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우삼의 누아르 <영웅본색>이 벌써 30주년을 맞이했습니다. 이에 맞춰 <영웅본색 4>가 오는 3월에 개봉을 앞두고 있습니다. 연출은 <폴리스 스토리 2014>로 홍콩영화 클래식을 부활시켰던 경험이 있는 딩성 감독입니다. 4편을 만나보기 전에 영웅본색 시리즈 세 편을 오랜만에 꺼내봤습니다.
※ 영화 결말에 대한 스포일러가 포함돼 있습니다.
영웅본색
송자호(적룡)는 출소 후, 택시회사에 들어가서 새 출발을 다짐합니다. 그가 출소하기만을 기다리며 비참한 삶을 버텨온 마크(주윤발)는 이런 송자호에게 실망하지만, 송자호는 좀처럼 의지를 굽히지 않습니다. 한편, 형의 정체를 몰랐던 송아걸(장국영)은 경찰이 되었고 아버지의 죽음에 형이 개입되어 있다는 것을 알고 그를 증오합니다.
영웅본색 1편의 명장면은 뭐니 뭐니 해도 주윤발이 장국영에게 호통을 치는 장면입니다. “형은 새 삶을 살 준비가 되었는데, 너는 왜 형을 용서할 준비가 안 되어 있지?”라며 장국영의 목덜미를 잡고 힘주어 말합니다. “형제란..”이라며 말을 이어가던 중 갑자기 주윤발이 머리에 총을 맞고 쓰러지는 장면은 언제봐도 가슴이 철렁하네요. 흔히 주윤발 하면 베레타 쌍권총을 생각하지만, 여기에서는 기관단총 우지를 들고 나타나는 것도 새롭게 보입니다.
그런데 다시 보니 <영웅본색>에서 주윤발은 중요한 이야기를 할 때는 상대의 목덜미를 잡는 버릇이 있습니다. 적룡에게 자신은 스스로 어떤 사람인지 증명하기 위해 3년을 기다렸다고 말하는 장면이지요. 믿었던 부하에게 배신당하고 모든 것을 잃은 울분을 허세반 농담반으로 속이며 살아온 세월이 울컥울컥 넘어옵니다. 1편에 생각보다 총격신이 많지 않아서 실망하는 분들도 있겠습니다만, 이렇게 진하게 드라마를 끌고가는 연기들이 인상적입니다.

- 영웅본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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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독 오우삼
출연 적룡, 장국영, 주윤발
개봉 1986 홍콩
영웅본색 2
다시 감옥에 갇힌 송자호는 과거를 후회하며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습니다. 그러나 위조지폐 범죄가 끊이지 않자, 경찰은 자호에게 가석방을 조건으로 협조를 구합니다. 단호하게 거절했던 송자호는 이 작전에 동생 아걸(장국영)이 개입되었다는 사실을 알고 제안을 받아들입니다. 한편, 합법적으로 살고 있던 송자호의 형님 용사(석천)는 다른 조직의 음모에 모든 것을 잃습니다. 그 과정에서 아걸(장국영)이 죽음을 맞이하지요. 송자호는 마크의 쌍둥이 동생 켄 그리고 용사와 함께 복수에 나섭니다.
<영웅본색>은 이미 한편으로 충분히 완결된 작품이었습니다. 형제는 오해를 풀었고 송자호는 자수해서 감옥으로 돌아갑니다. 그리고 마크는 죽음을 맞이했지요. 그러나 1편의 엄청난 성공으로 2편이 제작되었습니다. 주윤발은 마크의 쌍둥이 동생 켄이라는 설정으로 다시 돌아왔고, 작정한 듯 총격신의 비중도 많이 늘었습니다.
2편을 대표하는 명장면은 아걸(장국영)이 전화 부스에서 이제 막 출산한 아내와 통화하는 장면입니다. 켄(주윤발)의 부축을 받으며 힘겹게 통화를 하는 아걸에게 아내는 "(아이의) 눈이 당신을 닮았다"고 말합니다. 그리고 아걸은 마지막 힘을 짜내어 딸의 이름을 ‘송호연’이라고 지어주지요.
개인적으로 가장 좋아하는 장면은 영화의 마지막입니다. 뒤늦게 경찰이 출동해서 현장에 도착하니 복수를 마친 송자호, 용사, 켄은 소파에 나란히 앉아 여유롭게 최후를 맞이합니다. 이 라스트신의 장렬한 허세가 시리즈의 정서를 압축적으로 보여줍니다. 총알이 무한 리필되는 <영웅본색>에는 고증에 집착하는 요즘 액션영화들이 보여줄 수 없는 낭만이 있달까요.

- 영웅본색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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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독 오우삼
출연 석천, 적룡, 장국영, 주윤발
개봉 1987 홍콩
영웅본색 3
베트남 전쟁이 끝나갈 무렵, 어지러운 정세에 살고 있는 친척 가족을 홍콩으로 데려오기 위해 마크는 베트남에 옵니다. 마크와 아민(양가휘)은 우연히 조직의 보스인 주영걸(매염방)과 친해지게 됩니다. 세 사람 사이에 묘한 연애감정이 오가는 가운데, 베트남의 부패한 군벌과 주영걸이 위험한 거래를 시작합니다.
원래 서극은 영웅본색 시리즈의 제작자였습니다. 그런데 3편에서는 직접 감독을 맡게 되었습니다. 적룡과 장국영은 등장하지 않고 대신 양가휘와 매염방이 등장합니다. 1970년대 불안한 정세의 베트남을 배경으로 하고 있어 지난 영웅본색 시리즈들과 다소 동떨어진 느낌입니다. 작품 자체만 놓고 보면 그 정도로 완성도가 떨어지는 작품은 아닙니다만, 바바리코트와 선글라스를 기대했던 관객들에게 탱크와 헬기가 등장하는 영웅본색이라니 뭔가 속은 기분이었겠지요. 작품은 흥행에 실패했고, 팬들도 3편은 시리즈로 인정하지 않는 분위기입니다.
안타깝게도 <영웅본색 4>에 주윤발이 출연하지는 않습니다. 이전 시리즈에서 주윤발이 맡았던 마크 역은 <나의 소녀시대>로 우리에게도 익숙한 왕대륙이 맡았습니다. 적룡이 맡았던 송자호 역은 최고의 인기를 누리고 있는 왕카이가 맡았습니다. 그리고 장국영의 아걸은 못지않은 꽃미모를 자랑하는 가수 겸 배우 마천우가 열연합니다. 새로운 영웅본색이 과거의 전설을 이어갈 수 있을지 지켜보겠습니다.

- 영웅본색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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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독 서극
출연 주윤발, 매염방
개봉 1989 홍콩
씨네플레이 객원 에디터 안성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