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만히 의자에 앉아 지시하는 대로 보는 VR 콘텐츠에서 이제는 관객이 적극적으로 이야기에 참여하는 기술적인 표현이 풍부해지고 있다. 일반적인 극장에서 보는 영화는 관객인 내가 위치를 옮길 수 없지만 VR 시네마는 그것이 가능하다.
올해 세계 영화제로는 처음으로 VR 단편 경쟁부문을 신설한 베니스국제영화제에서 VR 부문 최우수상을 수상한 유진 정 감독의 <아르덴즈 웨이크>(2017)와 <알루메뜨>(2016)는 의자에서 일어나 서서 보는 영화로 기획됐다. 가벼운 움직임을 통해서 관객인 나를 둘러싸고 펼쳐지는 풍경 속으로 들어가거나 숨어 있는 영상을 들여다볼 수 있다. 예를 들면 하늘에 떠있는 배 속으로 얼굴을 들이밀면 내부가 보이는 식으로 관객인 내가 작품 ‘속으로’ 다가갈 수 있다. 또 한 편의 단편 <알루메뜨>는 마치 인형의 집 같은 작은 세계를 거인인 관객이 내려다보는 위치에서 이야기가 펼쳐지는 것도 중요한 특징 중 하나다. 유진 정 감독은 바다 한가운데 사는 부녀의 이야기(<아르덴즈 웨이크>), 구름 속 환상의 나라에 사는 소녀에게 찾아온 비극적인 사건(<알루메뜨>)을 소재로 가족의 숭고한 희생을 통해 희망적인 메시지를 전하고자 한다.
두 편 모두 VR 영상의 속성을 정확하게 꿰뚫은 프로덕션 디자인과 설계를 통해 관객이 한껏 몰입할 수 있게 만드는 놀라운 수작이다. 리미 감독의 <드림 콜렉터> 역시 이와 유사한 방식으로 디자인된 작품이다. 사람들의 꿈을 모으는 노인의 이야기는 그 자체로는 상투적이나 VR 영상의 특징을 즐기기엔 부족함이 없다.
VR 시네마는 기존 영화의 이야기 진행 방식을 유지한 채 촬영 기법만 VR로 적용해 영화를 찍을 수도 있지만 그것만으로는 VR의 장점을 제대로 활용할 수 없다. 상호작용을 통한 인터랙티브 스토리텔링, 혹은 몰입감을 살리는 이머시브 스토리텔링이라는 개념의 용어들이 생겨나는 이유다. 위에서 소개한 상영작들은 이 같은 개념을 느껴볼 수 있는 좋은 텍스트다. 며칠 전 픽사에서 신작 <코코>를 활용한 VR 콘텐츠 티저 영상을 공개했는데 관객들이 작품 안에서 경험을 공유할 수 있는 소셜 VR 기능을 적용한다고 밝혔다.
이미 할리우드는 본격적으로 VR 시네마를 주도하기 위해 엄청난 자본과 인력을 투입하고 있는데 앞으로 몇 년 사이에 굉장히 많은 변화가 있을 것이다. 새로운 콘텐츠와 상영관, 그리고 새로운 서비스가 필요한 시점이 곧 다가올 것이다. 올해 부산국제영화에서 미래의 VR 씨어터를 미리 만나보자.
▶ 10월13일부터 20일 까지 영화의전당 비프힐 1층에 마련된 ‘VR 씨어터’에서는 전세계 36편의 VR중단편 영화와 다양한 체험형 콘텐츠를 만나볼 수 있다. 이번 상영은 일반 관객 대상으로 하며 콘텐츠의 형태와 관람 방식에 따라 VR Movie관, VR Movie Plus관, VR Experience Movie관 등 3개관으로 나눠 운영된다. 관람은 모두 무료이며 선착순 예약 신청 후에 관람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