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히치콕 왈, ‘우리 모두가 관음증 환자 혹은 노출증 환자’라고 했던가. 그도 그런 것이, SNS 시대에 이르러 누군가를 훔쳐보는 일, 그리고 나를 노출하는 일은 더욱 쉽고 재밌어졌다. 꽉 찬 출근길 지하철에서 누군가가 핸드폰에 띄워 놓은 영상을 엿보는 일, 혼자 시간을 보내러 간 카페에서 어느 커플이 다투는 소리를 듣는 일, 저 멀리 어색하게 서 있는 두 사람의 직업과 관계를 남몰래 유추하는 일.

하지만 <그녀가 죽었다>의 주인공 '구정태'(변요한)의 행동은 모든 인간에게 내재한 보편적인 관음증의 영역을 넘어선다. 언뜻 보면 말쑥하고 서글서글한 인상의 그는 남을 관찰하는 취미를 가진 공인중개사다. 그래, 여기까지는 그렇다고 치자. 그의 관찰은 사적인 공간을 침입하면서까지 이뤄진다. 그는 타인의 집에 무단침입해 마치 우렁각시처럼 고장 난 전등을 고쳐주기도 하고, 삐걱대는 장롱 문을 고쳐주기도 한다. 그러고는 없어져도 신경 안 쓸 법한 물건, 이를테면 다 써 가는 핸드크림 등을 훔쳐 자신의 비밀 창고에 전시한다. 간단하게 말하면 변태이자 범죄자다.

그러다 완벽한 관종 '한소라'(신혜선)가 구정태의 레이더에 걸렸다. 한소라는 인스타그램 인플루언서이자, 거짓된 삶을 전시해 관심을 받는 인물. 이를테면 편의점 소시지를 먹으면서 비건 샐러드를 먹었다며 포스팅하는 식이다. 구정태는 매일같이 그녀의 뒤를 밟으며 한소라의 생활패턴, 취미, 거주지 등을 모조리 파악한다. 이윽고는 공인중개사라는 자신의 직업을 이용해 한소라의 집에 몰래 방문하며 (구정태의 말마따나) “나쁜 짓은 아닌” 행동을 한다. 언제나처럼 그녀의 집으로 들어간 어느 날.. 그녀가 죽었다. 아니, 죽어있다!

영화 <그녀가 죽었다>는 훔쳐보기가 취미인 공인중개사 '구정태'가 관찰하던 SNS 인플루언서 '한소라'의 죽음을 목격하고 살인자의 누명을 벗기 위해 한소라의 주변을 뒤지며 펼쳐지는 미스터리 추적 스릴러다. 지난 29일, <그녀가 죽었다>의 언론배급시사회와 기자간담회가 진행됐다.
줄거리에 흠칫할 수도 있지만, <그녀가 죽었다>의 김세휘 감독은 스토킹이나 주거침입, 관음증을 마냥 미화하려는 의도가 없다. 오히려 그 반대다. 관심종자와 관음증자의 극단적인 예시를 경악스럽게 보여주며, ‘나쁜 의도가 아니라고 해서’ 절대 희석될 수 없는 영역이 존재한다는 점을 역설한다. SNS의 발달로 관음과 관종이 데칼코마니처럼 쌍을 이루게 된 사회, 그러나 엄연한 범죄에는 상대적인 선역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듯, 영화 속 인물들은 그야말로 파국으로 질주한다.
김세휘 감독은 “주인공들의 정상적이지 않은 행동들을 옹호하고 싶지 않았다”라며 “그들의 그릇된 신념을 있는 그대로 보여주고 싶었다. ‘그들의 결과는 그들이 자초한 것이니, 관객들이 그들을 평가하도록 하자’”라고 시나리오를 집필할 때 주안점으로 둔 부분을 밝혔다. 김 감독은 “관객들이 영화를 보며 ‘이상해’라는 마음이 들었으면 좋겠다”라고 전하기도 했다.

‘누가 봐도 이상한’ 두 주인공이 영화의 축이 되는 만큼, 배우들은 꽤나 난도 높은 연기를 펼친다. 특히 신혜선은 작년 개봉작 <타겟>에서도 범죄의 희생양이 되는 일반인 여성을 연기했던 바 있어, 얼핏 <그녀가 죽었다>에서도 비슷한 캐릭터는 아닐까 생각했지만, 그는 전혀 새로운 얼굴로 절대 호감이 가지 않는 인물을 연기한다. 한소라는 선한 이미지로 인기를 얻은 유명 인플루언서, 그러나 실상은 모든 것이 거짓된 인물이자 자기연민에 잠식된 사람이다. 그 때문에, 한소라를 연기한 신혜선은 매우 폭넓은 감정을 소화하며 ‘스릴러 퀸’으로서의 자격을 입증한다. 신혜선은 “영화에도 한소라의 전사(과거사)가 짧게나마 나온다. 나는 더 전으로 가보자고 생각을 해봤다. 나는, 한소라가 자신을 성숙시키지 못하면서 자라온 것 같다. 자신의 잘못을 주변 환경 때문이라고 끊임없이 변명하는 삶을 살아왔을 거다”라며 높은 캐릭터 이해도를 보였다.

무거워 보이는 스토리라인과는 달리, <그녀가 죽었다>는 분명 여름에 어울리는 스릴러 장르의 오락영화다. 다만, 심각한 소재에 불쑥 끼어드는 코믹 요소들에는 분명 호불호가 갈릴 것으로 보인다. 그 때문에, 관음증자 구정태가 누군가에게는 친근하게 느껴져 범죄의 심각성이 희석될 가능성 역시 존재한다. 다만, 배우 변요한과 김세휘 감독은 줄곧 구정태를 ‘동정할 여지없는 인물’로 봐주길 원했다.

배우 변요한은 시사회 당일이 자신의 생일이라 밝히기도 했는데, 그는 영화 속에서 마치 ‘생일빵’을 미리 맞는 양 많이도 맞는다. 변요한은 “<한산>의 다음 작품으로는 재미있고 특이한 캐릭터를 맡고 싶었다”라며 “그런데 이 정도로까지 특이할 줄은 몰랐다”고 구정태를 연기한 소감을 전했다. 구정태는 범죄를 일삼으면서도 자기자신을 '좋은 사람'으로 여기는 인물인데, 변요한은 관객들이 구정태를 보며 “(구정태를) 보면 볼수록 더욱 비호감으로 느끼셨으면 좋겠다”라고 말하기도 했다.

두 비정상들의 향연 속, 배우 이엘은 한소라의 죽음을 파헤치는 강력반 형사 ‘오영주’ 역을 맡아 자칫하면 자극적으로만 흘러갈 수 있는 이야기의 균형을 잡는다. 오영주는 극 중에서 유일하게 객관적인 시선으로 사건을 파헤치는 인물로, ‘사이다’같은 매력을 선사한다.
배우 윤병희의 열연은 단연 영화의 핵심이다. 그는 미스터리의 키가 되는 인물 ‘이종학’을 연기했는데, 이종학은 유명 인플루언서 '한소라'의 팬이자 치가 떨릴 정도로 소름 끼치는 인물이다. 그는 살인 누명을 쓰게 된 '구정태'가 의심하는 '한소라'의 주변 인물 중 하나로 극 중 미스터리를 극대화한다. 윤병희는 드라마 <스토브리그> <빈센조> 등에서 쌓아온 탄탄한 연기력을 바탕으로 베테랑다운 존재감을 뽐낸다.
예측 불가능하고 신선한 캐릭터가 돋보이는 미스터리 추적 스릴러 영화 <그녀가 죽었다>는 오는 5월 15일 전국 극장에서 개봉한다.
씨네플레이 김지연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