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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이 아는 기생수는 없다, 〈기생수: 더 그레이〉

이진주기자
〈기생수: 더 그레이〉
〈기생수: 더 그레이〉

넷플릭스가 2024년 2분기를 여는 작품으로 <기생수: 더 그레이>를 선택했다. <선산>(1월), <살인자ㅇ난감>(2월), <닭강정>(3월) 등 올해의 한국 오리지널 시리즈물이 연달아 극명하게 호불호가 갈린 반응을 이끈 가운데 <기생수: 더 그레이>가 안정적인 만족감을 선사할 것이라 예상된다. 명확한 갈등 구조, 현실감 넘치는 CG, 속도감 있는 액션 등 오락 영화의 조건을 충실히 따른다. 전반부까지는 말이다. 선공개 된 <기생수: 더 그레이>의 1,2,3화를 본 감상과 관람 포인트를 전한다.

* 이 글은 <기생수:더 그레이> 총 6부작 중 선공개된 1,2,3화를 감상 후 작성되었습니다.

* <기생수: 더 그레이>에 대한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공생하는 「기생수」, 전쟁하는 <기생수: 더 그레이>

 

〈기생수 파트1〉
〈기생수 파트1〉

원작인 일본의 대표 만화 「기생수」는 자국에서 TV 애니메이션 <기생수: 세이의 격률>(2014)과 두 편의 영화 <기생수> 파트1과 파트2(2015)로 제작된 바 있다. 이 작품들은 대체적으로 영상 매체의 특색을 살리면서도 원작의 흐름을 그대로 가져가 만화 팬들의 환영을 받았다. 특히 영화 <기생수>는 높은 퀄리티의 CG와 섬세한 감정선 등으로 만화 원작 실사 영화의 좋은 예로 꼽힌다.

넷플릭스의 <기생수: 더 그레이>는 원작의 설정은 차용하되 전혀 다른 이야기를 전개한다. 원작 팬들 입장에서는 서운할 수 있는 노릇. 연상호 감독은 이에 대해 “원작과는 별개로 동시간대에 한국에서 벌어지는 독자적인 이야기”라고 전했다. 덧붙여 “「기생수」 세계관의 확장”이라며 원작을 먼저 감상할 것을 추천하기도 했다.

한국판 드라마 <기생수: 더 그레이>는 부제에서 유추할 수 있듯이 인간과 인간, 개인과 조직의 갈등에 중점을 둔다. ‘더 그레이’는 극 중 기생수를 박멸하기 위해 꾸려진 기생생물 전담반이다. 연상호 감독은 기생생물의 출현으로 벌어지는 인간 사회 내부의 균열을 따라간다. 이는 한국형 재난 영화이자 좀비 영화인 그의 전작 <부산행>(2016)을 연상케한다.

〈부산행〉
〈부산행〉

<부산행>(2016)은 그간 애니메이션을 만들었던 연상호 감독의 실사 영화 데뷔작으로 천만 관객을 동원하며 한국 좀비 영화의 새로운 지평을 열었다는 평을 들었다. 좀비 바이러스의 창궐로 사회의 체계가 무너지고 극한의 상황에서 스스로를 지켜야 하는 사람들의 모습을 담은 재난 영화이다. 좀비 그 자체보다는 재난을 헤쳐나가는 과정에서 부딪히는 다양한 인간 군상의 모습을 강조한다.

<기생수: 더 그레이>는 <부산행> 구도와 그 궤를 같이한다. 차이점이 있다면, 인간 사회를 위기에 빠뜨릴 존재로 등장하는 정체불명의 기생수는 좀비와는 달리 온전한 인간의 형태를 띠고 있기에 주인공 정수인(전소니)과 설강우(구교환)을 포함한 평범한 시민들은 별다른 위기감을 느끼지 못한다. 그들과 직접 접촉을 하기 전까지는. ‘더 그레이’ 등 정부 조직의 철저한 통제로 인해 시민은 재난 상황에서 오히려 소외되고 방치되는 셈이다.

〈기생수: 더 그레이〉
〈기생수: 더 그레이〉

이야기는 정수인과 설강우를 중심으로 진행되는 듯 보이지만 사건의 키를 쥐고 있는 것은 ‘더 그레이’다. <부산행>이 한정된 공간에서 불특정 다수의 개인이 모여 작은 사회를 이루고 생존이라는 공동의 목적을 향해 나아간다면 <기생수: 더 그레이>는 위기 상황을 타개할 목적으로 형성된 조직과 뜻하지 않게 사건에 얽힌 개인이 뒤엉킨다. 극 중 등장하는 ‘인간이 강한 이유는 조직에 충성하고 기생하기 때문’이라는 기생수의 말이 떠오르는 지점이다. 연상호 감독 역시 작품에 대해 ‘조직과 공존’, ‘조직 안에서의 개인’과 같은 주제를 담았다고 전한 바 있다.


공존하지만 양립할 수 없는, <기생수: 더 그레이>

 

〈기생수: 세이의 격률〉(2014)
〈기생수: 세이의 격률〉(2014)

원작 「기생수」의 기생생물은 인간의 몸에 침투해 뇌를 지배하고 육체를 차지하는 목적을 지닌다. 그들은 인간의 유해성을 문제 삼아 “모든 생물의 미래를 지켜야 한다"라는 사명 아래 본능적으로 인간을 공격한다. 그중 한 기생생물이 주인공 신이치의 뇌를 잠식하지 못하고 오른팔에 불완전하게 기생하며 하나의 몸에 두 개의 자아가 병존하는 ‘반인반수(半人半獸)’가 탄생한다. 인간 신이치와 기생생물 오른쪽이는 서로를 통해 인간과 관계의 의미를 살핀다.

원작의 주인공 신이치가 기생생물 오른쪽이와 직접 소통을 하며 유대를 쌓아가는 반면 <기생수: 더 그레이>의 수인과 그의 일부를 지배한 기생생물은 육체를 공유하지만 동시간대에 존재할 수 없는 분리된 존재이다. 이 기생생물의 이름은 하이디. 극 중 강우가 「지킬 박사와 하이드씨」의 내면의 악 ‘하이드’의 이름을 따지었다. 그만큼 <기생수: 더 그레이>는 이와아키 히토시의 만화 「기생수」보다 로버트 루이스 스티븐슨의 소설 「지킬 박사와 하이드씨」의 설정과 높은 유사성을 보인다.

뮤지컬 〈지킬 앤 하이드〉(사진=오디컴퍼니)
뮤지컬 〈지킬 앤 하이드〉(사진=오디컴퍼니)

1886년 출간된 소설 「지킬 박사와 하이드씨」는 주인공 지킬 박사가 본래의 자신과는 별개의 인격 하이드를 만들어 내며 파멸에 이르는 내용을 담는다. 지킬과 하이드가 하나의 몸을 공유하는 두 개의 인격체인 것과 같이 <기생수: 더 그레이> 수인은 하이디와 마주하지 않고 교류의 역할을 제3자(강우)에게 전가한다. 매번 하이디의 힘으로 위기를 극복하는 수인은 사건의 주도권을 놓치는 듯한 인상을 준기도 한다.


뾰족한 서사, 수준급 CG, 호불호 연기, 기대되는 전개

 

〈기생수: 더 그레이〉
〈기생수: 더 그레이〉

<기생수: 더 그레이>는 두 존재가 교류하는 원작의 설정을 포기하며 한결 날렵한 구조를 취했다. 서로를 이해하는 과정을 간소화하고 인간과 기생수, 두 존재의 갈등 구조와 CG 액션을 강조하기 위함일 것이라 예상해 볼 수 있다. 전 10권의 원작 만화 「기생수」를 6부작의 짧은 시간에 효과적으로 담아내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원작의 내용을 잘 살렸다는 평을 듣는 일본판 실사 영화 <기생수> 역시 두 편으로 제작되었다. 다만 그 결과, 오로지 생존을 위해 행동하는 기생생물과 차별화되는 인간의 모순적 행동 역시 납작하게 표현되었다.

지난겨울 넷플릭스는 <경성크리처>, <스위트홈2> 등 한국형 크리처물로 안방극장을 공략했다. 그러나 다소 엉성한 CG로 일부 시청자들에 실망감을 주었다. 그러나 <기생수: 더 그레이>는 연상호 감독이 ‘혼을 갈아 넣었다’고 자부할 정도로 공을 들인 CG 덕을 톡톡히 본다. 연 감독은 "이때까지 한 작품은 크리처의 형태가 같았다면 이번 크리처는 시시각각 형태가 바뀌어서 난이도적으로 더 어려운 작업이었다. 더 사실적인 느낌이 들 수 있게 많이 고민했다"라고 강조했다.

<기생수: 더 그레이>는 신체 일부가 기생생물에 잠식되어 공생하게 된 마트 직원 수인 역은 전소니가, 사라진 여동생의 뒤를 쫓는 남자 강우 역은 구교환이, 기생생물 전담반 더 그레이의 팀장 준경 역은 이정현이 맡아 연기를 펼쳤다. 배우 전소니는 유연한 태도로 변화의 소용돌이에서 살기 위해 애쓰는 유약한 인간의 모습을 잘 담아냈고 구교환은 특유의 유쾌함을 바탕으로 사건의 실마리를 풀어나가는 역할을 충실히 수행한다. 준경 역의 배우 이정현은 기생생물에 대처하는 조직의 대표로서 카리스마 있는 모습을 보인다. 다만, 준경이 작품의 주요 축임에도 긴장감을 부러 낮추는 가벼운 톤의 연기는 아쉬운 지점이다. 기생생물에 대해 통달한 듯 상기된 목소리로 기생수를 설명하는 준경의 모습은 이질적인 느낌을 주기도 한다.

<기생수: 더 그레이>의 전반부가 압축적인 구성과 빠른 전개로 작품의 세계관의 ‘판’을 까는 과정이었다면 후반부는 본격적인 갈등의 소용돌이가 불 것이라 예상된다. 인간도 기생수도 아닌 애매한 위치의 수인이 어떤 방식으로 활약할지 더욱 기대되는 바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