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사랑 윤순임을 묘사하는 방식은 보다 심각하다. 윤순임 입장에서 <박하사탕>은 광주 체험을 기점으로 괴물로 변한 김영호에게 버림받는 이야기로 볼 수 있다. 제대 후 연락이 끊긴 김영호를 윤순임이 어렵게 찾는다. 김영호가 이상하다. 예전과는 달리 배려심이라고는 없다. 그녀 앞에서 보라는 듯이 다른 여성의 허벅지를 더듬기까지 한다. 윤순임은 이유를 알 수 없다. 김영호가 변한 계기를 아는 사람은 김영호 자신과 이 모든 것을 목격한 우리뿐이다. 이 와중에도 윤순임은 자리를 박차고 나가기는커녕 김영호를 위한 선물을 내민다. 보다 놀라운 것은 18년이 흐른 후 다른 남자와 결혼한 윤순임이 그만 병에 결려 생명이 위태로운 와중에도 마지막 소원으로 김영호와의 재회를 희망한다는 믿지 못할 설정이다. 김영호라는 남성이 국가폭력의 피해와 가해 사이에 입체적으로 끼어 있을 때 윤순임이라는 여성은 낭만적이고 운명적 사랑의 객체로 박제화된다. <박하사탕>의 역사 의식은 논리, 이성, 합리와는 대비되는 비논리, 감성, 로맨틱으로서의 여성, 바로 그 지리멸렬한 젠더 의식을 자양분 삼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