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은 각종 슈퍼히어로 영화의 전 세계적 성공으로 인해 '미국 만화'에 관심없던 사람들도 한 두 편은 본 적이 있을 정도로 주류 문화에 깊게 파고 들어왔지만, 1990년대 말부터 2000년대 초까지만 해도 '만화'는 미국 본토에서도 관심 있는 부류만 읽는 몹시 한정적인 독자층을 위한 문화상품이었다. 팔리는 만화의 99%는 슈퍼히어로 만화라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였다. 슈퍼히어로 이야기가 아니면 가판대에 오르지도 못하거나 그마저도 한 구석 '기타 만화' 섹션에 진열된 운명이었던 것이다.
판타지적 요소가 거의 없는 누아르 장르, 건조한 느낌의 <폭력의 역사>, <로드 투 퍼디션>, <프롬 헬> 같은 작품들은 대담하고 신선한 시도였다. 이후 누아르 만화의 계보는 꾸준히 이어져 앞서 언급한 <21 불렛츠> 같은 시리즈도 생겨났고, 국내 출간된 <파커> 시리즈도 있으며, 출판물은 아니고 TV 만화 시리즈이긴 하지만 <아쳐> 등의 작품도 같은 누아르 계보로 볼 수 있게 됐다.
<폭력의 역사>의 작가 존 와그너는 영국 작가로 영국 만화 잡지 <2000 A.D.>에서 <저지 드레드>를 만든 것으로 유명하다. 그림을 그린 빈스 로크는 국내 데스메탈 팬들에게도 익숙할 수 있는데, 데스메탈 밴드 '카니발 콥스'(Cannibal Corpse)의 끔찍하고 자극적인 앨범 커버 아트를 모두 그린 것으로도 유명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