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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정민 씨가 연기할 때 늘 눈을 촉촉하게 해가지고 저도…” 〈전, 란〉강동원

추아영기자
강동원 (사진 제공 = 올라운드 컴퍼니)
강동원 (사진 제공 = 올라운드 컴퍼니)

조금의 망설임도 없다. 오랜만에 액션 사극 영화로 돌아온 강동원 배우는 영화 <전, 란>과 그가 맡은 인물 천영에 대해 묻는 질문에 일말의 고민도 없이 답했다. 직접 선택한 작품의 시나리오를 꼼꼼히 해독하고 인물의 심리를 이해하기 위한 그간의 노력과 작품에 대한 애정이 있었기에 가능하지 않았을까. 아니나 다를까. 확신에 찬 그의 대답에는 천영이라는 사람에 대해 더 가까이 다가가기 위해 직접 의견을 개진한 그의 시간이 묻어나 있었다.

시간이 지날수록 그의 작품에 대한 이해는 더 풍성해졌다. 남모르게 올라운더 배우로 성장하고 있었던 강동원은 직접 기획한 영화의 제작 소식을 밝혔다. 그와의 인터뷰에서 기대하지 않았던 수확은 이뿐만이 아니다. 그는 이번 인터뷰에서 박정민 배우가 불러온 종려와 천영의 로미오와 줄리엣 논란도 말끔히 종결시켜 줬다. 강동원 배우를 만나 영화 <전, 란>의 액션과 인물 천영에 관해 들어보았다.

강동원 (사진 제공 = 올라운드 컴퍼니)
강동원 (사진 제공 = 올라운드 컴퍼니)

올해 부산국제영화제에서 박정민 배우가 “제가 양반이고, 강동원이 노비”라는 말을 해서 바이럴을 많이 탔잖아요. 처음에 노비 역할을 맡게 되었다는 것을 알게 됐을 때, 어땠는지 궁금합니다.

저는 정민 씨가 그 얘기 할 때마다 부모님이 속상하실 것 같다는 생각이 계속 들더라고요. 정민 씨도 얼마나 귀티 나는데 본인이 자학 개그처럼 하니까. 근데 정민 씨가 먼저 캐스팅되어 있었어요. 제가 노비 역할을 한다고 했을 때는 저의 친구들이 단톡방에 이말년 작가님의 「이말년씨리즈」 만화 ‘조선 쌍놈’ 짤을 보내줬어요. 그 만화 대사가 “나는 쌍놈이다. 잘생기고 키도 크고 잘났지만 쌍놈의 자식이라 쌍놈이다” 이런 대사예요. 아무튼 그걸 친구가 보내줬었는데 웃겨서 정민 씨한테도 보내줬어요.

강동원이 노비라는 설정도 재미있지만, 강동원 배우가 출연한다고 하면 사람들이 기대하는 바가 있잖아요. 강동원 비주얼에 대한 기대가 있을 수 있는데, 이번에는 외형적인 모습을 어떻게 다르게 구현하려고 하셨는지 궁금합니다.

제 의견은 “머리 풀어 헤치자” 정도만 제안했었어요. 초반에 산발로 하고 가면 어떻겠냐 말했더니 감독님도 그런 생각이 있으셨던 것 같더라고요. 바로 좋다고 하셔서 그렇게 했고 수염 길이를 두고 회의를 많이 했는데, 지금 길이로 정해졌죠. 예전에는 수염을 붙여도 수염이 안 어울렸는데 이제는 어울리더라고요. 나이가 들어서 자연스럽게 주름이 생기니까 수염을 붙여도 잘 어울리더라고요.

이전에 천영 역은 다른 스타일로 연기를 하셨다고 밝히셨는데, 어떤 부분에 변화를 주셨나요?

천영을 연기할 때는 감정을 많이 내질렀어요. 제가 원래 내지르는 연기를 좋아하는 편은 아닌데 이번에는 1차원적으로 하려고 노력했어요. 똑똑한 친구는 아니니까요. 그래서 일차원적인 사람이겠다 싶었어요. 그래서 감정을 그냥 팍 뱉고 던지자고 생각했어요. 너무 많이 생각하지 말고 그냥 느끼는 대로 하려고 했어요. 원래 저는 감정을 안에 묻어두고 표현하는 걸 좋아하는데 이번에는 계속 질렀죠.

〈전, 란〉스틸컷
〈전, 란〉스틸컷

강동원 더하기 사극은 액션을 빼놓을 수가 없는 것 같거든요. 이제는 관객분들도 그런 부분을 기대하는 것 같아요.

글쎄요. 한복 입으면 꽤 잘 어울리는 느낌은 있긴 한데 그래서 그런가. 근데 저는 사극 작업하는 것이 되게 좋아요. 갓을 써도 멋있고, 칼 쓰는 것도 멋있어서. 사실 제가 한 3년 전에 자고 일어나서 소파에 앉아 있는데, 몸이 너무 피곤한 거예요. ‘이러다 더 나이가 들면 액션을 못 찍겠구나’란 생각이 들었어요. 그래서 오랜만에 칼 쓰는 액션을 찍고 싶으니까 그런 내용의 작품을 기획했어요. 그게 아마 잘하면 내년이나 내후년에 들어갈지도 모르겠네요.

본인이 직접 기획을 했다는 건가요?

네, 칼싸움이 등장하는 영화로 시놉을 쓰고 시나리오는 맡겼어요. 제가 시나리오를 쓸 실력은 안 돼서. 이 영화는 제작도 저희 회사에서 100% 다 하고요.

〈전, 란〉스틸컷
〈전, 란〉스틸컷

<군도: 민란의 시대>에 이어서 이번에도 무과에 장원 급제하셨어요. 워낙 액션에 능하셔서 검술을 연기하는 것에는 상대적으로 익숙하실 거 같은데, 검술도 다 다르잖아요. 이번 작품에서는 어떤 부분에 유념해서 보면 좋을까요?

제가 예전에 <형사 Duelist>를 찍을 때 8개월 정도 훈련을 했어요. 훈련량이 어느 정도였냐면 아침밥 먹고 한 9시~10시부터 저녁 6시까지 주 6회 훈련을 했었어요. 그리고 <군도:민란의 시대> 때 5개월 동안 매일 목검을 천 번씩 휘두르는 훈련을 했어요. 이번에도 검을 휘두르려면 힘이 필요하니까 이게 전완근을 많이 써야 되거든요. 그래서 훈련을 해야겠다고 생각하고 액션스쿨에 갔어요. 가서 목검을 휘둘렀는데 검이 딱 서는 거예요. ‘어 이게 왜 되는 거지’라고 생각했는데, 제가 골프채를 너무 휘둘러서 전완근이 죽지 않고 살아있었구나 싶더라고요. (웃음) 그래서 기본 훈련을 안 했어요. 원래는 기본 훈련을 하려고 했었는데 힘이 좋으니까 할 필요가 없더라고요. 바로 합 맞추는 걸로 갔죠.

그리고 천영은 본인의 검이 있는데 자유로운 검을 써요. 제가 <군도:민란의 시대> 때 답답했던 지점이 있는데 장면을 탁탁 끊으니까 이번에는 그러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좀 더 흘러가듯이 자유롭게 감독님도 그렇게 원하셨고요. 또 감독님은 수직으로 많이 움직였으면 좋겠다고 얘기를 하셔서 그렇게 뛰었죠. 그리고 어떤 칼을 쥐고 있느냐에 따라서 액션이 달라요. 검을 들었을 때랑 칼을 들었을 때 각각 취할 수 있는 액션이 다르거든요. 칼은 한 면으로만 벨 수 있는데 검은 양날로 벨 수 있어요. 그래서 종려는 검을 쓰니까 주로 회전을 많이 하고, 저는 종려의 검을 쓰지 않고 칼을 쓸 때는 위아래로 뛰고, 벽을 밟고 뛰어서 찌르죠.

사극이 관객의 호불호가 있는 장르잖아요. 그럼에도 순위가 잘 나오고 있는 편이에요. 불필요한 이야기가 없어서 좋다는 반응이 나오고 있는데, 배우님은 이 이야기가 다루는 여러 주제 중에서 어떤 것이 와닿았나요?

박정민 배우와의 멜로? (웃음) 진짜 그 둘의 우정이 좋았고 미묘하게 서로 너무 사랑하는데 틀어지는 애증의 관계잖아요. 그런 부분도 좋았고 영화의 스토리 안에 녹아 있는 인간의 존엄성에 대한 주제도 좋았어요. 저도 사극에 손이 잘 안 가는 스타일이긴 한데 액션이니까 또 다른가 봐요. 액션이 접근하기 쉬운 것 같아요. 일단 마음을 편하게 풀게 되니까 이 영화 너무 힘들 것 같다고 생각하지는 않잖아요.

〈전, 란〉스틸컷
〈전, 란〉스틸컷

이 영화를 멜로 같다고 하셨는데, 김상만 감독님도 셰익스피어 비극 같다고 비유하셨어요. 박정민 배우는 인터뷰에서 「로미오와 줄리엣」 중에 본인이 로미오 같다고도 말씀하셨는데, 배우님의 생각은 어떠세요? 로미오와 줄리엣에 비교한다면.

정민 씨가 줄리엣이죠. 무슨 로미오야. 천영이 더 적극적이었던 것 같은데. 아니 로미오와 줄리엣에서 누가 더 적극적이었더라.

누가 더 그랬다고 할 것 없이 둘 다 적극적이었죠.

그럼 제가 줄리엣 하겠습니다.

그럼, 일부 관객들이 종려와 천영의 관계를 브로맨스에서 나아가 호모 섹슈얼로 보는 해석에 대해서도 공감하시는 건가요?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죠. 저는 시나리오를 봤을 때 퀴어 코드가 약간 숨어 있는 영화라고도 느꼈어요. 둘이 범상치 않은데 싶다가도 너무 친한 형제처럼 사랑하는 사이라고 생각했죠. 근데 영화를 보고 그 정도까지 느껴질 수 있겠다고 생각했어요. 퀴어물은 아니지만, 퀴어 코드가 들어있는 정도로 받아들이는 분들도 있겠구나라는 생각을 했어요. 그리고 특히 정민 씨가 연기할 때 늘 눈을 촉촉하게 해가지고 저도 덩달아 같이 그러게 됐죠. (웃음)

〈전, 란〉스틸컷
〈전, 란〉스틸컷

<전, 란>은 모두가 더불어 사는 삶에 대해 말하는 영화이기도 한데요. 조선 시대의 신분 계급에 대해 다루고 있는데, 이 부분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셨나요?

인간은 다 평등하다는 주제 의식이 기본으로 깔려 있었죠. 저도 이 주제가 가장 좋았어요. 현대 사회에서도 태어날 때부터 많이 가지고 태어난 사람도 있고 아닌 사람도 있죠. 종려는 태어날 때부터 많이 가지고 태어났고, 천영은 쥐뿔도 없이 태어났는데 둘이 친구로 지내죠. 실력으로만 인정받아야 되는데 그러지도 못하고 그런 얘기들이 많이 와닿았죠.

천영은 조선 시대의 시스템을 받아들이지 않아요. 그러니까 왕한테 절도 안 하잖아요. 천영이와 범동이는 절을 안 하죠. 하지만 범동은 시스템을 깨부수려고 하고, 천영은 그 시스템 안에서 본인이 자유로워지고 싶어 하죠. 그게 달라요. 근데 결국에는 마지막 믿음마저 깨지고 시스템을 부숴버려야겠다고 입장을 바꿔요.

천영의 믿음이 깨지고 난 후 생겨난 분노를 어떻게 표현하려고 했어요?

그 분노가 “내가 이대로는 못 살겠어”라는 대사에 드러나는데, 저는 너무 이해돼요. 그 한을 담아서 대사를 뱉어야겠다고 생각했어요. 원래는 “내가 이대로는 못 살겠어”라고 붙여서 말해야 했는데, 제가 바꿨어요. 제가 “내가”라고 소리친 다음에 칼을 내리찍고 이어서 “이대로는 못 살겠어”라고 하고 싶다고 감독님한테 얘기했고 그렇게 되었죠.

〈전, 란〉스틸컷
〈전, 란〉스틸컷

많은 액션씬이 있지만, 마지막 액션씬이 인상적인데요. 안개가 자욱한 바닷가에서 이루어지잖아요. 현장에서는 아마 스모그머신을 썼을 것 같은데, 안개 때문에 연기하는데 힘들지는 않으셨는지 궁금하고요. 또 세 배우의 합이 중요한 장면이잖아요. 그 장면을 촬영할 때 다른 두 배우와의 합은 어땠는지 궁금합니다.

원래 초반 대본에는 해무가 있었던 건 아니었어요. 촬영 중간쯤에 해무를 넣는 걸로 결정이 났고 다행이라고 생각했어요. 왜냐하면 바닷가에서 액션을 찍는다는 게 진짜 너무 힘든 일이거든요. 모래밭에서 액션을 보여야 하는데 감당이 안 되더라고요. 그래서 ‘어떻게 찍지, 바닷가에 바람도 많이 불 테고, 집중하기 쉽지 않을 텐데’하고 걱정을 많이 했죠. 근데 해무를 깔고 한다고 해서 다행이다 싶었어요. 세트에 갔는데 진짜 꽉 차게 안개를 채워뒀더라고요. 어느 정도였냐면 가까이에 모니터를 갖다 놔도 아예 안 보일 정도였어요. 그래서 액션을 하다가 한 바퀴를 돌고 나면 어디가 어딘지 몰라요. 정말 안 보이거든요. 분위기는 좋았는데 촬영할 때는 쉽지 않았죠. 호흡할 때도 힘들었고요.

그리고 이거는 그냥 웃긴 얘기인데 저랑 정민 씨는 이미 합을 많이 맞춰봤잖아요. 근데 (정)성일이 형과 정민 씨는 그날이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액션씬을 함께하는 거였어요. 제가 성일이 형한테 “박정민 조심해라. 힘이 세다”고 미리 귀띔을 해뒀어요. 근데 진짜로 정민 씨가 괴력을 발휘한 거예요. 성일이 형이 갑옷을 입고 있었어서 정민 씨가 진짜로 때렸어요. 근데 너무 세게 때려가지고 성일이 형이 두 동강이 날 뻔했죠. 정민 씨가 내리치자마자 성일이 형이 비명을 윽-하고 질렀어요. (웃음)

강동원 (사진 제공 = 올라운드 컴퍼니)
강동원 (사진 제공 = 올라운드 컴퍼니)

액션은 언제까지 하시고 싶으세요?

50대까지는 해야 하지 않을까 싶어요. 일단 그때까지는 열심히 액션을 하고, 60대부터는 저도 상상이 안 가서. 60대에도 액션을 할 수 있을까 한다면 하겠지만, 빨리 움직이지는 못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긴 해요.

이전에 한 인터뷰를 보면 세계 무대로 나가서 세계 관객과 만나고 싶다고 말씀하셨어요. 할리우드 진출에 대한 바람도 있는 건가요?

저는 그렇게 막 할리우드 진출에 대한 꿈이 있는 사람은 아니고요. 오히려 반대예요. 이를테면 그런 거예요. 다른 나라에서 개최하는 올림픽에 제가 출전하는 게 아니라 올림픽을 우리나라에서 개최하는 게 더 좋은 거죠. 근데 그러려면 우선 제가 세계 무대로 나가야 된다는 얘기를 했던 것 같아요. 일단 제가 유명해져야지 우리나라에서 영화를 만들어도 500억짜리 영화도 만들 수 있겠죠. 안 유명한데 누가 저한테 투자해서 그 영화를 찍을 수 있겠어요. 그런 의미에서 나가야 된다고 했던 거고, 꼭 미국이 아니고 아시아 어디든 괜찮은 것 같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