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정성시>의 지우펀, <하나 그리고 둘>과 <음식남녀>의 원산대반점, 그리고 <해피 투게더>의 마지막에 등장한 랴오닝 야시장 등에 관한 첫 번째 대만 여행기에 이어, 씨네플레이와 브릭스트래블이 함께 진행한 ‘대만 무비투어’ 두 번째 이야기가 아래 계속된다. 이제 본격적인 대만 청춘영화의 시간으로!

나의 고백을 상대에게 알리지 말라,
<그 시절, 우리가 좋아했던 소녀> 스펀(十分)
지우펀 못지않은 타이베이 외곽의 인기 관광지는 바로 풍등(風燈)으로 유명한 스펀이다. 탄광과 연결되어 무려 1921년에 만들어진 철도 핑시선을 중심으로 양쪽에 건물들이 늘어서 있다. 지우펀처럼 광산 개발이 주춤하며 활력을 잃었다가, 관광객들이 자신의 소원을 적어 풍등을 날리는 것으로 큰 인기를 얻으며 다시 활력이 돌기 시작했다. 개봉 당시 대만 박스오피스를 뒤흔들고 한국에서도 큰 인기를 끌며, tvN <응답하라> 시리즈에도 큰 영향을 미쳤던 <그 시절, 우리가 좋아했던 소녀>(2011)의 풍등 장면을 바로 이곳에서 촬영했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따로 대학에 진학하여 일종의 ‘롱디’를 하던 커징텅(가진동)과 션자이(천옌시)가, 처음으로 단둘이 여행을 떠나 풍등을 날리던 촬영지가 바로 스펀이다. 이 영화 외에도 국내 예능프로그램 <꽃보다 할배>에서도 할배들이 풍등을 날려 아마도 모르는 이들이 없을 만한 곳이다.

대만 뉴웨이브에 이어 2000년대 이후 ‘대만 청춘영화’의 계보를 정리하자면, 가장 먼저 주걸륜과 계륜미 주연, 그리고 주걸륜이 직접 연출까지 맡았던 <말할 수 없는 비밀>(2007)로 시작한다. 주걸륜의 모교이자 <말할 수 없는 비밀> 촬영지인 담강중학교가 있는 도시 단수이도 대만 영화팬들이 즐겨찾는 지역이다.(대만 무비투어로 3박 4일 동안 단수이와 타이난 모두 섭렵하는 것은 무리였기에, 씨네플레이와 브릭스트래블은 깊은 고민 끝에 <말할 수 없는 비밀>의 단수이 대신 <상견니>의 타이난을 선택했다) 이때부터 현재의 <상견니>까지 이어지는, 판타지와 결합하는 것이 중요한 특징이기도 한 대만 청춘영화의 본격적인 인기가 시작됐다. 그다음은 최근 국내에서 동일한 제목으로 리메이크까지 될 정도로 큰 인기를 끌었던 펑위옌, 진의함 주연의 영화 <청설>(2009)이다. 이후 <청설>에서 조연배우였던 천옌시가 주연으로 나서고, 연기 경험이 전혀 없던 배우 커징텅이 자신의 실제 이름 그대로 출연해 일약 스타가 된 <그 시절, 우리가 좋아했던 소녀>(2011)가 만들어지게 된다. 이 또한 배우 진영과 트와이스의 다현이 각각 주인공을 맡아서, <청설>처럼 국내에서 리메이크작이 만들어져 곧 개봉을 앞두고 있다. <그 시절, 우리가 좋아했던 소녀>와 드라마 <상견니> 사이의 시기를 채운 왕대륙, 송운화 주연의 <나의 소녀시대>(2015)도 빼놓을 수 없는 작품.

<그 시절, 우리가 좋아했던 소녀>를 보며 너무나도 궁금했는데, 바로 이곳 스펀에 와서 직접 풍등을 날리며 알게 된 것이 있다. 지난 1회 여행기에서도 얘기했다시피, 막상 촬영지에 오면 알게 되는 영화의 비밀들이 있다. 커징텅과 션자이가 왜 그렇게 긴 시간 동안 서로 고백을 하지 않고 질질 끌며 애매모호한 관계로 남아있었을까, 정말 아무런 고백도 하지 않고 끝났을까 하는 점이었는데, 사실 커징텅은 그 고백의 말을 션자이가 볼 수 없는 풍등 반대 면에다가 썼던 것. 그리고 그 고백의 말은 반전처럼 영화의 말미에 나오게 되는데, 영화를 보다가 ‘설마 현장에서 그걸 못 봤을까’ 하는 생각도 살짝 들었지만, 막상 와보니 충분히 가능한 일이었다. 우리 돈으로 7천원 정도면 풍등의 4면에 빼곡하게 소원을 적을 수 있는데, 왠지 대놓고 고백하기가 쑥스러웠던 커징텅이 그 고백의 말을 션자이가 볼 수 없는 면에다가 적었던 것일 테다. 철길 주변에 풍등을 파는 곳이 정말 많은데, 그저 적당히 사진 찍기 좋은 곳에 가서 자리 잡으시면 누군가 다가온다. 나 또한 씨네플레이와 브릭스트래블, 그리고 무비투어의 무궁한 발전을 기원하며 붓글씨를 써서 풍등을 날려 보냈다. 그걸 도와주시는 분이 스마트폰도 달라고 하는데, 각기 다른 포즈를 한국어로 해주시며 친절하게 여러 장을 찍어준다. 대만 달러로 50달러 동전, 즉 우리 돈으로 2천원 정도의 팁을 건네길 권한다.
<상견니> 신드롬이 시작된 곳,
타이베이 32카페
2019년부터 2020년까지 방영된 21부작 드라마 <상견니>는 대부분 타이난에서 촬영됐다. 하지만 <상견니>의 팬들이라면 반드시 가야 할 곳이 타이베이에도 한 군데 있다. 바로 드라마 1화부터 등장하여 천윈루의 외삼촌이 운영하는 ‘32 카페’로, 드라마 속 32 간판은 없지만 ‘하오우스피릿’(好物 Spirit)이라는 이름의 카페로 실제 영업 중인 카페다. 학창 시절 주인공들이 처음 만난 장소는 ‘32 레코드’였는데, 세월이 지나 외삼촌이 이름을 바꿔 카페로 운영하고 있다는 설정이다. 황위쉬안(가가연)이 아무 것도 모른 채로 이곳을 방문해 이미 모든 것을 다 알고 있는 외삼촌에게 이것저것 물어보는 장면이었다. 이후 드라마에 수시로 나왔는데, <상견니>의 팬들이라면 눈물 없이 볼 수 없는 장면인 리쯔웨이(허광한)와 황위쉬안(가가연)의 재회 장면을 바로 이곳에서 촬영했다.

사실 이곳은 카페 말고는 아무것도 없는 한적한 거리인데, 오히려 그래서 더 정감 가는 곳이기도 하다. 이곳을 찾은 많은 상친자들이, 정작 카페 안에는 우바이의 ‘라스트 댄스’ 카세트테이프 말고는 아무런 기념품도 볼 수 없지만, 여기까지 오는 길을 좋아한다, 오히려 한적한 동네의 풍경을 보고 걸으면서 ‘32 카페를 찾아가는 그 시간이 나를 <상견니>의 시간으로 데려다주는 것 같았다’라는 소감을 남기기도 했다. 개인적으로는 <돌아온 방구석1열> 촬영차 이곳에 방문하여 가가연 배우를 실제로 만난 적 있는데, 당시 허광한 배우는 한국에서 디즈니플러스 시리즈 <노 웨이 아웃: 더 룰렛>을 촬영하느라 함께 하지 못했었다. 아무튼 당시 리쯔웨이처럼 교복을 입고 가가연 배우를 맞이하는 중범죄를 저지르고야 말았다. 심지어 평소 입던 대로 XL 사이즈를 현지 코디네이터 분에게 주문했으나, 대만과 우리나라의 의상 사이즈가 다른지 굉장히 타이트한 상의를 준비해주셔서 착장과 동시에 호흡곤란이 왔던 기억이 있다. 그처럼 타이트하게 핏이 되는 바람에 윤곽이 드러나 리쯔웨이가 아닌 찌찌웨이라는 별명을 얻기도 했다. 여러 상친자 분들에게 심심한 사과의 말씀을 드린다.

<상견니> 펑난소대가 즐겨 찾던 타이난 맛집,
용천빙수와 간정명품옥
<상견니>의 주무대라 할 수 있는 타이난은 대만에서 가장 역사가 오랜 도시이자, 가장 먼저 개발된 옛 수도다. 우리로 치면 경주, 일본으로 치면 교토 같은 느낌의 도시라고나 할까. 무엇보다 타이베이보다 한참 남쪽에 있는 곳이어서 훨씬 더 따뜻하다. 타이베이에서 고속열차를 타고 2시간 정도 이동하면 타이난 역에 도착하는데, 타이난 역에는 <상견니> 투어를 위한 촬영지 지도를 나눠준다. 솔직히 이 지도를 갖기 위해서라도 꼭 타이난에 들러볼 가치가 있다. 그렇게 <상견니>의 주인공들이 다녔던 펑난고등학교가 있는, 바로 그 주인공 3인방 ‘펑난소대’를 만나기 위해 타이난에 도착했다.

가장 먼저 찾은 곳은 바로 모쥔제(시백우)의 할머니가 운영하는 빙수집으로 나왔던 ‘롱췐’이다. 한국의 시골 읍내를 연상시키는 것 같은 한적한 동네를 걷다 보면, 한자로 ‘용천’(龍泉)이라고 쓰인 간판을 찾을 수 있다. 리쯔웨이와 모쥔제가 앉아있던 야외자리를 비롯해 드라마 속 모습 그대로인 빙수집으로, 실제로 3대가 이어오며 100년이 넘는 전통을 자랑하는 찐 로컬 맛집이다. 내부에는 영화 촬영 당시의 사진들도 꽤 많이 붙어 있어 어디에 눈을 둬야 할지 알 수가 없을 정도다. 여기서 리쯔웨이는 ‘연유 두배 푸딩 팥빙수’를 먹는데, 실제로 그 메뉴가 있는 것이 아니라 대만 편의점에서 흔하게 팔고 있는 푸딩을 빙수 위에 올려서 촬영한 것이라고 한다. 그래서 수많은 상친자들은 미리 편의점에서 산 푸딩을 가지고 이곳을 방문한다. 무비투어 참가자들이 이곳에서 단체사진을 찍었는데, 우리가 찍고 싶어서 찍은 게 아니라 한국 팬들이 대거 찾아온 것을 보고 즐거워진 주인아주머니께서 ‘함께 찍자’며 먼저 제안해주신 거였다. 친절한 주인아주머니와 더불어 상상했던 그대로의 빙수 맛을 느낄 수 있어서, 이번 무비투어 방문지 중 가장 인상적이었던 곳이 아닐까 싶다.

<상견니>에서 연유 푸딩 팥빙수만큼이나 가장 먹어보고 싶었던 음식은 바로 펑난소대가 진범을 추리하면서 먹었던 냄비우동이다. 바로 그 냄비우동을 파는 ‘간정명품옥’(閒情茗品屋)이야말로 상친자가 반드시 찾아야 할 <상견니> 성지순례의 끝판왕 같은 장소다. 펑난소대가 앉았던 자리는 물론 각종 촬영 당시의 사진들이 가득해서 감격하지 않을 수 없는 곳이다. 내부에는 세 배우 허광한, 가가연, 시백우의 친필 사인이 있을뿐더러 냄비우동을 받치고 있는 나무 그릇에도 세 배우의 사인이 있다. 영광스럽게도 바로 그 아래에는 <돌아온 방구석1열> 촬영차 이곳을 방문했을 때 나를 비롯해 변영주 감독, 봉태규 배우의 사인도 있다. 게다가 놀랍게도 주인아주머니께서 저를 기억해주셔서 함께 다시 사진도 찍었다. 촬영 당시 찍었던 스마트폰 사진을 보여주시며 ‘이 사람이 당신 아니냐?’고 수줍게 물어보시던, 마치 황위쉬안과 왕취안성이 VR로 재회하는 것처럼 다가와 물어봐 주셔서 정말 크게 감동했다. 당시 흰 접시에 사인을 하며 ‘상친놈’이라고 썼던 일이 한없이 자랑스러워지는 순간이었다. 아무튼 빙수집 주인아주머니도 그렇고 이곳도 그렇고, 이번 무비투어 참가자분들이 매일 했던 얘기가 있다. “대만 사람들 왜 이렇게 친절해요?”

<상견니> 시간 여행의 주무대,
산화구와 32 레코드
<상견니>의 주요 촬영지들이 모여있는, 타이난의 산화구(善化區)를 찾았다. 타이난시는 우리처럼 여러 개의 구(區)로 이루어져 있는데, 그중 타이난의 가장 중심에 있는 구다. 주인공들이 살던 동네라고 해도 될 정도로, 펑난소대가 비를 피하며 뛰던 정자와 천윈루가 집을 나와 걷던 거리, 그리고 모쥔제가 천윈루에게 자신의 보청기를 고백하던 장소 등 에피소드마다 빠지지 않고 등장한 마을이다. 그래서 이곳에서는 마치 드라마 속에 들어와 있는 것 같은 착각이 들게끔 한다. 상친자들에게는 그야말로 눈만 돌리면 여기저기 다 무슨 장면 촬영지라고 맞출 수 있을 정도다. 게다가 <상견니>의 포스터를 촬영한 하늘색 셔터 문이 있는 집도 바로 이곳에 있다. CG로 셔터의 위아래를 길게 늘여 작업한 것임을 알 수 있다. 마침 이곳을 찾은 날, 나이 든 왕취안성으로 예상되는 한 할아버지가 망중한을 즐기고 계셨다. 자리를 비켜주지는 않으셨지만, 마음대로 사진을 찍으라고 하셔서 멋진 사진을 남길 수 있었다.

마지막으로 ‘32 레코드’가 있던 곳을 찾았다. 말하자면 이번 무비투어는 32 카페로 시작해 32 레코드로 거슬러 올라가는 여정이었다. 마치 <상견니>의 구조처럼 타임슬립하는 구성이었다고나 할까. 황위쉬안이 천윈루의 시간으로, 리쯔웨이가 왕취안성의 시간으로 타임슬립하며 서로 퍼즐을 맞춰가는 <상견니>의 테마와 정서를 제대로 이해하기 위한 빅 픽처였다고 감히 말씀드리고 싶다. 32 레코드 촬영지에 도착해 안을 들여다보니, 현재 비어있는 상태였다. 문득 <상견니>가 얘기하는 ‘순간’의 의미를 떠올렸는데, 진부할 수도 있는 타임슬립 소재를 색다르게 풀어낸 <상견니>의 매력 포인트가 바로 거기 있다. 사랑을 완성하기 위해 타임슬립을 반복하는 가운데, 영원보다 값진 것은 바로 ‘지금 이 순간’이라고 얘기하는 <상견니>처럼, 우리가 이곳을 찾은 바로 이 순간에는 아무것도 없었고, 곧 무언가로 채워지게 될 것이다. 혹시라도 다음에 이곳을 찾으면, 그 미래의 순간에는 또 어떻게 바뀌어있을까를 상상하며, 무비투어 참가자들은 손에 손잡고 과거에 미련을 갖지 말고 멋진 현재를 살아가자는 의미로, 지나가는 대만 사람들이 멀뚱멀뚱 쳐다보는 가운데, 다 같이 ‘라스트 댄스’를 합창하며 3박 4일의 뜻깊은 대만무비투어를 마무리했다. 쏘이쟝스 쟝니옌징 비러 치라이 헤이안 쯔종 퍄오푸 워더 치타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