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석 연휴 극장가에선 보통 큰 영화들이 흥행대전을 벌입니다. 올 추석에도 <아이 캔 스피크>, <남한산성>, <킹스맨: 골든 서클> 등 한국영화와 할리우드 대작들이 많은 상영관을 점하고 있습니다. 이런 영화들도 좋지만 좀 더 색다르고 낯선 영화를 만나보는 건 어떨까요? 영화 몇 편을 보고 또 볼 여유 정도는 있는, 긴긴 추석 연휴이니까요. 추석 연휴 극장가에서 보면 좋을 다양하고 색다른 영화들을 소개합니다. 



<데이빗 린치: 아트 라이프>
감독 존 구옌, 릭 반즈, 올리비아 니르고르-홀름 상영시간 88분 개봉 9월21일

"아무리 새로운 아이디어도 과거를 벗어날 수는 없다." <데이빗 린치: 아트 라이프>의 초반, 데이빗 린치의 이 말이 정확이 다큐멘터리 <데이빗 린치: 아트 라이프>를 관통한다. 자신만의 독창적인 영화 세계를 항해해온 현재의 데이빗 린치도 일정 부분 자신의 과거에 빚질 수밖에 없다는 의미일 것이다. 영화에는 70대의 데이빗 린치가 직접 출연해 미술 작품을 작업하기도 하고 동시에 그가 영화의 내레이션을 맡아 과거의 자신을 들려준다. 특히 영화감독으로 데뷔하기 이전 미술학도였던 소년 데이빗 린치를 만날 수 있는 좋은 기회다. 

중학교 시절 학교 밖에서 사랑과 꿈을 좇던 소년 데이빗은 화가인 지인의 작업실 한쪽에서 밤새도록 그림을 그렸다. 보스턴과 필라델피아 예술학교를 거치며 '움직이는 그림'에 대한 관심을 발견하며 '라이브 액션 애니메이션' <알파벳>(1968)을 만든다. 이후 그는 아메리칸 필름 인스티튜트가 후원하는 공모에 당선돼 영화감독으로서의 삶의 문을 열어젖힌다. <이레이저 헤드>(1977) 촬영 당시의 영상과 함께 현재의 데이빗은 그때를 회고한다. "최고로 행복한 작업이었다. 정말 아름다웠다. 그 모든 것들이…." 린치의 음성과 그림, 린치의 영상과 사진이 콜라주돼 있다. 이 한편의 영화가 데이빗 린치의 '아트 라이프'의 한 페이지인 셈이다. 그의 영화 세계의 초입과 그의 새로운 아이디어의 원류가 궁금한 관객들이라면 챙겨볼 이유가 충분하다.

데이빗 린치: 아트 라이프

감독 존 구옌, 릭 반즈, 올리비아 니르고르-홀름

출연 데이빗 린치

개봉 2016 미국, 덴마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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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빌로우 허>
감독 에이프릴 뮬렌 상영시간 91분 개봉 9월21일

이것은 두 여성의 육감적이고도 솔직한 러브 스토리다. 지붕 수리공인 달라스(에리카 린더)와 패션 잡지 에디터인 재스민(나탈리 크릴)은 우연히 마주친다. 아주 짧은 그 순간을 놓치지 않고 두 사람은 서로를 의식하고 서로에게 끌리며 서로를 궁금해한다. 재회한 이들은 서로의 감정을 확인한다. 재스민에게는 약혼한 남자가 있다. 하지만 영화는 재스민의 약혼과 같은 두 여성 앞에 놓인 예상 가능한 현실의 벽에는 최소한의 드라마만을 부여한다. 영화는 두 여성이 서로를 원하고, 탐하는 육체적 교감의 순간에 상당한 분량을 할애하며 공을 들인다.

어린 시절부터 레즈비언으로서의 자신의 성정체성을 정확히 인지하고 적극적으로 자신의 욕망을 받아들여온 달라스와 자신의 성적 지향을 애초 모른 척하길 강요받아온 재스민. 감정적 흥분을 직면하고 그것을 담대하게 받아들이는 두 여성은 마음과 몸이 반응하는 대로 끝까지 간다. 달라스 역의 스웨덴 출신 모델 겸 배우 에리카 린더는 더없이 강렬해 다음 작품이 궁금해질 정도다. 배우 출신인 여성감독 에이프릴 뮬렌은 일거리가 적고 캐릭터가 빈궁한 여성배우로서의 현실을 타개해보고자 직접 메가폰을 잡았다. 촬영감독, 프로듀서 등 주요 스태프들 역시 여성들로 꾸린 ‘여성영화’다. 그녀들이 빚어낸 사랑은 언제나 그녀들의 편이다.

빌로우 허

감독 에이프릴 뮬렌

출연 나탈리 크릴, 에리카 린더

개봉 2016 캐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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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땐뽀걸즈>
감독 이승문 영시간 85분 개봉 9월27일

18살 거제여자상업고등학교 소녀들은 오늘도 스텝을 밟는다. 일명 '땐뽀반'인 댄스 스포츠 동아리반 소녀들은 댄스 스포츠 대회 준비에 한창이다. 19살이면 곧바로 취업 시장으로 뛰어들어야 하는 소녀들에게 땐뽀반은 학교생활의 유일한 즐거움이자 졸업 전 정붙일 언덕이다. 땐뽀반을 지도하는 이규호 선생님은 소녀들에게 너른 구릉이자 버팀목이다. 선생님은 댄스를 가르치는 일 못지않게 제자들 저마다의 부침 심한 생활과 가정사를 살갑게 다독인다.

<땐뽀걸즈>는 그럴 듯한 목표를 설정하고 포부를 밝히는 소녀들의 성장담과는 거리가 멀다. 취업과 생계라는 당면한 현실을 애써 눈감지 않으면서도 소녀들이 즐길 수 있는 것, 신나서 빠져들 수 있는 것으로서 댄스를 말한다. 그 중에서도 일찌감치 독립해 고깃집 아르바이트를 하며 그곳에서 번 돈으로 방세를 내는 땐뽀반의 ‘현빈’은 유독 눈이 간다. 서빙을 하면서도 현빈의 발은 이미 스텝을 연습한다. 자지러지게 웃고 떠들기도 하고 눈물과 땀을 쏙 빼기도 하는 소녀들의 댄스 시간은 보는 이에게도 귀하다. 올해 4월 <KBS 스페셜> '땐뽀걸즈' 편을 극장용 다큐멘터리로 완성해 개봉까지 하게 됐다.

땐뽀걸즈

감독 이승문

출연 이규호, 김현빈, 배은정, 박혜영, 박지현, 박시영, 심예진, 김효인, 이현희

개봉 2016 대한민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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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장>
감독 남연우 상영시간 103분 개봉 9월27일

무명배우 송준(남연우)은 트랜스젠더 역할을 주인공으로 내세운 연극 <다크 라이프>의 오디션 준비에 여념이 없다. 트랜스젠더인 이나(홍정호)를 만나 그녀의 삶을 통해 트랜스젠더를 이해하는가 하면 안무가인 동생 송혁(안성민)에게 춤까지 배운다. 성소수자에 대해서라면 송준은 "인권문제"이며 "(성소수자는) 틀린 게 아니라 다른 것"이라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다. 1000:1의 경쟁률을 뚫고 연극 주인공이 된 송준은 캐릭터에 완벽히 몰입했다는 칭찬까지 받는다. 하지만 송준은 송혁의 비밀을 알게 되면서부터 스스로 이해했다고 여긴 것들에 혼란을 느낀다. 더 이상 연극에도 몰입할 수가 없다.

<분장>은 송준 역의 배우 남연우가 직접 연출한 작품이다. 타인을 이해하고 심지어 받아들일 준비가 끝났다고 생각했던 송준의 믿음 혹은 이해가 얼마나 쉽게 깨질 수 있는 것이었나를 여지없이 보여준다. 인간은 얼마나 위선적이고 나약한가. 사회적 편견과 고정된 사고의 틀은 또 얼마나 공고하며 폭력적인가. 또한 극 중 연극 연출가와 송준의 대화에서 불쑥 튀어나오는 말, "진정성은 이 시대가 만들어낸 말 같아"는 <분장>이 던지는 중요한 질문이다. 캐릭터를 받아들이고 그 캐릭터로서 무대 위에서 존재했던 배우가 분장을 지우고 무대를 내려왔을 때 생기는 극심한 심리적 격차에 대해서 어떻게 말할 수 있을까. '진정성'에 대한 물음이 자연스레 따라붙는다.

분장

감독 남연우

출연 남연우

개봉 2016 대한민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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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태어나도 우리>
감독 문창용, 전진 상영시간 95분 개봉 9월27일

티베트 불교의 수도승 가운데는 전생의 못다 이룬 업을 잇기 위해 몸을 바꿔 현생에 다시 태어나는 이가 있다. 그들을 일컬어 '린포체'라 한다. 동자승 파드마 앙뚜는 자신은 전생에 티베트 캄에서 자랐으며 꿈에서 그곳이 보인다고 말한다. 범상치 않은 이 아이가 바로 린포체다. 앙뚜는 6살에 린포체로 즉위해 티베트의 위대한 스승으로 여겨진다. 하지만 티베트 캄의 사원에서 앙뚜를 찾으러 오지 않자 결국 앙뚜는 추방된다. 앙뚜 곁에는 의사 겸 승려인 우르갼만이 남았다. 그는 앙뚜의 스승이자 부모이며 동무다. 앙뚜는 자신을 보며 '사기꾼'이니 '가짜 린포체'니 수군거리는 사람들에게 상처받고 때론 그 자신조차 '내가 정녕 린포체인가' 혼란스럽다. 앙뚜와 스승은 린포체로서의 부름을 받기 위해 티베트 국경 지대로의 긴 여정에 오른다. 2개월이 넘는 도보 기행 끝에 앙뚜는 한 사원으로부터 린포체 교육을 허락받는다. 앙뚜와 우르갼은 이제 정말 긴 이별이다.

<다시 태어나도 우리>는 린포체에 대한 종교적 접근에는 관심이 없다. 린포체를 신성시하거나 반대로 그 존재를 의심하지도 않는다. 오직 앙뚜와 스승의 인간적 유대와 깊은 애정만이 이 영화를 이끈다. 운명을 받아들이고 묵묵히 그 인생을 걸어야 하는 이들의 소명의식과 고행이 있다. 또한 인생에는 '회자정리'의 아픔이 있겠으나 그럼에도 '다시 태어나'서라도 '거자필반'으로 재회할 일에 거는 기대도 있다. 무엇보다 영화 말미 눈 하나 없는 들판에서 눈싸움을 하며 함께 눈물을 흘리던 스승과 제자의 모습에서, 마음이 서로 통하는 친한 벗이란 이런 것임을 확인하게 된다.

다시 태어나도 우리

감독 문창용, 전진

출연 파드마 앙뚜, 우르갼 릭젠

개봉 2016 대한민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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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지혜 / 영화 저널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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