맙소사. 7월도 벌써 반절이나 지났다. 이렇게 한해가 접어드는구나 한숨을 푹푹 쉬다가도, 휴가를 맞아 떠날 준비로 달뜬 기분을 만끽할 시기다. 오늘 씨네플레이는 우리나라 곳곳을 들여다볼 수 있는 한국영화를 모아봤다. 외국처럼 삐까번쩍한 명소는 없을지라도, 각자의 울타리 바깥에 자리한 한국이 어떤 모습일지 엿보기에 좋은 영화들이다. "영화 <곡성>을 보고 공포가 주는 즐거움을 느낀 분이라면 꼭 '우리 곡성'에 오셔서 따뜻함이 주는 즐거움 한자락이라도 담아갔으면 좋겠다"고 쓴 유근기 곡성군수의 글을 빌려, 이 영화들을 사랑한 이들이라면 각 영화 속 도시의 매력에 흠뻑 빠져보라고 권하고 싶다.  


경상남도 통영
<하하하>

홍상수 감독의 작품은 크게 둘로 나뉜다. ‘서울의 영화서울 바깥의 영화’. 후자의 경우 강원도 강릉, 충북 제천, 충남 태안, 전북 부안, 그리고 프랑스 파리에 이르는 도시를 배경으로 삼았다.

<하하하>는 이들 가운데 실제 지역의 특징이 가장 잘 드러나는 영화다. 지금도 여전히 운영되고 있는 복국집 호동식당이 주인공 문경(김상경)의 어머니(윤여정)의 가게로 나오거나, 통영에서 가장 유명한 숙박시설인 나폴리모텔이 인물들의 숙소로 활용된다. 물론 간판도 바꾸지 않고 있는 모습 그대로다. 더불어 <하하하>는 유명 관광지가 유독 뚜렷하게 드러나는 작품이기도 하다. 한산도 제승당, 동피랑 벽화마을, (지금은 폐관한) 통영시향토역사관 등이다. 특히, 꿈 속 문경이 제승당 근처에서 이순신 장군(김영호)을 만나 통한의 고백을 하는 신은 관객들의 폭소를 유발한다.

성옥(문소리)이 사는 동피랑마을 (사진: 한국관광공사)



충청도 전역
<짝패>

<짝패>는 류승완 감독이 잔뜩 각 잡고 만든 액션영화다. 무엇보다 액션을 강조한 영화이기 때문에, 감독 자신이 직접 주연을 맡아 정두홍 무술감독과 함께 별별 액션을 잔뜩 선보인다. 영화적 고향인 액션으로 돌아온 작품인 만큼, 영화 속 공간 역시 류승완의 실제 고향인 충청도에서 찍혔다. 또 다른 주연 정두홍과 이범수 역시 충청도가 고향이라고.

영화의 배경은 충청도의 온성이다. 실제로 존재하지 않는 곳이다. 류승완 감독은 제천, 청주, 조치원, 대전 등 충청도 곳곳을 두루 오가며 가상도시온성의 면면을 만들어나갔다. 태수(정두홍)와 석환(류승완)이 갖가지 떼거지들에게 습격당하는 대규모 액션 시퀀스는 청주의 번화가 성안길에서 촬영했고, 온성역은 조치원역에서 촬영해 CG로 간판만 바꿨다.

의림지 파크랜드. 파크랜드뿐만 아니라 의림지 안 곳곳이 영화에 등장한다. (사진: 한국관광공사)



제주도 우도
<인어공주>


나의 어머니께...” <인어공주>(2004)의 오프닝 문구다. 이 작품은 주인공 나영(전도연)이 어머니(고두심)와 아버지의 고향인 섬마을에서 자신과 똑 닮은 젊은 시절 어머니(전도연)를 만나서 벌어지는 이야기를 그린 가족 판타지다.

<인어공주>의 섬마을이 바로 제주도 우도다. 우도의 전체 인구 중 30%가 해녀다. 영화 속에서 전도연이 연기하는 연순 역시 물질을 생업으로 하는 아가씨로 등장한다. 물론 해녀라는 이유만으로 우도를 선택한 건 아닐 터. 우도는 (<인어공주>가 개봉한 2004년 당시엔 아니었지만) 제주도 여행의 대표적인 코스로 언급되고 있을 만큼, 절대적인 아름다움을 자랑하는 섬이다. 새하얀 모래사장과 푸르른 바다가 눈을 사로잡는 산호, 검멀레, 하고수동 해수욕장은 물론이고, 동네 곳곳 풍경도 매우 예쁘니 자전거나 전동차를 대여해 여유 있게 머무르길 권한다.

영화 속 섬마을 아이들이 마음껏 뛰어노는 우도의 길 (사진: 한국관광공사)



전라북도 군산
<8월의 크리스마스>

아저씨~ 저 들어가도 돼요~?” 화장기 없는 다림(심은하)이 사진관 바깥에서 속삭이는 장면, 많은 사람들이 기억할 것이다. 한국 멜로드라마의 걸작 <8월의 크리스마스>의 한 순간이다. 홀로 시한부 인생을 견디는 정원(한석규)이 운영하는 초원사진관이 자리한, <8월의 크리스마스>의 배경은 전라북도 군산이다.

군산은 심은하처럼 예쁘고 똘망똘망한 스무 살 다림이 무료한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을 만큼 조용하고 휑한 도시다. 하지만, 현재에도 보존돼 관광객들의 사진 명소가 된 초원사진관을 벗어나, 눈을 크게 뜨고 골목 구석구석을 걷다보면 군산의 예쁨은 짐작보다 쉽게, 많이 발견된다. (일제에 의한 수탈이라는 뼈아픈 과거가 서려 있긴 하지만) 군산 곳곳에 놓인 일본 근대식 건물들은 분명 요즘 한국에서 우후죽순 지어지는 못생긴 집들과는 비할 수 없을 만큼 아름답다. 히로쓰가옥, 옛 군산세관, 동국사 모두 걸음으로 30분 내에 닿을 수 있는 거리에 자리하고 있다. 절대적인 맛을 자랑하는 '일해옥'의 콩나물국밥을 뚝딱 해치운 후, 힘차게 다리품을 팔아보자.

바로 그곳, 초원사진관. (사진: 군산시)



인천 중·동구
<고양이를 부탁해>

인천에서 여고를 졸업한 다섯 친구들의 스무 살을 그린 <고양이를 부탁해>는, 부둣가에서 웃고떠드는 여고생들의 모습으로 시작한다. 오프닝으로부터 점점 명도를 지워가는 영화는 크게 인천과 서울에 적을 두고 진행된다. 태희(배두나), 지영(옥지영), 비류와 온조(이은실, 이은주)가 인천에 남은 한편, 혜주(이요원)는 언니를 따라 서울로 이사했기 때문이다.

<고양이를 부탁해>는 그 둘 사이를 애써 명확히 갈라놓는 것처럼 보인다. 인천의 네 친구들이 단조로운 생활 속에서 자신의 미래를 고민하는 사이, 혜주는 서울에서 속물을 자처하며 정신없는 시간을 보내는 식이다. 그래서일까, 인천의 공간은 서울의 그것보다 훨씬 따뜻해 보인다. 차이나타운, 동인천역과 지하상가, 자유공원, 월미도 선착장, 만석동 고가도로 등 비단 실제 장소를 찍었기 때문이라고 넘겨짚기에는 부족한, 인천의 선명한 공기가 <고양이를 부탁해> 곳곳에 퍼져 있다. 에두르지 않겠다. <고양이를 부탁해>는 수도권 변두리의 가난이 가장 아름답고, 절절하게 담긴 영화다.

맛있는 중화요리점이 즐비한 차이나타운. (사진: 한국관광공사)



경상북도 경주
<경주>

삶과 죽음이 느슨하게 연결된 느낌이 인상적이었다.” 장률 감독이 경주라는 도시에 이끌린 이유다. 죽음이라는 키워드가 유독 크게 다가오지만, <경주>는 한시도 무섭거나 어둡지 않다. 이야기는 단출하다. 북경대 교수 최현(박해일)이 7년 전 찻집에서 본 춘화를 떠올리고서 정처 없이 경주를 돌아다니는 게 전부라 할 수 있다. 

최현은 경주를 구석구석 걸어다니며여러 사람을 마주한다. 춘화를 본 찻집 아리솔의 주인 공윤희(신민아), 불쑥 경주로 찾아온 옛 애인 여정(윤진서), 윤희의 친구들 다연(신소율)과 강선생(류승완), 박교수(백현진) 등을 만난다. 최현의 여정에 이렇다 할 사건은 없지만, 그가 다닌 아리솔찻집, 보문호수, 고분능 같은 장소만큼은 이상하리만큼 선명하게 뇌리에 박힌다. 특히 영화를 본 사람들이라면 누구나 저 정직하게 동그란 고분능에 누워 밤하늘을 보고 싶어질 것이다. 비록 불법일지라도.




강원도 영월
<라디오 스타>

<라디오 스타>(2006)의 배경이 된 강원도 영월은, 주인공 최곤(박중훈)이 떨어질 수 있는 가장 밑바닥이다. 히트곡 비와 당신으로 88년 가수왕에 올랐던 그는 이제는 미사리 바에서도 무시당하는 처지가 돼, 거기에서도 떠밀려 라디오DJ를 맡기 위해 영월에 도착한다.

하지만 밑바닥이야말로 도약을 위한 가장 적합한 조건이 아니던가. <라디오 스타>를 연출한 이준익 감독은 영월을 최곤이 다시 희망을 찾을 수 있는 장소로 그린다. 다만 대단한 볼거리가 드러나진 않는 대신, 작은 지방 도시의 익숙하고 정겨운 풍경을 드러내는 데에 공을 쏟았다. 그 풍경은, 이른바 명소의 남다른 모습보다는, 영월에 사는 사람들의 평범한 얼굴에 더 가깝다. 다른 곳보다는 지역색이 덜 뚜렷하기 때문에 가능한 방식일 것이다. “OO를 보고, ㅁㅁㅁ를 먹어야겠어!” 하는 목적 없이, 그저 특별할 것 없는 시골에 편히 마음을 놓는 여유를 누리고픈 이들에게 영월을 권한다.

레프닝의 명소, 동강. 노브레인이 연기한 영화 속 밴드의 이름이 동강에서 딴 '이스트 리버'다. (사진: 한국관광공사)



씨네플레이 에디터 문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