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글로벌 OTT 플랫폼 넷플릭스에서 지역마다 열심히 밀어주는 콘텐츠가 있다. 우리나라가 드라마 제작이라면, 일본은 애니메이션 제작에 거금을 들이붓고 있다. <이토 준지 매니악>, <플루토>처럼 원작을 새롭게 옮긴 작품이 있는가 하면, <사이버펑크: 엣지러너>처럼 '오리지널'이란 말에 걸맞게 완전히 새로운 내용을 담은 작품에도 투자하고 있다. 특히 5월 24일 공개한 <좋아해도 싫어하는>은 이전에도 넷플릭스가 적극적으로 배급이나 제작을 도운, 이른바 파트너십이 돈독한 스튜디오 콜로리도의 오리지널 신작으로 기대를 모았다. 2022년 <표류단지>에 이어 2년 만에 돌아온 스튜디오 콜로리도는 오리지널 극장판 애니메이션이 점점 희귀해지는 시대에 '차세대 애니메 강자'라는 타이틀을 거머쥘 수 있을까.


<좋아해도 싫어하는>은 제목만 보면 하이틴 소년소녀들의 러브코미디물 같지만, 오히려 로드무비에 가깝다. 주변 사람들과 사이좋게 지내고 싶은 히이라기(오노 켄쇼)는 타인에게 늘 호의를 베푼다. 물론 그 호의가 매번 좋은 결과로 돌아오지 않고, 히이라기는 그런 생활에 자신도 모르게 지쳐간다. 그러던 중 큰 배낭을 메고 동네를 배회하는 츠무기(토미타 미유)를 무심코 도와주게 된다. 엄마를 만나려고 잠시 '이곳'에 왔다는 츠무기는 알고 보니 요괴였고, 히이라기는 츠무기가 엄마를 만날 수 있도록 도와주려고 한다.
<좋아해도 싫어하는>의 원제는 '좋아하면서도 싫어하는 아마노자쿠'(아마노자쿠가 일본 설화의 요괴이다), 영제목은 '나의 요괴 소녀'(My Oni Girl)다. 어떻게 보면 한국어 제목이 영 생뚱맞게 보이는데, 영화를 보면 그 나름의 의미가 있다. 히이라기는 거대한 뱀의 형상을 한 무언가에게 습격을 받게 되는데, 그 이유가 제대로 속마음을 표현하지 못한 탓에 몸에서 작은 요괴들이 나오기 때문이다. 즉 좋아해도 싫어하는, 속마음을 제대로 표현하지 못하고 참거나 반대로 말하는 그의 성격을 함축적으로 담은 것이다. 물론 영화를 보고 그 제목이 그렇게 적합한지는 다소 의문이긴 하다. '좋아해도 싫어하는'이란 문구와 영화가 그렇게 착 붙는 것 같진 않다.

이렇듯 <좋아해도 싫어하는>은 히이라기가 츠무기와 함께 여행하는 이야기에서 풋풋한 교류와 히이라기 본인의 성장을 담는다. 그러면서 동시에 이들을 쫓는 뱀 형상의 생명체가 무엇인지, 그리고 츠무기의 엄마가 어떻게 됐는지를 다룬다. 영화는 112분의 시간 동안 다양한 인물과 장소를 거쳐 히이라기와 츠무기, 나아가 요괴와 인간의 관계를 그리고자 한다. 문제는 그 과정이 성공적이지 못하다는 것이다.

냉정하게 말해 스튜디오 콜로리도는 아직 갈 길이 한참 먼 모양새다. 외적으로 봤을 때는 문제가 없어뵌다. 장면마다 아름다운 영상미는 감탄하게 한다. 이 여름 시기를 겨냥한 듯 눈이 내리는 한여름밤의 풍경은 작품의 정서를 황홀하게 전하고, 영화 후반부의 클라이맥스는 환상적인 볼거리를 보장한다. 한여름의 풍광은 청춘의 찬란함을 담았고, 츠무기가 히이라기에게 말을 건네며 달리는 장면은 조금씩 성장하는 과정에서의 설렘을 곱씹게 한다. 요괴 소녀 츠무기와 소심하지만 배려심 깊은 소년 히이라기를 비롯해 캐릭터 디자인은 꽤 매력적이다.
그런데 문제는 <좋아해도 싫어하는>은 이상할 정도로 매력이 없다. 영화의 주요한 요소들이 모두 어디선가 본 것 같다. 이야기 구조는 흔히 말하는 '소년, 소녀를 만나다'에서 벗어나지 않고, 현대 사회와 요괴라는 설화의 결합은 <갓파 쿠와 여름방학을>이나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을 떠올리게 한다. 거기다 어떤 재난을 피하기 위해 길을 떠난 소년소녀들이 주위 사람의 도움을 받으며 성장하는 내용은, 바로 최근에 개봉한 <스즈메의 문단속>의 잔상이 진하다(미안한 얘기지만 포스터마저 신카이 마코토의 다른 작품 <날씨의 아이>가 연상된다).

이렇게 이야기를 구성하는 구조, 설정, 전개가 다른 작품을 연상시키는데, 문제는 <좋아해도 싫어하는>은 그 작품들의 장점을 제대로 소화하지 못한 것은 물론이고 본인만의 개성을 어필하는 데도 실패했다는 것이다. 먼저 영화의 소재 '요괴'에 대한 설명이 부족해 영화의 세계관에 몰입하기 어렵다. 한국인 관객 입장에선 이것이 영화만의 설정인데 설명이 부족한 건지, 아니면 일본 문화에만 있는 것이라 이해가 어려운 것인지 가늠하기 어렵다. "요괴가 된다"는 말을 듣고도 차분한 히이라기의 반응을 보면, 요괴가 그렇게 심각한 존재가 아닌 것 같은데 반대로 인간들이 요괴 마을에 들어갈 수 없도록 숨기고 있다는 설정은 이와 상충한다.


히이라기와 츠무기가 여행을 하면서 만나는 사람들의 면면도 너무 얕다. 무언가 더 있을 것처럼 보여주지만, 실제로는 정말 스쳐지나가는 사이처럼 에피소드만 남기고 영화에서 제대로 그려지지 않는다. 이런 에피소드를 보여주느라 히이라기와 츠무기의 깊어지는 관계를 보여줄 분량을 빼앗기니, 영화 후반부 두 사람이 서로를 구하기 위해 하는 행동들은 두 사람의 정서적 애착만큼 깊이 있게 와닿지 않아 기능적으로만 보일 뿐이다(두 배우의 연기가 절실해 장면이 더 공허하게 느껴진다).

<좋아해도 싫어하는>의 총평을 말하자면, (이렇게 매섭게 내려치기 해놓고 말하기 민망하지만) '아쉽다'에 가깝다. 흔히 말하는 '업계를 뒤집을 만큼' 좋은 작품도 아니지만, '업계를 흔들 만큼' 못난 작품은 아니다. 앞서 말한 것처럼 과거 인기작들의 흥행 요소를 면밀하게 분석한 듯 전략적으로 작품을 구성한 것, 눈이 즐거운 작화의 퀄리티나 캐릭터 디자인의 유려함 등 애니메이션으로서의 장점은 분명하다("애들이 귀여우면 됐지 뭘 바라세요"라고 하면 할 말 없을 만큼 히이라기와 츠무기는 최고다). 다만 그것을 받쳐주는 것이 부족하기에 장점마저 눈속임처럼 보일 뿐이다. 2시간짜리 극장판이 아니라 좀 더 장기적인 구성으로 접근하는 시즌제 애니메이션이었다면 다양한 인물들의 이야기를 바탕으로 세계관을 디테일하게 묘사하며 히이라기-츠무기가 함께 성장하는 전개가 가능하지 않았을까 싶다. 넷플릭스와 스튜디오 콜로리도는 오리지널 극장판 애니메이션 3편을 계약했고, <표류단지>와 이번 <좋아해도 싫어하는>을 공개했다. 이제 마지막 한 발이 남았다. 다음 작품은 이보다는 더 빼어난 작품으로 넷플릭스와 애니메이션 팬들을 흔들어주길 기대한다.
* 참고로 우리말 더빙도 서비스 중이다. 김명준, 김나율, 류승곤 등이 참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