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새 초겨울. 수능 시즌이다. 과거를 자주 돌이키는 버릇 때문인지, 아직 나이를 덜 먹었는지, 이 즈음이면 틈날 때마다 열아홉 고3의 시간들을 떠올리게 된다. 공부야 그냥 남들 하는 만큼 해서 수험생으로서 느꼈던 부담 같은 건 딱히 생각나는 게 없다. 집에 가는 마을버스에서 이소라의 '순수의 시절'을 듣다 몰래 울었던 날 정도.

고3 때 2살 많은 누나를 좋아했다. 짝사랑이었지만, 그때부터 줄곧 첫사랑이라고 믿고 있다. 나의 열아홉은 그 사람을 좋아했던 시간이었다고 말할 수 있다. 수능이 연기되는 바람에 올해는 평소보다 더 그날들을 떠올리는 시간이 많아졌다. 기억력이 엉망인지라 옅은 추억마저 점점 지워지던 차, 에디터 칼럼을 빌미로 그때를 기록하기로 했다.


고2 겨울방학, 음악동호회 정모에서 누나를 처음 만났다. 나보다 몇 살은 어려 보이는 동안. 귀여웠다. 첫눈에 반했던가, 모르겠다. 그해가 가기 전 누나는 내가 싫어하는 형과 사귀었고, 질투심(그때는 그게 질투가 아닌 줄 알았지)에 누나를 더 좋아하게 됐던 것 같다. 곧 수험생이 되면 약속 잡기 어려울 거라는 걸 구실 삼아 그 누나, 다른 누나, 나 셋이 만나서 놀았다. 태어나서 처음 가본 홍대 앞이었다. 보드게임방에서 무슨 게임을 했고, 커피빈에서 비싼 커피랑 비싼 빵을 먹었다. 같이 찍은 사진 잘 나왔을까, 단둘이 만났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그 사람의 얼굴을 생각하면서 집에 갔다. 며칠 후 고3이 됐다.

누나와 주고받은 문자메시지는 고3 생활을 버티게 한 힘이었다. 시간 지지리도 안 간다고 푸념이나 늘어놓았을 텐데, 그 말들을 1초라도 빨리 보고 싶어서 휴대폰을 한시도 꺼놓지 못했다. 최고의 기쁨은 드문드문 도착하는 편지였다. "오늘 드디어 편지 부쳤어"라는 문자를 받은 날부터 내 이름과 누나 이름이 적힌 편지봉투를 손에 쥘 때까지의 설렘은, 망친 모의고사 성적표를 받는 나쁜 긴장따위와 비교가 안 될 만큼 커다랬다. 누나가 생각나는 대로 쓴 듯한 어둡고 난해한 말을 모두 이해할 순 없었지만, 그렇게 내밀한 이야기를 나에게 털어놓는다는 사실만으로도 특별한 사람이 된 것 같았다.


여자는 남자의 미래다

봄이 한창인 5월 처음 단둘이 만났다. 문자와 편지로 보고 싶다고 노래를 불렀던 <여자는 남자의 미래다>를 같이 보기로 했다. 누나는 늘 그랬던 대로 늦었다. 1시간을 기다렸는데 그 시간이 하염없이 설레기만 했다. 종로3가역 5호선에서 내려 서울극장으로 걸어오고 있다는 문자를 받았을 땐 가슴이 터질 뻔했다. 근데 얄궂게도 눈앞에 나타난 누나가 얼마나 이뻤는지, 그 모습을 본 내 마음이 어땠는지, 도통 떠오르지 않는다.

노안 덕에 친구들한테 '청불' 영화 티켓까지 끊어주곤 했던 터라 무리 없이 <여자는 남자의 미래다>를 볼 줄 알았는데, 매표소 직원이 신분증을 요구했다. 서로 멋쩍게 웃고는 다른 관에서 상영하던 <효자동 이발사>를 보기로 했다. 영화가 눈에 들어올 리가 있나. 계획했던 영화도 아니었을 뿐더러 무슨 영화를 봤더라도 마찬가지였을 거다. 옆에 있는 손을 잡을까, 러닝타임 내내 생각했다. 송강호와 문소리는 늘 그랬던 대로 좋은 연기를 보여줬고, 독재자의 권력에 짓밟힌 소시민의 아픔이 그려지고 있었지만, 한 가지 생각만 되풀이하던 나에겐 그저 어른대는 그림일 뿐이었다. 눈 말똥말똥 뜨고 정신도 멀쩡한 상태로 그렇게 영화를 허투루 본 적은 처음이자 마지막이었다. 극장을 나와 밥도 먹고 떠나가라 웃으며 이야기도 나눴을 텐데, 기억은 손을 잡지 못했다는 것에서 멈춰 있다. 

효자동 이발사

수능을 엿새 앞둔 11월 11일, 집으로 소포가 하나 도착했다. 누나의 이름이 적혔고, 빼빼로가 종류별로 가득 들어 있었다. 공부 안 한 사람치고 뻔뻔하게도 신경쇠약에 시달리며 지옥같은 나날을 보내고 있었는데 그걸 받자마자 거짓말처럼 병이 씻은 듯 나았다. 친구들이 지지리 죽상을 하고 있는 사이 난 쾌활히 웃으면서 남은 며칠을 보냈다. 11월 17일 아침, 날 때 입었던 배냇저고리와 누나가 준 빼빼로를 넣은 가방을 짊어지고 시험장으로 걸어들어가는데 그렇게 눈물이 쏟아졌다.

누나와 본 두 번째 영화는 <그 여름 가장 조용한 바다>였다. 동서고금의 고전을 틀어준다는 서울아트시네마는 고3 때 가장 가보고 싶은 극장이었다. 수능 직후 때마침 기타노 다케시 특별전을 하고 있었고, 그 중 낭만적인 제목의 영화를 골랐다. 멋부리기 좋아하는 친구가 며칠 전에 산 옷을 빌려 입고, 그때만 해도 운치가 넘치던 삼청동을 나란히 걸어 극장이 있던 아트선재로 갔다. 설마 그때도 손 잡을까 궁리만 하고 있었냐고? 음.. 영화는 제목처럼 정말 조용했고, 우리 둘은 영화 시작하고 얼마 안돼 완전히 곯아떨어졌다. 이미지만 봐도 물살이 다가오는 따뜻한 소리가 들리는 것만 같은 바다도 보지 못했다. 두 사람 모두 중간에 깨지도 않고 잤다는 게 웃겨서 풉풉 대며 극장을 나섰다. 막차 시간이 가까워질 즈음까지 같이 있다가 헤어졌다. 누나가 탈 열차가 오는 걸 보고 덥썩 손을 잡고는 결국 잘가라는 말밖에 못했다. 꽤 오랫동안 그 자리에 가만히 서 있었다.

그 여름 가장 조용한 바다

크리스마스 이브, 감기가 심하다는 말을 듣고는 학교 끝나자마자 누나가 일하는 데로 갔다. 교실에 굴러다니던 산타 모자를 들고서. 1시간은 족히 걸리던 길이 그렇게 짧은 줄 처음 알았다. 교복에 분홍색 산타 모자를 쓴 나를 보고 웃던 모습을 떠올리며 집에 돌아오는 길도 금방이었다. "10대의 마지막날을 평생 잊지 말아야지." 12월 31일 다시 그곳으로 갔다. 그동안 하고 싶었던 말들이 얼마나 많았는데, 실컷 어물대다가 흘러나온 진심은 고백하는 사람이 할 수 있는 가장 간단한 말이었다. 눈물이 자꾸 나서 창피해 죽겠는데 집에 가는 길이 너무 길었다. 몇 시간 후 스무살이 됐다. 누나는 졸업식에 오지 않았다.


판타스틱 Mr. 폭스

누나를 단둘이 다시 만난 건 전역하고 몇 달 지나서였다. 웨스 앤더슨의 애니메이션 <판타스틱 Mr. 폭스> 시사회 티켓이 생겨서 연락처를 보다가 5년 전과 똑같은 누나 번호를 눌렀다. 별 생각도 없이. 약속을 잡고 나니 궁금은 했다. 다시 만난다면 아무렇지 않게 마음이 되살아나지 않을까. 호기심은 만나자마자 풀렸다. 여전히 예뻤고 나보다 어려 보였지만, 하나도 설레지 않았다. 영화는 정말 재미있게 봤다. 애니메이션까지 끝내주게 잘 만드는 앤더슨의 감각에 탄복 또 탄복했다. 극장을 나와서 무슨 얘기를 했더라. 그 사람을 앞에 두고 머릿속으로 "첫사랑은 끝났구나" 되뇌었던 것 말고는 기억이 안 난다.


씨네플레이 에디터 문동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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