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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하지 않은 김윤석, 장르를 벗어난 김윤석, 사람 냄새나는 김윤석

김지연기자
〈대가족〉 속 김윤석
〈대가족〉 속 김윤석

김윤석이 오는 11일 개봉하는 영화 <대가족>으로 필모그래피 사상 첫 가족 코미디 장르에 도전했다. 그가 출연한 수십 개의 작품 중 가족 코미디가 없다니! 영화 <추격자>(2008)에서 처음 주연을 맡은 이후로 김윤석은 이순신도, 타짜도, 살인청부업자도, 형사도, 사제도 거쳤으나 의외로 평범한 아버지 역과는 인연이 없었다. ‘4885’의 인상이 짙게 남은 탓일까. 김윤석의 캐릭터들은 대개 ‘인간적인’ 혹은 ‘소박함’ 등의 키워드와는 거리가 멀었다.

 

그런 그가 <대가족>에 출연해 웃음과 감동을 담당한다는 사실은 퍽 낯설게 느껴지기도 한다. 그러나 그가 연기해 온 캐릭터와는 별개로, 김윤석 ‘본체’는 장르적인 인물보다는 이 땅에 발붙이고 살아가는 사람들에 관심을 두고 있는 듯하다. 돌이켜보면, 그가 연기한 인물들이 모두 다 평범함을 벗어난 인간인 것은 아니었다. <대가족> 이전, 멀게는 시도 때도 없이 “얌마, 도완득!”을 부르던 영화 <완득이>(2011)의 담임선생님 ‘똥주’가 그랬다.

 

〈미성년〉 스틸컷
〈미성년〉 스틸컷

그의 감독 데뷔작 <미성년>(2019)은 그의 관심사를 단박에 보여주는 예시다. <미성년>은 (공연된 적 없는 희곡을 바탕으로) 김윤석이 직접 쓰고 연출했는데, 놀랍게도 영화는 소박한 드라마다. 물론 <미성년>에는 ‘불륜’이라는 자극적인 소재가 자리하기는 하지만, 영화는 불륜이 일어난 과정, 그리고 불륜남-불륜녀라는 틀 안에서 이야기를 전개하지 않는다.

 

<미성년>은 서사보다는 인물의 감정이 중심이 되는 영화다. 영화는 상황과 사건을 설명하는 데에 장면을 소비하지 않는다. 그 대신, 영화는 부모님의 불륜 사실을 알게 된 ‘미성년’, 고등학생 자녀들의 심리에 주목한다. 주리(김혜준)의 아빠와 윤아(박세진)의 엄마는 불륜 관계인데, 그 둘 사이에 아이가 생겼다. 같은 학교에 다니는 주리와 윤아는 이에 어떻게 대처해야 할까.

 

<미성년>의 김윤석 감독은 부모의 불륜에 대처하는 두 고등학생의 모습을 멋 부리지 않고 투박할지언정 소박하게 담아낸다. 다른 작품에서 으레 등장하는, 부모의 불륜 사실을 알게 된 자녀가 기어이 화려한 방황을 일삼는 장면이 없는 것은 당연지사. <미성년>의 아이들은 방황 대신 부모의 불륜에 정면으로 돌파하길 택한다. 부모의 불륜을 알아챈 두 아이는 어른들보다 더욱 성숙한 태도로 사건을 수습하고, 돈가스와 오므라이스를 묵묵히 먹으며 묵묵한 연대를 다진다.

 

〈미성년〉 스틸컷
〈미성년〉 스틸컷

김윤석은 이 영화를 연출하면서 동시에 출연까지 했는데, 놀랍게도 그가 맡은 역할은 여태까지 그가 보여준 선 굵은 캐릭터들과는 딴판이다. <미성년>에서 김윤석은 주인공이 아니라 영화의 변두리에 위치한 불륜남으로 출연했다. 주리의 아빠 대원(김윤석)은 가족들에게 불륜 사실이 발각되자마자 숨기 바쁘다. 설상가상으로 불륜 상대인 미희(김소진)가 자신의 아이를 낳자, 대원은 우스꽝스럽게 줄행랑을 친다. 부모들의 불륜으로 태어난 아기와 진정으로 교감하는 인물은 주리와 윤아, 두 고등학생뿐. <미성년>은 배우들의 호연과 함께 섬세하고 담담한 연출로 미성년과 성년의 의미에 대해 질문을 던진다.

 

〈미성년〉 촬영장의 김윤석 감독
〈미성년〉 촬영장의 김윤석 감독

‘하고 싶은 이야기를 찾으면’ 영화 연출에 도전하겠다고 한 김윤석이 마침내 찾은 이야기가 <미성년>이었다는 점은 꽤나 인상 깊다. 김윤석은 2014년, 한 창작극 페스티벌에서 <미성년>의 모태가 되는 공연을 접하고는 영화화를 결심했다. 김윤석은 <미성년> 개봉 당시, 이전부터 ‘드라마와 배우만 가지고 가는 연출’을 해보고 싶었다고 말한 바 있는데, ‘사람’으로 승부를 보는 작품 <미성년>은 배우로서, 또 연출가로서의 김윤석의 지향점을 드러낸다.

 

〈대가족〉스틸컷
〈대가족〉스틸컷

김윤석이 영화 <대가족>을 선택한 이유 역시, <미성년>에서 보여준 그의 지향점과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김윤석은 <대가족> 제작발표회에서 “<대가족>은 굉장히 귀한 시나리오”라고 말했는데, 그는 “펜데믹, OTT 바람 이후, 대부분의 작품이 속도감, 장르적인 개성, 타격감, 자극성이 두드러졌다. 드라마와 캐릭터보다는 사건 속에 휘말려가는 작품들이 많았다”라고 그간의 작품들의 경향성에 대한 설명을 덧붙였다.

 

그도 그런 것이, 한때 국내 극장가를 풍미했던 <과속스캔들>(2008), <7번방의 선물>(2013) 류의 가족 코미디 영화는 더 이상 쉽게 찾아보기 어려워졌다. 한편, 다가오는 11일 개봉하는 영화 <대가족>은 극장가에 오랜만에 등장한 가족 코미디다. <대가족>은 스님이 된 아들(이승기) 때문에 대가 끊긴 만두 맛집 ‘평만옥’ 사장(김윤석)에게 손주들이 찾아오면서 생각지도 못한 기막힌 동거 생활을 하게 되는 이야기를 그린다.

그러나 <대가족>은 ‘힐링 영화’ 혹은 ‘감동 영화’라는 키워드 이면에 꽤나 여러 겹의 레이어가 자리한 영화다. 가령 김윤석이 연기한 함무옥이라는 인물은 마냥 ‘손주를 바라는 평범한 할아버지’라고만 해석하기에는 어폐가 있다. 함무옥은 가부장제의 최전선에 존재하는 인물로, 그가 손주를 바라는 이유는 ‘대를 잇기’ 위함이다. 함무옥은 아내와 사별하고 새로운 여성과 함께 생활하고 있지만 그를 호적에 올리지 않으며, 제삿날 만드는 귀한 음식은 모두 오로지 ‘함 씨’ 성을 가진 자만이 먹을 수 있다고 말하고, 자신이 죽으면 누군가가 자신을 위해 제사상을 차려주기를 바란다.

 

〈대가족〉스틸컷
〈대가족〉스틸컷

따라서 <대가족>은 구시대의 가치를 ‘선’, 즉 옳은 것이라 믿고 살았던 한 사람이 새로운 가치관을 받아들여 나가는 이야기에 가깝다. <미성년>에서 가장 찌질하고 비겁한 변두리의 역할을 자처하며 인간의 나약하고 비겁한 모습을 보여주고자 했던 김윤석이 <대가족>의 함무옥을 선택한 이유는 바로 그것 때문이 아니었을까. 김윤석은 <대가족>의 함무옥이 “결핍이 많은 인물”이라고 해석하기도 했는데, 그의 말처럼 함무옥은 서울 빌딩 숲 한복판 38년 된 노포 ‘평만옥’을 굳건하게 지키려는 뚝심과 그 이면의 결핍, 모순이 뒤섞여 더욱 매력적이고 궁금한 인물로 탄생했다. 김윤석이 항상 표현하고 싶었던, 연출하고 싶었던 인물의 ‘인간성’은 한 단어로 귀결되지 않는, 복잡다단한 형태일 터다. 장르적인 캐릭터와 인간적인 인물 사이에서, 배우 겸 감독 김윤석의 내공은 점점 더 깊어져 간다.

 


씨네플레이 김지연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