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쿠팡플레이 드라마 <사랑 후에 오는 것들>에서 첫눈에 서로에게 반한 스물두 살 최홍(이세영)이 스물셋 준고(사카구치 켄타로)에게 묻는다. “변하지 않는 사랑이 있다고 믿어?”. 가성비 떨어지는 사랑 따윈 일찍이 포기하고, 현실 연애 대신 <환승연애> 틀어놓고 맥주 캔을 따는 우리에게 영속하는 사랑을 묻는 이 순진한 얼굴이라니. 냉소하려 했지만 이세영과 사카구치 켄타로의 얼굴이 개연성이 되더니 곧 깊이 묻혀 화석이 된 줄 알았던 연애 세포가 흔들렸다. 정신 차려보니 <사랑 후에 오는 것들> 6회를 순식간에 정주행한 후였다. 여명이 밝아오고 있었다.
드라마 <사랑 후에 오는 것들>의 마지막 회가 지난 금요일 공개됐다. 공지영 작가와 「냉정과 열정 사이」 츠지 히토나리 작가가 공동 집필한 동명의 소설을 원작으로 한 드라마는 일본에서의 운명 같던 사랑이 끝나고, 모든 것을 잊은 여자 홍과 후회로 가득한 남자 준고가 5년 만에 한국에서 재회하는 이야기를 그린다. 소설에 기반한 탄탄하고 설득력 있는 스토리에 더해, 과거와 현재 시점을 오가는 전개 방식은 벚꽃이 만개한 봄의 정경과 황량한 겨울의 풍광을 차례로 보여주며 두 사람의 사랑, 이별 그리고 재회의 과정을 한 편의 시처럼 펼쳐냈다.

드라마에서 소설가가 된 준고는 홍과의 사랑 이야기를 소설로 완성한다. 소설의 제목은 '사랑 후에 오는 것들'. 출판을 기념하며 한국을 찾은 그에게 '사랑 후에 오는 것이 뭐라고 생각하냐' 기자는 질문하고 준고는 '사랑을 이해하게 되는 것'이라 씁쓸하게 답한다. 사랑 후 오는 것이 정말 후회와 회한뿐인가. 아니다. '사랑 후에 오는 것들'에는 배우 사카구치 켄타로라는 발견도 있다. 영화 <히로인 실격>(2015) 속 '벽치기(カベドン, 카베동: 남성이 여성 앞에서 한쪽 손으로 박력 있게 벽을 치며 여심을 흔드는 행위)'로 눈도장을 찍은 뒤 남친짤로 유명세를 타고, 몇 편의 영화로 사랑받았지만, <사랑 후에 오는 것들>을 계기로 '배우' 사카구치 켄타로의 진가가 그 빛을 발하는 중이다. 쿠팡에서 곧 공개할 드라마 코멘터리를 기다리며 오늘은 켄타로의 대표작을 정주행해 보자.
'아리무라 카스미'와 무려 4작품을 같이!

사카구치 켄타로와 아리무라 카스미는 여러 작품을 함께하며 극강의 케미를 보여준다. 둘은 2013년 광고 촬영으로 처음 만나 <당신을 울리는 사랑>(2016), <나라타주>(2017), <그리고, 살아간다>(2019), 11월 넷플릭스 공개 예정인 <이별, 그 뒤에도>(2024)까지 무려 네 작품을 함께 했다. 특히 2019년 동명의 6부작 드라마에 미공개 장면들을 추가해 재편집한 극장판 <그리고, 살아간다>에서 재난 이후에도 운명에 맞서 살아가는 젊은이들의 삶과 성장을 연기하며 많은 이들의 공감을 끌어냈다.

세 살 때 교통사고로 부모를 잃은 토코(아리무라 카스미)는 모리오카에서 이발소를 운영하는 큰아버지와 함께 살아간다. 배우를 꿈꾸며 도쿄에서 개최되는 오디션 장소로 향하지만, 2011년 3월 11일 동일본 대지진이 발생하고 만다. 그 후 카페에서 함께 일하던 한국인 한유리(강지영)와 함께 재해지 봉사 활동에 참여하게 된 토코는 그곳에서 학생 자원봉사 단체를 운영하는 키요타카(사카구치 켄타로)를 만나게 된다. 미소 뒤에 가혹한 운명을 짊어진 채 살아가는 키요타카를 보며 토코는 알 수 없는 동질감과 위화감을 느낀다. 서로의 아픔을 고백한 뒤, 어느새 둘 사이에는 특별한 감정이 싹튼다. 하지만 행복은 잠시, 운명은 시작하는 연인을 영원히 엇갈리게 하고 둘은 덤덤히, 그리고 담대히 그 운명을 받아들인다. <너의 췌장을 먹고 싶어>(2017)를 연출한 츠키카와 쇼 감독의 작품으로, 필자는 드라마 버전을 추천하는 바이다. 135분 극장판 보다 6부작 드라마가 두 주인공의 감정을 오롯이 전달한다. 현재 웨이브, 왓챠에서 볼 수 있다.
죽음을 목전에 둔 여자와 방황하는 남자의 <남은 인생 10년>(2022)

켄타로의 최고 흥행작 <남은 인생 10년>도 빼놓을 수 없다. 스무 살이 되던 해, 수만 명 중 한 명이 걸리는 난치병으로 최대 10년의 삶을 선고받은 마츠리(고마츠 나나)는 삶의 의지를 잃은 카즈토(사카구치 켄타로)를 만나 사랑에 빠진다. 처음 만나 사랑을 느꼈던 봄, 첫사랑의 설렘으로 뜨거웠던 여름, 쓸쓸하지만 깊었던 가을, 눈부시게 빛나는 겨울을 거치며 두 사람의 사랑은 깊어진다. 그러나 언제 죽음으로 끝날지 모를 아슬아슬한 사랑 앞에서 마츠리는 이별을 택하고, 삶을 정리하며 소설을 쓴다. 희귀병을 앓는 여주인공과 방황하는 남주인공을 앞세운 영화는 신파의 전형을 따르나, 감정을 절제한 연출과 연기로 그것을 담백하게 담아낸다. 로맨스로만 저울추가 기울지 않고, 남은 인생을 어떻게 살 것인가, 남은 사람들은 어떻게 살아나갈 것인가를 그리며 공감을 얻은 영화는 재개봉 포함 누적 관객수 56만을 돌파하며 한국에서 큰 사랑을 받았다. 영화는 일본 작가 코사카 루카의 동명 소설을 원작으로 삼는다. 극중 마츠리와 마찬가지로 폐동맥성 폐고혈압증이라는 희소병을 앓던 작가는 「남은 인생 10년」 집필과 투병을 병행했고, 끝내 출간을 직접 확인하지 못한 채 2017년 사망했다. 더 풋풋한 켄타로의 지고지순한 사랑을 만나고 싶다면 <너와 100번째 사랑>(2017)를 추천한다.
의외의 모습!<헬 독스>(2022)

<무간도>와 <신세계>를 섞어 놓은 듯한 영화 <헬 독스>에서 켄타로는 전혀 다른 모습으로 등장한다. 사랑하는 연인을 잃고 그 트라우마로 인해 정의도 감정도 모두 버리고 오로지 복수만을 위해 살아가는 전직 경찰관 카네타카 쇼고(오카다 준이치)는 그 사나운 성격으로 경시청의 눈에 띄어 야쿠자 조직에 잠입할 멤버로 선발된다. 그의 파트너로 낙점된 건 야쿠자 조직의 일원이자 사형수의 아들이라는 태생으로 마음속 깊은 곳에 어둠을 안고 사는 사이코패스 무로오카 히데키(사카구치 켄타로). 경찰 데이터 분석에서 카네타카와의 궁합이 무려 98%가 나온 탓이다. 경찰은 카네타카에게 무로오카와의 싸움을 계기로 관동 최대의 야쿠자 조직에 잠입하라는 지시를 내린다. 카네타카는 그렇게 사이코보이 무로오카와의 접촉을 시작으로 착실하게 맹렬한 스피드로 조직에 잠입한다. 켄타로는 잔학하면서도 순수한, 이중적인 면모의 사이코패스 캐릭터를 구축했다는 호평을 받으며 이 영화로 제46회 일본 아카데미상 우수 남우조연상을 수상했다. 현재 넷플릭스에서 시청 가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