맨날 보는 사람 같은데도, 새로운 조합으로 만나면 색다른 경험이 될 때가 있다. <강철비>에 '이의성'과 '김경영'으로 출연한 김의성과 이경영이 그랬다. 북의 내부 반란과 선전 포고에 대통령 이의성은 선제공격을 고려하고 차기 대통령 김경영은 이에 반대한다. 김의성과 이경영은 연기로 이 두 인물의 딜레마를 설득한다. 두 배우를 보고 있자니 사뭇 궁금해졌다. '다작 배우'로 인정받은 두 사람은 얼마나 비슷하고, 또 다를까?

- 강철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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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독 양우석
출연 정우성, 곽도원
개봉 2017 한국
두 배우의 공통점?
연기를 쉬었던 공백기가 있다.
2015년 이경영 12편, 김의성 9편. 2016년 이경영 8편, 김의성 7편. 2017년 이경영 9편, 김의성 6편. 현재는 이처럼 바쁘게 다작 중인 배우들이지만 두 사람 모두 배우 활동을 쉬었던 공백기가 있었다.
김의성은 1996년 홍상수 감독의 <돼지가 우물에 빠진 날>을 작업한 후 “어떤 캐릭터도, 연기도 가짜 같았다”고 느껴 1999년 베트남으로 떠나 현지에서 드라마 제작 사업을 시작한다. 하지만 2010년 즈음 아버지의 건강 문제로 입국했고, 홍상수 감독의 권유에 2011년 <북촌방향>으로 복귀한다.
이경영은 불미스러운 사건으로 재판을 진행하면서 2002년 말부터 2004년까지 휴식기를 가졌다. 이후 재판의 결과에 승복해 형을 이행하고 2005년에 복귀했다. 방송 출연 불가라는 난점에도 2011년부터 본격적으로 활동해 영화계에서 다시 도약에 성공한다.

- 돼지가 우물에 빠진 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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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독 홍상수
출연 김의성, 박진성, 조은숙, 이응경
개봉 1996 대한민국

- 파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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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독 박찬옥
출연 이선균, 서우
개봉 2009 대한민국
천만 관객을 돌파한 출연작이 있다.
두 사람 모두 천만 관객 돌파 영화에 출연했다. 바로 <암살>. 이 영화에서 이경영은 친일반민족행위자 강인국 역으로, 김의성은 그의 집사로 출연했다. 영화가 흥행하면서 기회주의적인 두 캐릭터를 연기한 두 배우는 당연히(?) 욕도 많이 먹었다.
이후 두 번째 ‘천만 돌파’를 먼저 달성한 건 김의성. <부산행>에서 용석 역으로 역대급 민폐 악역을 소화하면서 제2의 전성기를 열었다. 안경을 벗고 연기를 펼친 덕에 안경 쓴 배우에게 안경이 얼마나 소중한 소품인지 몸소 보여줬다.
반면 이경영은 천만 영화가 하나지만 누적 관객 수 1억 명을 돌파한 세 번째 배우다. 오달수, 송강호, 유해진, 황정민까지 국내에 딱 다섯 명뿐인, 만만치 않은 기록을 보유했다.

- 암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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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독 최동훈
출연 전지현, 이정재, 하정우
개봉 2015 대한민국

- 부산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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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독 연상호
출연 공유, 정유미, 마동석, 김수안, 김의성, 최우식, 안소희
개봉 2016 대한민국
정치적 성향을 감추지 않는다.
두 배우를 좋아하는 관객들이라면 <강철비>에서 대립하는 두 대통령의 모습이 더 흥미진진했을 것이다. 김의성이나 이경영 모두 정치적인 작품 출연이나 발언을 결코 두려워하지 않는 배우이기 때문이다.
김의성은 <탐욕의 별>이나 <저수지 게임> 같은 권력을 파헤치는 다큐멘터리에 목소리 출연은 물론이고 <남영동 1985>나 <소수의견>에도 출연해 권력을 고발했다. 또 SNS를 통해 자신의 정치적 의견을 적극적으로 밝힌다. <1987>에서도 교도소에 수감된 재야운동가 이부영 역으로 출연한다.
김의성과 달리 이경영은 작품 선택으로 확실한 메시지를 전한다. 정지영 감독의 <남영동 1985>에서 국가가 가진 강압적 폭력에 일조하는 이가 되고, <26년>에선 폭력에 트라우마를 가진 피해자가 됐다. 또한 <내부자들>에선 노출(!)까지 감내하며 정경유착 인사들의 추잡한 행태를 보여주기도 했다.
참고로 두 사람 모두 닮은꼴 정치인이 있다. 김의성은 잘 알려졌다시피 우병우. 본인도 “이런 역은 그냥 카메라 앞에서 귤만 까먹어도 아카데미상 받을 수 있음”이라고 자신감(!)을 표했다. 박근혜-최순실 국정농단 사태가 화제일 때, 한 네티즌이 제시한 가상 캐스팅에서 이경영은 박지원으로 지명됐다.

- 남영동198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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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독 정지영
출연 박원상, 이경영
개봉 2012 대한민국

- 26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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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독 조근현
출연 진구, 한혜진, 임슬옹
개봉 2012 대한민국
그렇다면 다른 점은?
아웃사이더 vs. 운동권
이경영과 김의성은 대학 전공이나 연기 입문 등에서 차이가 있다. 이경영은 충남대 경상대학에 입학했지만 자퇴 후 한양대 연극영화과로 입학한다. 그렇게 어렵게 진학했지만 정작 자신은 “처음엔 배우 할 생각이 없었고 실존철학에 빠져 있었다. 회색이어서 운동권 친구들과 싸우기도 했다”고 언급할 정도로 연기와는 거리가 멀었다.
김의성은 서울대 경영학과를 졸업했다. 하지만 공부보다는 당시 운동권 활동에 매진했고, 수업보다 연극 무대에 더 열중해 연극배우 출신 영화배우 1세대로 거듭났다. 당시 함께 활동했던 배우가 정진영이며 권해효와도 절친한 사이가 됐다.
개파 vs. 고양이파
이경영은 예능프로그램 '개밥 주는 남자'에 출연했다. 활짝이와 피움이, 반려견 두 마리를 키우는 그는 이 프로그램에서 눈을 가린 채 발냄새만으로 자신의 반려견을 맞춰 ‘개사랑’의 끝을 보여줬다. 심지어 사과와 당근을 배합한 '애견 주스'를 직접 제조하기도 해 노련한 견주의 능력을 입증했다.
반면 김의성은 SNS로 여러 차례 반려묘 사진을 공개하고, 때때로 반려묘에 대한 질문도 답변해주는 등 '집사'의 모습을 보여줬다. 트위터 계정을 중지하기 직전에도 누군가에게 입양 권유를 받았는지 아기 고양이 사진을 업로드하기도 했고, 인스타그램에도 가끔씩 반려묘의 근황을 공개하고 있다.
흑막 그 자체 vs. 홍상수 페르소나
두 사람이 다작을 해도 각자 대표하는 이미지가 달라 서로 겹치지 않는 구석이 있다. <부산행>을 기점으로 김의성의 이미지가 조금씩 '악역'화되고 있지만, 그래도 서로를 대표하는 이미지라면 '흑막'과 '생활 연기'라고 할 수 있다.
배후에서 권력을 뒤흔드는 '흑막', '배후'의 이미지는 이경영이 가진 무기다. 그의 낮은 목소리나 백발은 <제보자>의 이장환 박사나 <모비딕>의 장선생, <암살>의 강인국 등 중후하면서도 속을 알 수 없는 인물로 둔갑시켰다. 굳이 흑막이 아니더라도 <부러진 화살>의 이태우나 <소수의견>의 박재호, <베를린>의 리학수처럼 강단 있는 인물로 그려지는 편이다.
김의성은 홍상수 감독의 작품 속 '생활 연기'를 고스란히 구현해낸다. 복귀작 <북촌방향>에선 '베트남에서 사업하다 온' 남자로 등장하고 <누구의 딸도 아닌 해원>, <자유의 언덕>에서도 기묘한 존재감으로 관객들을 사로잡았다. 최근 홍상수 감독과 함께 한 <당신자신과 당신의 것>에선 영수(김주혁)를 걱정하면서도 한심해하는 듯한 '친구' 김중행으로 출연했다.

- 제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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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독 임순례
출연 박해일, 유연석, 이경영
개봉 2014 대한민국

- 누구의 딸도 아닌 해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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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독 홍상수
출연 이선균, 정은채, 김의성
개봉 2012 대한민국
그외에도 흥미로운 알쓸신잡
서로가 언급한 장점
2015년 '시사iN'은 두 배우가 함께한 인터뷰를 진행한 바 있다. 해당 인터뷰에서 이경영은 김의성에 대해 "다른 사람이 절대 흉내낼 수 없는, 독특한 자기만의 색깔을 갖고 있다"는 장점을, 김의성은 이경영에 대해 "여러 가지 역할의 가능성을 다 열어놓고 있다"는 장점을 언급했다. 두 사람은 입을 모아 "작업 자체에 대한 순수한 열정이 있어서 감독들이 좋게 보는 것 같다"고 말했다.
연관검색어
마지막으로 두 사람의 연관 검색어를 소개해본다. 이경영은 다작의 본좌답게 ‘또경영’, ‘이경영 쿼터제’가 자주 등장한다. 최근 <신과함께-죄와 벌>로 ‘오관대왕’이 연관검색으로 나온다. 눈에 띄는 건 ‘이경영 리즈’. 사진 한 장으로 요약하겠다.
김의성은 최근 같이 출연한 조우진(<강철비>), 차광수·허정도(<W>)가 연관 검색어로 뜬다. ‘김의성 서울대’도 있다. 물론 가장 핫한 연관 검색어는 ‘김의성 마동석’. <부산행> 상영 당시 ‘1200만이 넘으면 뭔지 모르겠지만 마동석에게 명존세('명치 겁나 세게 치기'의 준말)를 해달라고 하겠다’고 발언했고, 최근 마동석의 <범죄도시> 300만 관객 돌파로 ‘명치 약하게 맞기’를 실천하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