긴장으로 똘똘 뭉친 케이퍼무비가 지난 11월 2일 개봉했다. 태국의 하이틴영화 <배드 지니어스>다. 하이틴과 범죄라는 소재가 만났지만, 10대 청소년들이 사람을 치거나 돈을 훔치는 탈선을 그리는 건 아니다. 주인공이 저지르는 범죄는 바로 컨닝이다. 그 보편성에도 불구하고 범죄영화에 드물게 활용됐던 컨닝이라는 소재와 이로 인해 여러 관계들이 뒤엉키는 학원물의 매력으로, 자국에서의 흥행은 물론 올해 중국에서 개봉한 외국영화 중 최고의 수익을 거두었고, 대만, 홍콩, 말레이시아, 베트남에서도 박스오피스 1위를 차지하는 기염을 토했다. 이에 반해, 한국에서는 개봉 2주차가 되자 서울에서 <배드 지니어스>를 볼 수 있는 극장이 손에 꼽을 만큼으로 줄었다.

린(추티몬 추엥차로엔수키잉)은 천재적인 우등생이다. 교사인 편부와 소박하게 살면서도 돈깨나 있는 집안의 자제들이 많이 다니는 명문고등학교에 장학금을 받고 입학한다. 살갑게 먼저 다가온 그레이스(에이샤 호수완)와 금방 친해진 린은 성적이 안 되면 연극 활동을 할 수 없다는 그레이스의 말을 듣고 충동적으로 자기 답을 보여준다. 그렇게 시작된다. 그레이스는 부잣집 자식인 남자친구 팻(티라돈 수파펀핀요)에게 린을 소개하고, 팻은 린에게 정답을 공유하면 입학금에 준하는 돈을 주겠다고 제안한다. 우여곡절을 겪으며 판이 커지던 가운데, 가난한 모범생 뱅크(차논 산티네톤쿨)가 컨닝 현장을 목격한다.

“이 한 문제만 더 맞춘다면 엄마가 새 핸드폰 사줄 텐데...” 학창 시절 성적 때문에 골머리를 앓아본 이들이라면 컨닝의 유혹과 긴장이 얼마나 강력한지 예상 가능할 것이다. 무엇을 예상하든 <배드 지니어스>는 그걸 가볍게 뛰어넘는 쾌감을 선사한다. 조마조마한 그 순간의 감정을 정확히 꿰뚫고, 그와 관련해 뻗어갈 수 있는 여러 변수들을 민첩한 편집으로 엮어 늘어놓는다. 과거 그래픽디자인을 공부했던 나타우트 폰피리야 감독은 감각적인 폰트와 화면 구도 등 '보는 재미'까지 잊지 않는다.

점층법을 지향하는 영화는 가벼운 장난처럼 시작된 린의 컨닝 작전이 점점 커지는 과정을 부지런히 따라간다. 당연히 위험 변수도 늘어날 수밖에. 하지만 우리의 주인공 린은 단순히 공부만 잘하는 게 아니다. 위기를 헤치고 나가기 위한 임기응변 능력 또한 끝내준다. 컨닝을 원하는 아이들이 늘어나 1:1 공유가 어려워지자 어릴 적 배웠던 피아노를 떠올리곤 그 멜로디를 네 가지로 나눠 연주하는 시늉으로 정답을 알려주는 묘안을 강구하는 식이다.

<배드 지니어스>는 판이 커지는 컨닝 현장을 차례차례 늘어놓는 선에서 그치지 않는다. 각 인물들이 처한 처지와 맞물려 관계가 변화하고 그에 따라 컨닝의 양상이 달라진다. '작전 시작 - 순조로운 진행 - 갑작스러운 위기 - 가까스로 해결' 같은 장르적인 컨벤션으로 컨닝 현장에 얼마간 내성이 생기기 마련인데, 영화 속 인물들의 관계 양상이 극 진행에 따라 미묘하게 달라지기 때문에 과연 이 작전이 어떤 결말을 맞이할지 종잡을 수 없는 기분좋은 카오스가 유지된다. 정답이 적혀 있는 지우개를 신발에 넣어 전달하던 장난은, 그렇게 두 명의 천재가 호주까지 건너가야 가까스로 가능한, 거대 판돈이 걸린 작전으로 몸집을 키운다.

<배드 지니어스>의 진면목은 따로 있다. "대규모 컨닝 작전을 펼친다"는 걸 넘어 "성적을 두고 돈을 거래한다"는 데에 초점을 맞출 때 이 영화의 큰 미덕이 보이기 시작한다. 빠듯한 형편의 린이 부유한 팻의 돈을 받아 컨닝의 규모가 불어났다는 지점은 고스란히 계급 차이에 대한 한계를 끌어안을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더 가진 자가 짜놓은 판을 덜 가진 자가 선택할 수밖에 없고, 그로 인해 덜 가진 자들의 관계'만' 끊임없이 불안해진다는 설정은, 이야기를 쓰고 연출을 맡은  나타우트 폰피리야 감독의 계급 사회를 향한 탄식처럼 보인다. 빈부격차로 인한 극단적인 상황은 묘사되지 않지만, 10대들이 지금보다 나은 내일을 위해 이 뼈아픈 세계를 맞닥뜨려야 하는 과정만으로 영화가 조준하는 문제의식은 선명하게 전달된다.

추티몬 추엥차로엔수키잉(린), 차논 산티네톤쿨(뱅크)
에이샤 호수완(그레이스), 티라돈 수파펀핀요(팻)

배우들을 보는 재미가 쏠쏠하다. 태국에서도 새로운 얼굴로 통하는 네 주연배우는 각자 캐릭터와 철썩같이 들어맞는 모습을 한 채 치밀하고 잔인한 교육열에 생명을 불어넣는다. 민첩하고 냉철한 린, 답답하리만치 올곧은 뱅크, 웃는 얼굴로 무리한 부탁을 서슴지 않는 그레이스, 속셈이 보이는 듯한 능구렁이 팻이 더없이 적절한 얼굴을 얻었다. 흥미로운 건 이들이 보여주는 세계가 하이틴 학원물 특유의 감성적인 로맨스나 시릴 듯한 성장통과는 거리가 멀다는 점이다. 하지만 그들 각자가 내뿜는 매력은 차세대 청춘스타의 자격에 충분해 보인다.

네 배우와 나타우트 폰피리야 감독(가운데)
배드 지니어스

감독 나타우트 폰피리야

출연 에이샤 호수완, 티라돈 수파펀핀요, 추티몬 추엥차로엔수키잉, 차논 산티네톤쿨

개봉 2017 태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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씨네플레이 에디터 문동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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