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고 나면 나도 모르게 입으로 '부아앙' 하고 엔진 소리 내는 그 영화, <퓨리오사: 매드맥스 사가>가 100만 관객을 돌파했다. <매드맥스: 분노의 도로>에서 등장한 퓨리오사의 과거를 다룬 이번 영화는 시리즈의 전매특허 카체이싱 액션으로 아드레날린의 향연을 선사한다. 실제로 달리는 차량에서 빚어지는 액션은 맨몸액션이나 CG로 구현되는 스펙터클 액션과는 또 다른 감흥을 준다. 몇몇 영화들은 그런 시퀀스를 보여준 것만으로도 몇십 년이 지나도록 관객들에게 회자되기도. <퓨리오사: 매드맥스 사가> 속 엔진의 열기로 잔뜩 달아올랐을 관객들이 보면 좋을, 역사에 남은 카체이싱 명장면 영화들을 소개한다. 혹시 최애로 여기는 영화가 아래 리스트에 없다면, 댓글로 남겨주길 바란다.
카체이스 액션 부흥기의 70년대
블리트, 프렌치 커넥션


만일 구글에 'Car Chase GOAT'를 검색한다면 무조건 만나게 될 두 작품. 1968년 <블리트>와 1971년 <프렌치 커넥션>이다. 두 영화 모두 하드보일드 누아르의 기틀을 잡은 것은 기본이고, 카체이스 액션의 극한을 보여준 것으로 지금도 기억되고 있다. <블리트>는 당대 마초 배우 스티브 맥퀸이 연기한 형사 프랭크 블리트가 사건 배후의 마피아를 추적하는 스토리를 다뤘다. 이 과정에서 블리트와 마피아가 보낸 히트맨 간의 추격전이 이뤄지는데, 이 장면은 아날로그 카체이스의 극한을 보여준다. 그 어떤 부가적인 사운드 없이, 배우의 대사도 없이 오직 이글거리는 엔진 소리와 아스팔트 도로를 미끄러지는 타이어의 마찰음, 머슬카 특유의 차량 튕기는 소리 등으로만 장면을 구성해 유례없이 사실적인 카체이스를 완성한다. 스피드광으로 유명한 스티브 맥퀸답게, 블리트의 차량은 그가 직접 운전했다는 사실은 화룡점정.


진 해크만이 주연한 <프렌치 커넥션>도 비슷한 맥락에서 카체이스가 이어진다. 한 형사의 죽음을 수사하던 도일(진 해크만)이 프랑스 마약 밀매 조직을 추적한다는 내용이다. 이 영화에서 조직원 피에르가 지하철을 타고 도망치자 도일이 철교 아래 도로로 그를 추적하는 과정이 그려지는데, 이 장면이 <블리트>와 함께 할리우드 역대 최고의 카체이스 장면으로 자주 거론된다. 특히 <블리트>가 비현실적 사운드를 최대한 자제한 연출의 극한이라면, <프렌치 커넥션>은 교차 편집 및 차량 시점 숏 등 테크니컬한 연출의 집약체라 할 수 있다. 이 장면이 무허가로 촬영한 결과물이란 말이 항간에 있는데, 그래도 뉴욕 경찰이 동원돼 교통 정리를 해주면서 촬영한 장면이다. 그럼에도 촬영 중 실제로 교통사고가 날 뻔하긴 했다고.(유명한 유모차를 끄는 노인은 연출된 것이다)


카체이스 명맥을 이은 90~2000년대 영화
로닌, 식스티 세컨즈

위의 두 작품 외에도 70~80년대 영화 중 카체이스로 손꼽히는 영화는 줄줄이 있다. <배니싱 포인트>(1971), <블루스 브라더스>(1980), <드라이버>(1978) 등등. 그러다가 90년대 들어서면서 (<다이 하드> 같은) 배우의 액션이 중시되는 영화가 유행해서인지 상대적으로 카체이스 장면의 약세가 이어진다. 그래도 여전히 카체이스는 액션영화에 빠질 수 없는 필수 시퀀스였고, 몇몇 영화는 그 장면들을 훌륭하게 담는 성과를 거뒀다. 1998년 <로닌>은 <블리트>에서 깊은 영감을 받은 듯 인공적인 사운드를 극도로 줄인 카체이스를 속도감 넘치게 연출했다. 도심 한복판을 역주행하는 테러리스트 시무스(조나단 프라이스) 일행과 이를 뒤쫓는 샘(로버트 드 니로) 일행의 추격전은 그야말로 오금이 저릴 정도로 위험천만 하다. 로버트 드 니로, 나타샤 맥켈혼, 장 르노, 스텔란 스카스가드, 숀 빈, 조나단 프라이스 등 화려한 명배우들이 채운 영화인데도 카체이스가 으뜸이라니, 이게 호평인지 혹평인지 알 수 없지만.



<식스틴 세컨즈>(2000)는 1974년 개봉한 동명 원작 영화의 명성을 이어받았다. 차량을 훔치는 일당이 주인공을 이끄는 만큼 영화 내내 카체이스 장면이 이어진다고 볼 수 있다. 니콜라스 케이지가 연기한 주인공 멤피스가 동생을 구하기 위해 차량 50대를 훔쳐야 하는 상황에 놓인다. 옛 동료를 모아 차량을 훔치는데 새 천년의 시작을 알리듯 빠른 화면전환과 화면에 잔상이 남을 만큼 흔들리는 카메라, 긴박함을 끌어올리는 음악 등 MTV 스타일 영상미를 카체이스로 승화시켰다. 니콜라스 케이지가 대부분의 스턴트 운전을 소화해서 눈속임이 적다는 것도 특징.


2010년대에 태어난 레이싱영화 금자탑
포드 V 페라리


카체이스 영화라면 빠질 수 없는 것이 <분노의 질주> 시리즈다. 그렇지만 워낙 유명한 작품이니 이름 정도만 언급하고 넘어가자. <분노의 질주> 시리즈를 위시한 스트리트 레이싱 영화가 성행하자, 그 반대편에 있는 '세상에서 가장 빠른 스포츠' 모터스포츠도 영화화의 대상이 됐다(물론 이전에도 <그랑프리>(1966)나 <드리븐>(2001) 등 명작이 있었다). 단언컨대 이 장르에서 <반지의 제왕>급 기점이 된 영화는 2019년 <포드 V 페라리>일 것이다. 24시간을 달리는 '르망 24'를 앞두고 포드는 페라리를 이기기 위해 차량 디자이너 캐롤 셸비(맷 데이먼)와 레이서 켄 마일스(크리스찬 베일)를 고용하고 둘은 르망 24를 제패하기 위해 힘을 합친다. 152분이나 되는 영화는 드라마를 서서히 쌓아올린 후 클라이맥스에서 극한의 레이스 르망 24에서 레이서가 겪는 스피드와 고독을 동시에 전한다. 레트로한 디자인의 전설적인 차량, 말 그대로 '차에 미친' 사람들의 서사, 레이싱의 묘미를 완벽히 담아낸 카메라가 아우러진 레이싱 시퀀스는 레이스에 관심 없는 관객들마저 사로잡기 충분했다.

먹다 보면 생각나는 별난 맛
베이비 드라이버 등


위의 영화들은 '카체이스' 하면 나오는 모범답안들에 가깝다. 어떻게 보면 <퓨리오사: 매드맥스 사가>는 위의 카테고리와 다소 다르다. 그렇게 '색다른' 것에 중점을 두고 있다면 아래의 영화들이 더 어울릴지도 모른다. 일단 <베이비 드라이버>는 범죄자들을 이송하는 차량 운전자가 주인공이라 카체이스 장면이 많은데, 주인공 '베이비'(안톤 엘고트)가 늘 음악을 듣는 것 때문에 뮤지컬영화처럼 느껴진다. 1971년 <듀얼>은 어떤가. 스티븐 스필버그의 데뷔작으로 대형 트럭을 추월했다가 보복 운전을 당하는 데이빗의 고군분투를 그린다. 차량이 주행되는 과정이 곧 드라마와 직결된다는 점에서 <매드 맥스>스러운 지점이 많다. 카체이스와 장르적 상상력이 중요하다면 <레이스 위드 더 데빌>(1975) 같은 영화도 있다. RV를 타고 여행하다가 사이비 종교단체에게 산 제물로 바쳐질 뻔한 이들이 도망치는 내용을 다뤘다. '카체이스'가 아닌 '차를 이용한 액션'이라면 단연 <분노의 질주> 시리즈가 최고의 선택일 테고, 1982년 영화 <더 정크맨>이나 2007년 <데쓰 프루프>도 좋은 선택지가 될 것이다. 최근에 개봉한 <스턴트맨>도 훌륭한 카체이스 장면이 있고, 기네스에 기록될 만큼 스턴트 액션도 많으니 접해보는 것도 좋을 듯.