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12일 부산국제영화제(BIFF)가 시작됩니다. 2014<다이빙벨> 상영 이후, BIFF는 여러 가지 어려운 상황들이 끊이지 않고 있지요. 문화계 블랙리스트를 통해 영화제를 탄압한 흔적을 볼 수 있었고, 이용관 전 집행위원장은 횡령 혐의로 기소돼 아직 법정 공방 중입니다.
 
최근엔 김지석 수석 프로그래머가 70회 칸국제영화제 참석 중 심장마비로 별세하는 안타까운 사고까지 있었습니다. 강수연 집행위원장이 취임한 이후에도 잡음이 끊이지 않았는데요. 급기야 사무국은 강 위원장의 독단적인 행보에 반대하는 성명을 발표했습니다. 결국 이번 영화제를 끝으로 강수연 집행위원장과 김동호 이사장이 부산국제영화제를 떠나겠다는 발표가 있었지만, 갈등의 골은 여전히 존재합니다.
 
그럼에도 매력적인 영화들이 올해도 가득합니다. 주요 섹션의 화제작을 훑어봅니다.


유리정원

올해 개막작과 폐막작은 모두 여성 감독이 장식했습니다. 개막작은 <마돈나>(2015)로 칸영화제 주목할 만한 시선에 선정되었던 신수원 감독의 신작 <유리정원>입니다. 다리에 장애가 있는 재연(문근영)은 생명공학연구소의 연구원으로 식물의 엽록체로 혈액을 만들기 위해 노력합니다. 그러나 연인이었던 교수가 연구 성과를 가로채버리지요. 식물처럼 살아가던 여인의 복수극을 다룬 이 작품에서 문근영의 연기 변신이 기대됩니다. 폐막작은 100편이 넘는 영화에 출연한 배우이자, 2004년 베를린 영화제 황금곰상에 <20 30 40>으로 노미네이트되었던 실비아 창의 작품 <상애상친>입니다. ‘후이잉이 아버지의 묘를 이장하려 하자, 아버지의 첫째 부인이 격렬하게 반대합니다. 급격히 진행되는 중국의 산업화 속에서 세대 간의 갈등을 섬세한 연출로 담았습니다.

마더!
마더!

거장들의 신작을 미리 만나볼 수 있는 갈라 프레젠테이션섹션에서의 화제작은 단연 <블랙 스완>으로 유명한 대런 아로노프스키 감독의 신작 <마더!>입니다. 원래 계획되어 있던 제니퍼 로렌스의 내한이 갑자기 취소되어 아쉽네요. <아무도 모른다>, <공기인형>, <그렇게 아버지가 된다>, <바닷마을 다이어리>로 낯익은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세 번째 살인> 역시 주목할 만합니다. ‘미스미는 공장에서 해고당하자 사장을 죽인 뒤 시체에 불을 지릅니다. 잘나가는 변호사 시게모리가 사건을 맡아 미스미의 종신형을 막아보려 하지만 조사를 할수록 의외의 진실과 마주합니다. 또한, 오우삼 감독은 일본영화 <그대여, 분노의 강을 건너라>(1976)를 리메이크한 <맨헌트>로 초청되어 부산을 방문한다는 소식입니다.

고요한 안개
고요한 안개

BIFF는 아시아 영화를 만나는 가장 대표적인 창구로서 자리 잡고 있습니다. 이를 대표하는 섹션이 아시아 영화의 창인데요. 여기에 큰 역할을 했던 분이 앞서 언급한 고 김지석 프로그래머입니다. 아시아 영화를 발굴하는 데 누구보다도 앞장섰던 그의 뜻을 기리고자 이번 아시아 영화의 창에는 지석상이 신설되었습니다. 장먀오옌 감독의 <고요한 안개>가 대표적인 지석상 후보작인데요. 중국의 한 마을에서 강간 사건이 벌어지지만, 사람들은 사건을 해결하기는커녕 은폐하기 바쁘고 모든 고통은 피해자에게 다시 돌아갑니다. 일본 정부가 섬마을에 전과자들을 이주시키고 감옥 없이도 잘 살아갈 수 있는지 실험한다는 내용의 <금구모궐>도 지석상의 후보작입니다. 대만 영화 <대담하거나, 타락하거나, 아름다운>은 범죄 조직의 보스인 엄마를 둔 한 소녀의 삶을 다룬 화제작으로 역시 지석상의 유력한 후보입니다.

선창에서 보낸 하룻밤
선창에서 보낸 하룻밤

아시아 영화의 창과 같은 목표로 기획된 뉴 커런츠섹션은 아시아의 신진 감독들에 주목합니다. 꾸준히 좋은 영화를 만들고 있는 이란에서는 모흐센 가라에이 감독의 <폐색>이 초청되었습니다. 테헤란에서 좌판을 단속하는 가셈은 상인들에게 뒷돈을 챙기다가 발각됩니다. 아내와의 마찰도 겹치면서 가셈의 일상은 엉망이 되어갑니다. 중국의 유명한 소설가이자 지아장커의 영화에 출연하기도 했던 종합 예술인 한동이 연출한 블랙코미디 <선창에서 보낸 하룻밤>이나, 친구를 구하고 익사한 아들을 못 잊고 살던 부부가 아들의 죽음에 대한 진실과 마주하는 <살아남은 아이>도 놓치기 아쉬운 작품입니다.

셰이프 오브 워터: 사랑의 모양
셰이프 오브 워터: 사랑의 모양

오픈 시네마 섹션에서는 화제의 일본영화 <너의 췌장을 먹고싶어>가 벌써 매진을 기록했다고 합니다. 무시무시한 제목과는 달리 <러브레터>처럼, 고교생들의 애틋한 사랑을 담은 로맨스 영화라는군요. 베니스 영화제 황금사자상을 받은 <셰이프 오브 워터: 사랑의 모양>은 미국 정부의 비밀 연구소에서 청소일을 하던 여인과 물속에 사는 괴생명체의 사랑 이야기입니다. 길예르모 델 토로 감독의 독특한 감성으로 그려낸 작품으로 국내 개봉 전에 미리 만나볼 수 있겠습니다.

별들의 고향
별들의 고향

올해 한국영화 회고전은 영원한 스타 신성일의 작품들입니다. 대표작이라고 할 수 있는 8편이 상영되는데요. 신성일의 필모그래피에서 절대 빠질 수 없는 <맨발의 청춘>, 김승옥의 무진기행을 영화로 만든 <안개> 등이 상영됩니다. <별들의 고향>의 명대사 경아, 오랜만에 누워보는군을 극장 화면으로 보는 특별한 경험을 놓치지 마세요.
 

살인의 낙인
살인의 낙인

특별기획 프로그램에는 지난 2월 세상을 떠난 스즈키 세이준 감독의 회고전 스즈키 세이준: 경계를 넘나든 방랑자가 준비되어 있습니다. 쿠엔틴 타란티노를 포함해 B급 영화를 사랑하는 전 세계 모든 영화인에게 어둠의 아버지같은 존재였지요. 대표작인 <동경방랑자>(1966), <살인의 낙인>(1967) 등 초기 대표작부터 <피스톨 오페라같은 후기작까지 총 7편이 상영됩니다.
 
올해도 이렇게 매력적인 작품들이 가득합니다. 모쪼록 부산국제영화제가 하루 빨리 정상화되기를 바라봅니다.


씨네플레이 객원 에디터 안성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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