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체메뉴

기사 카테고리

Movie & Entertainment Magazine from KOREA
>영화

인간을 알아갈수록 개가 더 좋아져요 〈도그맨〉

씨네플레이

불행이 있는 곳마다, 신은 개를 보낸다

내 인생 가장 큰 '덕질'은 고양이와 강아지를 아끼는 것이다. 낯선 사람에게 위협 대신 묵직한 엉덩이를 가하는 검정개와 그런 이종을 한 발 뒤에서 관조하는 코리안 숏헤어. 이 효용성 제로의 존재들에게 무한 사랑 퍼붓고 있자면 등 뒤로 따가운 시선이 박힌다. 사람에겐 한없이 엄격하고, 모든 일에 극한의 효율을 추구하는 ISTP의 뒤통수에 쏟아지는, 동거인의 싸늘한 눈초리다. 그러면 나는 ISTP이기에 동물이라는 세계에 더 깊이 빠지는 것이라고 항변하곤 한다. 효율성이나 능력 따위로 재단되지 않는, 그저 걷고, 먹고, 자고, 싸고, 노는 것만으로 가치를 획득하는 안전하고 사랑받는, 그러니까 내가 다시 태어나지 않는 한 절대 돌아갈 수 없는 세계니까.

그러니 영화 <도그맨>에 '진짜' 개 115마리가 출연한다는 기사를 봤을 때, 프랑스 낭만파 시인 알퐁스 드 라마르틴의 인용구 "불행이 있는 곳마다, 신은 개를 보낸다"로 시작하는 트레일러에 가슴 떨릴 때, 이 영화를 보는 건 당연한 수순이었고, 몇 번을 보느냐가 관건이었다. 


한 인간의 처절한 생존기

 

그들이 나의 세상을 완성했다
그들이 나의 세상을 완성했다

줄거리는 심플하고, 포맷은 익숙하다. 비 내리는 뉴저지의 밤거리. 경찰은 수상한 트럭을 멈춰 세운다. 운전대를 잡고 있는 건 핑크 드레스에 짙은 화장, 금발을 한 남자. 얼굴과 몸엔 피가 흩뿌려져있다. 천천히 열리는 화물칸에 앉아 있는 건 수십 마리의 개. 경찰이 이 수상한 운전자를 긴급 체포하는 사이, 운전자의 은밀한 신호를 받은 개들은 순식간에 현장을 빠져나간다. 얼마나 큰 불행이 있었기에, 신은 이토록 많은 개를 그에게 보낸 것일까. 여장을 한 인간과 그를 따르는 개들. 이 이상한 관계에 숨겨진 비극적 이야기가 정신과 의사인 에블린(조조 T. 깁스)의 면담을 통해 재구성되며 영화는 본격적으로 시작된다.


개의 결점은 딱 하나예요. 인간을 믿는다는 것

 

〈도그맨〉
〈도그맨〉

 

자신을 더글러스(케일럽 랜드리 존스)라고 소개한 남자는 가정폭력의 생존자다. 투견용 개를 사육하는 것을 업으로 삼던 아버지는 '투견으로 쓰일 개에게 먹이를 주었다'라는 이유로 그의 아들을 개가 사는 철창 안에 가둔다. 새로 태어난 새끼 강아지의 처분을 두고 대치하던 더글라스는 급기야 아버지가 쏜 총탄에 맞아 보조 장치 없인 걸을 수 없는 몸이 된다. 경찰에 구조되어 세상으로 나가지만, '걸을 수 있는 사람'에 맞춰져 있는 세상에 그가 설자리는 없다. 어머니도, 짝사랑하던 여인도 떠났다. 에디트 피아프의 명곡 '군중'(La foule)의 노랫말처럼, 세상은 그에게 잠깐의 환희를 주었지만 곧 그것을 거두어가버렸으므로 그는 스스로 절망과 분노를 이겨내는 방법을 익혀야 했다. 더글러스의 곁에 남은 건 이제 개들뿐이다. 더글러스가 유대 관계를 맺은 개들과 합심해 나를 버린 세상에 복수하는 소위 '도그맨'이 된 건, 어쩌면 당연한 귀결이다. 


직업만족도 최상, 촬영 난이도 극상

 

개 무리의 브레인을 담당하는 강아지
개 무리의 브레인을 담당하는 강아지
행동 대장을 맡은 강아지
행동 대장을 맡은 강아지

 

제목만 보고 <베일리 어게인> 류의 영화를 상상했다면 <조커> 쯤을 각오하는 게 좋다. 다행히 순한 맛이다. 더글러스가 반사회적 성격장애를 가지고 있지도 않거니와 안티히어로가 자신만의 정의를 실현하는 과정에서 개들의 활약이 귀엽고 훈훈하기 때문에 생각보다 다크하진 않다. 개들은 각자의 장기를 살려 동네 주민들에게 위해를 가하는 건달배를 처리하고, 먹고살기 위한 방도로 무리에서 '브레인'을 담당하는 점박이 개의 지휘 아래 부잣집을 턴다.

직업만족도 최상!
직업만족도 최상!
자세히 보면 카메라 뒤에서 모두 무언가를 흔들고 있다. 
자세히 보면 카메라 뒤에서 모두 무언가를 흔들고 있다. 
자세히 보면 카메라 뒤에서 모두 무언가를 흔들고 있다.
자세히 보면 카메라 뒤에서 모두 무언가를 흔들고 있다.

 

​이 메서드 연기, CG가 아닌 실제 개들이 연기했는데 뤽 베송 감독의 최근 인터뷰에 따르면 영화에는 정확히 개 '124' 마리가 출연했다고. 그야말로 직업만족도 최상, 촬영 난이도 극상의 작업환경이다. 100마리 이상의 개를 컨트롤하기 위해 동원된 훈련사만 25명에 달했고, '연기가 가능'한 개들을 캐스팅하는 데만 3~4개월이 소요됐다. 훌륭한 ‘개배우’를 모시기 위해 국경을 넘나들며 캐스팅을 진행했다. 

 

셰익스피어의 희곡에 귀 기울이는 babies
셰익스피어의 희곡에 귀 기울이는 babies

명장면에는 웃픈 비화도 있다. 더글라스가 80마리의 개들에게 셰익스피어를 읽어주는 장면이 있다. 더글라스를 향해 앉은 개들은 로미오와 줄리엣을 이해한다는 듯 사색에 잠기는데, 사실 더글러스에게 집중하는 개들을 포착하기 위해 스태프들은 촬영 전 세 시간을 산책하고 그것도 모자라 개들과 놀아줘야 했다. 하지만 개들이 집중하는 이유가 단지 지쳐서일까? 감정을 담뿍 담은 케일럽의 낭송에 현장에 있던 3분의 2 정도의 개들은 고개를 갸우뚱하며 반응을 보였는데, 로미오와 줄리엣의 비극을 이해했는지는와는 별개로 케일럽과 교감하고 있음은 분명하다. 카메라에 담긴 의도치 않은 아름다운 순간들. 바로 개배우들의 연기 미덕이 아닐까. 

참고로, 영화 속 모든 개들은 끝까지 안전하다. 인간들은 손가락이 날아가고, 척추가 마비되고, 찢기고, 발겨도 영화는 개들에게 단 일 그램의 해도 가하지 않는다. 그러니 <도그맨>, 마음 편히 관람하자. 


인간을 알아갈수록 개가 좋아져요

 

〈도그맨〉
〈도그맨〉

 

인간을 알아갈수록 개가 좋아진다고 냉소하지만, 영화 내내 인간에 대한 희망을 놓지 않는 <도그맨>은 츤데레 같은 영화다. 불행(miserable)에 오히려 감사해야 할 만큼 끔찍한(horrible) 삶을 산 더글러스. 그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악한들을 물리치는 숨은 영웅으로서의 삶을 택한다. 개의 미덕을 길게 늘어놓고서 “내가 알기로 개의 결점은 딱 하나예요. 인간을 믿는다는 것”이라 한숨을 내뱉지만, 곤궁에 처한 인간을 돕는 더글러스의 모습은 그가 지적한 개의 결점을 그대로 품고 있다. 이 다크히어로를 움직이게 한 건 '돈'이 아니다. 타인의 고통에 대한 연민과 공감, 그리고 인간성에 대한 믿음이다.

세상 어디에도 속하지 못했던 더글러스를 유일하게 받아들인 곳은 트렌스젠더 바였다. 매주 금요일 그는 '에디트 피아프'로 분해 무대에 올랐다. 고통이 서린 얼굴을 화장으로 감추고, 찰나의 순간 바로 서서 노래를 부르고 있노라면, 사람들은 비로소 그를 '걷지 못하는 사람' 이상의 누군가로 보았다. 자신을 감춤으로써 그는 비로소 자유로워졌다. 그것은 소외를 경험해 본 적 있는 누군가의 배려로 가능했음을 영화는 강조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