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인을 대상으로 한 '어른을 위한 깊이있는 만화'는 1980년대 말부터 등장했고, 1990년대 절정을 맞았다. DC 코믹스가 만든 성인 대상 만화 임프린트 <버티고>(Vertigo) <샌드맨> 대성공을 기점으로 수십 종의 시리즈를 선보였다. <21 불렛츠> 같은 시리즈는 인기 소재인 범죄, 갱스터, 음모론 등을 적극적으로 활용하였다.  나온 중단편 단권짜리 그래픽 노블 주목할 만한 책이 있다. <폭력의 역사> <로드 퍼디션>이다. 갱스터를 소재로  1997~1998년 경 출시되었고 두 편 모두 성공적으로 영화화되었다.

<폭력의 역사> 2005 캐나다의 거장 데이빗 크로넨버그 감독에 의해 영화화되었는데, 개봉 당시 평론가들에게 만장일치에 가까운 찬양을 받았고 현재까지도 네오 누아르 현대 고전으로 평가받고 있다. 주연을 맡은 비고 모텐슨은 영화를 "완벽한 누아르" 칭송했다. 많은 매체들은 비슷한 시기 미국에 소개된 박찬욱 감독의 <올드보이>와도 비교하며 네오 누아르 새로운 전성기를 작품  하나로 <폭력의 역사>를 소개하였다.

영화 개봉 이후 원작이 있다는 사실이 널리 알려지게 되었는데, 앞서 주목할 만한 책이라 소개하긴 했지만 원작 그래픽 노블 <폭력의 역사> 대중적으로 많이 알려진 책은 아니었다. 정확히 말하자면 만화책을 주기적으로 읽는 사람이 아니라면 제목도 들어보지 못했을 작품이. DC 코믹스의 산하 레이블 '파라독스 프레스'에서 출간되었기 때문에 널리 배포되지 않았고, 영화 개봉  원작이 알려지면서 재판되기 전까지는 한동안 절판 상태였던 책이기 때문이다.

원작 자체는 영화의 서사적 깊이와 구성의 높은 수준에 전혀 미치지 못한다. 영화를 먼저 보고 여운이 남아 그래픽 노블을 찾은 사람이라면 크게 실망할 수도 있다. 필자도 영화를 먼저 경우인데, 원작을 읽고 나서 이런 원작을 훌륭한 영화로 만들어 제작자와 각본가, 그리고 감독의 역량에 매우 감탄했다.

<폭력의 역사> 원작은 <로드 퍼디션> 원작과 비교했을 때도 깊이가 많이 떨어진다. 차라리 10 판타지물에 가깝다. 평온하던 가정의 가장이 폭력 사건에 휘말리면서 그의 어두운 과거가 밝혀진다는 설정은 동일하지만, 영화의 백미 꼽히는 후반부, 리치(윌리엄 허트)와 대립 장면 등 원작에 전혀 없는 내용이다. 원작은 건조하고 현실감 있던 초반의 분위기와는 달리 마블 코믹스의 <퍼니셔> 하드보일드 히어로물에 나올 만한 장면들을 보여주면서 용두사미로 아쉽게 끝나고 만다. 크로넨버그 감독은 실제로 영화 제작 전에 원작을 읽지 않았고, 각색된 각본만으로 작업했다고 한다. 속설로는 영화가 완성될 까지 원작의 존재를 몰랐다는 얘기도 있다.

데이비드 크로넨버그 감독은 <폭력의 역사> 원작 만화의 존재를 정말 몰랐을까?

지금은 각종 슈퍼히어로 영화의 전 세계적 성공으로 인해 '미국 만화'에 관심없던 사람들도 한 두 편은 본 적이 있을 정도로 주류 문화에 깊게 파고 들어왔지만, 1990년대 말부터 2000년대 초까지만 해도 '만화'는 미국 본토에서도 관 있는 부류만 읽 몹시 한정적인 독자층을 위한 문화상품이었다. 팔리는 만화의 99%는 슈퍼히어로 만화라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였다. 슈퍼히어로 이야기가 아니면 가판대에 오르지도 못하거나 그마저도 한 구석 '기타 만화' 섹션에 진열된 운명이었던 것이다.

판타지적 요소가 거의 없는 누아르 장르, 건조한 느낌의 <폭력의 역사>, <로드 퍼디션>, <프롬 > 같은 작품들은 대담하고 신선한 시도였다. 이후 누아르 만화의 계보는 꾸준히 이어져 앞서 언급한 <21 불렛츠같은 시리즈도 생겨났, 국내 출간된 <파커> 시리즈도 있으며, 출판물 아니고 TV 만화 시리즈이긴 하지만 <아쳐> 등의 작품도 같은 누아르 계보로  있게 됐다.

<폭력의 역사>의 작가 와그너는 영국 작가로 영국 만화 잡지 <2000 A.D.>에서 <저지 드레드> 만든 것으로 유명하다. 그림을 그린 빈스 로크는 국내 데스메탈 팬들에게도 익숙할 있는데, 데스메탈 밴드 '카니발 콥스'(Cannibal Corpse) 끔찍하고 자극적인 앨범 커버 아트를 모두 그린 것으로도 유명하다.

폭력의 역사

감독 데이비드 크로넨버그

출연 비고 모텐슨, 마리아 벨로, 윌리엄 허트, 애쉬튼 홈즈

개봉 2005 미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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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원서 / 그래픽노블 번역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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