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니지는 작화가 마크 배글리와 작가 데이빗 미켈라이니가 함께 만든 캐릭터다. 마크 배글리는 베놈을 가장 멋지게 그리는 작화가이며, 데이빗 미켈라이니는 1990년대 스파이더맨의 외형을 확립한 작가다. 토드 맥팔레인이 1988년에 만든 캐릭터인 베놈은 1990년대 초 마블코믹스 캐릭터 인기 순위 1, 2위를 다툴 정도로 인기가 높았다. 카니지는 베놈과 유사하지만 더 흉폭하고 사악한 캐릭터를 만들어 보자는 기획 의도에서 탄생하였다.
조커를 본따 만든 빌런 카니지의 정체는 흉악범 클리투스 캐시디. DC 코믹스의 조커를 본따 만들어진 사이코패스 연쇄살인마 캐릭터인데, 수감 생활 중 우연히 베놈의 심비오트 생명체 일부에 노출된다. 심비오트의 공격성과 본연의 악한 성격이 만나 클리투스는 카니지로 다시 탄생하는데, 베놈과 외관과 능력은 비슷하지만 사지 말단부를 예리한 무기로 변형시킬 수 있고 더 강한 힘을 가진 존재로 묘사된다. 이로써 선함의 상징인 스파이더맨, 안티히어로 성향을 띈 폭력적 중간자 베놈, 그리고 악의 상징 카니지의 3자 역학 관계가 성립되는데, 많은 작가들에 의해 흥미로운 스토리들이 탄생하였다.
카니지가 마블코믹스의 대표 빌런 캐릭터로 자리잡을 수 있던 데엔 1993년부터 1994년 사이에 총 14부작 기획으로 연재된 <맥시멈 카니지>의 영향이 크다. <맥시멈 카니지>는 스파이더맨, 캡틴 아메리카, 베놈, 아이언 피스트, 데스록, 블랙 캣, 클록 앤 대거 등 마블의 인기 캐릭터가 대거 투입된 시가전 양상의 대서사시로, 그 해 가장 많이 팔린 만화 시리즈 중 하나였다.
카니지를 내세운 비디오 게임 1990년대 중반은 슈퍼히어로 만화가 메인스트림으로 완전히 융화되기 이전인, '만화 보는 사람'들만 만화를 보던 시절이었다. <맥시멈 카니지>는 당시 창사 이후 최고 흑자를 기록 중이던 마블코믹스가 그 해의 메인 이벤트로 기획한 스토리였기에 신문이나 잡지에도 광고가 실렸고 비디오게임도 출시되었다. LJN 사에서 출시된 콘솔용 게임 <스파이더맨과 베놈: 맥시멈 카니지>는 비디오 게이머들도 상당히 훌륭히 기억하는 게임인데, 당시 대형 빌보드에도 이 게임의 광고가 걸렸을 정도로 꽤나 공격적인 마케팅이 전개되었고 판매 부수도 꽤 높았다. 망작을 양산하기로 유명한 LJN 사의 게임 중 그나마 제일 괜찮은 게임이라는 평을 들었으며사운드트랙에 당시 인기 밴드 ‘그린 젤리’가 이 게임을 위해 만든 곡과 ‘블랙 사바스’의 곡이 들어가는 등 나름 신경써서 제작된 게임이다. 미국, 유럽, 일본에서는 꽤 인기를 얻었으며 일부 버전은 중고 시장에서 고가에 팔리는 컬렉터의 아이템이 되었다.
<맥시멈 카니지>의 추억 필자가 미국만화를 처음 접한 24년 전가장 기뻤던 순간 중 하나로 동네 만화가게에서 <맥시멈 카니지> 페이퍼백 단행본을 구입했을 때를 꼽을 수 있다. 단골 만화가게 벽보 광고를 보고 1994년 여름 쯤 <맥시멈 카니지>가 400페이지가 넘는 두툼한 단행본으로 나올 예정이라는 것을 알게 된 시점부터 필자는 만화가게에 갈 때마다 주인 아저씨에게 열 번도 넘게 “혹시 나왔나요?” 묻고는 했다. 급기야는 주인 아저씨가 “책이 나오면 네 것을 하나 따로 보관해 두겠다”라는 말로 안심시켜 주었을 정도다. 그리고 1994년 8월 경의 어느 날부모님을 졸라 받은, 당시로는 거금 2만 5천원 정도의 돈을 받아 들고 만화가게로 달려가 손이 꽉 찰 정도의 두꺼운 책을 받아들고 집에 돌아오던 길의 희열은 지금도 생생하다. 집에 와서도 한꺼번에 다 읽기 아까워서 하루에 한 챕터씩 아껴서 읽던 즐거운 기억이 있다. 그렇게 아끼던 그 책은 친구에게 빌려준 뒤 다시 내 손 안으로 들어오지 못했다.쓰러진 스파이더맨에게 캡틴 아메리카가 손을 내미는 장면,베놈이 거대한 홀 가운데에서 표효하던 장면에서 전율하던 기억은 아직도 생생하다. 웬만한 과월호 만화책들은 인터넷에서 쉽게 볼 수 있고 그 때와는 비교가 안 되는 품질의 하드커버 단행본으로 출시되고 있는 지금에 이르러서도 느끼기 힘든 따뜻한 기억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