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백합니다. 에디터는 어떤 운동이든 한 달 이상 꾸준히 해본 적이 없습니다. 출근 시간에 54분 지하철을 타기 위해 전속력으로 역을 향해 뛰거나, 신호가 유독 긴 회사 역 앞 사거리에서 초록불이 다하기 전에 질주하는 것을 하루의 운동으로 삼는 운동 루저죠. 숨이 턱턱 차고 온몸이 땀에 젖는, 격한 운동을 매우 싫어하는 편이기도 합니다. 자연스레 근력과 면역력이 사라지고, 온갖 바이러스들이 침투하기 시작하더군요. 정상적인 몸으로 살기 위해! 어떤 운동이라도 '세 달 이상' 지속해보는 걸 올해의 목표 리스트에 넣었습니다. 언젠가 에디터에게 운동 뽐뿌 환상을 전했던 영화들을 소개합니다.


슬로우 모션이 이렇게 멋있을 일인가요? 누가 뭐래도 운동 뽐뿌 영화 1위는 <원더 우먼>입니다. 별다른 공격 없이 한 손으로 적을 가뿐히 제압하는 건 물론, 다수의 적과 붙었을 땐 리듬감 있는 액션까지 선보이는 이 히어로! 코스튬을 입었을 때 더욱 빛나는 탄탄한 근육들은 에디터의 마음을 사로잡기에 충분했습니다. 정의감 불타는 따스한 마음까지 지녔으니 본받고 싶은 영화 속 인물로 손색이 없죠. <원더 우먼>을 보고 나서는 길, 동네의 킥복싱 체육관을 검색했던 기억이 나네요. 검색만 했습니다. 일단 다이애나처럼 되려면 타고난 '갓킬러' DNA에 데미스키라 왕국의 고된 훈련까지 소화해야 할 게 분명합니다. 에디터가 그녀였다면 10살이 되었을 무렵 격한 훈련이 적성에 안 맞는다는 걸 깨닫고 먼저 독립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렇게 홀로 떠나 도착한 런던에서 스티브 트레버 대위를 만나고... 이렇게 킥복싱에 대한 꿈은 멀어져 가고....

원더 우먼

감독 패티 젠킨스

출연 갤 가돗, 크리스 파인

개봉 2017 미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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흠. 역시나 가장 쉽게 시작할 수 있는 운동은 달리기죠. 에디터는 최근 들어 부쩍 화가 늘었습니다. 마음이 답답해 숨이 턱 막힐 지경이 되면 무작정 달리고 싶은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터질 듯한 호흡을 가다듬으며 잡다한 머릿속을 싹 비울 수 있을 테니까요. <용순>을 보며 그런 생각을 했습니다. 화가 많은 소녀 용순(이수경)은 제 마음을 달래는 방법으로 달리기를 선택합니다. 땡볕 아래 운동장에서 땀을 뻘뻘 흘리며 뛰던 용순. 그 모습에 왠지 모를 위로를 받았던 기억이 떠오르네요. 아, '달리기' 하면 <옥자>의 미자(안서현)도 빼놓을 수 없습니다. 10년간 함께 자란 친구 옥자를 구하기 위해 어떤 장소든 가리지 않고 혼신의 힘을 다해 달리던 미자. 최근 영화 속 어떤 히어로보다 강력하고 파워풀했음은 물론이죠.

용순

감독 신준

출연 이수경, 최덕문

개봉 2017 대한민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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옥자

감독 봉준호

출연 틸다 스윈튼, 폴 다노, 안서현

개봉 2017 대한민국, 미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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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에 에디터가 한 달 하고 그만둔 운동 중 하나, 바로 수영입니다. 몸 쓰는 거라면 질색팔색하는 에디터가 유일하게 좋아하는 운동이죠. 팔과 다리를 휘저을 때 물이 몸에 차르륵 감기는, 그 느낌을 좋아합니다. 온몸에 힘을 뺀 채 물에 둥둥 떠있을 땐 얼마나 평온하게요. <문라이트> 속 후안(마허샬라 알리)은 바다 한가운데에서 리틀(알렉스 R. 히버트)에게 수영을 가르칩니다. 두려워하는 리틀의 몸을 잡고 세상을 느껴보라 말하죠. 리틀의 작고 마른 몸 위로 찰박이던 파도, 소년에게 안식처가 되어주던 후안. 그들의 모습을 보며 참 행복했습니다. 에디터는 <문라이트>를 보고 난 뒤 얼마 있지 않아 수영을 시작했습니다. 현실은 락스 냄새, 호흡 곤란, 무한 자유형, 한 달로 끝....

문라이트

감독 배리 젠킨스

출연 마허샬라 알리, 나오미 해리스, 알렉스 R. 히버트, 에쉬튼 샌더스, 트래반트 로즈

개봉 2016 미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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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일드>는 삶의 모든 것을 잃은 셰릴(리즈 위더스푼)의 치유와 회복을 담은 영화입니다. 자존감이 바닥에 떨어진 그녀는 미국 서부를 종단하는 수천 킬로미터의 하이킹 코스, PCT를 걷기로 다짐합니다. 자신의 몸보다 더 큰 배낭을 메고 막다른 길을 떠나던 셰릴의 모습은 에디터에게 큰 자극과 위안을 남겼습니다. 삶의 무게를 고스란히 짊어진 채 자기 자신과 끊임없는 대화를 이어가던 그녀. <와일드>는 제 한계를 넘어선 어딘가에 부딪치고픈 모두에게 큰 용기를 전할 영화죠. 아는 이 없는 곳에서 어깨를 짓누르는 배낭을 메고 터벅터벅 걷는 것. 언젠가 에디터가 꼭 이루고 싶은 꿈이기도 합니다. 흠. 그 이전에 체력부터 길러야겠지만요...

와일드

감독 장 마크 발레

출연 리즈 위더스푼, 로라 던, 토머스 새도스키

개봉 2014 미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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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때는 스케이트보드에 꽂히기도 했습니다. '스케이트보드' 하면 구스 반 산트 감독의 <파라노이드 파크>가 가장 먼저 떠오르지만, 그 영화에 나오는 스케이트 보더들의 현란한 묘기는 바라지도 않습니다. 그냥 타기만 했으면 좋겠어요. 자비에 돌란 감독의 <마미>엔 한번 보면 잊기 어려운 스케이트보드 신이 등장합니다. 보드를 타고 자유롭게 도로를 유영하던 스티브(안토니 올리버 피론). 그가 1:1 화면비를 1.85:1로 확장하던 순간, 스티브의 마음에 들어찬 환희가 관객들에게 고스란히 전달됩니다. <빽 투 더 퓨쳐> 시리즈의 마티(마이클 J. 폭스)도 빼놓을 수 없습니다. 따라해선 안 된다는 걸 알지만, 자동차 뒤에 매달려 보드를 타던 마티를 보는 것만으로도 매우 흥미진진했던 기억이 나네요!

마미

감독 자비에 돌란

출연 앤 도벌, 안토니 올리버 피론, 수잔 클레망

개봉 2014 프랑스, 캐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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빽 투 더 퓨쳐 2

감독 로버트 저메키스

출연 마이클 J. 폭스, 크리스토퍼 로이드

개봉 1989 미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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늘 에디터가 마음속으로만 품고 있는 운동, 바로 검도입니다. 검을 다룬 영화들 중 최고작은 단연 <스타워즈> 시리즈죠. <스타워즈> 시리즈는 검부터가 남다르잖아요? 휘두를 때 나는 웅장한 소리와 현란한 비주얼, 닿기만 해도 살갗이 녹아내리는 위력까지! <스타워즈: 라스트 제다이>에도 현란한 광선검 신이 여럿이었지만, 무엇보다 에디터의 마음에 불을 지른 건 섬에서 홀로 수련하던 레이의 모습이었습니다. 휘리릭 바람 가르는 소리 내며 수련 만렙 도전하던 레이! 집에 있는 커튼 봉 휘두르고 싶은 마음을 자극하더군요. 그랬다간.. 집안에 있는 물건 와장창.. 엄마에게 등짝 스매싱 예약이겠죠...

스타워즈: 라스트 제다이

감독 라이언 존슨

출연 데이지 리들리, 마크 해밀, 아담 드라이버, 오스카 아이삭, 캐리 피셔, 존 보예가

개봉 2017 미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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킥복싱, 달리기, 하이킹, 스케이트보드, 검도... 칼럼을 쓰며 에디터의 마음 한구석에 운동에 대한 환상(...)이 자리 잡고 있다는 걸 깨달았습니다. 환상부터 깨야 진정한 운동을 시작할 수 있을 텐데 참 큰일이네요. 에디터의 방 한구석엔 자유형을 격파하면 입겠다고 사놓고 한 번도 개시하지 않은 수영복이 반년째 제 자리를 지키고 있습니다. 올해엔 꼭 그 수영복에게 수영장을 구경시켜줘야겠네요. 우리 모두의 새해 다짐이 연말까지 이어지길 바라며!


씨네플레이 에디터 유은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