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2 겨울방학, 음악동호회 정모에서 누나를 처음 만났다. 나보다 몇 살은 어려 보이는 동안. 귀여웠다. 첫눈에 반했던가, 모르겠다. 그해가 가기 전 누나는 내가 싫어하는 형과 사귀었고, 질투심(그때는 그게 질투가 아닌 줄 알았지)에 누나를 더 좋아하게 됐던 것 같다. 곧 수험생이 되면 약속 잡기 어려울 거라는 걸 구실 삼아 그 누나, 다른 누나, 나 셋이 만나서 놀았다. 태어나서 처음 가본 홍대 앞이었다. 보드게임방에서 무슨 게임을 했고, 커피빈에서 비싼 커피랑 비싼 빵을 먹었다. 같이 찍은 사진 잘 나왔을까, 단둘이 만났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그 사람의 얼굴을 생각하면서 집에 갔다. 며칠 후 고3이 됐다.
누나와 주고받은 문자메시지는 고3 생활을 버티게 한 힘이었다. 시간 지지리도 안 간다고 푸념이나 늘어놓았을 텐데, 그 말들을 1초라도 빨리 보고 싶어서 휴대폰을 한시도 꺼놓지 못했다. 최고의 기쁨은 드문드문 도착하는 편지였다. "오늘 드디어 편지 부쳤어"라는 문자를 받은 날부터 내 이름과 누나 이름이 적힌 편지봉투를 손에 쥘 때까지의 설렘은, 망친 모의고사 성적표를 받는 나쁜 긴장따위와 비교가 안 될 만큼 커다랬다. 누나가 생각나는 대로 쓴 듯한 어둡고 난해한 말을 모두 이해할 순 없었지만, 그렇게 내밀한 이야기를 나에게 털어놓는다는 사실만으로도 특별한 사람이 된 것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