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려견은 자신보다 주인을 사랑하는 유일한 동물이고, 우리의 소중한 친구이자, 충성스러운 존재이고, 천국으로 가는 문이며… 강아지의 착한 품성과 무한한 애정을 칭송하는 유명인의 말은 끝이 없다. 그중에서도 정신과 의사이자 정신분석학파 창시자인 지그문트 프로이트는 반려견인 ‘조피'를 늘 상담실에 머물게 했는데, 차분히 엎드려 있는 그의 모습을 보고 환자는 점차 마음을 풀고 이야기를 풀었다. 프로이트는 이중성이 기본인 인간과 달리, 개의 순수성을 사랑했다. 그리고 아마도, 개를 좋아하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 한결같음에 매료되었을 테다. (필자도 그중 하나다.)
때론 그 사랑을 간접적으로라도 느끼고 싶어 반려견 영화를 뒤적거리지만, 어쩐지 <마음이>(2006)나 <하치 이야기>(2002) 같은, 이미 열댓 번은 본 영화들이 나온다. 늘 갈증을 느끼던 차에 드디어 극장가에 강아지가 주인공인 영화가 극장에 개봉했다. 오늘은 강아지 애호가로서, 순수한 사심을 담아 뻔하지 않은 반려견 영화를 준비해봤다. ‘나만 강아지 없어'를 중얼대며 아쉬워하던 사람들이라면 추천하는 영화들로 준비했으니, 이제부터 강아지 천국으로 떠나보자.
<도그데이즈>

그저 그런 한국형 코미디물이라고 생각하면 아쉬운 작품이다. <도그데이즈>는 익숙한 스토리에 강아지라는 특별한 재료를 넣어 완성한 힐링영화다. ‘강아지 발바닥 꼬순내’를 꼭 닮은 작품으로, 강아지가 ‘찹찹찹찹’ 달리는 소리를 들으면 나도 모르게 무장해제될 수밖에 없다. ‘강아지만 귀여우면 됐지’ 싶었으나 의외로 플롯도 감동적으로 구성되어 있다. 매사에 꼼꼼한 싱글남 민상(유해진)은 어렵게 구매한 단독주택을 개똥밭으로 만드는 세입자, 수의사 진영(김서형)과 매일 투닥거린다. 한편, 세계적인 건축가지만 외로운 노년을 보내고 있는 민서(윤여정)는 자식 같은 반려견 완다를 잃어버리게 되고, 배달원 진우(탕준상)와 함께 완다를 찾기 위해 애쓴다. 완다는 아이를 입양한 초보 부모 아래에게서 속 편히 보살핌을 받고 있다. 또 다른 곳에서는 밴드 리더 현(이현우)이 여자친구의 반려견 스팅을 돌보던 중, 여자친구의 전남친 다니엘(다니엘 헤니)가 ‘내가 스팅 대디야’라고 주장하며 나타나 골치 아프다.

<도그데이즈>는 여러 등장인물이 각자 상황을 해결해나간다는 점에서 홀리데이 무비 형식을 취하고 있다. 악당은 없고, 느슨히 연결되어 있던 서로의 인연들이 강아지가 이끄는 줄에 따라 점차 가까이 다가간다. ‘인간의 악한 본성’을 파헤치며 극한 상황까지 주인공들을 몰아넣는 영화, 드라마가 인기를 끄는 요즘. <도그데이즈>는 이중적이지 않은, 강아지의 순수성이 고스란히 드러난 작품이다. 그리고 그들과 함께 사는 인간들의 선함까지 보여주며, 강아지와 사람, 나아가서는 사람과 사람 사이의 신뢰를 유머러스하게 표현한다. 줄줄이 쏟아지는 악한 세상에 지쳤다면, 조금 더 우리 곁에 가까이 있는, 따뜻한 이야기에 빠져 보는 건 어떨까.
<개에게 처음 이름을 지어준 날>

쇼윈도에 사람 손길을 바라며 끙끙거리고 있는 작고 하얀 강아지들. 그들은 주인에게 선택되지 않으면 영원히 성장하지 않는 듯, 언제 가도 늘 주먹만 한 어린 강아지의 모습이다. 그러나 개도 생명이기에 성장을 막을 순 없다. 그렇다면 쇼윈도 너머에 있던 작은 강아지들은 크면 어디로 갈까. <개에게 처음 이름을 지어준 날>은 방송국 PD 카나미(고바야시 사토미)가 반려견 나츠가 떠난 뒤, 반려동물을 위해 ‘뭐라도 해봐야지’라는 마음으로 동물보호센터를 찾은 뒤 벌어지는 이야기를 담고 있다. 다큐멘터리 형식의 극영화로, 실제 유기견 보호 센터를 찾아가 자원봉사자와 동물 보호 활동가들의 이야기를 듣고 그대로 담았다.

<개에게 처음 이름을 지어준 날>은 반려견 ‘시장’이라는 거대한 산업의 뒤를 들여다본다. 거대 펫숍 시장과 이에 납품하기 위해 비윤리적으로 동물을 대량 번식하는 공장, 그리고 대지진으로 사람이 떠난 마을에 덩그러니 남은 유기견들과 저마다의 무책임한 사정으로 버려진 동물들을 직접 마주한다. 주인공 카나미는 동물들이 겪고 있는 암담한 현실을 몸으로 느끼며, ‘인간과 동물의 동행’을 목표로 영화를 만들기 시작한다. <개에게 처음 이름을 지어준 날>은 일본 영화지만, 비윤리적인 개공장과 무책임한 유기 현상은 한국에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 영화는 ‘개에게 이름을 지어주는 행위’로 반려동물을 대하는 자세에 대해 이야기한다. 이름을 붙이는 행위는 특별하다. 생각 없이 구매한 머리핀에 이름을 붙이지 않는 것처럼, 개가 단순히 취향에 따라 고르는 액세서리라면 이름을 붙여선 안 된다. 그러나 사람들은 자연스레 그에게 이름을 붙이고 호명한다. “동물은 물건이 아니니까”라는 새삼스레 당연한 말을 영화는 따뜻하지만 분명하고 설득력 있게 풀어낸다. 반려동물을 키우고, 반려동물 산업에 관심이 많은 사람이라면 반드시 보길 추천하는 영화.
<언더독>

아이보다 성인이 더 많이 울었다는 한국 애니메이션의 대표, <마당을 나온 암탉>을 연출했던 오성윤 감독의 또 다른 작품, <언더독>은 단순히 ‘개는 따뜻하고 소중한 존재’라고 말하는 감성적인 포인트를 넘어, 동물권의 필요와 의미, 그리고 그들의 행복할 자유에 대해 개들의 시선으로 풀어낸다. 주인공 뭉치(도경수)는 보더콜리로, 몸집이 커졌다고 버림받았다. 짖음방지기가 목에 달려 있던 그는 대화하는 법을 배우지 못해 목소리가 작고 소심했지만 나중엔 점차 보더콜리답게 용감하게 성장한다. 뭉치는 주인에게 버려진 뒤 들개 가족 일원을 만나게 되는데, 그곳에서 밤이(박소담)를 만난다. 밤이는 개농장 출신으로, 엄마는 죽을 때까지 새끼만 낳았다. 밤이 역시 엄마와 같은 처지가 될 뻔했으나 쉬지 않고 도망쳐 들개 무리에 합류하게 된다. 개농장 주인 개사냥꾼(이준혁)의 추적을 피해 도망치던 그들이 낙원을 향해 떠나가는 스토리로, 로드무비이자 성장영화 형태를 띠고 있다.

영화에서 눈에 띄는 점은 개를 ‘대상’이 아닌, ‘주체’로 표현한 점이다. 뭉치는 사람 손에 길러졌지만 사람이 없는, 개들의 낙원을 찾아 떠나고 들개들의 대장이었던 짱아(박철민)는 여전히 사람이 좋아 아픈 강아지를 치료해주는 부부의 집에 남는 걸 선택한다. <언더독> 안에서 개들은 누군가에게 선택받길 기다리며 끙끙거리는 존재가 아닌, 삶을 선택할 수 있는 존재로 등장한다. 그리고 늘 인간의 친구로 선택‘되던’ 개가 인간 곁을 떠나는 선택을 ‘하는’ 모습은 인간 입장에서 새롭고 얼얼하다.
<나의 특별한 힐링 친구>

넷플릭스 드라마 <나의 특별한 힐링 친구>. 사회불안장애를 앓는 11살 소년, 노아(제이스 채프먼)는 홈스쿨링에서 벗어나 학교에서 친구들을 사귀기로 도전한다. 하지만 사회적 상황과 대인관계 맺기가 공포로 다가오는 노아에게 학교는 아직까진 불안한 곳이다. 정신과 의사는 그의 불안을 덜기 위해 강아지 모야와 함께 등교해보는 것을 권한다. 모야는 사회불안장애 보조견으로 훈련받은 개이기 때문에 분명 도움이 될 것이라고 말했지만 막상 함께 등교해보니 자신보다 먹을 것에 더 관심 많은 모야에게 노아는 실망한다. 게다가 고양이 애호가 교장선생님은 모야와 함께 등교하는 것을 계속 방해한다. 서툴고 실망하고 어색하던 노아는 점차 모야와 관계를 쌓아나가며 점차 세상 밖으로 나아간다.

사회불안장애 환자가 주인공이기 때문에 다소 어둡지 않을까 예상했으나 아동용 드라마라 꽤 가볍게 연출했다. 아이들도 쉽고 직관적으로 이해할 수 있도록 노아가 겪는 불안감과 두려움을 만화적으로 표현했는데, 연출이 만화적일 뿐 사회불안장애 환자가 겪고 있는 어려움은 꽤 현실적으로 그려낸다. 코미디 요소도 강하기 때문에 마음 편히 볼 수 있는 힐링 드라마를 찾고 있다면 추천할 수 있는 작품. 느긋한 표정으로 노아와 함께 양치하고, 옷을 골라주는 모야를 보면 어느샌가 스트레스로 가득 차 있던 마음도 말랑해진 것을 느낄 수 있다.
<웬디와 루시>

지금까지 비교적 따뜻하고, 강아지와 공존하는 법에 대해 이야기한 영화들 위주로 소개했다면, 이번엔 보다 ‘개를 키우는 것’에 대한 보다 현실적인 이야기를 다룬 영화를 소개하고자 한다. <웬디와 루시>는 미국 저소득 노동자의 삶을 매우 현실적으로 그린 작품으로, 개는 이곳에서 주인공의 유일한 친구이자 주인공이 갖고 있는 유일한 존재다. 그리고, 주인공에게서 빼앗을 수 있는 유일한 것이기도 하다. 주인공 웬디(미셸 윌리엄스)는 일자리를 찾아 반려견 루시와 함께 알래스카주로 떠난다. 그러던 중 웬디의 이동수단이자 집인 자동차가 갑작스레 고장난다. 돈도 다 떨어진 상황에서 설상가상으로 루시는 유기견으로 분류돼 보호소로 끌려간다. 루시를 다시 데려오려면 돈이 필요하다. 차 수리 비용도 없는 웬디에게 루시는 더 이상 의지할 수 있는 친구가 아닌, 짐이 된다. 웬디는 자신의 처지를 호소하며 사회의 온정에 기대어 보려 하지만 누구도 그에게 손을 뻗지 않는다. ‘규칙이라서’라는 말과 함께 웬디에게 도움을 주지 않는 사회의 구성원들. 하지만 영화는 그들을 악인으로 그리지 않는다. 단지, 규칙대로 처리하지 않으면 자신도 일자리를 잃을까 두려워하는, 평범한 사람일 뿐이다.

알래스카로 떠나 자신의 생계를 책임지지 않으면 안 될 상황에서, 반려견을 선택하는 것이야말로 동화 같은 이야기이기에 영화는 끝까지 현실적인 태도를 유지한다. 웬디는 그렇게 유일한 친구이자 의지의 대상이었던 루시를 잃는다. 가진 게 없었음에도 그는 사회에게 빼앗긴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누구도 이득을 보는 ‘사람’은 없다. 웬디 역시 이를 알고 있다. 웬디는 분노하지 않고, 그저 스스로를 달래는 선택을 한다. 웬디 혼자 분노해서는, 아무것도 바뀌지 않는다. 그리고 영화는 개인의 불행에 무관심한 사회를 반영하듯 관조하는 듯한 연출을 이어간다. 과장하지도, 냉소적으로 비웃지도 않으며 그저 감정 없이 웬디의 삶을 따라간다. ‘개가 주인공인 영화’는 아니지만, 개를 키울 예정인 사람이라면 반드시 보았으면 하는 영화다. 누구나 개를 입양할 땐 그가 나의 친구가 될 것을 기대하며 키운다. 누구도 버릴 것을 예상하고 입양하진 않을 테다. 그러나, 냉혹한 현실 앞에서 개는 가장 먼저 놓아버리는 존재가 되고 만다. 누구나 웬디와 같은 상황에 놓인다면 그와 같은 선택을 할 것이다. 그렇다면 나는 웬디와 같은 상황에 놓이지 않을 수 있는가. 미국 노동자층의 삶을 사실적으로 묘사한 영화지만, 그 과정에서 가장 먼저 포기해야만 하는 존재인 개에 포커스를 맞추면 영화는 또 새로운 모습을 보여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