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빌리 진 킹: 세기의 대결>은 주인공의 감정을 배제하고자 애쓴다. 마릴린에게 이끌림에도 남편 래리도 등돌릴 수 없는 상황을 그리면서도, 빌리 진의 사랑은 승부에 별다른 영향을 끼치지 못하는 것처럼 보인다. 시종 객관적인 시선을 유지하는 영화는, 심지어 클라이막스인 빌리 진과 바비의 경기에서조차 둘 중 어느 누구의 시점숏도 부여하지 않는다. 스코어에 따라 급변하는 인물들의 감정을 묘사하는 과정이 완전히 비어 있다. 당시 전 세계 9천만 명이 TV 중계로 지켜봤던 것처럼, 관객 역시 두 선수가 공을 주고 받는 모습을 건조하게 지켜볼 수밖에 없다. 경기가 끝난 후, 승자의 기쁨과 패자의 아픔조차 흐릿하다. 하지만 그 순간, 두 사람을 제외한 그 경기를 지켜보던 모든 인물들의 얼굴에는 각자 환희와 좌절이 명징하게 드러난다. 승리하고 패배한 두 주인공은 안중에 없는 듯, 그들 주변 사람들을 끈질기게 쳐다본다. 특히 러닝타임 내내 거들먹거리면서 여성을 폄하하던 남자들. 그 얼굴들에 만면한 부끄러움이 피날레를 장식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