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세기 25주년을 맞아 ‘뉴욕타임스’가 21세기 가장 중요하고 영향력 있는 책 100권을 선정했다. 이번 프로젝트는 수백 명의 권위 있는 문학계 저명인사들에게 2000년 1월 1일 이후 출간된 최고의 책 10권을 꼽아달라는 설문조사를 실시해 그 결과를 취합했다. 선정에는 총 503명의 소설가, 논픽션 작가, 시인, 비평가 및 책 애호가가 참여했다. 먼저 스티븐 킹 작가를 비롯한 록산 게이, 칼 오베 크나우스고르, 말론 제임스, 조나단 레덤이 투표했다. 한국에서는 「파친코」로 순위에 오른 이민진 작가가 참여했다. 책의 환상적인 세계관과 탄탄한 서사는 영화인들도 매료시켰다. 영광스러운 100권의 책 중에서 영화화된 작품들을 꼽아봤다.
<어톤먼트>(2007)

코스튬 드라마 영화 <오만과 편견>을 연출한 조 라이트 감독은 이어서 이언 매큐언의 소설 「속죄」(Atonement)를 원작으로 한 영화 <어톤먼트>로 1935년에서 시작해 현대로 이어지는 긴 시간을 밀도 있게 압축한다. 영화는 소녀의 오해로 인해서 자신을 포함한 세 사람이 파국을 맞는 이야기를 그린다. 1935년 영국, 상류층 집안의 막내딸 브라이오니(시얼샤 로넌)는 오랜만에 귀향하는 오빠에게 연극을 선보이기 위해 희곡을 쓰고 있다. 잘 개인 이부자리, 가지런히 정리된 신발, 줄 맞춰 놓은 동물 장난감까지. 브라이오니의 방은 한 치의 흐트러짐도 찾아볼 수 없다. 지나치게 단정한 소녀의 방은 브라이오니의 성격 일부를 알려준다. 불쾌하게 귀에 내리꽂는 타자기 소리는 브라이오니가 일으킬 불행을 암시한다.

브라이오니의 언니 세실리아(키이라 나이틀리)와 이 집안에서 일하는 가정부의 아들 로비(제임스 맥어보이)는 계급의 장벽을 넘지 못하고 서로에게 향하는 마음을 애써 붙들고 있다. 뜨겁게 끓는 여름의 정원에서 마주한 두 사람은 공연히 실랑이를 벌이고, 세실리아의 손에 있던 꽃병을 깨트린다. 세실리아는 서둘러 겉옷을 벗고 분수에 들어가 꽃병의 파편을 들고나온다. 이 모습을 방 안에서 지켜보던 브라이오니는 둘의 관계에 대한 오해를 품는다. 오해는 점점 커져가고, 브라이오니는 친척인 쌍둥이가 사라져서 집안이 혼란스러운 틈을 타 쌍둥이 누나 롤라를 범한 강간범으로 로비를 지목한다. 사건 현장의 유일한 목격자인 브라이오니의 거짓된 진술로 인해 로비는 감옥에 가게 된다.

조 라이트의 <어톤먼트>는 긴 시간을 아우르는 서사를 압축하기 위해 불필요한 묘사를 거두어 냈다. 이언 매큐언의 촘촘하고 세밀한 묘사는 타자기 소리로 긴장감을 불어넣는 오프닝 시퀀스처럼 시청각적 감각을 두루 자극하는 영화적인 몇몇 장면으로 바뀌어 표현된다. 특히 원작에서 50장이 넘는 분량을 차지했던 됭케르크 에피소드는 영화에서 롱테이크씬으로 축약된다.
<더 로드>(2009)

존 힐코트 감독의 포스트 아포칼립스 영화 <더 로드>는 작년 6월에 별세한 미국 문학의 거장 코맥 매카시의 대표 소설 「로드」(The Road)를 각색했다. 매카시의 원작은 2006년 퓰리처상을 수상했으며, 한국에서도 아직 많은 독자가 읽고 있는 스테디셀러 중 하나다. 영화는 대재앙 이후 잿빛으로 변해버린 세상에 살아남은 두 부자의 생존기를 그린다. 짐승이나 먹을 곡식은 없고, 초목도 메말라 있다. 생존자들은 도덕성을 잃어버리고 약자들을 노예로 삼거나 식량으로 취급하는 야만적인 식인종으로 변한다. 이름 없는 남자(비고 모텐슨)는 위험이 곳곳에 도사리고 있는 세상에서 아들(코디 스밋 맥피)을 지켜내기 위해 끈질기게 분투한다. 황량한 세상은 점점 추워지고, 그들은 약탈자들과 추위를 피해 남쪽 바다로 향한다.

<더 로드>는 문명 세계가 종말하고, 인육 사냥꾼이 득실대는 지옥을 도덕적인 두 순례자와 대조되는 회색빛의 시각적 풍경으로 그려낸다. 다만 삭막한 풍경과 달리 영화는 종종 부자간의 사랑이 두드러진 할리우드 영화에서나 볼 법한 따뜻한 톤을 내비친다. 이는 원작의 건조하고도 시적인 문체와도 먼 연출이기도 하다. 아버지의 보호 아래 아들은 절망적인 세상에서도 끝내 악에 물들지 않고 유일한 선으로 남는다. 비고 모텐슨은 영화에서 시종일관 끈질긴 부성애를 표현하며 명연기를 선보인다. 원작의 열혈 팬이었던 샤를리즈 테론은 자청해서 남자의 아내이자 소년의 엄마 역으로 출연하기도 했다. 영화는 2009년 베니스국제영화제 경쟁 부문에 진출한 바 있다.
<클라우드 아틀라스>(2012)

워쇼스키 자매와 톰 티크베어의 영화 <클라우드 아틀라스>는 데이비드 미첼 작가의 동명의 소설을 각색했다. 영화는 500년에 걸쳐서 6개의 시공간을 다루는 소설의 다중 플롯 구성을 그대로 취한다. 2144년 디스토피아적인 미래의 서울을 포함해서, 1849년의 태평양 제도에서부터 2346년 지구 멸망 후 어느 행성까지 등장하는 6개의 플롯은 로버트 알트만의 영화처럼 각각의 파편들이 연결되어 있고, 총체적으로 하나의 틀을 만들어낸다.

먼저, 문명이 파괴된 지 106년 후의 하와이. 자크리(톰 행크스)는 미래 세대를 위해 부족에게 전해져 내려오는 믿음을 깰 선택을 앞두고 있다. 1849년의 태평양 제도. 샌프란시스코의 집으로 돌아가기 위해 항해 중인 변호사 어윙(짐 스터게스)은 도망쳐서 배에 몰래 탄 흑인 노예를 돕기로 한다. 1936년 에든버러. 생계를 위해 유명 작곡가의 조수로 일하며 곡을 만들어주는 게이 작곡가 로버트(벤 위쇼). 그는 자신의 걸작 ‘클라우드 아틀라스’만큼은 빼앗기지 않기 위해 유명 작곡가의 협박에 맞선다. 1973년의 샌프란시스코. 기자 루이자(할리 베리)는 핵발전소의 음모를 파헤치기 위해 목숨을 걸고 단서를 찾아 나선다. 2012년의 런던, 출판 편집자 티모시(짐 브로드벤트)는 요양원에 감금된 환자들과 합심해 그곳에서 빠져나오기 위한 탈출 작전을 펼친다. 2144년 미래의 서울. 인간에게 복종하기 위해 만들어진 복제인간 손미-451(배두나)는 독재 무리의 폭력적인 지배를 자각하고, 그들에게 맞서기 위해 반군에 합류한다.

각기 다른 시공간에서 펼쳐지는 이야기는 크고 작은 연결 고리로 얽혀 있다. 유사한 구도의 이미지, 여러 배우의 1인 다역 연기, 서사 전개의 유사성까지. 다른 듯 같은 6개의 이야기는 관객들로 하여금 인종과 국적, 성별이 각기 다른 소수자가 자신의 믿음에 따라서 내린 선택을 마주하게 한다. 그리고 그들을 통해서 시대적 한계를 넘어서고 비인간적인 폭력성에 맞서는 휴머니티에 대해 고찰하게 한다.
씨네플레이 추아영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