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92월 동계올림픽 유치를 선언한 지 20년 만이자 3수 끝에 오는 201829, 드디어 평창 동계올림픽이 시작된다. 1988년 서울 하계올림픽에 이어 국내에서 30년 만에 열리는 두 번째 올림픽으로, 이로써 세계 4대 스포츠 이벤트(하계, 동계 올림픽, 월드컵, 세계육상대회)를 모두 개최한 6번째 나라가 되었다. 북한의 핵위협과 미국의 선제 타격론, 중국의 사드 보복, 일본과의 위안부 합의 파기, 러시아 도핑 스캔들로 인한 출전 금지 등 여러 국제 상황들과 여자 아이스하키 단일팀과 같은 국내적 이슈들까지 맞물리며 여러 차례 위기가 있었지만, 그럼에도 큰 차질 없이 개막을 목전에 두고 있다.
 
각본 없는 드라마라는 말답게 스포츠는 그 어떤 픽션보다도 더 큰 감동과 전율을 선사하는데, 그런 이유에서 실화를 바탕으로 삼은 영화들이 꾸준히 제작되어 왔다. 특히나 동계올림픽은 설원과 빙판이라는 특수성으로 시각적 효과가 크고, 팀 경기보다 개인 경기가 주류를 이루는 만큼 하계올림픽에 비해 많이 영상화됐고, 또 상업적으로도 큰 성공을 거뒀다. 승리에 대한 간절한 염원과 의지를 담아 올림픽의 감흥을 더욱 고취시킬, 동계올림픽을 배경으로 삼은 사운드트랙들을 골라보았다. 이 음악들은 선수들의 피와 땀이 밴 치열한 승부 속에서 피어나는 결전의 대서사시(!)를 더욱 극대화시킬 것이다.
 

쿨 러닝
(봅슬레이)

By 한스 짐머

동계 올림픽을 다룬 영화중에서 가장 먼저 떠올릴 작품이라면 단연 <쿨 러닝>이다. 1988년 캘거리 동계올림픽에 출전한 자메이카 봅슬레이 팀의 실화를 다룬 코미디로, 눈과 겨울과는 전혀 관련이 없을 것 같은 적도 부근의 육상 선수들이 겨울 스포츠에 도전하는 고군분투를 다뤄 1993년 큰 성공을 거뒀다. 그저 그런 코미디 감독이었던 존 터틀타웁을 메이저로 진출시킨 발판이자 코미디언 존 캔디의 거의 마지막 작품으로도 잘 알려져 있다. 음악을 담당한 건 당시 가장 핫했던 한스 짐머로, 신시사이저를 활용한 유려한 멜로디 감각과 웅장하고 박진감 넘치는 오케스트라가 잘 조화된, 초기의 그만의 색채를 유감없이 접할 수 있다.


 
사운드트랙에 실린 ‘The Walk Home’은 스포츠 하이라이트에서 자주 사용됐던 곡으로, 짐머의 롸킹한 사운드에 중미에서 자주 쓰는 스틸 드럼을 활용해 지역색을 강조하며 이국적인 느낌을 자아낸다. 자메이카가 전면에 나서는 만큼 레게음악들이 빼곡하게 실린 사운드트랙도 인상적인데, 지미 클리프가 부른 ‘I Can See Clearly Now’가 크게 히트했다. 원곡은 1972년에 조니 내시가 불러 빌보드 차트 1위를 기록한 곡으로, 밥 말리의 영향을 받아 레게리듬이 접목된 노래였다. 여기에 웨일링 소울스와 다이아나 킹, 슈퍼 캣, 토니 레벨 등 다양한 실력파 레게 뮤지션들이 합류한 사운드트랙은 겨울의 싸늘함을 날려버릴 만큼 뜨겁고 열정적이다.

쿨 러닝

감독 존 터틀타웁

출연 리온, 더그 E. 더그, 롤 D. 루이스, 마릭 요바, 레이몬드 J. 배리

개봉 1993 미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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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대표
(스키점프)

By 이재학

할리우드에 <쿨 러닝>이 있다면 국내엔 김용화 감독의 <국가대표>가 쉽게 떠오른다. 1998년 나가노 동계올림픽에 출전한 스키 점프 국가대표팀의 실화를 모티브 삼아 허구로 각색한 작품으로, 2009년 개봉해 800만 넘는 흥행을 기록했다. 코미디와 신파가 황금비로 섞인 각본에, 스키 점프라는 이색적인 비주얼이 결합돼 많은 관객들을 사로잡았다. 전작 <미녀는 괴로워>에서 김용화 감독과 호흡을 맞추며 영화음악가로 성공적인 데뷔를 한 러브홀릭출신의 이재학이 그대로 음악을 맡아 인상적인 사운드트랙을 완성했다. 적재적소에 어울리는 탁월한 선곡과 대중음악으로 다져진 내공이 빛을 발해 영화의 감동을 배가시킨다.

그 정점은 바로 주제가 ‘Butterfly’, 이재학이 소속된 당시 플럭서스 뮤직의 가수들(크리스티나, 이승열, 호란과 알렉스, 박기영, 웨일, 정순용, 미키, 혜원, 장은아)이 총출동해 화려하면서도 조화롭게 불러주고 있다. 도전과 용기란 테마에 걸맞는 희망찬 멜로디가 갖는 힘은 영화의 느슨한 코미디와 구구절절한 신파를 절묘하게 끈끈하게 붙여주며 시원스런 활강의 묘미를 더했다. 여기에 허규가 부른 ‘I Can Fly’나 크리스티나가 소화한 ‘Raining’의 감성도 영화를 초월했으며, 로버트 랜돌프의 펑키한 ‘Ain't Nothing Wrong With That’도 코미디에 잘 어울리는 신명나는 선곡이었다. 물론 이재학의 스코어들도 만족스럽다.

국가대표

감독 김용화

출연 하정우, 성동일, 김지석, 김동욱, 최재환, 이재응, 이은성

개봉 2009 대한민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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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수리 에디
(스키점프)

By 매튜 마게슨

1988년 캘거리 동계올림픽에서 유명했던 건 봅슬레이에 출전한 자메이카 팀만이 아니었다. 영국의 스키 점프 국가대표로 출전한 에디 에드워즈도 있었다. 국가대표라고 하기엔 엉성한 실력과 저질 체력을 가졌지만, 순위를 떠나 도전이란 목표를 향해 달려간 진정한 올림픽 영웅의 모습을 보여줘 박수갈채를 받았다. <킹스맨>의 매튜 본은 이 실화를 가져와 21세기 버전의 <쿨 러닝>을 만들어냈다. 태런 에저튼의 놀라운 변신과 휴 잭맨의 캐스팅도 좋았지만, 무엇보다 인상적인 건 80년대 영국 분위기를 재현해낸 매튜 마게슨의 복고지향적인 신스톤 사운드다. 촌스럽지만 감각적이면서도 사랑스러운 유로비트 사운드는 영화의 따스함을 그대로 간직한다.

재밌게도 매튜 마게슨은 한스 짐머의 리모트 콘트롤 프로덕션 소속 영화음악가다. <독수리 에디><쿨 러닝>과의 인연은 음악에서도 이어진다. 매튜 본과 <킥애스><킹스맨> 시리즈를 함께 한 덕분에 이번 <독수리 에디> 음악까지 꿰찬 그는 자신의 진면목을 과시하는 데 아낌이 없다. 짐머 사단답게 신명나고 활력 넘치는 신스 사운드를 들려준다. 물론 반 헤일런의 ‘Jump’나 홀 앤 오츠의 ‘You Make My Dreams’, 디콘 블루의 ‘Real Gone Kid’ 80년대 감수성을 고스란히 담고 있는 신스 팝, 뉴웨이브 삽입곡들의 향연도 놓쳐선 안 된다. 여기에 오랜만에 신곡을 발표한 홀리 존슨과 하워드 존슨, 폴 영 등 노장들의 가세도 인상적이다.

독수리 에디

감독 덱스터 플레처

출연 태런 에저튼, 휴 잭맨, 크리스토퍼 월켄

개봉 2016 영국, 미국, 독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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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라클
(아이스하키)

By 마크 아이샴

1980년 레이크 플래시드 동계올림픽에서 1964년부터 세계 정상을 놓치지 않았던 소련 아이스하키 팀을 누르고 우승한 미국 팀의 빙판 위의 기적을 다룬 작품. 당시에는 NHL 프로선수들이 올림픽에 출전하지 않았고, 냉전이란 특별한 상황에서 미국과 소련의 대리전 양상을 띠었기 때문에 이 결승의 의미는 더 값졌다. 너무나도 미국적인 색채를 지녔지만, 개빈 오코너의 정석적인 연출과 커트 러셀을 비롯한 탄탄한 배우들의 호연으로 웰메이드 스포츠물의 표본을 보여준다. 이 작품을 인연으로 마크 아이샴은 개빈 오코너 영화들의 음악을 맡고 있다. 그만큼 마크 아이샴의 음악은 인상적이었다.

재즈 트럼피터이자 영화음악가로 활동하는 그는 의외로 많은 스포츠 영화들의 음악을 맡아왔는데, 그 종목 또한 매우 다양하다. 복싱이 나왔던 <워리어>나 여자 축구의 <그레이시>, 야구선수 재키 로빈슨을 다룬 <42>와 유소년 야구팀을 그린 <하드볼>, 미식축구의 <더 익스프레스>와 경마가 배경이 된 <레이싱 스트라이프스>까지 어느 것 하나 전형적이지 않고 독특한 시선과 스타일을 제시했다. <미라클>에선 아이스하키의 격렬함과 냉전이란 시대적 배경을 담기 위해 가히 액션스릴러에 가깝다고 할 만큼 파워풀하며 격렬한 사운드를 들려주고 있으며, 애국적이고 가슴을 울리는 진중한 오케스트라는 노골적이지만 강력한 감동을 자아낸다.

미라클

감독 게빈 오코너

출연 커트 러셀, 패트리시아 클락슨, 노아 엠머리히

개봉 2004 미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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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이 머무는 곳에/
사랑은 은반 위에/
아이, 토냐
(피겨스케이팅)

By 마빈 햄리쉬 & 패트릭 윌리엄스 & 피터 너쉘

동계 올림픽의 꽃이라고 하면 역시나 피겨 스케이팅을 꼽을 수 있는데, 그런 만큼 많은 영화들이 만들어졌다. 그 중 가장 대표적인 작품은 실제 피겨 스케이팅 선수 출신의 린-홀리 존슨이 출연한 1978년작 <사랑이 머무는 곳에>. 전형적인 성장담에 시련극복기를 다룬 러브스토리지만, ‘선출배우가 보여주는 화려한 기술과 마빈 햄리쉬라는 최강의 영화음악가가 뭉쳐 범상치 않은 작품으로 변모시켰다. 70년대를 대표하는 작곡가인 햄리쉬는 오스카와 골든 글로브, 에미와 토니상을 모두 휩쓴 전 세계 12명 중 하나이자, 리처드 로저스와 함께 퓰리처상까지 휩쓴 지구상의 단 2명 중 하나인 천재 작곡가로, 감미롭고도 아름다운 음악으로 이성을 마취시킨다. 이 영화의 주제곡 ‘Through The Eyes Of Love’는 오스카와 골든 글로브, 그래미의 주제가상에 후보로 오르며 많은 사랑을 받았다.

사랑이 머무는 곳에

감독 도널드 라이

출연 린 홀리 존슨, 콜린 듀헐스트

개봉 1978 미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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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녀가 함께 하는 피겨 스케이팅 페어는 스포츠에 로맨스를 접목하기 딱 좋은 종목인데, 로코가 할리우드를 휩쓸던 92년 토니 길로이 각본으로 만들어진 <사랑은 은반 위에>는 후에 3편의 속편이 나올 만큼 인기를 끈 작품이다. 1992년 알베르빌 동계올림픽에 출전하기 위해 아이스하키 선수 출신을 페어로 맞이하며 티격태격하다 사랑에 빠진다는 전형적인 스크루볼 코미디지만, 두 남녀 배우의 달달한 매력과 믿기지 않는 비장의(?) 페어 기술, 그리고 신명나고 무드 있는 삽입곡들이 어우러지며 많은 이들의 취향을 저격했다. 음악을 맡은 패트릭 윌리엄스는 TV와 영화에서 활발하게 활약한 베테랑 작곡가로, 로맨틱한 상황과 스포츠물의 열혈 사운드를 동시에 만족하는 스코어를 선사한다. 까끌까끌한 목소리로 감미롭게 불러주는 조 카커의 주제가 ‘Feels Like Forever’도 은반 위의 사랑을 아름답게 포장해낸다.

사랑은 은반 위에

감독 폴 마이클 글레이저

출연 디비 스위니, 모이라 켈리, 로이 도트라이스, 드위어 브라운, 테리 오퀸

개봉 1992 미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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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피겨 스케이팅이 반드시 아름다운 것만은 아니다. 시기와 질투로 얼룩져 추하고 끔찍하게 일그러진 민낯을 드러내는 경우도 있다. 1994년 릴레함메르 동계올림픽 대표 선발을 앞두고 라이벌이던 낸시 케리건의 피습을 사주한 토냐 하딩이 그랬다. 이 사건을 블랙 코미디로 다룬 영화 <아이, 토냐>는 아직 개봉되진 않았지만, 이번 오스카 여우주연상에 마고 로비와 여우조연상에 앨리슨 재니를 후보로 올리며 많은 관심과 흥미를 자아내게 만든다. 사운드트랙엔 다이어 스트레이츠와 로라 브래니건, 플리트우드 맥, 하트, 클리프 리처드, 배드 컴패니 등 쟁쟁한 아티스트들의 70-80년대 주옥같은 명곡들이 실려 있고, 이들 사이로 슬쩍 독특한 인장의 피터 너쉘의 스코어들이 배치돼있다. 마치 대니 엘프먼과 토머스 뉴먼을 섞어 필립 글래스로 마무리한 것 같은 미니멀한 사운드는 미추의 경계를 무너뜨리며 야욕의 허망함을 드러낸다.

아이, 토냐

감독 크레이그 질레스피

출연 마고 로비, 세바스찬 스탠, 앨리슨 제니

개봉 2017 미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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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운드트랙스 / 영화음악 애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