니콜라스 케이지는 작품에서 괴상한 표정을 지을 때가 많은데요. 그래서 해외에서는 그의 연기장면이 짤방으로 자주 활용 되곤 합니다. 우리나라에서는 한국계 여성 앨리스 킴과 결혼한 이후, ‘케서방’이라는 애칭으로 불리기도 했으나. 지난 2016년 그녀가 외도하는 정황이 포착되는 바람에 12년간의 결혼 생활을 정리하게 되었습니다. 또한 니콜라스 케이지는 병적인 낭비벽으로 여러번 파산할 뻔한 적도 있습니다.
이런 복잡한 개인사를 살고 있지만, 그가 위대한 배우임은 의심할 여지가 없습니다. 니콜라스 케이지는 좀 특이한 팬덤의 배우입니다. <콘 에어>나 <페이스 오프>같이 잘 만든 상업영화의 주연으로 출연하는가 하면, <아리조나 유괴사건>같이 독특한 감성의 작품에도 아무렇지도 않게 녹아듭니다.
2000년대 이후의 니콜라스 케이지는 근본을 알 수 없는 괴작과 그만그만한 상업영화를 오가고 있지만, 여전히 많은 사랑을 받는 배우입니다. 특히 최근엔 B급 감성 충만한 작품들에 연달아 출연하면서, 뭔가 일가를 이루었다는 느낌마저 듭니다. 국내에는 잘 알려지지 않았지만, 그의 팬이라면 절대 놓칠 수 없는 최근 작품을 소개합니다.
맘 앤 대드
<맘 앤 대드>는 세상의 모든 부모가 갑자기 정신착란 상태가 되어 24시간 동안 자신의 아이들을 죽이기 위해 무차별적인 폭력을 행사한다는 내용입니다. 좀비떼처럼 달려드는 어른들을 피해 아이들은 목숨을 걸고 도망 다닐 수밖에 없습니다. 이런 집단 히스테리가 왜 일어나는지에 대한 설명은 없고 오직 브렌트(니콜라스 케이지)와 켄달(셀마 블레어)이 자신의 아이들을 죽이려 하는 끔찍한 장면들만 이어집니다.
아이들이 자라면서 부모에게 갖게 되는 자연스러운 반항심만큼이나, 부모들도 자기 자식들이 ‘죽이고 싶을 정도로’ 미워서 주먹 불끈 쥐게 되는 일상의 순간들이 있겠지요. 예고편에서 아들이 던진 공에 뒤퉁수를 맞고 돌아보는 니콜라스 케이지의 표정은 또 하나의 짤방이 될지도 모르겠습니다. <맘 앤 대드>는 이렇게 표출된 적 없는 어른들의 감정을 건드리며, 독특한 쾌감을 선사합니다. 니콜라스 케이지가 동요를 부르면서 도끼로 집안을 때려부수는 장면에서 육아 스트레스에 시달리는 가장의 은밀한 카타르시스가 느껴집니다.
이렇게 미친 설정을 아무렇지도 않게 연기할 배우는 아무리 생각해도 니콜라스 케이지밖에 없습니다. 코믹스 마니아인 니콜라스 케이지의 야심작이었던 <고스트 라이더 3D: 복수의 화신>은 엄청난 혹평에 시달렸던 작품이었는데요. <맘 앤 대드>는 이 작품을 함께 한 브라이언 테일러가 각본을 쓰고 연출한 작품으로 보란 듯이 호평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 맘 앤 대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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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독 브라이언 테일러
출연 니콜라스 케이지, 셀마 블레어, 앤 윈터스
개봉 2017 미국
맨디
올해 선댄스 영화제에서 가장 큰 주목을 받았던 작품 중 하나입니다. 1983년의 숲속. 시끄러운 세상을 등진 레드(니콜라스 케이지)는 예술가인 미모의 아내 맨디(안드레아 라이즈보로)와 함께 평화로운 삶을 살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사이비 종교의 광신도들이 그들을 습격합니다. 이 사이비종교의 교주는 맨디를 납치해 마약으로 정신을 잃게 하여 겁탈하려 하지만, 그녀가 반항하자 잔인하게 살해합니다. 세상 전부와 같았던 아내의 죽음을 알게 된 레드의 처절한 복수가 시작됩니다.
이렇게 영화의 전반부는 레드가 잔인해질 수 있는 이유를 충분히 설명합니다. 특히 산속에서 자급자족하며 살아온 야생남 레드의 복수엔 도끼, 톱, 칼, 석궁 등 온갖 원시적인 무기들이 등장해 시원한 고어 장면들을 쏟아냅니다.
단순히 80년대를 배경으로 한 고어영화 오마주라고만 볼 수 없는 이유는 감독이 ‘파노스 코스마토스’이기 때문입니다. 그가 2010년에 내놓은 저예산 SF 영화 <비욘드 더 블랙 레인보우>는 첫 장편이었음에도 독특한 세계관과 묵시록적인 영상미로 마니아들의 열광적인 지지를 받았던 작품입니다. 그가 7년 만에 내놓은 <맨디> 역시, 하드고어 슬래셔의 장르적인 쾌감을 선사하는 동시에 특유의 싸이키델릭한 분위기로 관객을 압도하고 있습니다.
- 맨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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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독 파노스 코스마토스
출연 니콜라스 케이지, 안드레아 라이즈보로
개봉 2018 미국
니콜라스 케이지의 '나 혼자 간다'
9.11 테러가 일어난 후의 미국. 조지 부시 대통령과 미군은 총력을 기울이지만, 테러의 원흉인 오사마 빈 라덴을 좀처럼 잡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이때 신장병을 앓고 있는 일용직 노동자 ‘게리 포크너’가 오사마 빈 라덴을 직접 잡아서 처단하고 ‘영웅’이 되겠다며, 사무라이 검을 들고 파키스탄으로 날아갑니다.
놀랍게도 이 작품은 ‘게리 포크너’라는 실존 인물을 바탕으로 하고 있습니다. 중년이 되어서도 집 한 칸 없이 자신이 일하는 건물에서 먹고 자는 한심한 인생이지만, 나라사랑만큼은 유별난 인물입니다. 게리 포크너는 어린 시절부터 왕따였음에도 자신이 신의 계시를 받은 ‘영웅’이라고 믿고 있습니다. 어렵게 돈을 구해 파키스탄으로 날아간 그는 아무런 소득 없이 관광 아닌 관광을 즐기고 있었는데, 느닷없이 ‘예수’가 트럭을 몰고 나타나 다시 한 번 계시를 내린다는 식입니다. 작품은 이렇게 니콜라스 케이지가 최근 자주 출연하는 ‘정신 나간 영화’의 계보를 이어가고 있습니다.
니콜라스 케이지는 ‘히어로 마니아’로도 유명한데요. 마블의 히어로 ‘루크 케이지’를 좋아해서 자신의 예명에 ‘케이지’를 넣는다거나, 천문학적인 금액으로 절판된 히어로 코믹스의 원본을 구하는 일 등으로 유명합니다. 한번은 팀 버튼 감독과 함께 세상에서 가장 우울한 슈퍼맨 영화를 만들려고도 했었지요. 이런 그의 평소 모습이 ‘영웅’이 되고 싶은 게리 포크너와 묘하게 겹쳐지는데요. 여기에서의 니콜라스 케이지는 그동안 보여준 적 없는 하이톤의 목소리로 쉴새 없이 떠들면서 새로운 영역의 정신나간 연기를 보여줍니다.
이렇게 심상치 않은 작품들이 니콜라스 케이지에게 제 2의 전성기를 마련해줬으면 좋겠습니다.
씨네플레이 객원 에디터 안성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