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사드(THAAD, 고고도 미사일 방어 체계) 배치 문제가 뜨거운 이슈로 떠올랐습니다. 씨네플레이는 혹시나 이와 관련된 영화가 있지 않을까 찾아봤습니다. 영화는 현실을 비추는 거울이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딱히 관련된 영화는 없더군요. 대신 드론 전쟁을 소재로 한 영화가 있었습니다. 7월14일 개봉한 <아이 인 더 스카이>입니다. 개빈 후드 감독의 이 영화는 테러와의 전쟁을 벌이는 영국과 미국, 케냐의 합동작전 과정을 담았습니다. 지금도 어디선가 누군가는 전쟁을 벌이고 있을까요? 실화를 바탕으로 한 현대전을 다룬 영화들을 살펴보면 지난 1990년대 이후 벌어진 전쟁의 역사를 알 수 있습니다. 그 출발점은 아프리카 소말리아의 수도 모가디슈입니다.


▶1993년 동아프리카 소말리아 내전

<블랙 호크 다운>에 등장하는 MH-60 블랙 호크 헬기. 시코르스키사가 제작한 UH-60 블랙호크를 특수전용으로 개량한 것이다.
맷 에버스만(조쉬 하트넷) 하사(사진 오른쪽)을 비롯한 대부분의 레인저 대원들은 M16A2 소총을 사용한다.
<블랙 호크 다운>에 등장하는 MH-6 리틀 버드(별칭 킬러 에그) 헬기.
<블랙 호크 다운>에서는 레인저 대원들을 구출하기 위해 도심을 질주하는 험비도 인상적이다. 대니 맥나이트 중령(LTC)을 연기한 톰 시즈모어는 베레탕 군인 역할의 달인이다. <라이언 일병 구하기>에서도 연륜 가득한 군인 연기를 볼 수 있다.

블랙 호크 다운
감독 리들리 스콧 출연 조쉬 하트넷, 이완 맥그리거, 톰 시즈모어, 에릭 바나 개봉 2002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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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랙 호크 다운>은 현대전을 다룬 영화의 고전이라 불립니다. 누군가는 동의하기 힘들지도 모릅니다. ‘고전’이라는 말 대신 ‘현대 전투의 해부’라고 불러도 좋겠습니다. 그만큼 가장 현실적으로 전쟁을 재연했다고 합니다. 리들리 스콧 감독의 이름값을 제대로 하는 영화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1993년 10월 미군은 UN 평화유지작전의 일환으로 특수부대 델타포스, 레인저(특공대), 160 특수비행단이 이 작전에 투입했습니다. 소말리아 수도 모가디슈의 통치자인 모하메드 파라 아이디드를 체포하려는 작전입니다. 10월3일 오후 3시42분에 시작된 작전은 1시간 가량 소요될 예정이었지만 20분 간격으로 무적이라 불리던 MH-60 블랙호크 ‘슈퍼 6-1’, ‘슈퍼 6-4’ 2대가 격추되고 맙니다. 이때부터 체포 작전은 구출과 생존 작전으로 변경됩니다. 고립된 레인저 대원을 구하기 위해 델타포스가 투입되고 18시간 동안 미군 병사들은 모가디슈에서 시가전을 벌입니다.
<블랙 호크 다운>은 분명 미국의 시각으로 본 영화입니다. 그런 만큼 논란도 많았죠. 어쨌든 미군의 흔치 않은 패전 사례(18명의 미군 병사가 목숨을 잃었습니다)인 모가디슈 전투를 다룬 <블랙 호크 다운>은 베트남전 이후 변화한 전장의 이미지를 가장 현실적으로 보여주었습니다. 이후 나온 현대전 영화들은 <블랙 호크 다운>의 그늘에서 쉽게 벗어나지 못했습니다.


▶1991년 1차 걸프전

제이크 질렌할(왼쪽) 주연의 <자헤드 - 그들만의 전쟁>. 질렌할은 해병대 스나이퍼 안소니 스워포드를 연기했다.
지상군 투입을 기다리며 해병대원들은 사막에서 무료한 시간을 보낸다. 미식축구 따위를 하면서.
<자헤드 - 그들만의 전쟁>에서 총을 쏘는 장면은 승전을 기념하는 파티에 해병대원들이 도착했을 때 나온다.
자헤드 
감독 샘 멘데스 출연 제이크 질렌할, 피터 사스가드, 루카스 블랙 개봉 2005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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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헤드 - 그들만의 전쟁>(이하 <자헤드>)은 국내에서 극장 개봉하지 못했습니다. 2006년 DVD로 출시됐습니다. 샘 멘데스 감독, 제이크 질렌할 주연이라는 이름값이라면 정식 개봉을 할 만한 것처럼 보이지만 영화 내용을 보면 그렇지가 않습니다. 1991년 이라크가 쿠웨이트를 침공하면서 시작된 1차 걸프전을 다룬 이 영화에는 전쟁 장면이 없습니다. 전쟁영화에 전쟁 장면이 없다고요? 맞습니다. 진짜 그렇습니다.
<자헤드>의 주인공 20살 안소니 스워포드(제이크 질렌할)는 별볼일 없는 청춘입니다. 해병대에 입대한 그는 혹독한 훈련을 거쳐 스나이퍼로 선발됩니다. 곧 걸프전이 발발한 중동으로 떠난 그는 사막에서 100일이 넘도록 대기만 합니다. 드디어 출정을 했으나 총알 한 발 쏘지 못하고 전쟁은 끝나버렸습니다. 이른바 ‘사막의 폭풍’ 작전에서 사담 후세인은 미 공군의 폭격, 전차 부대의 공격만으로 항복을 선언해버렸습니다. 걸프전은 공군력이 얼마나 현대전에서 중요한지를 알려준 전쟁이었습니다.
그렇다면 <자헤드>는 도대체 무엇을 말하고 싶은 영화일까요. 전쟁의 공포 또는 허무함? 물론 그것도 있지만 전쟁보다는 청춘의 허무함과 상실감이라고 봐도 좋겠습니다. 별볼일 없던 청춘 스워포드는 사회에서 도태되어 가는 자신의 가치를 해병대에서 부여 받은 스나이퍼라는 임무로 증명하려 했으나 실패하고 말았기 때문입니다.

▶2004년 이라크 전쟁

허트 로커
감독 캐스린 비글로우 출연 제레미 레너, 안소니 마키, 브라이언 게라그티 개봉 2010년
2003년 미국의 부시 대통령은 이라크 정권의 붕괴와 종전을 선언했습니다. 그러나 전쟁은 계속 됐습니다. <
허트 로커>는 전쟁 아닌 전쟁이 이어지던 시기 이라크 바그다드가 배경입니다. 특이한 점은 총을 들고 펼치는 전투가 아니라 무겁고 단단한 보호장구를 착용한 폭발물처리반(EOD)의 임무를 소재로 채택했다는 점입니다.
<허트 로커>는 오스카의 사랑을 듬뿍 받은 영화입니다. 각본상, 감독상, 음향상, 작품상, 촬영상, 편집상 등 무려 6개 부문에서 수상했습니다. 당시 평론가들의 평을 살펴보면 익숙한 이름 히치콕이 등장합니다. 히치콕의 서스펜스가 이 영화에서도 느껴진다는 뜻입니다. 예를 들어 시한폭탄의 시간이 점점 줄어들어 0에 가까워 질 때, 이 폭탄을 해체하기 위해 파란색 선을 자를까 빨간색 선을 자를까 하는 서스펜스를 <허트 로커>에서도 발견할 수 있습니다. 물론 전쟁에 중독된 군인의 모습도 볼 수 있습니다. 오스카의 선택을 믿어도 좋은 영화입니다.


▶2005년 아프가니스탄 전쟁

<론 서바이버>에 등장하는 네이비실 대원들. 이른바 택티컬 간지가 철철 넘친다.
<블랙 호크 다운>의 델타 포스 에릭 바나가 <론 서바이버>에서는 네이비실 지휘관 에릭 크리스텐슨 소령(Lt. Cmdr.)으로 다시 등장한다.

론 서바이버
감독 피터 버그 출연 마크 월버그, 테일러 키취, 벤 포스터, 에릭 바나 개봉 2014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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론 서바이버>는 아프가니스탄 전쟁을 다룹니다. 아프가니스탄은 이라크의 사막과는 다른 험준한 산악 지형이 있는 곳입니다. 탈레반 부사령관 ‘샤’를 체포하기 위해 ‘레드윙’ 작전에 투입된 4명의 네이비실 대원들은 정찰 임무를 맡았습니다. 험준한 산악 지형에서 이들은 우연히 산으로 올라온 양치기 소년 일행을 만납니다. 탈레반 거주 지역에 살고 있지만 민간인인 이들을 살려주어야 할까요. 아니면 자신들의 안전을 위해 죽여야 할까요. 이들은 고민에 빠집니다.
<론 서바이버>는 정말 처절한 영화입니다. 역시 미군 입장의 영화인데 그들의 입장에서 보자면 고작 4명을 잡겠다고 AK-47, PKM 머신건으로 무장한 수십명의 탈레반 군대가 투입됩니다. 아무리 미국의 특수부대 네이비실 대원이라도 이런 싸움에서는 이길 수 없습니다. 이들은 살기 위해 두 번이나 절벽에서 뛰어내리는 교전을 벌입니다. 그리고 제목처럼 한 명만 살아남습니다.
<론 서바이버>는 영화 기술적으로 훌륭한 전쟁영화라고 할 수 있습니다. 교전 상황의 긴박한 상황을 담아내는 촬영도 훌륭하지만 사운드가 예술이라는 밀덕들의 평가가 자자했습니다.

(왼쪽부터) 대니 하사(DO2)의 소총은 M4A1 카빈, 의무 하사(HM2) 마커스의 소총은 Mk 12 Mod 1 SPR이다.

▶2011년 넵튠 스피어 작전

<제로 다크 서티>의 후반부 작전 상황을 보여주는 스틸. 작전에는 미국 해군특수전개발단(DEVGRU) 대원들이 참여했다.
<제로 다크 서티>의 제목은 밤 12시30분을 뜻한다. 어둠을 틈타 작전을 수행하는 DEVGRU 대원들은 GPNVG-18 나이트 비전 고글을 착용했다.
영화 속에서 작전 중인 DEVGRU 대원들의 시점으로 보는 나이트 비전 화면을 볼 수 있다.
<제로 다크 서티>의 주인공은 CIA 요원 마야(제시카 차스테인)다.

제로 다크 서티 
감독 캐스린 비글로우 출연 제시카 차스테인, 제이슨 클락, 조엘 에저튼 개봉 2013년
캐서린 비글로우 감독은 <허트 로커> 이후 이라크·아프가니스탄 전쟁의 종지부를 찍고 싶었던 것 같습니다. 그녀는 2011년 있었던 오사마 빈 라덴의 사살 작전, 넵튠 스피어 작전(코드 네임 제로니모)을 영화화했습니다. 바로 <제로 다크 서티>입니다. 처음에는 10년 간 오사마 빈 라덴을 행방을 쫓던 CIA 요원 마야가 실패하는 과정을 담으려 했으나 영화 촬영 중 실제 작전이 이뤄지는 바람에 영화의 내용을 수정하게 됐습니다.
<제로 다크 서티> 이외에 오사마 빈 라덴의 최후를 그린 영화는 또 있습니다. <코드네임 제로니모>(감독 존 스톡웰, 2012)이 있습니다. 2001년 9·11 테러의 주범으로 지목된 오사마 빈 라덴이 죽음으로써 더 이상 전쟁이 사라졌을까요? 이 쉬운 문제의 정답을 우리는 다 알고 있습니다. 지금도 전 세계는 테러의 위협에 놓여 있습니다. 누구를 위한 싸움인지 도무지 알 수가 없습니다.


▶2016년 테러와의 전쟁

벤슨(고 앨런 릭먼) 장군은 아마도 런던에 있는 정부 청사에서 드론 작전을 지휘한다.
공격용 드론 MQ-9 리퍼 조류형, 곤충형 등 소형 감시용 드론을 통한 영상을 실시간으로 확인할 수 있다.
작전의 수행은 영국 동남부에 있는 서리(Surrey) 기지에 있는 파월(헬렌 미렌) 대령이 한다.
드론 조종은 미국 네바다주에 있는 크리치 공군 기지에서 한다.
하와이 진주만에 있는 기지에서 전송된 영상을 통해 얼굴식별 작업을 진행한다.
케냐 나이로비에 있는 케냐 군대가 파웰 대령의 지시에 따라 언제든지 작전에 투입될 준비를 하고 있다.
테러리스트 근처에서 케냐 요원들이 새, 딱정벌레처럼 생긴 소형 드론을 테러리스트의 집 안에 투입시킨다.

아이 인 더 스카이
감독 개빈 후드 출연 헬렌 미렌, 아론 폴, 앨런 릭먼 개봉 2016년
테러와의 전쟁은 미국뿐만 아니라 영국, 프랑스에서도 겪고 있는 상황입니다. 영국 영화 <아이 인 더 스카이>는 일상이 전쟁이 된 상황을 보여줍니다. 드론을 통해서 말입니다. 이슬람 테러 세력에 합류한 영국 여성 등이 케냐에 은신 중입니다. 영국-미국-케냐 3국은 이들을 체포하기 위해 드론 합동작전을 펼칩니다. 테러리스트의 자살 조끼가 영상에 포착되면서 체포에서 사살로 작전은 변경되고 타겟이 있는 집을 향해 헬파이어 미사일을 발사하려는 순간. 드론 조종사 와츠(아론 폴) 중위는 폭발 반경 안에 들어온 소녀를 발견합니다. 그는 작전 보류를 요청합니다. 영국의 파월(헬렌 미렌) 대령과 벤슨(앨런 릭먼) 장군 등은 조속한 미사일 발사를 정부 고위 관료들에게 요청합니다. 아이의 목숨과 테러리스트의 테러로 목숨을 잃을지도 모를 사람들 사이에서 이들은 어떤 선택을 할까요.
드론 폭격은 정말 무섭습니다. 높은 고도에서 비행하는 드론은 지상에 있는 사람들이 인지하지도 못합니다. 그야말로 벼락을 맞는 것처럼 갑자기 미사일을 맞게 되는 거죠. 미국 드라마 <홈랜드> 시즌4에서도 이런 드론 공격을 다룬 에피소드가 있습니다. 미국 CIA가 요원인 주인공 캐리 매티슨(클레어 데인즈)은 가차 없이 공격을 지시하죠. <아이 인 더 스카이>에서도 미국 관료들은 뭘 고민하냐고 영국 관료들을 압박하기도 합니다. 드론 전쟁에 대한 영화는 또 있습니다. 앤드류 니콜 연출, 에단 호크 주연의 <
드론전쟁: 굿킬>(2014)입니다. 


▶그밖에 현대전을 다룬 영화들

<아메리칸 스나이퍼>. 클린트 이스트우드 감독의 전설적인 네이비실 스나이퍼의 실화를 다룬 영화. 브래들리 쿠퍼가 저격수 크리스 카일을 연기했다.
<아르마딜로>. 다큐멘터리영화 최초 칸 국제영화제 비평가주간 대상을 수상한 작품이다. 아프가니스탄 전쟁에 파병된 덴마크 병사들의 일거수 일투족을 다룬다. 촬영감독은 액션캠을 달고 실제 전장에서 병사들의 뒤를 쫓는다.
<액터 오브 밸러>. 네이비실의 실제 사건을 모티브를 만든 영화. 고증이 충실한 것으로 유명하다. 밀리터리 덕후들이라면 꼭 챙겨봐야 할 작품.
<레스트레프>. 아프가니스탄의 레스트레프 기지에서 촬영된 다큐멘터리 영화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그곳에서 팀 헤더링톤, 세바스찬 정거 감독은 아프가니스탄 전쟁의 명분이 도대체 무엇인지 질문을 던진다.

씨네플레이 에디터 두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