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의 아내가 죽었다.
데이비스(제이크 질렌할)는 출근길에 교통사고를 당해 아내를 잃었다. 너무 갑작스럽게 당한 일이라 제대로 슬퍼할 겨를도 없었다. 그는 사고 당일 병원에서 고통보다 허기를 먼저 느꼈을 정도다. 이상하다. 아내가 죽었는데도 슬프지 않은 자신의 모습이 너무 낯설게 느껴진다. 장례까지 치르고 나니, 문득 아내가 죽기 전에 몇날 며칠을 고쳐달라 통사정했던 고장난 냉장고가 눈에 들어왔다. 아내가 죽기 직전에도 그 냉장고 빨리 고쳐달란 이야기를 나누던 중이었다. 그날 밤, 그는 무슨 생각에서인지 냉장고를 고치려고 달려 들었다가 아예 냉장고를 박살내버리고 만다. 그리고 그는 자기 사무실로 돌아가 그가 열심히 돈을 벌기 위해 사용했던 온갖 집기를 부숴버린다.

나는 무엇으로 이뤄졌을까.
아니, 조금 더 정확하게 이야기하자면 데이비스는 그것들을 그저 부숴버린 것이 아니라 하나 하나 분해해버린다. 과연 컴퓨터는, 전화기는 무엇으로 이뤄졌을까. 그는 자신이 평생 몸담았던 업무인 '투자'에 대해서도 의문을 제기한다. 신흥시장, 사회기반시설, 발전소, 텔레콤 등등 어떠한 회사든지 저렴하게 구매해서 비싸게 팔아 차익을 챙기는 것이 투자인데, 결국 그 투자 차익에는 아무런 실체가 없기 때문이다. 전화와 클릭 몇 번으로 오가는 숫자는 눈에 보이는 실체가 없다. 그럼에도 그는 끊임없이 돈을 벌어왔던 것이다. 실체없음에 대한 데이비스의 의문은 주변 사람들에게는 이상한 행동으로 비춰진다. 그의 행동은 관객들이 보기에도 낯설다. 아내의 죽음을 둘러싸고 데이비스가 품은 의문은 점점 이상한 방향으로 흘러가게 된다.

구멍난 가슴에.
말 그대로 그의 가슴에 구멍이 났단다. 도무지 슬퍼하고 싶어도 슬퍼할 수 없는, 그러니까 아무런 감각이 느껴지지 않던 데이비스는 결국 병원을 찾는다. 그런데 병원 진단이 이상하다. 심장 한 쪽을 나방이 파먹었다는 의사의 소견. 이것은 뭔가. 갑작스런 상실감에 이성적 사고를 제어할 수 없었던 데이비스가 만들어낸 환상 장면일까. 데이비스는 이후 점점 더 파괴에 몰두하게 된다. 물리적인 파괴말이다. 사소한 가전제품 분해에서 시작된 그의 파괴본능은 멀쩡한 공사현장을 찾아가 집을 부수는 연습을 하더니, 급기야 인터넷에서 불도저를 주문해 자기 집을 산산조각내버리기까지 한다. "모든 것이 갑자기 은유가 되어버렸다"며 알 수 없는 말을 중얼거리는 그의 정신과 일상은 그 자체로도 완전히 해체되어버린 셈이다. 장인어른이 그를 내치는 것도 시간문제다.

뭔가를 고치려면
전부 분해한 다음,
중요한 게 뭔지 알아내야 돼

살던 집마저 깡그리 부숴버린 데이비스의 행동은 아내를 잃은 자신의 슬픔을 표출하기 위한 수단이었을까. 그러니까, 아내를 사랑하지 않는다고 느꼈던 자신에 대한 분노 때문일까. 그는 왜 무엇 때문에 그렇게 열심히 살아왔던 것일까. 자기 자신 뿐만 아니라 주변 사람들 모두가 가식적으로 살아왔던 것은 아닐까. 그가 느끼는 감정의 실체는 눈에 보이는 것이 전부가 아닌 삶을 살고 있다는 걸 알게 됐을 때의 배신감일까.
데이비스의 그 정체를 알 수 없는 감정 표출은 영화 내내 관객들을 불안하게 만드는 요소다. 이야기가, 인물의 감정이 어떤 방향으로 흘러갈지 알 수 없는 불안감. 그런데 이상하게 데이비스의 표정은 점점 평온해진다. 그 자신이 "완전하게 솔직한" 상태가 되어갈수록 영화의 분위기는 점점 불안해진다.

”삶이 얼마나 특별하고
소중하고 아름다울 수 있는지,
이 시나리오는
그런 인상을 줬다”

<데몰리션>에서 가장 주목할 것은 데이비스가 새로운 계기를 통해서 해방감을 느끼게 되는 순간이다. 그것은 어떤 장소가 매개되기도 하고 사람에게서 영향을 주고받기도 한다. 특히 고객센터 직원 캐런(나오미 왓츠)과 그의 아들 크리스(유다 르위스)가 데이비스와 나누는 관계는 특별한 울림을 선사한다. 장 마크 발레 감독은 <데몰리션>의 이야기가 전해주는 감동을 이렇게 말한다. ”삶이 얼마나 특별하고 소중하고 아름다울 수 있는지, 이 시나리오는 그런 인상을 줬다”고. 발레 감독은 자신이 느낀 바를 배우들도 그대로 체험할 수 있게 도와줬다. 어떤 식으로? 제이크 질렌할에게 영화에 등장하는 불도저 운전이나 철거작업을 모두 직접하게 했다. 잘못하면 안전에 이상이 있을지도 모르는 시도였지만 배우도 연기를 위해 과감하게 도전했다고 전한다. 심지어 자세한 스토리보드가 없는 채로 자연스러운 연기를 요구하기도 했다.


다시 하긴 조금 늦은 걸까요?

<데몰리션>을 보고나면 이 영화가 전해주고자 하는 메시지 자체를 배우와 감독이 현장에서 직접 구현했다는 것을 느끼게 된다. 제이크 질렌할은 “우리 모두가 억눌려왔던 자유를 느끼게 될 것”이라고 말한다. 데이비스에게 일종의 해방감을 선사하는 파괴는 누구나 살면서 느껴보는 감정이지만, 누구도 선뜻 나서서 행할 수 없는 것이기도 하다. 하지만 그것은 우리의 경험에서 비춰보건대, 해야만 하는 것이기도 하다. <데몰리션>이 보여주는 파괴와 복구는 다시 살아내고자 하는 삶의 의지에 대한 '은유'인 것이다.

씨네플레이 에디터 가로등거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