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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의 남자〉가 진짜 천만 영화라고 불리는 이유

성찬얼기자
​왓챠 〈왕의 남자〉 페이지
​왓챠 〈왕의 남자〉 페이지

 

많은 이들이 아끼는 '소듕한' OTT 플랫폼 왓챠에 또 많은 사람들이 아끼는 영화 한 편이 들어왔다. 2005년 영화 <왕의 남자>다. 김태웅 작가의 연극 「이」를 영화로 옮긴 <왕의 남자>는 한국영화사상 세 번째 천만 관객 돌파를 성공한 영화다. <왕의 남자> 왓챠 입점 기념으로 이 영화가 왜 그리 많은 사랑을 받았는지, 그리고 거의 2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그 많은 천만 돌파 영화 중 이렇게 귀하게 평가받는 이유를 적어본다.

​〈왕의 남자〉 포스터
​〈왕의 남자〉 포스터

 


원작을 새롭게

아슬아슬 줄타기로 상징되는 드라마

한국영화사에서 <왕의 남자> 천만 관객 돌파를 하나의 점으로 찍는다면, 그 점을 경유하는 해석은 다양할 것이다. 먼저 천만 관객 시대를 연 영화가 있고, 멀티플렉스의 등장도 있고, 2000년대 한국영화계의 실험정신까지 꺼내야 할지도 모른다. 그러니 먼저 다른 가지들을 쳐내고, <왕의 남자>라는 영화에만 집중한다면 이 영화의 힘은 무엇으로 볼 수 있을까. 아마도 정확하게 딱 떨어지는 단어로 찾을 수 없는 특유의 감성 때문일 것이다.

​〈왕의 남자〉
​〈왕의 남자〉

 

<왕의 남자>는 두 광대가 연산군의 궁으로 들어오면서 일어나는 일을 그린다. 평생을 함께 한 광대 장생과 공길. 연산군이 공길을 유독 아끼기 시작하자, 연산군의 후궁 장녹수까지 공길을 질투하기 시작하고 네 사람의 관계는 파멸을 불러온다. 연극 「이」를 바탕으로 작업한 <왕의 남자>는 「이」의 말맛과 날카로운 풍자를 덜어내고 그 자리에 각 인물, 특히 장생-공길-연산군 세 인물의 감정을 더했다.

특히 이 부분에서 가장 빛나는 건 절묘한 감정 처리. <왕의 남자>는 퀴어를 그리고 있지만, 직접적인 표현이나 설명 대신 그것을 읽어낼 관객들의 몫을 남겨두었다. 영화는 단 한 번의 키스 장면을 제외하면 직접적인 신체 표현을 포함한 퀴어 장면이 없는데, 공백으로 남겨진 각 인물의 진심이 오히려 상상력과 몰입을 자극해 관객이 인물을 오래 기억하게 만드는 요소가 됐다.

​〈왕의 남자〉
​〈왕의 남자〉
​〈왕의 남자〉  줄타기라는 모티브가 장생과 공길의 관계를 관객에게 보여준다.
​〈왕의 남자〉 줄타기라는 모티브가 장생과 공길의 관계를 관객에게 보여준다.

 

또 <왕의 남자>에서 적절하게 각색한 부분은 공길의 캐릭터성과 줄타기라는 요소이다. 원작에서 권력을 잡고자 노력한 공길을 타인의 고충에 깊이 공감해 관계를 쉽게 등지지 못하는 성격으로 바꿔 연극이 아닌 영화에 알맞은 드라마의 강점을 살렸다. 또 연극에서의 마당극에 가까운 광대극 대신 줄타기를 장생-공길의 주요 모티브로 삼아 영화 전체를 관통하는 이미지로 시각화한 것 또한 <왕의 남자>의 장기 흥행에 영향을 미쳤다. 비단 영화의 여운뿐만 아니라 대중매체에서 패러디하기 좋은 지점이 돼 유행에 속도를 붙였고, <왕의 남자>라는 영화의 관심도를 높이는 결과로 이어졌다.


작은 영화의 힘

가장 적은 스크린의 천만 영화

​〈왕의 남자〉
​〈왕의 남자〉

 

​천만 관객 돌파는 기쁜 소식이지만, 따가운 눈총을 받기도 한다. 이른바 '밀어주기'로 기록을 세운 것이냐 아니냐 때문이다. 관이 여러 개 있는 멀티플렉스라고 하더라도 그 영화를 대부분의 시간대로 여러 관에서 상영하면, 관객으로선 선택의 여지 없이 해당 영화를 볼 수밖에 없다. 그렇게 관객을 몰아주는 일, 상영 스크린수를 대거 확보하는 방식으로 천만 관객을 돌파하다면 그건 그 영화엔 좋은 일일지라도 관객과 영화계에 이로운 일은 아닐 수밖에 없다. 다양성을 해치는 방식으로 성공한 것이니까.

그런 의미에서 <왕의 남자>는 그 많은 천만 영화 중에서도 순수 작품성으로 관객을 사로잡았다고 평가받는다. (앞으로 설명할 기록은 한국영화진흥위원회 통합전산망의 기록을 바탕으로 한다) 현재 기록된 <왕의 남자> 최대 스크린 수는 313개. 개봉 당시엔 207개에 불과했다. 스크린 점유율은 14.3%였다. 이전에 천만 관객을 돌파한 <실미도>나 <태극기 휘날리며>는 통합전산망 집계가 실시되기 전이라 비교가 불가능하므로, <왕의 남자> 다음으로 천만 영화에 오른 <괴물>과 비교를 해본다면, <괴물>은 513개/30.4%로 집계됐다. 그다음 천만 영화 <해운대>도 537개/20.6%이다. (비교 대상이 필요해 직후 천만 관객을 돌파한 두 영화를 골랐을 뿐, 흥행 자체를 폄하할 의도는 없음을 분명히 한다. 당시 두 영화의 대중의 기대를 그만큼 받는 영화였으며 흥행 추이 또한 분명했다) 확연히 적은 스크린 수로 <왕의 남자>는 당시만 해도 <실미도>나 <태극기 휘날리며>만이 성공한, 철옹성 같았던 천만 관객 돌파의 문을 연 것이다.

그래서 <왕의 남자>는 총 33편의 천만 관객 돌파 영화 중 '가장 건강한 천만 영화'라 볼 수 있다. 소재, 장르, 배경, 출연진 등 흥행만을 노리고 기획한 구석이 없음에도 영화 자체의 힘으로 천만 관객 돌파에 성공했기 때문. 이른바 '물량 공세' 없이, 지금처럼 관객몰이를 위한 굿즈 등이 없다시피 하던 시절에 좌석판매율 85%(2006년 1월 30일)를 달성하며 중소영화의 저변을 넓혔다.


공길, 육갑!

배우들의 발견과 앙상블

​〈왕의 남자〉 공길 역으로 스타가 된 이준기. 이후 그의 대표작이나 캐릭터는 남성적인 요소가 많아 비교하는 재미가 있다.
​〈왕의 남자〉 공길 역으로 스타가 된 이준기. 이후 그의 대표작이나 캐릭터는 남성적인 요소가 많아 비교하는 재미가 있다.

 

​앞선 내용들처럼 작품·환경의 지점에서 <왕의 남자>를 본다 하더라도, 결국 <왕의 남자> 열풍의 원인은 이쪽으로 귀결될 수밖에 없다. 바로 배우들이다. 먼저 이 영화의 얼굴, 공길을 연기한 이준기는 이준익 감독의 선구안을 대변한다. 약 2천 명의 후보 중 이준기를 끝까지 밀어붙인 사람은 이준익 감독이었고, 영화의 성공으로 그의 선택이 옳았음이 증명됐다. 이 영화 이후로도 수많은 명작 드라마를 배출한 이준기의 행보를 보면 이준익 감독은 스타 이준기와 배우 이준기를 모두 보았다고 할 수 있겠다. 지금에 돌아보면 이준기는 섬세하고 나긋나긋한 공길과는 달리 터프한 편이기에 그의 연기가 더욱 절묘하게 보인다.

(왼쪽부터) 팔복 역 이승훈, 육갑 역 유해진, 칠득 역 정석용​​ 〈왕의 남자〉
(왼쪽부터) 팔복 역 이승훈, 육갑 역 유해진, 칠득 역 정석용​​ 〈왕의 남자〉

 

그리고 이 영화의 값진 발견을 하나 더 뽑자면, 육갑-칠득-팔복 세 광대를 연기한 유해진-정석용-이승훈이 아닐까 싶다. 주역 사인방 다음으로 비중이 있으며, 케미스트리가 필요한 인물들을 세 배우는 완벽하게 연기했다. 이미 <공공의 적> 등에서 주목받은 유해진은 물론이고 연극을 주력으로 활동한 정석용과 이승훈의 조화는 영화를 더욱 풍부하게 채웠다. 특히 이제는 '국민아빠'라고 부를 만큼 다양한 작품에서 맹활약 중인 정석용이 영화계에 눈도장을 찍은 순간이라 할 수 있다.

어디까지나 발견에 초점을 맞춰 네 배우를 소개할 뿐, 감우성, 정진영, 강성연, 장항선 등 다른 배우들 역시 어마무시한연기를 보여준다. 감우성은 장생이 느꼈질 비통함을 명연기로 보여주며 영화의 마침표를 찍었고, 정진영은 폭군 연산군을 유년기에 매몰된 인간으로 그리는 데 성공했다. 장생-공길-연산군의 기묘한 애정관계를 많은 관객이 공감하며 가슴앓이한 건 각 배우들이 완벽하게 자기 역할을 해내며 완성한 앙상블 덕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