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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석구 피셜 ‘지금이라도 해외 수출해야 할 콘텐츠' 〈순풍산부인과〉 베스트 에피소드

씨네플레이

영화, 드라마 등이 매일, 매주 신작들이 쏟아지지만, 시트콤은 요즘 보기 힘들다. 8090년대 생에게 시트콤은 추억과 같다. 취침 전 각 방송사에서 나오는 시트콤을 보고 크게 웃은 뒤 기분 좋은 내일을 맞이했던 기억이 다들 하나씩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일까? 신작은 보기 힘들지만, 고전 시트콤은 OTT와 유튜브를 통해 여전히 강한 생명력을 자랑 중이다. OTT 명예의 전당, 오늘 이 시간은 시트콤의 전설 <순풍산부인과>를 살펴보기로 한다.


<순풍산부인과>는?

〈순풍산부인과〉
〈순풍산부인과〉

 

<순풍 산부인과>는 1998년 3월 2일 SBS에서 처음 방영되었다. IMF로 시름에 젖은 국민에게 잃어버린 웃음을 되찾아주고 싶다는 의도로 방영된 작품은, 2000년 12월까지 평일 저녁 시간대를 책임지며 큰 사랑을 받았다. 순풍산부인과 원장 오지명과 가족들, 동료 간호사들, 그리고 이웃 의찬이네의 이야기를 다루며 총 682편의 에피소드가 방영되었다. 682편이라…. 하루에 두 편씩 봐도 정주행 하는 데 거의 일 년은 걸릴 분량이다. 시트콤의 <전원일기>라는 별명이 괜히 붙은 게 아니다.

한 에피소드당 두 이야기를 배치하며 진행한다. 성격 급한 오지명과 아내 선우용녀, 처가에 얹혀사는 사위 박영규와 딸 오미선, 오태란, 오소연, 오혜교 그리고 사고뭉치 손녀 미달이, 여기에 김간호사, 표간호사, 허간호사 등 병원 식구들과 권오중, 김찬우, 김의찬 등 다양한 캐릭터들이 빚어내는 일상 이야기에 시청자들은 점점 빠져들어갔다. 아니 거의 중독 수준으로 시청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순풍산부인과가 이렇게 사랑받은 이유에는?

〈순풍산부인과〉
〈순풍산부인과〉

 

​이처럼 <순풍산부인과>의 엄청난 인기에는 개성 넘치는 캐릭터에 있었다. 초반에는 낯설었지만, 에피소드가 쌓여가면서 캐릭터들의 성격, 특징들이 자연스럽게 숙성되었다. 이후부터는 일사천리다. 그저 오늘의 주인공이 오지명이냐 박영규냐 권오중이냐만 정해지면 끝. 어떤 사건을 직면한 후 그들이 벌이는 소동을 지켜보기만 하면 웃음이 자동 소환된다. 전 에피소드부터 쌓아온 개성이 이야기에 자연스럽게 녹아들기 때문이다.

<순풍산부인과> 캐릭터들은 평범하면서도 특이하다. 크게 모난 성격도, 기구한 사연도 없지만 따져보면 이상한 사람들. 오죽하면 어떤 에피소드에서 순풍산부인과에 온 파견 의사가 이들을 분석하는 일기를 적기까지 했을 정도다. 여기에 멀티 포지션 윤기원이 가끔 독특한 캐릭터로 나와 웃음의 마지막 퍼즐을 맞추기도 했다.

여러 배우들의 연기 인생을 바꾸기도 한 작품이다. <순풍산부인과>가 실질적인 데뷔작인 송혜교는 처음에는 이기적이고 철없는 막내딸 역이었지만, 창훈을 짝사랑하면서 의외로 눈물 감성을 잘 보여줬다. 윤석호 PD가 <순풍산부인과> 때 그의 연기를 보고 <가을동화>에 캐스팅한 것은 유명한 일화다. 그동안 점잖은 중년 신사 역을 주로 맡았던 박영규는 <순풍산부인과>를 통해 망가짐을 두려워하지 않으며 코믹 연기의 포텐을 터트렸다. 아직도 시트콤 하면 사위 박영규가 먼저 생각나는 것도 이 때문이다. 이 밖에 김래원, 정웅인, 박준형(god)이 이 작품을 통해 처음 얼굴을 알리기도 했다.

〈순풍산부인과〉 '내가할게 누가할래' 레전드 밈도 순풍에서 태어났다
〈순풍산부인과〉 '내가할게 누가할래' 레전드 밈도 순풍에서 태어났다

일상에서 흔히 겪을 수 있는 일을 드라마틱하게 만든 것도 작품만의 매력이다. 방학 숙제를 하지 않은 미달이 때문에 온 식구들이 호들갑스럽게 도와주거나, 오중이 너무 급하게 들어간 화장실에 문이 고장 나서 온갖 창피를 당했던 것, 내기의 왕 영규가 맹구 창훈에게 유난히 약해지는 징크스 등, 충분히 일상에서 일어날 수 있을 일을 캐릭터의 특이한 성격과 과장된 연출로 높은 웃음 타율을 뽑아낸다.

<순풍산부인과>는 웃음 속에도 페이소스를 집어넣는 김병욱 PD 연출 스타일이 만개한 시트콤이기도 하다. 혜교가 창훈을 짝사랑할 때 이런 연출을 많이 했는데, 창훈과 오중을 좋아하는 혜교와 영란이 그들의 집을 마음껏 어지럽히고 서로 낄낄대지만 마지막 뭔가 모를 눈물을 흘리는 장면이 그렇다. 이 외에도 몇몇 에피소드에서는 실컷 시청자를 웃기다가 나중 캐릭터의 진심이 드러나거나 슬픈 장면이 나와서 마음을 저리게 할 때가 많다. 찰리 채플린의 명언 “삶은 가까이서 보면 비극이지만 멀리서 보면 희극이다”를 적극 활용한 구성이다. 김병욱의 이 같은 연출은 <하이킥>시리즈에서 여러 러브라인과 엮으면서 더 강화되기도 했다.


순풍산부인과의 베스트 에피소드를 꼽자면?

 

사실 682화나 되는 대하서사시트콤(?)에 단 몇 개만 베스트로 꼽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럼에도 에디터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에피소드를 적어보자면,

순풍산부인과 광고 (Ep 140)

[순풍 산부인과] 그... 공포 영화가 아니라요... 광고 찍는 거예요... │140화
[순풍 산부인과] 그... 공포 영화가 아니라요... 광고 찍는 거예요... │140화

 

만능 플레이어 윤기원의 활약이 빛나는 에피소드다. 순풍산부인과 CF 감독으로 나와 대략 정신이 멍해지는 구성으로 배꼽을 잡아낸다. 그런 줄도 모르고 감독이 하라는 대로 열심히 한 순풍 식구들. 나온 결과물에 민망함은 하늘을 찌른다. 마지막 하이라이트 ‘순풍산부인과 6행시’는 절대 놓치지 마시라.

박영규의 술과 밥을 돈 안 쓰고 즐기는 방법 (Ep 480)

레전드 시트콤 [순풍산부인과] '돈 안쓰고 술과 밥을 즐기는 방법' / 'Soonpoong clinic' Review
레전드 시트콤 [순풍산부인과] '돈 안쓰고 술과 밥을 즐기는 방법' / 'Soonpoong clinic' Review

 

박영규의 얌체짓은 언제부터 시작된 것일까? 그의 술과 밥을 얻어먹고 절대 돈을 쓰지 않은 노하우가 이 에피소드에 다 담겨있다. 대충 적어놓은 수준이 아니다. 상대와 케이스에 따라 적절한 얻어먹기 방법이 웬만한 병법 못지않을 정도다. 하지만 제아무리 박영규라고 해도 그의 모든 것을 다 파악한 절친의 손에서 벗어나기는 힘들 듯. 하지만 이 어려운 것을 영규가 해냅니다. 그 방법은 직접 확인하시길!

동네 반장선거에 출마한 영규 (Ep 89)

[순풍산부인과] 동네 반장선거에 출마한 영규│Ep.89
[순풍산부인과] 동네 반장선거에 출마한 영규│Ep.89

영규에게 이런 모습이? 민폐 대마왕 영규의 청렴 결백하고 단호한 의지를 볼 수 있는 에피소드다. 동네 반장 선거에 출마하게 된 영규. 하지만 온갖 편법과 더러운 돈으로 반장을 독시하던 강토 엄마의 네거티브 공세에 흔들리기 시작한다. 돈의 유혹도 있었다. 그럼에도 자신의 소신대로 나아가던 영규, 과연 운명의 선거 결과는? 전체적으로 치열한 선거를 다룬 진지한 내용인데, 그래서 더 웃긴 레전드 에피소드 중 하나다. ‘젊은 그대’를 패러디한 ‘젊은 영규’ 선거송은 수능을 앞둔 수험생은 듣지 마라. 중독성이 장난이 아니다.

오중의 대왕 종기 (Ep 14)

오중이 엉덩이엔 종~기종기는 변종, 변종은 심각해 #순풍 #3분시트콤 #14화
오중이 엉덩이엔 종~기종기는 변종, 변종은 심각해 #순풍 #3분시트콤 #14화

 

권오중 캐릭터는 <순풍산부인과>에서 꽤 엘리트 축에 속한다. 명문대를 나왔고, 방송국에서도 알아주는 코미디 작가다. 그런데 왜 유독 오중과 관련된 에피소드는 더럽고(?) 민망한 것이(?) 많을까? 대왕 종기 사건도 그렇다. 엉덩이가 너무 아파서 병원에 갔더니 아직 학계에 보고되지 않은 대왕 종기가 났다는 사실. 한순간에 동물원 원숭이가 된 오중의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상황이, 그에게 미안할 정도로 웃기다.

교통사고의 재구성 (Ep 387)

[순풍 산부인과] 순풍 청년들 속초갔다가 의상하고 돌아온 썰 풉니다ㅣ387화
[순풍 산부인과] 순풍 청년들 속초갔다가 의상하고 돌아온 썰 풉니다ㅣ387화

 

<순풍산부인과>는 독특한 전개로도 큰 재미를 자아냈다. 대표적으로 속초에서 벌어진 교통사고에 관한 여자들과 남자들의 다른 이야기다. 서로에게 맘 상한 이들이 상대의 폭언과 예의 없는 행동을 자기 유리한 식으로 해석하며 그날의 진실을 찾아간다. 똑같은 말과 행동이 이렇게 다르게 해석될 수 있을까? 당시 순풍 작가들의 아이디어는 끝이 없었다.

엘리베이터에 나비넥타이 낀 사연~ 그건 말로 못해 (마지막화)

[#순풍산부인과] 세상에 마음대로 되는 거 하나 없다 그래도 용서해주기로 해 우리는 가족이니까ㅣ682화
[#순풍산부인과] 세상에 마음대로 되는 거 하나 없다 그래도 용서해주기로 해 우리는 가족이니까ㅣ682화

<순풍산부인과>의 마지막화에 대한 루머가 꽤 많다. 극중 등장인물 누군가가 죽었다, 배드 엔딩이다 등등. 아무래도 김병욱 PD 작품들의 결말이 영 좋지 않기 때문에 불거진 소동이다. 다행히 <순풍산부인과>는 소박하게 웃을 수 있는 엔딩으로 마무리 지었다. 오프닝곡 “엘리베이터에 나비넥타이 낀 사연~”을 등장인물들이 그대로 재현해 3년 가까운 <순풍산부인과>의 여정에 마침표를 찍었다. 무난하고 상징성 있는 마무리였다. 하지만 그 끝은 그리 행복하지 못했다고. 당초 예상보다 너무 오랫동안 방영한 주요 출연진들이 대거 중도 하차했기 때문이다. 방송국이 정확하게 마무리 일정만 정해줬다면, <순풍>은 지금보다 더 아름답게 끝났을지도 모르겠다.


순풍산부인과의 당시 인기와 현재 OTT에서 볼 수 있는 곳은?

〈순풍산부인과〉
〈순풍산부인과〉

 

<순풍산부인과>는 매주 월~금 9시 30분에 방영되었다. 회를 거듭될수록 높은 인기를 자랑하며 급기야 타사 방송국의 9시 뉴스를 제치고 엄청난 시청률을 기록하기도 했다. (평균 20%, 인기 있는 에피소드는 30%를 넘는 시청률을 기록했다고) 이 같은 인기에 출연진들 대부분 CF를 찍었고, 한때 그들이 출연한 CF들로만 살림 장만이 가능했다고 한다.

<순풍산부인과>의 인기는 방영 25년이 지난 지금도 현재 진행형이다. SBS 홈페이지의 다시 보기에 톱10을 유지 중이고, 유튜브에서는 레전드 에피소드들이 업로드되어 수십만 조회수를 기록하고 있다. 당시 TV로 보지 못했던 젊은 층에게는 신작 시트콤 못지않은 재미와 신선함이 있다고 한다. 박미선이 대만에 촬영을 갔는데 현지인이 <순풍산부인과>에 출연한 것을 알아봤다고 하며, 손석구가 지금이라도 전 세계에 수출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콘텐츠도 <순풍산부인과>라고 했을 정도다.

숱한 기록을 세우며 아직도 레전드 시트콤의 자리를 지키고 있는 <순풍산부인과>는 웨이브에서 시청 가능하다. 워낙 분량이 많아서 단 기간의 정주행은 힘들겠지만, 오랜만에 <순풍>을 보며 90년대말 레트로의 향수 속에 스트레스 확 날릴 웃음 한바탕은 어떨까? 그래서 난 오늘도 순풍을 본다.


테일러콘텐츠 에디터 홍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