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은 정장의 신사들이 돌아왔다. 스마트한 뿔테 안경에, 우산과 구두를 최첨단 무기처럼 장착하고, 양복점을 전초기지 삼아 활약하는 영국남자들의 매력을 보여줬던 킹스맨이 미션 임파서블할 것처럼 보였던 속편을 뻔뻔스레 들고 나왔다. 마크 밀러의 만화 <시크릿 서비스>를 바탕으로 만들어졌지만, 감독인 매튜 본의 성향이 더 드러난 이 영화는 R등급이면서 의외의 히트를 기록하며 전 세계적으로 4억불이 넘는 수익을 올렸다. 재밌게도 미국과 중국 다음으로 가장 높은 수익을 기록한 게 한국이었는데, 그런 이유로 이번 속편 <골든 서클> 개봉을 앞두고 배우들 내한행사가 기획됐지만, 진행 미숙이란 희대의 논란을 낳으며 큰 이슈가 되기도 했다.


흔들리는 킹스맨,
그러나 위력은 대단하다

기존의 배역진 콜린 퍼스와 태런 에저튼, 마크 스트롱 외에 새롭게 미국 스테이츠맨들로 제프 브리지스와 채닝 테이텀, 페드로 파스칼과 할리 베리가 합류했으며, 줄리안 무어가 전편의 사무엘 잭슨과 마이클 케인, 소피아 부텔라를 대신해 빌런으로 출연한다. 거기에 마이클 갬본과 브루스 그린우드, 에밀리 왓슨 등 잘 알려진 배우들이 비중에 관계없이 등장해 영화를 빛내주고 있고, 또 전편을 고사했던 엘튼 존까지 망가지는 걸 두려워하지 않으며 자기 자신역할로 특별출연해 방점을 찍는다. 거기에 R등급이란 제약에도 제작비로만 1억불을 들여 전편보다 더욱 화려하고 강력한 스케일의 액션을 담아내 눈을 호강시킨다.

그러나 이런 대공세에도 영화에 대한 평가는 그리 호의적이지 않다. 전작에 비해 수위가 낮아지긴 했지만 여전히 잔혹하면서 짓궂은 농담과 다소 불편한 시선이 영화 전반에 드러나기 때문이다. 어디로 튈지 모르는 B급 정서를 간직했던 1편과 달리 방만하고 예상가능한 각본도 아쉬움을 남긴다. 그럼에도 폭발적인 흥행력을 과시하며(역대 청불 영화 최고 예매률은 물론, 5일 만에 200만 관객을 동원했다!) 추석 연휴를 앞둔 박스오피스를 선점했다. 북미에서도 개봉 첫 주 5400만불의 수익을 기록하며 좋은 출발을 알렸다. 전편의 제작진이 고스란히 합류했으며, 짜릿한 사운드를 들려줬던 헨리 잭맨과 매튜 마게슨 듀오 역시 그대로 음악을 맡고 있다.
 

‘왕의 남자들’의 작곡가,
헨리 잭맨과 매튜 마게슨

 

헨리 잭맨

<킥애스> 때부터 매튜 본과의 인연을 이어가고 있는 헨리 잭맨은 현재 가장 핫한 작곡가 중 하나로, 매튜 본과 함께 한 <엑스맨: 퍼스트 클래스>로 할리우드 '일등석'에 발을 디뎠다. 할아버지와 아버지, 삼촌이 모두 프로 음악인이었던 집안에서 태어난 그는 6살에 첫 교향곡을 작곡하고, 9살에 작곡가가 되기로 마음먹은 음악 신동으로, 이튼 칼리지와 옥스포드 대학이란 엘리트 코스를 착실히 밟았다. 클래식 교육을 받는 동시에 십대 시절 레이브와 일렉트로니카 등 클럽 사운드에 지대한 영향을 받았으며, 졸업 후 마이크 올드필드와 트레버 혼, 엘튼 존, 씰의 작업에 참여하며 프로 생활을 시작했고, 솔로 앨범도 3장이나 발표했다.
 
2006년 한스 짐머의 리모트 콘트롤 사단에 들어선 후 그를 도와 <다크 나이트><다빈치 코드>, <캐리비안의 해적> 등 굵직굵직한 프로젝트를 소화했고, 드림웍스의 장편 애니 <몬스터 vs. 에일리언>으로 영화음악가 데뷔를 했다. 심포닉과 일렉트릭의 조화를 이끌어낸 한스 짐머 스타일에 정확하게 부합하는 헨리 잭맨의 음악은 다이내믹하고 스펙터클한 상황에서 빛을 발했고, 이런 이유로 애니메이션과 블록버스터 활극, 코미디나 게임 음악에 최적화된 모습을 보여 왔다. 두 편의 <캡틴 아메리카> 속편으로 할리우드에서 확고하게 입지를 굳혔으며, 라민 자와디와 함께 현재 리모트 콘트롤에서 가장 주목할 만한 70년대생 작곡가로 뽑을 수 있다.

매튜 마게슨, 헨리 잭맨

헨리 잭맨을 도와 공동으로 이름을 올리고 있는 매튜 마게슨 역시 1980년생의 젊은 작곡가로, 초기 클라우스 바델트나 루퍼트 글렉슨 윌리엄스 등 리모트 콘트롤 소속 작곡가들의 어시로 일을 시작해 최근엔 주로 헨리 잭맨과 호흡을 맞춰왔다. 저예산 SF영화 <스카이라인>으로 장편 상업영화 음악에 입봉했고, 80년대 유로비트 선율을 간직한 <독수리 에디>를 거쳐, 대니 엘프만이 스케줄 충돌로 어쩔 수 없이 하차한 <미스 페레그린과 이상한 아이들의 집>의 대타 음악으로 픽업돼 선방하며 인상적인 족적을 남겼다. 헨리 잭맨과는 이미 15편이 넘는 작품들에서 함께 해왔던 터라 이번 <킹스맨: 골든 써클>에서도 이심전심 놀라운 궁합을 선사한다.
 

첩보물의 외피를 쓴 슈퍼히어로 음악

 

킹스맨 시리즈는 스파이 영화를 표방하지만 전통적인 방식의 에스피오나지엔 관심이 없다. 음악 역시 기존 첩보물 사운드와는 사뭇 다른 노선을 취한다. 대놓고 자신들이 전에 맡았던 <엑스맨: 퍼스트 클래스><킥애스><캡틴 아메리카> 시리즈, 혹은 <빅 히어로> 같은 슈퍼히어로 장르로 풀어낸 것이다. 당장 킹스맨 큐들을 마블 캐릭터의 배경음악으로 쓴다고 해도 어색하지 않을 정도로 잘 어울린다. 물론 007를 위시한 기존의 스파이 활극이라는 게 초능력만 없다뿐이지 사실상 슈퍼히어로(!)급 활동을 했던 만큼 그들을 위한 팡파르는 썩 괜찮은 판단이었다. 음악이 이처럼 장르를 초월하자 영화의 농담은 더욱 세지고 그럴 듯 해진다.
 
잭맨과 마게슨이 작곡한 여덟 노트의 주제부는 심플하지만 강력한 모티브로, 영화 내내 반복과 변주되며 킹스맨이란 조직의 비밀스런 생리와 신사로서 고고한 이미지를 부여하는데 성공한다. 이미 광고나 방송용 시그널로 많이 사용돼 한번 들으면 바로 알아차릴 수 있을 만큼 널리 알려졌는데, 여기에 중간 중간 존 배리 풍의 편곡과 스타일이 곁들어지며 장르적 예우와 컨벤션 활용도 잊지 않는다. 역동적으로 휘몰아치는 스트링과 호쾌한 브라스가 내지르는 영웅적인 팡파르, 흥분을 자아내는 비트감이 결합돼 완성한 액션 스코어링은 영화의 허세를 키우고, 전복적이고 발칙한 상상력에 입체감을 부여했다.
 

속편인 <골든 서클>에서도 그 기조는 변하지 않는다. 여전히 단단하고 강렬한 사운드로 더 강력해진 볼거리에 흥분과 활력을 전달한다. 달라진 게 있다면 스테이츠맨의 등장으로 미국색을 좀 더 가미했다는 정도. 영화의 포문을 여는 것도 백파이프(스코틀랜드)로 연주되는 존 덴버의 ‘Take Me Home, Country Roads’, 미국으로 넘어가서부터는 아예 벤조와 피들, 만돌린과 어쿠스틱 기타, 오토하프 등이 연주하는 미국 전통의 블루그래스 사운드가 전면에 나서며 카우보이들의 신명나는 액션에 박차를 가한다. 컨트리와 웨스턴 뮤직이 영국의 스파이물과 부딪치며 시너지를 발생하는 걸 지켜보는 것도 퍽 재미난 감상 요소다.
 

용호상박, 엘튼 존과 존 덴버
그리고 놀라운 삽입곡들
엘튼 존

아울러 엘튼 존이 실명 등장하는 만큼 그의 음악이 여러 군데에서 모습을 비추는데 ‘Daniel’‘Rocket Man’이 엘튼 존 등장 때 잠깐씩 스쳐지나가고, 골든 써클과 대결하는 하이라이트 액션 씬을 책임지는 것도 격정적이기 그지없는 ‘Saturday Night’s Alright For Fighting’이다. 엔딩 크레딧에는 ‘Jack Rabbit’이 흘러나온다. 반대로 정서적인 부분을 부각시키기 위해선 존 덴버의 곡들이 사용됐다. 옥자에서도 나온 바 있는 ‘Annie's Song’이 해리의 기억을 되살리기 위해 고심하던 바에서 흘러나왔고, 아예 스코어로도 편곡돼 멀린과 해리의 상황을 절묘하게 담아내고 있는 ‘Take Me Home, Country Roads’는 영화 내내 주요하게 활용된다.

엘튼 존 'Saturday Night's Alright For Fighting'

존 덴버

영미 대표적인 가수인 엘튼 존과 존 덴버의 용호상박 대치가 킹스맨과 스테이츠맨 간의 긴장과 대립, 균형을 맞춰주며 영화의 중심을 잡고 있다면, 그 외의 삽입곡들은 잭맨과 마게슨이 스코어로 메꾸지 못한 빈틈을 감성적으로 채워주는 역할을 해낸다. 오프닝의 택시 추격전에 쓰인 건 프린스 앤 더 레볼루션의 ‘Let’s Go Crazy’였고, 마지막 액션 씬에서 3명의 결투 때 흐르던 건 Cameo의 원곡을 The BossHoss가 컨트리 사운드로 재해석한 ‘Word up’이었다. 악당 포피를 위해선 Buddy Holly의 달달한 ‘Raining in My Heart’가 흘러나와 더 그로테스크한 모습을 강조시켰고, 글래스톤베리 음악축제 씬에선 당연하게도 브릿팝의 임브레이스와 톰 채플린 곡이 반갑게 등장한다.

매튜 마게슨이 부른 'Take Me Home, Country Roads'


킹스맨: 골든 서클

감독 매튜 본

출연 태런 에저튼, 줄리안 무어, 콜린 퍼스

개봉 2017 영국, 미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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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운드트랙스 / 영화음악 애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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