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2일(현지시각) 미국의 대표적인 영화 매체 인디와이어가 2024년 최고의 영화 ‘The 30 Best Movies of 2024 (So Far)’를 발표했다. 인디와이어는 선정 기준에 대해 ‘여러 영화제와 그 지역에서 높은 평가를 받은 작품들’이라며 ‘일부는 작년 가을 영화제에서 나왔다’고 덧붙였다.
인디와이어가 뽑은 올해 최고의 영화 목록에는 이번 칸영화제에서 황금종려상을 받은 숀 베이커 감독의 <아노라>부터 국내에서 4만 명 이상의 관객을 모았던 하마구치 류스케 감독의 <악은 존재하지 않는다> 그리고 지난해 칸영화제와 부산국제영화제에의 주목을 받은 팜 티엔 안 감독의 <노란 누에고치 껍데기 속>까지 다양한 작품들이 실렸다.
그중 현시점(2024년 11월) 한국 극장과 각종 OTT에서 찾아볼 수 있는 작품 몇 가지를 갈무리했다. 순서는 국내 개봉 최신작 순이니 참고하시길.

<아노라>
11월 6일 개봉
‘인디와이어’가 첫 번째로 꼽은 올해의 영화는 영화 <아노라>이다. 이번 77회 칸영화제 황금종려상을 받으며 스포트라이트를 한몸에 받은 <아노라>의 감독은 <탠저린>(2015), <플로리다 프로젝트>(2017) 등의 연출과 각본, 제작까지 맡아 이미 그 재능을 전 세계에 선보인 션 베이커. ‘인디와이어’는 션 베이커 감독이 <탠저린>(2015), <레드 로켓>(2021) 등을 통해 꾸준히 조명해온 성매매 종사자들의 삶에 대해 <아노라>에서 또 한 번 진정성 있게 다루었다고 전했다.
<아노라>는 뉴욕의 스트리퍼인 아노라(마이키 매디슨)가 러시아 재벌 2세 이반(마르크 에이델스테인)을 만나 결혼을 하며 시작한다. 둘은 불같은 사랑을 하지만 결혼을 반대하는 이반의 부모님은 혼인무효소송을 진행하고자 이들을 쫓아온다. 겁에 질린 남편 이반은 아내를 버리고 도망가고 아노라는 남편을 찾아 나선다.
포스터는 영화를 '화려한 뉴욕의 거리를 자유롭게 뛰어다니는 젊은 연인의 사랑이야기'쯤으로 기대하게 한다. 하지만 막상 극장에 들어가서 자리에 앉으면 상당히 당혹스럽고 놀라운 광경이 펼쳐질 것이다. <아노라>는 주인공 아노라를 중심으로 뉴욕 성매매 업계의 실태를 노골적으로 묘사하고 그 안에 성노동자들의 뒤틀린 욕망과 연약한 자아 등을 쏟아지는 대사 안에 담아낸다.

<죽고 싶지만 사랑은 하고 싶어>
9월 4일 개봉
웨이브, 왓챠, 시리즈온, 쿠팡플레이, U+모바일tv
한국인에게 익숙한 이 영화의 원제목은 <Sometimes I Think About Dying>. 한 에세이 제목의 패러디쯤으로 여길 수 있지만 영화를 보면 원제보다 나은 번역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죽음에 대한 영화임에도 많은 삶이 담겨있다’는 인디와이어의 평처럼 이 영화는 생과 사, 동전의 양면을 모두 담아낸다.
<죽고 싶지만 사랑은 하고 싶어>는 늘 죽음을 생각하는 프랜(데이지 리들리)의 이야기를 그린다. 매일의 평범하고 무난한 삶을 살아가던 프랜은 신입 직원 로버트(데이브 메르헤예)와 만나며 미묘한 삶의 변화를 느낀다.
주인공 프랜 역을 맡은 배우 데이지 리들리는 <스타워즈: 깨어난 포스>, <스타워즈: 라스트 제다이>, <스타워즈: 라이즈 오브 스카이워커> 등으로 스타덤에 오른 배우. 데이지 리들리를 스타워즈 시퀄 삼부작 속 레이로만 기억하고 있다면 <죽고 싶지만 사랑은 하고 싶어>를 보기를 추천한다. 데이지 리들리에게서 죽음의 그림자를 드리우고도 사랑스러운 젊은 여성의 얼굴을 찾아볼 수 있다.

<러브 라이즈 블리딩>
7월 10일 개봉
넷플릭스, 웨이브, 왓챠 등
1989년 뉴멕시코주 사막에서 체육관 매니저로 일하는 루(크리스틴 스튜어트)가 보디빌더 재키(케이티 오브라이언)와 만나게 된다. 이들은 가족의 외면, 사회의 괄시 속에 서로를 알아보며 사랑에 빠지게 된다. 그러던 중 한 남자를 살해하게 되며 일은 꼬인다.
인디와이어는 <러브 라이즈 블리딩>에 대해 ‘매혹적이면서 고통스러운 분위기를 자아낸다’고 전했다. <러브 라이즈 블리딩>은 <델마와 루이스>(1991)도 <캐롤>(2016)도 아니다. 터질듯한 몸과 뜨거운 욕망, 총과 약 등 ‘사랑’이라는 신성한 단어와 어울리지 않는 것만 같은 미장센으로 가득하다.
영화는 각종 자극적인 이미지 사이 ‘사랑’이라는 단어로 포장되는 집착, 세뇌 등 어긋난 관계에 대해 펼쳐놓았다. 인디와이어는 이 작품의 가장 큰 매력에 대해 ‘크리스틴 스튜어트와 케이티 오브라이언의 불꽃 튀는 케미스트리’라고 전했지만 필자는 이에 연출과 각본을 맡은 ‘로즈 글래스의 독특한 색채’라고 꼽는 지점이다.

<퓨리오사:매드맥스 사가>
5월 22일 개봉
웨이브, 시리즈온, 쿠팡플레이, 애플tv, U+모바일tv
인디와이어가 선정한 올해의 영화 중 하나는 <매드맥스: 분노의 도로>의 프리퀄 <퓨리오사: 매드맥스 사가>이다. 인디와이어는 <퓨리오사> 시리즈에 대해 ‘이 작품은 <매드맥스: 분노의 도로>의 단순한 연장선으로 보이기를 거부한다. 오히려 모든 면에서 전작의 영향력을 더욱 깊게 만든다’고 전했다. 이어 속편이 아닌 프리퀄로 복귀한 조지 밀러 감독에 대해서는 재미있는 평가를 내놓았다. “그는 미쳤을지는 몰라도 어리석지는 않다. 전작을 능가하려 하지 않지만 수익 감소에 만족하지도 않는다. 조지 밀러는 훨씬 더 미친 짓이지만 보람 있는 선택을 했다.”
<퓨리오사: 매드 맥스 사가>는 2015년 세계적인 인기를 얻은 영화 <매드맥스: 분노의 도로>의 프리퀄이다. ‘프리퀄’이란 원작에 선행하는 사건에 대해 다루는 작품을 뜻한다. 조지 밀러는 <매드맥스: 분노의 도로>에서 한 축을 담당했던 캐릭터 퓨리오사의 어린 시절을 그려냈다. 원작에서 샤를리즈 테론이 연기한 퓨리오사는 안야 테일러 조이가 이어받았다.
다소 힘이 떨어지는 액션씬이 아쉽긴 하지만 <퓨리오사: 매드 맥스 사가>는 전작의 명성을 해치지 않는 수작임에 틀림없다. <매드맥스: 분노의 도로>로 매드맥스 시리즈를 접한 관객들이 어렴풋이 짐작하던 매드맥스의 세계관을 직관적으로 짚어주었다.
무엇보다 특색 있는 배우들의 연기가 매력적이다. 주연 배우 안야 테일러 조이는 작지만 단단한 움직임으로 샤를리즈 테론에 버금가는 에너지를 뿜어냈다. 동시에 크리스 햄스워스가 맡은 디멘투스는 자칫 무겁고 밋밋하게 흘러갈 수 있는 서사에 적절한 양념을 치는 인물로 배치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