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님, 저 원고 마감 좀 늦춰주시면 안될까요? 제가 지금 지원서 16장을 써야 하거든요.” 다행히 씨네플레이에서는 합격을 담보로 마감 연장 요청을 받아주었다. 그렇다. 나는 현재 수험생이자, 10년 경력 대학잡지 에디터로 그 중 반은 영화팀, 나머지 절반의 시간은 취업팀을 담당했다. 동시에 공고한 팀 빌딩을 위해 '위로 전문가'로 활약해야 하기도 했으니, 여기에 나의 레퍼런스가 되어 준 수험생, 취준생 분들 위한 위로영화족보를 남기겠다. 대리만족 성공스토리, 스트레스 해소용, 취업 및 노동 시장 시스템에 문제제기하는 영화는 제외했고, 미시-거시적인 관점으로 우리의 과정을 돌봐줄 영화들을 꼽았다.


미스 리틀 선샤인
(Little Miss Sunshine, 2006)

지금 당신이 아무리 망했어도, 이 영화를 보면 웃게 된다. <미스 리틀 선샤인>은 어린이 미인 대회 이름이다. 대회의 우승을 꿈꾸는 이 집의 막내딸 올리브는 배가 뽈록 나온 예쁜 소녀이고, 아버지는 성공 9단계 이론을 팔지 않으면 엄청나게 쪼달리는 가계 형편에 처할 절박한 자기계발서 작가이며, 삼촌은 처참하게 짝사랑에 실패하고 자살을 시도한 게이다. 할아버지는 약쟁이고, 오빠는 가족 포함 모든 게 다 싫은 꼴통 수험생이다. 이들을 싣고 달리는 미니버스는 한마디로, 성공이 아닌 실패를 향해 사랑스럽게 내달린다. 뷰티 콘테스트의 연속인 인생따윈 필요 없다며 뻑큐를 날리고, 내가 사랑하는 것들과 마이웨이를 가겠다고 선언한다. 이 모습을 보고 있으면 힘이 날 수밖에 없다.

미스 리틀 선샤인

감독 조나단 데이턴, 발레리 페리스

출연 스티브 카렐, 토니 콜렛, 그렉 키니어, 폴 다노, 아비게일 브레스린, 알란 아킨

개봉 2006 미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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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란시스 하
(Frances Ha, 2012)

돈은 없지만 꿈과 낭만은 있다. 누군가와의 연애나 결혼보다는 타인과 서로 공명하는 순간들이 더 사랑답다고 느낀다. 지금 이렇게까지 지저분한 건 타고난 습성이 아니라 그냥 좀 바빠서 그럴 뿐. 27살 프란시스는, 공연에서 잘리는 연습생 신분임에도 무용수의 꿈을 고집한다. 일상을 지탱해준 룸메가 결혼을 선언하고 나가면서, 방세 압박과 외로움을 동시에 해결해야 하는 상황에 봉착한다. 이 영화는 흑백인데, 신기하게 러닝타임 몇 분을 넘어가면 생생하게 올컬러 심상이 재생되는 듯한 하이퍼색채 경험을 하게 만든다. ? 뭘 해도 숨가쁠 수밖에 없는 일상을 꺼이꺼이 해내는 프란시스의 모습이 내것 같기 때문이다. 감상 포인트는, 꿈을 풀어내는 그녀의 거대한 선택과 마지막 장면이다. 모든 과정이 조용히 진행되는 와중에 단전 깊숙이 묵직한 이너 파워를 전달한다.

프란시스 하

감독 노아 바움백

출연 그레타 거윅, 믹키 섬너, 그레이스 검머, 아담 드라이버, 마이클 제겐

개봉 2012 미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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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토피아
(Zootopia, 2016)

한 시간을 여럿으로 나눠 써야 하는 너무 다단한 스케줄 속에 방전되신 분들은 디즈니 애니메이션으로 재빠르게 현실감을 잃고 무장해제된 후, 한방에 용기와 에너지를 얻을 필요가 있다. 디즈니빠로서 같은 계열의 에너자이저라 할 수 있는 <라따뚜이>(2007), <모아나>(2016)도 추천드리는데 본인의 태생적 한계에 좌절 중인 분들은 전자를, 여러 번 실패 후 자리보전하신 분들께는 후자를 권한다. 그 와중에 <주토피아>는 역대급이다. 갑빠 측면에서 아주 많이 밀리는 토끼의 스펙에도 악착같이 주토피아의 경찰관으로 합격한 주디의 모토는 "Try Everything"이다. 침대 생활 한창이었던 나는 기대 없이 이 영화를 보고서는 "진짜 모든 방법을 다 시도해봤는가!"라 자문하며 자리를 털고 일어날 수 있었다.

주토피아

감독 바이론 하워드, 리치 무어

출연 지니퍼 굿윈, 제이슨 베이트먼, 샤키라, 알란 터딕, 이드리스 엘바, J.K. 시몬스

개봉 2016 미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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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이후드
(Boyhood, 2014)

나는 사회과학계열 심리학도로 인생그래프 최하향지점인 취업준비 시기를 보냈다. 심리극에서는 내담자가 현실에 좌절했을 때, ‘10년 후의 내가 되어 말해주기’ 같은 시간여행 기법을 쓴다. 이것이 바로 지금, 여기, 현실에 매몰된 나를 구출하는 시간의 힘이다. <보이후드>는 실제 12년 동안 한 꼬마가 소년으로 성장하는 것을 촬영했다. 우리가 아는 거의 모든 성장담은, 현실의 남루함을 깨닫고 그 공상의 무덤 위에 새로운 꿈을 피워내는 과정을 담고 있다. 이 영화에서는 부모도 함께 성장하는 생생한 역사를 볼 수 있는데, 엄마 역의 패트리샤 아퀘트, 아빠 역의 에단 호크의 대사가 큰 위로로 다가온다. "우리가 숨쉬는 이 시간은 어디로 사라지지 않고 우리 안에 쌓일 것이다. 시간이 우리를 살아가게 할 것이다." 이것이 내가 해석한 <보이후드>의 엔딩이다.

보이후드

감독 리처드 링클레이터

출연 엘라 콜트레인, 에단 호크, 패트리샤 아퀘트, 로렐라이 링크레이터

개봉 2014 미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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굿 윌 헌팅
(Good Will Hunting, 1997)

<굿 윌 헌팅>은 위로 영화의 고전으로 “It’s not your fault”라는 한마디 말과, 팔 핏줄 튀어나오도록 안기는 윌 헌팅, 故 로빈 윌리엄스의 얼굴로 많은 이들에게 기억되고 있다. 윌 헌팅은 천재이지만, 자신을 믿지 못하고 어린 시절 받은 학대의 상처에 묶여있다. 윌을 좀 더 나은 삶으로 이끄는 숀 교수의 진심어리고 정성스런 마음은 20년을 건너 우리에게까지 와락건네진다. 모든 실패는, 성공의 어머니라 쳐도 상처를 남긴다는 본질을 가지고 있다. 우리는 그 상처의 끝에서 전부를 다하지 못한 나 자신을 탓한다. 어쩌면 이것이 가장 쉬운 방법이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그렇지만 세상이 이렇게까지 팍팍한 건 정말, 네 잘못이, 아닌 걸.

굿 윌 헌팅

감독 구스 반 산트

출연 맷 데이먼

개봉 1997 미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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렌트
(Rent, 2005)

꿈을 찾고 사랑하는 두 청춘의 <라라랜드>가 폭발적이었다면, 뮤지컬 영화 중 이보다 앞선 것이 있으니 바로 <렌트>. 뮤지컬 영화가 언제나 그렇듯 비상업 장르였던 개봉 당시에도 많은 청춘들이 눈물을 왈칵 쏟아내며 입소문을 퍼트렸다. 이 영화도 가난하고 열정 넘치며 고집 센 젊은 예술가들의 이야기다. 브로드웨이 오리지널 뮤지컬을 스크린으로 옮겨온 것으로, 원작자인 조너던 라슨은 등장인물들과 비슷한 예술가의 삶을 살다 <렌트> 오픈 하루 전에 요절했다. ‘렌트하며 사는 우리의 인생에선 무엇이 기준이 될 수 있을까? 영화의 테마곡인 ‘Seasons of Love’를 플레이하면 바로 알 수 있다. 이 깨달음의 지점이 <렌트>의 가장 큰 미덕이며, 우리를 깊게 숨쉬게 한다.

렌트

감독 크리스 콜럼버스

출연 로사리오 도슨, 타이 딕스, 윌슨 저메인 헤르디아, 제시 L. 마틴, 이디나 멘젤, 아담 파스칼, 안소니 랩, 트레이시 톰스

개봉 2005 미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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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플래쉬
(Whiplash, 2014)

<위플래쉬><라라랜드> 데이미언 셔젤 감독의 장편 데뷔작으로, 정상급의 재즈 드러머를 꿈꾸는 학생과 학대에 가까운 교육을 실천하는 선생의 전쟁영화다. 이 영화의 '위로 알고리즘'은 다른 영화 셀렉션과는 아주 다르다. 꿈과 노력이 가진 필연적인 본질이 광기와 자학이라는 것을 갈비뼈 안쪽을 진동시키는 드럼 사운드로 직면하게 한다. 마지막 10분을 무호흡의 상태로 보내고 엔딩에서야 숨을 쉴 수 있었는데, 그때 이런 목소리가 들려왔다. "철수야, 영희야. 나도 너와 같이 이 얼음 자갈밭을 맨살로 걷고 있으니 외로워 말고 가던 이 길 계속 가자꾸나. 그렇게 우리 끝장을 보고야 말자."

위플래쉬

감독 데이미언 셔젤

출연 마일즈 텔러, J.K. 시몬스

개봉 2014 미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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댄서
(Dancer, 2016)

다큐멘터리 <댄서>와 극영화 <빌리 엘리어트>(2000)를 두고 무얼 쓸까 한참을 고민했다. 둘 다 발레리노를 꿈꾸는 소년의 이야기로 피나게 노력하는 천재의 성공을 그린다. 그런데 <댄서>를 소개하기로 선택한 이유는? 가족들의 눈물 나는 희생의 결과로 영국 로열발레단 최연소 수석 무용수에 오른 발레 스타, 세르게이 폴루닌은 어느 날부터인가 발레가 자신을 버틸 수 없이 진빠지게 한다는 것을 느낀다. 그는 누구보다 높이 점프했지만, 어깨 위 슬픔의 무게로 더 날아오르고 싶지 않아졌다. 그렇게 자신과 가족의 모든 것을 걸었던 발레단 무대를 스스로 박차고 나와 밥벌이를 위한 무대에 서며 하루하루를 살아간다. 세르게이가 친구에게 부탁해 완성된 은퇴 안무가 그의 눈물과 함께 호지어(Hozier)의 ‘Take Me To Church’ 위로 흐를 때, 우리는 꿈의 그림자로부터 서서히 자유로워지는 한 인간의 영혼을 목도할 수 있다.

댄서

감독 스티븐 캔터

출연 세르게이 폴루닌

개봉 2016 영국, 미국, 러시아, 우크라이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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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진아 / 프리랜스 에디터(이자 수험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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