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행> 촬영현장의 연상호 감독.

<부산행>을 연출한 연상호 감독에 대해 알고 있나요? 잘 모른다고요? 흐음. 그렇다면 “<부산행>은 연상호 감독의 첫 실사영화다라는 문장이 포함된 기사를 본 적은 있으신가요? 있다고요? ! 맞습니다. 연상호 감독은 <부산행> 이전까지 애니메이션을 만들어왔습니다. 국내 애니메이션계의 ‘기린아’ 시절의 연상호 감독에 대해 알아봅시다. 감독의 전작을 알고 보면 <부산행>이 더 재밌어질 수도 있습니다. 

<지옥: 두 개의 삶>. 왼쪽 스틸에 연상호 감독이 보인다. 자신이 연기한 촬영분 위에 그림을 그리는 로토스코핑 기법을 사용했다.

지옥: 두 개의 삶
목소리 출연 김병철 개봉 2004상영시간 11
와장창! 당신이 생각하고 있는 애니메이션의 고정관념이 깨지는 소리입니다. 연상호 감독의 <지옥: 두 개의 삶>을 보고 나면 , 이런 애니메이션도 가능하구나싶을 겁니다. 지금까지 우리가 보아온 애니메이션(만화영화)에서 기대하는 이야기는 웃기고, 재밌고, 아름답고, 가끔은 슬픈 그런 이야기일 겁니다. 디즈니, 드림웍스, 픽사, 지브리 거의 대부분 그런 내용입니다. 연상호의 애니메이션은 그것과 다릅니다. 한마디로 암울그 자체입니다.
<지옥: 두 개의 삶>은 제목처럼 두 개의 에피소드가 합쳐진 애니메이션입니다. 파트1은 지옥으로 떨어질 거라는 천사의 선고를 받은 남자의 이야기고, 파트2는 파트1과 대구를 이루는 이야기입니다. 지옥 대신 천국으로 갈 거라는 얘기를 들은 여자의 이야기죠. 죽음을 앞둔 두 사람은 어떤 선택을 하게 될까요.
<지옥: 두 개의 삶>은 연상호 감독이 1인 제작 시스템으로 만든 작품입니다. (연상호 감독과 닮은 인물이 등장하는) 스틸을 보시면 알겠지만 거대 애니메이션 스튜디오처럼 뛰어난 그림은 아니죠. 혼자 제작하다보니 캐릭터의 움직임도 조금씩 부자연스럽습니다.
작품의 퀄리티는 그림의 완성도만으로 평가하기 힘듭니다. 열악한 국내 애니메이션 산업 구조상 혼자서 돈도 안 되는 19금 애니메이션을 만들 수 있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요. 그런 면에서 <지옥: 두 개의 삶>은 연상호라는 이름을 애니메이션계를 넘어 독립영화계에 알리게 된 작품입니다.

<사랑은 단백질>

사랑은 단백질
목소리 출연 양익준, 오정세 개봉 2008상영시간 24
<사랑은 단백질><인디애니박스: 셀마의 단백질 커피>라는 옴니버스 영화의 한 작품으로 개봉했습니다. 연상호 감독의 첫 극장 개봉 작품입니다. <사랑은 단백질><지옥: 두 개의 삶>과는 조금 결이 다릅니다. 일단 웃깁니다. 시놉시스부터 보시죠.
세상의 모든 치킨에겐 사연이 있다! 무료한 여름 밤. 자취생 재호, 경순, 홍찬은 돼지 저금통을 털어 치킨을 시킨다. 하지만 족발집의 돼지가 대신 배달을 오고, 그 돼지를 뒤늦게 따라온 닭사장은 배달된 치킨이 제 손으로 튀길 수 밖에 없었던 자기 아들 '닭돌이라며 대성통곡한다. 그러나 세 친구는 후라이드된 닭돌이의 사연 앞에 각각 입장이 다르다.”
이게 무슨 황당한 상황이냐고 생각하시면 제대로 생각하신 겁니다. 이 애니메이션에는 말하는 돼지와 닭이 등장합니다. 그렇다고 마냥 웃기고 황당한 이야기는 아닙니다. 일종의 블랙 코미디라고 부를 수 있을 겁니다. 치킨을 먹느냐 마느냐 실존적인 고민을 하게 됩니다.
이 작품은 연상호 감독의 필모그래피에서 꽤 중요해 보입니다. 왜냐면 <사랑은 단백질>은 만화가 최규석 작품이 원작입니다. <공룡 둘리에 대한 슬픈 오마주> <습지생태보고서> <대한민국 원주민> <송곳> 등을 그린 최규석과 연상호는 상명대학교 동기입니다. 전공은 다릅니다. 연상호 감독은 서양학과이고 최규석 작가는 만화학과 출신입니다. 두 사람은 대학 때부터 알고 지냈습니다. <사랑은 단백질> 이후 앞으로 소개할 연상호 감독의 애니메이션의 캐릭터 원화 등을 최규석 작가가 맡았습니다. 눈이 밝은 관객들은 벌써 눈치채고 있었을 겁니다. 그림체가 비슷하잖아요. 또 하나, <사랑은 단백질>에서 함께한 사람들이 있습니다. 배우 겸 감독 양익준과 배우 오정세입니다. 두 사람 역시 이후 연상호 감독의 작품에 목소리 출연을 꾸준히 하게 됩니다.

<돼지의 왕>

돼지의 왕
목소리 출연 양익준, 오정세, 김혜나, 박희본, 김꽃비 개봉 2011상영시간 96
2011년은 국내 애니메이션 역사에서 기억해야 할 한 해입니다. 오성윤 감독의 <마당을 나온 암탉>과 안재훈, 한혜진 감독의 <소중한 날의 꿈>, 그리고 연상호 감독의 <돼지의 왕>까지 무려 3편의 장편 애니메이션이 개봉했기 때문입니다. 흥행은 <마당을 나온 암탉>이 앞섰고, 10년 만에 완성된 셀 애니메이션 <소중한 날의 꿈>은 국내 애니메이션 팬들에게 좋은 평가를 얻으며 박수를 받았습니다. 그렇다면 <돼지의 왕>은 어땠을까요? 11월 개봉한 <돼지의 왕>은 충격적이었습니다. 동화를 원작으로 한 <마당을 나온 암탉>과 아름다운 시절을 추억하는 <소중한 날의 꿈>과는 전혀 다른 잔혹이라는 키워드를 앞세운 작품이기 때문입니다. <지옥: 두 개의 삶>의 연상호를 아는 사람들은 어느 정도 예상을 할 수도 있었을 겁니다. <돼지의 왕>은 주인공 경민이 아내를 살해하는 장면에서 시작합니다. 경민은 중학교 시절 친구 종석을 찾아갑니다. 두 사람은 중학교 시절을 떠올리고 영화는 그 시절로 돌아갑니다. 폭력으로 가득했던 그 중학교 교실로 말입니다.
<돼지의 왕>을 보고 나온 사람들은 이거 만화 맞아? 영화 아니야?” 했습니다. 우리가 그동안 보지 못한 애니메이션이라는 뜻일 겁니다. 한국 사회의 불편한 진실을 애니메이션으로 보는 게 가능해졌습니다. 어쩌면 애니메이션이기에 가능했을지도 모릅니다. <돼지의 왕>의 제작비는 고작 12천만원입니다. 1인 제작시스템을 오래 운영한 연상호 감독의 노하우가 없었다면 불가능했을 겁니다. 단지 저비용만이 이 애니메이션을 영화의 반열(?)에 올려놓은 건 아닙니다. 중요한 것은 결국 감독이 무슨 이야기를 하려 하는가. 연상호 감독은 <돼지의 왕>으로 칸영화제 감독주간에 초청받았습니다. 그밖에 일일이 나열하게 어려울 정도로 많은 해외 영화제에 초청됐고 수상했습니다. 이제 연상호 감독은 독립영화계뿐만 아니라 상업영화계에서도 주목하는 감독으로 인정받기 시작했습니다.

<창>


목소리 출연 이환, 이수현, 강도하 개봉 2012상영시간 28
<>은 연상호 감독의 자전적 이야기를 바탕으로 만든 작품으로 알려졌습니다. 군대 내 가혹행위, 폭력에 대해 이야기합니다. 인권만화집 <사이시옷>에 연상호 글, 최규석 그림으로 먼저 소개된 작품입니다.
재밌는 건 최규석 작가가 네이버에 연재한 웹툰 <송곳><>의 인물이 카메오로 등장합니다. 2-11화에서 <송곳>의 주인공 이수인의 군 시절 회상 장면에 <>의 주인공 정철민이 등장합니다. 

<사이비>

사이비
목소리 출연 양익준, 오정세, 권해효, 박희본, 황석정 개봉 2013년 상영시간 100
<사이비>은 연상호 감독의 두번째 장편 애니메이션입니다. <돼지의 왕>처럼 <사이비>도 시대의 단면을 고발하는 이야기입니다. 수몰예정지역인 마을을 배경으로 기적을 빙자해 사람들을 현혹하는 목사와 그의 정체를 유일하게 알고 있는 술주정뱅이 폭군, 그리고 이들을 둘러싼 사람들의 충돌을 통해 당신이 믿는 것은 진짜인지에 대한 질문을 던집니다. <사이비>는 단순히 사이비 종교에 대한 고발이 아니라 사회에 대한 고발입니다. 추악한 욕망을 까발리는 내용입니다. <사이비>는 <돼지의 왕>과 더불어 평단의 좋은 평가를 받은 작품입니다. <돼지의 왕>보다 작화는 더 좋아졌고, 더빙도 자연스러워졌다는 평가를 받았습니다. 어두운 사회 이면을 그려내는 데 연상호 감독은 탁월한 재능을 발휘했습니다. 그는 애니메이션의 ‘기린아’, ‘총아’가 됐습니다. 국내에서 그를 빼고 애니메이션을 이야기하기 어려워진 겁니다.

<사이비> 관객과의 대화에 참석한 (왼쪽부터) 만화가 최규석, 연상호 감독.
<서울역>

서울역
목소리 출연 류승룡, 심은경, 이준 개봉 20168상영시간 92
알려진 것처럼 <서울역>은 실사영화 <부산행>의 프리퀄, 즉 이전 이야기를 다룹니다. 심은경이 연기하는 <부산행>의 첫 좀비가 어떻게 부산행 KTX에 타게 되는지를 알 수 있는 거죠. <서울역>은 아직 국내에 공개되지 않았습니다.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의 폐막작으로 선정됐습니다.
<부산행>은 한국 상업영화에서 처음으로 선보이는 좀비물입니다. 많은 제작비가 들어간 만큼 많은 관객을 동원해야 합니다. 그렇게 되면 자연스레 청소년 관람불가 등급을 피해야 하고 기존 해외의 좀비물에 비해 폭력의 수위 등을 조절할 수밖에 없었을 겁니다. <서울역>은 다르지 않을까 기대합니다. 미드 <워킹 데드> 정도를 본 사람이 만족할 만한 수준이 아닐까 예측해봅니다. <지옥: 두 개의 삶> <돼지의 왕> <사이비> 등으로 이어지는 연상호 감독 특유의 사회비판적 메시지도 담겨 있을 거라 기대해봅니다.

씨네플레이 에디터 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