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이 뚫린 경기장에서 펼쳐진 공연. 기억에 남는 순간들이 있다. 미아가 남자친구를 등지고 극장에서 홀로 기다리고 있는 세바스찬에게 찾아오고, 서로 손을 머뭇거리던 두 사람이 입을 맞추려던 순간 필름이 타오르고 키스는 잠시 유예된다. 그때 하늘 위로 헬리콥터가 평화롭게 지나갔는데, 그 모습이 영화 속 뻘쭘함과 많이 닮아 혼자 웃음이 났다. 공연 현장은, 미아와 세바스찬의 사랑이 가장 행복했던 여름을 지나 그들이 점점 멀어지는 가을이 되자, 해가 기울고 어스름이 깔리는 저녁으로 변했다. 음악보다는 바스라져가는 연인의 대화가 오래, 날서게 들리는 '가을' 시퀀스에서 스크린은 크고 또렷하게 보였다.
<라라랜드>를 새드엔딩이라고 생각해왔다. 각자 꿈을 이룬 그들이 마주보고 서로의 안부를 물을 수 없으니까. 잠시나마 같은 공간을 공유할 수 없으니까. 하지만 겨울이 되고 공연장에 다시 재즈 음악이 활기차게 퍼지는 걸 듣고는, 문득 <라라랜드>의 마지막이 행복이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처음 봤을 때보다 더 많이 울었고, 지난 사랑이 더 생생하게 떠올랐다. "다시 시작한다면 잘할 수 있을 텐데" 같은 무책임한 생각들이 달라붙는 건 마찬가지였다. 피날레의 음악이 경쾌하지 않았다면, 하늘로 크게 폭죽이 터지지 않았다면, 다시 옛사랑에게 전화를 걸었을지도 모를 일이다. 내가 미쳤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