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체메뉴

기사 카테고리

Movie & Entertainment Magazine from KOREA
>인터뷰

[인터뷰] “전형적인 소수자 캐릭터는 거부한다.” 애플TV+ 오리지널 영화 〈팬시 댄스〉, 배우 릴리 글래드스톤

씨네플레이
〈팬시 댄스〉
〈팬시 댄스〉

 

절대 거스르면 안 되는 영화의 목록이 있다. 규모로 보자면 정말 작은 영화 <팬시 댄스>는 올해 그 목록에 당당히 올려야 할, ‘당신이 무시하거나 지나치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을 가지고 소개해야 할 단 한 편의 작품이다. 영화는 명백한 범죄 스릴러 장르물임을 먼저 밝힌다. 미국 오클라호마 털사 지역, 인디언 보호지구에서 한 여성의 실종 사건이 일어난다. 세네카 카유가 부족인 이 원주민 여성은 클럽에서 일하는 성노동자로, 실종 전에는 마약 거래에도 가담했다. 백인 사회는 이 여성의 실종에 눈 하나 깜짝하지 않는다. 사라진 여성을 찾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건 이 여성의 동생인 원주민 잭스(릴리 글래드스톤) 뿐. 억울하지만, 전과를 가졌다는 이유로 그녀는 동생의 딸이자 13살, 사춘기에 접어든 조카 로키(이자벨 드로이 올슨)를 법적으로 보호할 권리조차 없어 백인인 아버지에게 뺏긴다. 그러나 원주민으로서 정체성, 존엄, 문화적 유산을 위한 연대를 위해 잭스는 로키를 되찾으려 한다.

다시 강조하지만 이 영화는 범죄 스릴러물이다. 잭스는 사라진 언니를 찾으러 분투하고, 한편으로 로키를 빼내 와 로드무비를 감행한다. 백인과 원주민, 성 소수자, 성노동자 등 작은 원주민 보호구역 안에는 우리가 가늠하지 못했지만, 역사적으로 끊임없이 반복되어 온 셀 수 없이 많은 차별과 편견이 존재하고 있다. 이 영화의 ‘실종’과 ‘살인’, 사라진 여성과 도주하는 여성들은 그 악순환의 역사로부터 지금 자신의 존재를 외치고 있다. 마치 이모와 조카가 벌이는 여성 주도 버디물의 상징인 <델마와 루이스>(1991)를 상상해도 나쁘지 않다. <팬시 댄스>는 아마도 올해 당신이 보게 될 가장 마음 아프지만 따뜻하고 인간미가 넘치는, 그래서 매우 중요한 범죄 스릴러 장르물로 당신에게 틀림없이 다가갈 영화다.

애플TV+ 오리지널 영화로 6월 28일 공개를 앞두고, 영화를 연출한 에리카 트렘블레이 감독과 잭스를 연기한 주연 배우 릴리 글래드스톤을 만나 인터뷰를 가졌다. 감독 배우 모두 아메리카 원주민 출신으로 그들이 가진 문제의식이야말로 이 영화의 작지만 힘이 센 목소리가 된다. 영화를 통해 전달하고자 하는 두 사람의 진심의 메시지가 가득한 인터뷰를 놓치지 않길 바란다.

 


릴리 글래드스톤
릴리 글래드스톤

 

좋은 배우 한 명의 등장은 무수한 서사, 장르를 만들 수 있는 효과적인 창구가 될 수 있다. 최근 이 이론에 딱 맞는 배우가 영화사에 등장했다. 바로 릴리 글래드스톤이다. 아메리칸 원주민 출신으로 그는 그간 차별과 편견에 가려진 원주민의 모습이, 정체성이, 존엄이 어떤 것인지 물적, 정신적, 심리적인 표현 방법으로 연기해 내고 있다. 아메리칸 원주민 출신의 배우 릴리는 켈리 라이트가 감독의 <어떤 여자들>(Certain Women, 2016), <퍼스트 카우>(2019)에서 보여 준 범상치 않은 연기로 주목받은 이후 그는 지금 많은 감독들의 창작을 가속화하는 엔진 역할을 하고 있다. 특히 마틴 스코세이지 감독의 <플라워 킬링 문>(2023)에서 1920년대 백인에게 착취 당한 오세이시족 여성의 비극적인 삶을 면밀하게 표현해 골든 글로브 여우주연상, 오스카 여우주연상 후보에 노미네이트되며 배우로서 자신의 영향력을 굳건히 하고 있다.

 

<팬시 댄스>는 12분짜리 단편 <작은 부족장>(Litte Chief, 2020)으로 함께 한 에리카 트렘블레이 감독과 함께 한 또 하나의 협업이다. 마치 <플라워 킬링 문>에서 존엄을 잃지 않고 꿋꿋이 살아온 오세이시족 몰리의 다음 세대 여성 같은 모습으로 카유가 부족의 자존심을 지키며 범죄 스릴러 장르를 이끌어 가는 이 배우의 강력한 포스는, 말 그대로 이 영화의 서사와 장르를 흐트러짐 없이 만들어 나간다. 영화 속에서 사라져 가는 부족 언어인 카유가어로 연기를 한 그녀는 인터뷰에서도 한국어 ‘안녕’이라는 말을 외워 와 한국의 독자들에게 인사를 건네는 세심한 배려를 잊지 않았다. 짧은 인터뷰 시간에도 “좋은 질문들이 많다”며 시간을 넘기고도 한 질문이라도 놓치지 않으려 애쓰며 성실히 답변을 해 준 릴리와의 대화를 통해, 이 영화가 가진 의미를 되짚어 본다.

 


〈팬시 댄스〉
〈팬시 댄스〉

 

<팬시 댄스>는 규모가 작은 영화라 상영 기회를 얻기가 여간 쉽지 않았다고 들었어요. 그 가운데 당신이 인터뷰 때 직접 나서서 상영의 기회가 주어져야 한다고 어필했는데요. 정말 그 말에 힘입어 이렇게, 자국뿐만 아니라, 이렇게 애플TV+를 통해서 전 세계 시청자들과 만날 수 있게 되었어요! 마틴 스코세이지와 함께 한 <플라워 킬링 문>으로 원주민 최초로 골든 글로브 여우주연상 수상, 오스카 여우주연상 후보로 오르며 발언에 영향력이 더해진 게 아닐까 싶은데요. 스스로는 그 파워를 어느 정도 실감하나요? 오스카 후보 지명 이후 배우로서 어떤 변화를 느끼시나요?

아시다시피, <팬시 댄스>가 애플TV+에서 방영되는 건 오스카 후보 지명 이후에 발표됐지만, 이미 그전에 방영하기로 결정이 된 상황이었어요. 우리 팀 모두가 일 년 내내 정말 열심히 이 프로젝트가 공개될 수 있도록 추진해 왔어요. 가능한 한 할 수 있는 걸 다 시도해 본 거죠. 그렇게 이 영화를 관객들과 연결할 수 있는 기회를 얻기 위해서 열심히 달려왔던 것 같아요. 제 영향력이라면, 관객들이 <팬시 댄스>의 캐릭터와 연결되고 공감하는 데까지 전작 <플라워 킬링 문>에서 제가 연기한 실존했던 오세이시족 여성 몰리 카일리의 묘사가 이 영화까지 영향을 이어왔다고 생각해요. 1920년대를 살았던 원주민 몰리와 지금 현재 <팬시 댄스>의 아메리칸 원주민 캐릭터인 잭스와 연결하고 그렇게 원주민 여성들, 그들 가족들의 삶에 대해 더 많이 이야기하고, 보고 싶어 할 수 있는 공간을 열었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저는 <팬시 댄스>가 <플라워 킬링 문> 이전에 이미 공개된 것 같다는 느낌까지 듭니다. 두 작품을 모두 본 분들이 이 두 작품이 얼마나 잘 어울리는지 이야기하는 걸 많이 들었어요. 두 작품이 연달아 선보이면서 일어나는 파급효과라고 생각해요. 타이밍이 딱 맞았다 싶고, 정말 멋진 일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그래서 오스카 후보 지명의 영향력을 생각해 보면, 그리고 제가 애착을 가지고 있는 부분에 대해서, 사람들의 장벽을 허물고 인식을 돌파하며 더 나아갈 수 있게 하는 힘, 앞으로 더 나아갈 수 있게 하는 힘은 분명 영화의 성공 덕분이라고 생각합니다.

 

<팬시 댄스>의 촬영 기간이 <플라워 킬링 문>을 촬영하는 기간, 잠깐의 휴지기에 이뤄진 걸로 알고 있어요. 연출을 한 에리카 트램블레이 감독과는 선댄스영화제에서 주목받은 단편 <작은 부족장> 작업부터 함께 해왔는데요. 두 분의 신뢰가 있었기에 가능한 작업인 것 같습니다. 이 작품에 특히 매료된 이유는 무엇이었나요.

단편을 함께 하고서는 반드시 에리카와 다시 일할 생각이었어요. 이 작품에 이미 관심이 있어서 제안이 오기도 전에 이 프로젝트에 대해서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감독님도 대본이 완성되는 데까지 시간이 걸리는데, 영화의 배경인 오클라호마에서 함께 촬영할 수 있을지 의견을 물어왔고, 당연히 할 수 있다고 답변했죠. 그 당시는 초안이라, 2년 동안 이 작품이 어떻게 발전할지 기대하면서 기다리고 있었어요. 대본을 읽기도 전에 이미 환상적일 것이라는 것을 알았습니다. 저는 에리카가 만드는 것이 무엇이든지 간에 환상적일 것이라는 믿음이 있어요. <팬시 댄스>는 제가 연기할 캐릭터에만 집중하지 않고, 이야기 자체와 사랑에 빠진 그런 경험이었어요. 에리카는 정말 저에게 맞는 대본을 썼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리고 이 영화가 세상 밖으로 엄청난 영향을 줄 수 있는 작품이라는 것에 감동받았어요. 참여할 수 있어서 너무 행복합니다.

영화의 영향력, 의미만을 강조하는 대신, <팬시 댄스>는 흥미진진한 스토리 전개와 캐릭터의 매력이 상당한 영화라 보는 이들에게 흡입력 있게 다가가는 작품인데요. 특히 당신이 연기한 원주민 여성 잭스의 역할이 큽니다. 잭시는 범죄자이자 어린 조카가 물건을 훔치는 걸 장려하기도 하는, 세간의 시선으로 보면 그런데 한편으로는 망가진 세상에 맞서, 로키를 이용하려는 의도가 없는 로키의 진정한 수호자기도 합니다. 매우 복잡다단한 면모를 가진 캐릭터입니다. 잭시가 가진 이런 모순적인 지점에 대해서 어떻게 해석하고 연기하셨나요.

저는 잭스가 한 사람 안에 존재하는 다양한 진실을 보여주는 훌륭한 예라고 생각했습니다. 내 인생에서 내가 가장 존경하고 존경하는 사람들은 자신의 삶에서 주어진 상황에 접근해 반응하고, 그러다가 어느 지점에 도달하는 사람들입니다. 저의 가족 중에는 많은 사람들이 있는데, 그들은 성인이 되어 조카나 자녀, 어린이들 즉 다음 세대가 우리의 삶의 방식을 배우고 원주민으로서의 자신과 연결되도록 하는 책임이 자신에게 있다는 것을 깨닫는 시점에 도달합니다. 나이가 들수록, 시간이 빨리 흐르면서 자신이 성장했다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저 역시 너무나 많은 원주민들이 파란만장한 과거를 가지게 되고, 변화하는 것을 보아왔습니다. 이런 바탕 위에서 잭스를 보면, 그녀가 저지른 범죄는 모두 필요에 의해서 발생한 것입니다. 원주민 보호구역은 경제적으로 침체된 곳이에요. 그녀는 어머니가 돌아가시고 아버지가 떠난 후 여동생과 계속 살아갈 생활을 마련하기 위해 기술을 배우고 자신을 개발했습니다. 영화를 보면 알겠지만, 잭스는 이제 직진으로 삶의 방향을 걸어가려 하고, 자신의 삶을 깨끗하게 하려고 한다는 걸 알 겁니다. 그런데도 이제 다시 실종된 언니에 관한 정보를 찾기 위해 어쩔 수 없이 ‘짐승의 뱃속’(범죄의 소굴)으로 다시 들어가야 하는 걸 꺼려 하고 있죠. 저는 잭스가 이렇게 모순적이고 불완전한 캐릭터라는 점이 마음에 들었습니다. 왜냐하면 저는 이런 이야기에서 흔히 보여지는, 전형적인 소수자의 모델 같은 역할을 하고 싶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런 식으로 잭스는 함께 살아가는 인간에 대한 동정심을 불러일으키는 캐릭터가 아니라는 거죠. 이런 바탕 위에서 잭스가 조카인 로키에게 그 어떤 어른도 해주지 않는 것, 즉 그녀의 가족, 언어, 춤, 공동체, 땅, 그리고 어떻게 어린 여성으로서 이 땅에서 살아갈 수 있는지 연결해 주는 역할을 제공해 주는 모습이 너무 좋았습니다. 잭스 본인이 보호구역에서 어떻게 인간적으로 생존할 수 있는지 다양한 경험을 통해 살아남았기 때문에 어린 조카에게도 이런 가르침을 줄 수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팬시 댄스〉
〈팬시 댄스〉

 

잭스와 로키뿐만 아니라 실종된 여동생 타위를 통해서 원주민 부족, 그중에서도 여성으로 살아가는 것이 가지는 불합리함, 차별이 무엇인지 이 영화는 극명하게 보여주는데요. 이 영화를 보면서 분노하게 만드는 지점은, 이 여성의 실종이 백인 어부의 사라진 도난당한 트럭을 찾는 일 보다 순위가 밀린다는 점일 것입니다. 주류사회에서 ‘클럽에서 일하는 원주민 여성’의 가치를 보여주는 사건인데요. 영화가 애써 보여주려고 하는 것도 이렇게 사회에서 가려지고 사라진 여성들에 대한 이야기가 아닐까 싶은데요.

그 지점이야말로 정말 많은 원주민 공동체가 직면하고 있는 현실이에요. 실종되거나 살해된 원주민과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거나, 모르는 원주민을 찾는 것은 정말 어려울 것입니다. 잭스가 동생을 찾기 위해 관할권을 통과하려고 할 때 직면하는 장애물은 자신을 도울 수 있는 사람과 대화하기 위한 노력이자, 올바르게 정립된 법적 구조를 찾으려고 노력하는 것입니다. 영화를 보면 원주민들이 우리 자신을 보호하는 것이 왜 그렇게 어려운지 알게 될 겁니다. 잭슨만큼 그녀의 언니 타위 캐릭터가 가지는 의미도 큰데요. 그녀 역시 가족을 부양하려 노력해 왔습니다. 그런데 그녀의 직업은 클럽에서 일하는 성노동자입니다. 가족을 위해 돈을 번다는 생각에 실종 전에는 마약을 판매하는 나쁜 일에도 가담하죠. 아시다시피 사람들은, 사회는 스스로를 위험한 상황에 처하게 하는 사람들에게 연민을 베풀지 않습니다. 그럼에도 실종된 타위를 찾을 가치가 있습니다. 그녀는 조사를 받을 자격이 있어요. 그런데도 그런 법적 보호를 받지 못합니다. 그것이야말로 이 나라의 원주민들에게 불균형적인 차별입니다, 유럽계 미국인과, 백인 미국 소녀가 실종되면 전국적으로 뉴스가 나가고, 몇 달 동안 뉴스 사이클을 지배하는 것과는 정말 대조적인 일이죠. 몇 달이 지나도 원주민 원주민 실종 및 살해, 실종 원주민 여성에 대한 데이터베이스는 방치된 채 쌓여 있습니다. 워싱턴 주에서 40여 건, 알래스카에서 60여 건이 발생했습니다. 지속적으로 지금도 이 지역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입니다. 그러나 해결이 되고 있지 않죠.

 

이야기를 전달하는 방법도 중요한데요. 영화 속 캐릭터들이 실제 원주민 언어인 카유가 언어를 사용하며 자신들의 이야기를 하고 있는데요. 카유가 언어를 사용하는 것의 중요성에 대해서 말씀 부탁드립니다.

카유가어의 사용자는 20명 미만만 남아 있습니다. 그래서 영화에서 이 언어를 사용하는 것은 문화 활성화의 한 행위입니다. 매우 혁명적인 일이지요. 영화는 로키에게 이 언어를 선물한 가족이 얼마나 소중한지 보여줍니다. 실제로 영화의 배경인 오클라호마에는 카유가어를 유창하게 말하는 사람이 없습니다. 세네카 카유가어의 유창한 사용자는 여섯 원주민 부족(Six Nations)에 분포되어 있습니다. 캐나다에서 원주민은 여러 부족으로 분열되었는데, 절반은 오클라호마로 옮겨졌습니다. 이렇게 역사적으로 사라져 가는 언어를 이 영화에서 사용하는 것, 특히 현대적인 환경에 넣어 사용하는 것은, 언어를 배우고 활성화하는 어린이들이 롤모델을 삼을 수 있게 하고, 이 언어가 현대적인 환경에서 살아 있음을 볼 수 있는 매우 중요한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이화정 씨네플레이 객원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