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옥의 묵시록

감독 프란시스 포드 코폴라

출연 말론 브란도, 로버트 듀발, 마틴 쉰

개봉 1979 미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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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영화의 마스터피스, <지옥의 묵시록 리덕스>가 124일 재개봉합니다. 제작 과정 중 말도 많고, 탈도 많았으나 감독 프란시스 포드 코폴라는 끝내 <지옥의 묵시록>을 재편집해 <지옥의 묵시록 리덕스>를 이의 없는 걸작으로 완성시켰습니다.

베트남전쟁이 한창인 1969, 윌라드 대위(마틴 쉰)는 사이공의 숙소에서 전쟁 후유증에 시달리고 있습니다. 잔뜩 지쳐있는 그에게 사령부는 한 인물을 암살하라는 지시를 내립니다. 타겟인 커츠 대령(말론 브란도)은 과거 유능한 엘리트 군인이었으나 부대를 탈영해 캄보디아로 망명한 뒤 그곳에 자신만의 왕국을 만들어 지내고 있는 자입니다. 소수의 부하만을 데리고 캄보디아로 잠입, 베트남과 캄보디아를 잇는 넝강을 거슬러 오르는 동안 윌라드 대위는 긴 전쟁이 낳은 기괴한 광경들을 목도합니다.

오랜 여정에 그의 부하들마저 미쳐가기 시작하고, 윌라드 대위는 마침내 커츠 대령의 땅에 발을 딛습니다. 사람의 잘린 머리가 곳곳에 흩어져 있고 사방이 피로 얼룩진 그 땅은 윌라드 대위가 마주한 어느곳보다도 수상쩍은 분위기를 풍깁니다. 간신히 만난 커츠 대령은 전쟁에 환멸과 매혹을 동시에 느끼며 광기에 젖어버린 인물입니다. 윌라드 대위는 커츠 대령으로부터 전장을 헤쳐오는 동안 그가 겪어야 했던 도덕적 딜레마와 두려움에 대한 긴 이야기를 듣습니다. 그리고 서서히 그의 정신에 동화됩니다. 윌라드 대위는 커츠 대령을 찾아 암살하기까지의 모든 과정이 곧 자신의 진실한 속내를 발견하는 과정이기도 하였음을 깨닫습니다.

<지옥의 묵시록>이 탄생한 1979년은 기나긴 베트남전쟁이 종료된 지 채 5년도 지나지 않은 시점이었습니다. 미국 정부는 전쟁의 광기에 회의를 느껴 군부대를 탈영한 엘리트 미군을 현직 미군이 암살하러 간다는 요지의 시나리오를 탐탁지 않게 생각했고, 코폴라는 필리핀 정부의 지원을 받아 간신히 촬영을 시작할 수 있었습니다. 코폴라는 베트남 전쟁을 지옥도, 악몽 그 자체로 묘사합니다. 피아가 구분되지 않는 무자비한 살육전 속에 이념과 명분은 껍데기조차 남아 있지 않습니다. 피로 물든 땅엔 광기에 젖어가는 육체만이 있습니다. 미쳐버린 사람들은 폭력과 살인을 일종의 악취미 또는 의식처럼 즐깁니다. 적나라한 행태의 시작과 끝이 어디쯤인지는 누구도 알지 못합니다. 참상의 기운을 그대로 재현해 필름에 담은 것만으로도 코폴라는 강력한 반전의 메시지를 부르짖은 셈이 됩니다.

<지옥의 묵시록>은 조지프 콘래드의 소설 <어둠의 심연>(Heart of Darkness, 1902)을 영화화한 것입니다. 초기 기획을 맡았던 조지 루카스가 <지옥의 묵시록>의 감독이 될 뻔도 했으나 <스타워즈> 연출 일정상 메가폰이 코폴라에게로 넘어갔습니다. 악몽처럼 그려지는 <지옥의 묵시록> 속의 전쟁만큼이나 제작과정 또한 고통의 연속이었습니다. 애당초 16주 만에 촬영하기로 약속했던 <지옥의 묵시록>은 필리핀에서 238일간 3150만 달러나 되는 제작비를 들여 겨우 완성됐습니다. 예상보다 훨씬 거대해진 일정상 코폴라는 전재산을 저당잡히고, 관계자들에게 온갖 항의를 들어가면서 필리핀에 묶여있어야만 했습니다.

사실적인 연출을 위해 CG로 창조된 장면이 전혀 없이 모든 특수효과가 사람의 손으로 직접 재현되었다는 점도 놀랍습니다. 최고의 전투신을 꼽을 때 빠지지 않고 거론되는 킬고어 중령(로버트 듀발)의 헬리콥터 폭격신조차 실제로 네이팜탄을 터뜨려가며 촬영한 장면입니다. 미군의 협조가 없었기에 헬리콥터는 필리핀 마르코스 정부의 장비를 빌려 촬영했습니다. 하지만 촬영 도중 마르코스 정부가 반정부군과 싸우게 되면서 헬리콥터를 회수해갔고, 촬영은 끝도 없이 지체되었습니다. 영화사적으로도 위대하다 기록된 헬리콥터 전투신은 전적으로 촬영감독 비토리오 스트라로의 공에 다름없습니다.

배우들의 불안과 불화 또한 코폴라의 골치를 썩게 만들었습니다. 코폴라는 윌라드 대위 역으로 스티브 맥퀸, 잭 니콜슨, 로버트 레드포드, 알 파치노에게 러브콜을 보냈으나 모조리 거절당하고 하비 카이틀과 간신히 촬영을 시작했지만 제작사와의 의견 불일치로 결국 마틴 쉰이 윌라드 대위를 연기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현장에서 마틴 쉰과 데니스 호퍼는 실제로 마약에 취해 제정신이 아닌 때가 많았고, 말론 브란도는 촬영이 끝나갈 무렵 겨우 나타났으나 기대와 다르게 굉장히 살이 찐 채로 등장해 캐릭터를 잡는 데 있어 감독과 의견차를 빚기도 했습니다. 마틴 쉰이 현장에서 심장발작을 일으켜 5주간 휴식한 뒤 촬영을 재개하는 사태도 벌어졌습니다. 인력이 부족해 코폴라의 가족들이 단역으로 총동원됐으며, 코폴라와 비토리오 스트라로가 기자와 카메라맨 역으로 직접 출연하기도 했습니다. 로렌스 피시번과 해리슨 포드의 앳된 모습도 볼 수 있습니다.

계획과 달리 어마어마하게 늘어난 촬영 기간과 제작비에 따른 부담으로 코폴라와 스태프, 배우들은 모두 극한의 스트레스에 잠식되었습니다. 감독인 코폴라 자신조차 영화를 어떻게 끝맺으면 좋을지 알지 못했고, 감독의 불안을 꼬투리 삼아 1979년 칸 영화제 상영 당시 <지옥의 묵시록>은 (비록 황금종려상을 거머쥐기는 하였으나) 평단에서조차 극명하게 반응이 갈리는 괴이한 상황에 직면합니다. 2001년에 이르러서야 코폴라는 일종의 완전판인 <지옥의 묵시록 리덕스>를 세상에 내놓았습니다. 무려 상영시간 199분에 달하는 <지옥의 묵시록 리덕스> 147분 버전의 <지옥의 묵시록>보다 훨씬 명료하고 매끄러운 걸작이 되었습니다. 특히 추가된 윌라드 대위와 커츠 대령의 긴 대화 장면이 압권입니다. 코폴라는 베트남전쟁을 통해 인간 마음의 어두운 심연을 날카롭게 꿰뚫어냈습니다. 아마 감독 자신에게도 <지옥의 묵시록>은 스스로의 한계를 시험하는 혹독한 관문이었을 것입니다. 혼돈에 휩싸인 채 피의 땅을 떠나는 윌라드 대위의 모습에서 코폴라의 고뇌가 무겁게 전해져 옵니다.


씨네플레이 에디터 윤혜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