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 9일 공개된 넷플릭스 <살인자ㅇ난감>은 주연배우 최우식, 손석구, 이희준 등의 호연으로 화제를 모았다. ‘이탕’ 역의 최우식은 우연히 벌인 살인으로 인생이 꼬이는 과정의 혼란스러움을 잘 담아냈고 ‘장난감’ 형사 역의 손석구는 이탕을 통해 자신의 상처와 마주하는 순간을 포착해냈다. ‘송촌’ 역의 이희준은 거침없이 달려드는 노인의 모습으로 변신해 어디에서도 보기 힘든 독보적인 빌런을 만들어냈다.
<살인자ㅇ난감>의 매력을 더해 주는 것은 이들뿐만이 아니다. 보기만 해도 헛웃음이 나고 욕이 튀어나오는 빌런을 연기한 조연 배우들의 몫이 크다. 특히 이탕의 조력자 ‘노빈’ 역의 김요한, 이탕의 살해를 목격한 시각장애인 ‘선여옥’ 역의 정이서, 두 여자 사이를 오가며 갈등을 일으키는 ‘하상민’ 역의 노재원 등의 존재는 <살인자ㅇ난감> 신의 한 수라할 수 있다. 넷플릭스에 한 번, 시청자에게 한 번 발견된 이 배우들에 대해 알아보고자 한다.
봉준호와 박찬욱의 러브콜
정이서

평범한 대학생 이탕은 우연히 의도치 않은 살인을 저지르게 된다. 당황스러움도 잠시 그곳에 있는 또 한 명의 인물로 인해 이야기는 예상치 못한 방향으로 뻗어나가게 된다. 시각장애견 렉스와 함께 거리를 지나던 선여옥이다. 살인 목격자가 시각장애인이라는 사실에 이탕은 짐짓 안도감을 느낀다. 문제는 그가 한 쪽 눈으로 세상을 볼 수 있다는 것과 자신의 이득을 위해 부모를 죽인 존속살해범이라는 것이다.
이탕을 회유, 협박하다 결국 살해당하는 선여옥 역을 맡은 배우 정이서는 이미 한국의 거장 감독들과 함께 작업한 경력이 있는 배우이다. 2019년에는 봉준호 감독의 <기생충>에, 2022년에는 박찬욱 감독의 <헤어질 결심>에 출연했다.

정이서는 영화 <기생충>에서 젊은 피자집 사장으로 분했다. 기우와 그 가족의 허접한 일처리에 불평하는 정이서의 실감 나는 연기에 관객들은 ‘배우의 이름이 무엇이냐’며 찾아 나서기도 했다. (<기생충>을 통해 배우 최우식과는 이미 한차례 만난 셈.) 정이서는 한 인터뷰에서 봉준호 감독의 선택을 받은 사연에 대해 전했다. “원래는 다혜 역에 지원했다”라는 정이서는 “캐스팅 담당자님께 연락을 받았는데 봉준호 감독님이 제 오디션 영상을 보고 염두에 두고 있는 캐릭터가 있다고 했다. 해당 캐릭터가 원래는 40대 혹은 50대인데 나이를 낮춰주신다고 말씀해주셨다”고 밝혔다.
<살인자ㅇ난감>에서도 완벽한 딕션과 감칠맛 나는 말맛으로 소름 끼치는 범죄자 선여옥을 완벽하게 소화한 정이서는 <기생충>에서도 특유의 톡 쏘는 톤으로 강렬한 인상을 남겼다. 데뷔 4년 차였던 정이서는 21년 차 배우 장혜진뿐 아니라 탄탄한 연기력과 인기를 지닌 배우 최우식과 박소담 사이에서도 기죽지 않는 당돌함을 보였다.

그로부터 3년 후에는 한국을 대표하는 또 한 명의 감독 박찬욱의 <헤어질 결심>에 출연했다. 부산 서부 경찰서 강력 2팀 형사 유미지 역을 맡아 박해일, 고경표 등과 호흡을 맞춘 것이다. 이 작품 역시 오디션을 통해 선발되었다는 정이서는 박찬욱의 주문에 따라 다른 연기를 선보였다고 말해 오디션에 합격한 이유를 짐작게 했다.
평범함과 비범함 그 사이
노재원

<살인자ㅇ난감>에서 배우 노재원이 맡은 하상민 역은 결혼을 약속한 여자친구를 두었지만 우연히 만난 동창생 경아를 유혹하는 남자이다. 스토킹과 거짓말을 일삼으며 경아에게 접근한 하상민은 결국 폭력과 살인을 저지른다. <살인자ㅇ난감>의 이창희 감독은 노재원에 대해 “이미 잘 하기로 유명한 배우”라고 말했다. 노재원은 짧은 시간에 자신만의 독특한 연기 스타일을 구축해온 배우이다.
2020년 영화 <드라이빙 스쿨>로 데뷔한 노재원은 2021년 서울독립영화제 ‘배우 프로젝트-60초 페스티벌’에서 1등을 하며 업계 관계자들에게 짙은 인상을 남겼다. 당시 심사위원을 맡은 사람이 <살인자ㅇ난감>에서 합을 맞춘 배우 이희준이다. ‘현장에서 만나자’는 이희준의 말이 <살인자ㅇ난감>을 통해 3년 만에 현실화되었다.

노재원은 탄탄한 연기력으로 고속 성장했다. 지난해 넷플릭스 드라마 <정신병동에도 아침이 와요>의 망상환자 김서완 역을 맡아 대중에게 존재를 알렸다. 올해 들어 영화 <세기말의 사랑>과 넷플릭스 시리즈 <살인자ㅇ난감>을 선보였고 디즈니+ <삼식이 삼촌>, 넷플릭스 <오징어게임 시즌2> 공개를 앞두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노재원은 오히려 ‘들뜨지 않으려 한다’고 말했다. “지하철을 타더라도 누가 날 쳐다보면 ‘혹시 날 알아보나’ 의식하는 절 발견했어요. 처음 경험해 보는 거니까요. 내 삶을 충실하게 살아야겠다고 생각했고, 그렇게 노력하다 보니 마음이 다시 안정되었어요”라 말한 노재원은 SNS 어플도 삭제했다고 밝혔다.
오는 5월 공개되는 디즈니+ 시리즈 <삼식이 삼촌>에서 서대문파 조직을 이끄는 한수 역을 맡은 노재원은 존경하는 선배 송강호에게 칭찬을 받았다고 전하며 기대를 모았다. “송강호 선배님께서 ‘사람들은 머릿속에 있는 연기를 하면 감탄하는데, 머릿속에 없는 연기를 하면 감동을 받는다’고 하셨다. 제게 그런 배우가 될 수 있을 거라 힘을 주셨다.”
의심의 여지가 없는 노빈
김요한

배우와 원작 캐릭터와의 유사성을 그리 신경 쓰지 않았다는 <살인자ㅇ난감> 이창희 감독이 유일하게 싱크로율을 맞추었다는 캐릭터 노빈은 배우 김요한이 맡았다. 이 감독은 오디션장에서 김요한을 보자마자 느낌이 왔다며 망설임 없이 캐스팅했다고 밝혔다.

<살인자ㅇ난감>의 노빈은 피규어를 잔뜩 진열해 놓고 방구석 프로파일러로 활동한다. 사회 정의를 실현하고자 하는 비뚤어진 욕망으로 송촌과 이탕을 연달아 살인마로 만든 장본인이다. 배우 김요한은 뚱뚱한 몸매에 동그란 안경을 착용한 원작 속 노빈이 살아나온 듯한 착각을 일으키게 했다.
김요한은 전형적인 ‘캐아일체’(캐릭터와 자신이 하나가 된 경지)의 연기를 선보이는 배우이다. 김요한의 존재만으로 작품의 리얼리티가 대폭 상승하며 극에 힘을 더한다. 그는 2020년 넷플릭스 <인간수업>에서 본명과 같은 ‘김요한’ 역으로 데뷔했다. 극 중 학교 일진들에게 괴롭힘당하는 고등학생 역을 맡아 리얼한 연기력을 선보였다.

이후 2022년 tvN 드라마 <군검사 도베르만>에서 군 가혹행위에 총기 난사를 하는 편상호 일병 역을 맡아 존재감을 뽐냈다. 마 병장(장영현)과 그 무리에게 모욕적인 괴롭힘을 당하던 편상호 일병이 총기 난사를 하기까지의 과정을 담담하지만 짙게 표현해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