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는 아직 우리가 보지 못한 수많은 영화가 있다. ‘오늘은 무슨 영화를 볼까’라는 행복한 고민에 빠진 이들을 위해 쓴다. ‘씨네플레이’는 10년 전, 20년 전 이맘때 개봉했던 영화를 소개한다. 재개봉하면 당장이라도 극장으로 달려가서 보고 싶은 그런 영화들을 선정했다. 이름하여 ‘씨네플레이 재개봉관’이다.
증오
감독 마티유 카소비츠 출연 뱅상 카셀, 위베르 쿤데, 사이드 타그마우이 국내 개봉 1997년 11월 8일 상영시간 96분 등급 청소년 관람불가

- 증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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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독 마티유 카소비츠
출연 뱅상 카셀, 휴버트 콘드, 세이드 타그마오우이
개봉 1995 프랑스
센세이셔널했다. 충격이었다. 어디서 이런 영화가 튀어나왔을까. 1995년, 마티유 카소비츠 감독의 <증오>는 전 세계를 놀라게 했다. <증오>의 등장을 최근에 개봉한 영화와 비교해볼 수 있을까 생각해봤지만 쉽게 떠오르는 영화가 없다. <증오> 이전에 개봉한 스파이크 리의 <똑바로 살아라>(1989) 정도가 비슷하다고 할 수 있을까.
“50층에서 떨어지는 남자의 얘길 들어봤는가? 밑으로 떨어지는 동안 남자는 생각했다. ‘아직은 괜찮아, 아직은 괜찮아.’ 추락하는 건 중요한 게 아니야. 어떻게 착륙하느냐가 중요하지.” 짧은 시위 푸티지 영상 뒤에 보이스오버 내레이션과 함께 영화가 시작한다. 내레이션과 함께 스크린 속 지구 위로 화염병이 떨어진다. 불타는 지구. 화면이 전환되면 시위 현장 화면과 함께 밥 말리의 노래 ‘버닝 앤 루팅’(Burnin' and Lootin', 방화와 약탈이라는 뜻)이 흘러나온다.
<증오>는 파리 외곽, 빈민가를 가리키는 방리유(Banlieue)에 사는 세 젊은이인 유태인 빈츠(뱅상 카셀), 아랍인 사이드(사이드 타그마우이), 흑인 위베르(위베르 쿤데)의 24시간을 담는다. 아랍 소년 압델이 경찰의 고문으로 혼수 상태에 빠지고 이에 분노한 방리유의 불법체류자, 소외 계층, 하층민의 시위 혹은 폭동이 점점 거세지는 상황이었다.
과거 프랑스의 식민지 국민이었던 아프리카 사하라 이북의 아랍인들과 이남의 흑인들이 본국에 싼 노동력을 제공하기 위해 대거 이주해 왔다. 프랑스 정부는 이들을 사실상 ‘격리수용’하기 위해 파리 외곽에 대규모 거주시설을 조성했다. 빈츠, 사이드, 위베르는 이곳에 살고 있다.
감각적인 카메라
증오를 키워낼 수밖에 없는 환경에서 사는 세 청춘의 24시간은 아주 무거운 주제를 품고 있다. 이민 정책, 인종 차별, 빈곤을 이야기한다. 주제에 비하면 영상은 매우 감각적이다. 흑백 화면의 <증오>가 보여주는 화면 전환, 카메라워크, 편집은 뮤직비디오의 한 장면이라고 봐도 좋을 정도다.
뱅상 카셀이 연기한 빈츠가 처음 등장하는 장면을 보자. 카메라는 침대에 누워 있는 빈츠의 얼굴을 가까이 잡는다. 똑똑똑. 노크 소리와 함께 친구 사이드가 문을 연다. 카메라가 사이드의 시선으로 쑥 들어온다. 이름이 적혀 있는 빈츠의 너클(손가락에 껴서 주먹의 위력을 세게 하는 일종의 무기)을 클로즈업한다. 이 빡빡머리 청년의 이름을 보여준다. 자리에서 일어난 빈츠를 비춘 카메라는 곧바로 빈츠의 좁은 방을 360도 회전하듯 보여준다. 나이키 신발 상자, 마릴린 먼로 사진, 이소룡 사진, 스테리오와 음반 등이 보인다. 이렇게 빈츠라는 캐릭터의 소개를 10초 만에 끝냈다. 카메라가 빈츠의 방을 보여주며 움직일 때 열려 있는 방문으로 들어오는 빈츠의 동생의 등장도 타이밍이 기가 막히다. 좁은 방에서 진행된 몇 개의 컷으로 이뤄진 이 짧은 신에서 마티유 카소비츠가 보여준 카메라워크, 화면전환은 쉽게 설명할 수 없는 영화의 리듬을 만들어냈다. 빈츠가 춤을 보여주는 짧은 컷이 끼어드는 것까지 모든 게 완벽해보인다.
또 다른 장면을 보자. 방송국 기자가 어제의 시위 혹은 폭동을 취재하기 위해 빈츠와 사이드, 위베르에게 말을 건다. 빈츠는 자신들의 이야기를 제대로 방송하지 않는 기자에게 증오의 말을 내뱉는다. 순간 브라운관 TV에서 볼 수 있는 떨리는 화면으로 전환된다. 취재기자 옆에서 촬영하고 있던 카메라의 영상이다. 특별할 게 없다고? 이 영화는 23년 전에 나왔다는 걸 다시 얘기한다. LED TV가 없던 시절이다.
국내 개봉 당시 <증오>를 설명하면서 “MTV처럼 화려하면서도 힘 있는”이라는 표현을 쓰는 것도 무리가 아니다. 잠깐, ‘MTV처럼’이 뭔지 모르는 어린 영화 팬이 꽤 있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든다. 한마디로 설명하면 ‘감각적이다’ 정도가 되겠다.
여전히 논쟁거리인 이민자 문제
진지한 영화는 지루하고, 스타일리시한 영화는 공허한 메시지를 담는다. 이런 편견, 고정관념은 결코 그냥 만들어지지 않았다. 깊이 있는 주제 의식과 감각적인 스타일은 공존하기 쉽지 않다. <증오>의 놀라운 점은 이 두 가지가 모두 탁월하다는 점이다.
인종차별을 기반으로 한 이민자 문제는 지금도 여전히 뜨겁게 논쟁 중인 사안이다. 23년 전 영화 <증오>가 여전히 유효한 이유다. 동시에 뱅상 카셀과 친구들의 트레이닝복, 랩 음악, 비보잉, 그래피티 등 뉴욕의 할렘이나 브롱크스가 연상되는 파리 외곽, 방리유의 하위 문화 역시 여전히 볼거리다.
마티유 카소비츠의 도발적인 연출이 이 모든 걸 가능하게 했다. 헝가리 이민자 출신인 마티유 카소비츠는 TV영화 감독 아버지와 편집감독 어머니를 뒀다. 13살 때부터 수퍼 8mm 단편영화를 찍었고, 고등학교를 중퇴하고 영화 현장에 뛰어들었다. 감독과 배우로 활동하던 그에게 ‘톨레랑스’를 자랑스럽게 여기는 부르조아의 프랑스는 조롱 대상이었다. 프랑스의 유력 영화상인 세자르영화상 신인배우상에 지명됐지만 트로피를 찾아가지 않았다. 기성 세대와 달리 권위에 저항하는 카소비츠의 독특한 행동은 관심의 초점이다. <증오>의 칸영화제 출품 당시 많은 사람들이 한 해 전 세상을 놀라게 했던 <펄프픽션>의 쿠엔틴 타란티노와 비교하기도 했다.
<증오>는 대담무쌍한 영화다. 주제에서도 스타일에서도 모두 그랬다. 다시 한번 <증오>와 비교할 만한 영화가 없을까 생각해봤다. 류승완 감독의 데뷔작 <죽거나 혹은 나쁘거나>가 떠올랐다. 최근 개봉작 가운데서는 여전히 떠오르는 영화가 없다. 이런 영화가 재개봉한다면 당장 극장에 달려갈 텐데.
뱅상 카셀의 시작
<증오>는 뱅상 카셀을 프랑스를 대표하는 배우로 만들어준 영화다. 손가락으로 권총 모양을 만들어 겨냥하는 짧은 머리의 뱅상 카셀의 사진은 <증오>를 대표하는 이미지이기도 하다. 프랑스의 방황하는 청춘, 뱅상 카셀은 한동안 이런 악동 이미지의 역할을 맡았다. <도베르만>(1997), <돌이킬 수 없는>(2002)이 대표적이다. 그러고 보니 저 짧은 머리, 어디서 본 것 같다. <트레인스포팅>(1996)의 이완 맥그리거가 연상된다. 프랑스에 뱅상 카셀이 있었다면, 스코틀랜드에는 이완 맥그리거가 있었다. 둘 다 대책 없는 청춘이다.
감독보다 배우로 더 유명한(?) 마티유 카소비츠
마티유 카소비츠는 국내에서 배우로 더 알려져 있을지도 모르겠다. 특히 <아멜리아>의 니노 역으로 유명하다. 그밖에 최근작 <발레리안: 천 개 행성의 도시>에서 호커 역으로 출연했다. <헤이와이어> <뮌헨> 등에서도 그의 얼굴을 찾아볼 수 있다. <증오>로 프랑스의 차세대 천재 감독이라는 소리를 듣던 그는 <크림슨 리버> <바빌론 A.D.> 등의 연출작을 내놓았지만 안타깝게도 더 이상 천재 소리를 듣지 못했다.
씨네플레이 에디터 신두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