식은 아니다. 사람들은 제품을 사랑한다고 하지 않는다. 하지만 매킨토시 사용자들은 매킨토시를 사랑한다. 제품에 담긴 무언가를 느꼈기 때문이다. 나와 함께 일했던 진정 훌륭한 사람들은 컴퓨터 자체를 위해 컴퓨터 일을 한 게 아니다. 컴퓨터는 자신들이 가진 어떤 감정을 가장 잘 전달할 수 있는 매개체였기 때문이다. 다른 사람들과 공유하고 싶은 감정 때문이다.”

스티브 잡스 : 더 로스트 인터뷰

감독 폴슨

출연 스티브 잡스, 로버트 X. 크링겔리

개봉 2011 미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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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수빈 <씨네21> 객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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