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 10월은 강동원 팬들에겐 선물 같은 시간일 것이다. 신작 <전,란>이 공개돼서? 그것도 있지만 그동안 OTT 스트리밍으론 만나기 어려웠던 2007년 영화 <M>이 다시 OTT 플랫폼에 입점했기 때문이다. 이명세 감독이 연출을 맡고 강동원, 이연희, 공효진이 주연을 맡은 이 영화는 기대작으로 손꼽혔으나 개봉 당시 50만 명도 넘지 못했다. 그렇다고 '저주 받은 걸작' 같은 것은 아니고, 지금 보더라도 난해한 스토리텔링에 '그럴 만 했지' 싶은 작품이다. 그럼에도 이 <M>은 강동원의 필모그래피에서도, 한국영화 계보에서도 유례없이 특이한 지점을 점유하고 있으니 이렇게 OTT 플랫폼에 입점한 시점에서 한 번쯤 살펴보면 좋을 것 같아 '다시 보기' 리뷰를 남긴다.
Mystery
<M>의 가장 독특한 지점은 스토리를 풀어놓는 방식이다. 이야기만 두고 봤을 때는 한줄 요약까지 가능한 간단명료한 이야기지만, <M>은 해당 이야기에서 필요한 정서를 유발할 수 있을 때까지 이미지를 끊임없이 제시한다. 한 줄로도 쓸 수 있는데, 반대로 A4 한 페이지를 가득 채울 수 있는 그것이 바로 <M>의 핵심이다.


“나는 나중에 당신이 아주 많이 슬퍼했으면 좋겠어”라는 의미심장한 내레이션으로 막을 올리는 <M>은 슬럼프에 빠진 소설가 민우(강동원)의 상황부터 묘사한다. 베스트셀러 작가로 차기작 계약까지 마치고 신작을 집필해야만 하는 민우는 제대로 잠에 들지 못한다. 누군가 자신을 지켜보고 있다는 느낌과 어렴풋이 들려오는 환각에 병원까지 찾지만 차도가 있진 않다. 반면 관객의 눈에 민우를 끊임없이 쫓아다니는 상대는 오히려 선명하다. 가방을 메고 종종 걸음으로 민우의 주변을 맴도는 미미(이연희)는 그러다가 우산을 든 사내에게 공격을 당할 뻔하기도 한다. 민우는 왜 미미를 의식하지 못하는가, 미미는 왜 갑작스럽게 공격을 당하는가. 이런 미스터리를 던지며 관객들을 이야기 속으로 던져놓는다.

<M>은 그 제목처럼 일부러 모호하게 만든 영화다. 미미가 좋아하는 것이 다 담겨있다(모딜리아니, 모짜르트, 달, 민)는 단어 M은 그외에도 영화를 관통하다는 핵심들을 담고 있다. 그중 가장 중요한 것이라면 미스터리일 것이다. 영화는 처음 제시한 미스터리가 해소되는 순간 또다른 미스터리를 발생시켜 이야기를 이어간다. 중반부까지 가면 미스터리의 대략적인 해답이 제시되며 이 미스터리가 왜 민우에게 나타나는지를 상기시키고 마지막으로 남은 질문을 향해 달려간다. 민우는 왜 이런 일련의 현상을 겪고 있는가.
Maze

마지막까지 도달하면 의외로 쉽게 풀리는 미스터리를 <M>은 하나의 요소를 더해 더욱 복잡하게 만든다. 바로 꿈과 현실을 겹친 미로(Maze)적 국성이다. 회자가 여러 명일 때, 일반적인 영화들은 화자에 따라 차이를 둔다. 일례로 주 색감을 바꾼다거나 공간의 구성을 아예 달리하는 식이다. <M>은 그와 정반대로 여러 화자를 통과하는 카메라에 거울이나 유리, 다른 매체를 배치함으로써 관객을 더욱 헷갈리게 만든다. 단순히 스토리를 어렵게 구성하는 것을 넘어 이것이 <M> 전체를 지배하는 미장센이다. 이 거울(이 또한 Mirror, M이다)은 일반적으로 화면의 공감간을 더한다거나 대화 중인 두 사람을 한 프레임 안에 담는다거나 그런 실용적인 부분에서 활용되지 않는다. 오히려 이미지가 반복돼 관객이 혼란을 느끼게끔 유도한다. 일례로 병원에서 나온 민우가 거리를 따라 걷고 카메라가 그대로 팬을 하면 이미 그가 나온 직전 프레임에서 잡혔던 거리가 그대로 펼쳐져있다. 민우와 미미, 두 사람의 관계를 드러내는 것은 물론이고, 불가능한 공간적 감각을 불러일으켜 관객에게 이것이 현실인지 꿈인지 그 모호함을 느끼도록 설계한 것이다.



이같은 미로적 구성은 한 프레임 안에서도 발생하는데, 단일한 영상을 그대로 쓰는 것이 아니라 프리즈 프레임 기법, 즉 정지 프레임 몇 가지만으로 구성하는 것이다. 미미와 민우가 바 루팡에서 마주쳐 대화를 나누는 장면이 그 예시다. 어떤 면에서 영상보다 사진의 몽타주에 가까운 이런 장면들은 눈앞에 펼쳐지는 현실을 보는 듯한 영화의 현실 복제적 감각이 아닌, 기억에 남겨진 것을 재현하는 듯한 느낌을 주며 호기심과 정서를 유발한다. 이는 <M>의 미스터리가 최종적으로 민우의 기억(Memory)와 관계 있는 것을 암시하는 것이기도 하다.
Memory

이쯤에서 강동원과 이연희에 대한 이야기를 해본다. 약간의 스포일러가 있을 수밖에 없는데, <M>은 다름 아닌 첫사랑에 관한 이야기다. 민우에게 맴도는 미미는 고등학생 시절 서로에게 마음을 품었던 동창이다. 미미가 좋아하는 모차르트는 그의 어머니가 하는 미용실 이름인데, 민우가 이 모차르트 미용실에서 이발을 하면서 두 사람은 가까워진다. 아마도 강동원, 이연희의 팬이라면 이 장면만 똑 떼서 몇 차례로 돌려볼 수 있을 것이다. 두 사람은 풋풋한 그때의 감성을 가득 담아 좋아하는 상대에게 가까워지는 그 설렘을 표현한다. 진작에 '비주얼리스트'로 유명한 이명세는 직전까지의 다소 눅눅한 기운을 거둬내고 쾌청한 하늘 아래 두 고등학생의 사랑을 담는다. 이 전까지 <M>의 미스터리 공세에 머리가 지끈거렸던 관객이라도 이 장면만큼은 넋 놓고 보게 될 듯. 바다와 달, 그리고 영사기를 거쳐 다시 도착한 가게 앞에서 서로를 의식하게 된 민우와 미미는 모든 사람들의 마음에서 첫사랑을 소환시킨다.

영화는 여기서 끝이 아니기에, 이어지는 장면은 다시 현재의 민우가 겪는 혼란으로 되돌아간다. 그러나 이 글에서는 스포일러 방지 및 영화의 방식 설명은 충분히 했으니 배우들의 이야기로 이어간다. 강동원은 이 작품으로 이명세 감독과 다시 만났다. 전작 <형사 DUELIST>에서 자신의 존재감을 한층 더 복돋아준 은혜를 갚기 위함일지도 모르나, 꽃미남이란 타이틀에서 그치지 않고자 새로운 도전을 거듭했던 그에게 <M>은 천재일우의 기회로 보였을 것이다. 신경질적인 난폭함과 추억 속 첫사랑, 그리고 고민하는 작가 등 극에서 민우는 감당해야 하는 혼란만큼 다양한 감정을 표현한다. 강동원은 영화를 이끄는 리드롤로서 연기를 펼치고 싶은 욕심을 <M>에서 해소하고 싶었는지 모른다. 이연희는 표현보다 감춰야 하는 캐릭터라는 한계점을 감안하더라도 아쉬운 부분이 많지만, 극중 내레이션처럼 “정말 예쁘고 누군가를 아껴주고 거짓말을 못하는 눈”을 가진 미미로서 <M>의 무드를 탄탄하게 받쳐준다. 이러니저러니 해도 두 사람의 얼굴합만으로도 <M>의 미스터리와 로맨스가 전혀 다른 경로를 탐색함에도 하나로 귀결될 수 있는 힘이 돼준다.

이처럼 <M>은 (그때도 그랬지만) 현 시점에서 정말 희귀한 영화다. 미스터리로 관객을 밀어붙이지만 마지막에 도달했을 땐 정서와 무드가 더 강렬하게 남는, 어떤 면에선 배우들조차 미장센의 일환으로 사용한 이미지텔링의 최후의 보루다. 필람하라고 추천할 수 없지만 영화의 새로운 면을 만나고 싶다면, 그리고 강동원과 이연희의 팬이라면 꼭 보길 권하고 싶다. 아참, 관람 포인트를 하나 더 붙인다면 이 영화에서 이연희와 강동원이 부른 '안개'(노래 정훈희)를 만날 수 있다. 그걸 듣는 순간 아, 보길 잘했다 생각이 번뜩 들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