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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의 연말을 빛.....빚내게 해줄 단 하나의 영화 〈라스트 에어벤더〉

성찬얼기자
〈라스트 에어벤더〉
〈라스트 에어벤더〉

연말이라면 들뜨기 마련이다. 사실 내가 안 들떠도 주변에서 들뜨게 해주니 들뜰 수밖에 없다. 한 해를 무사히 보낸 기분과 새로운 한 해를 맞이하는 설렘은 똑같은 일상도 괜히 둥둥 떠다니는 기분을 안겨준다. 그렇다면 그 둥둥 떠다니는 기분을 날려보내고 땅에 발붙이게 해줄 영화를 소개하는 것이 인지상정(?). 각성제급으로 '이런 현실도 있구나!'를 깨닫게 해줄 영화가 12월 22일 넷플릭스에서 다시 서비스되고 있다. 무슨 영화인가 하면 한 감독의 커리어를, 한 프랜차이즈의 생명력을 날려버릴 뻔한 <라스트 에어벤더>다.


커리어 파괴자

넷플릭스에서 제작한 〈아바타: 아앙의 전설〉
넷플릭스에서 제작한 〈아바타: 아앙의 전설〉

 

넷플릭스가 이번에 <라스트 에어벤더>를 서비스하는 속마음이 궁금하긴 하다. 왜냐하면 넷플릭스는 이미 <라스트 에어벤더>와 같은 원작의 드라마 <아바타: 아앙의 전설>을 제작, 서비스 중이기 때문이다. <아바타: 아앙의 전설>은 심지어 큰 성공을 거둬 시즌 3까지 제작을 확정한 상황. 그럼에도 그보다 먼저 영화화에 도전했다가 대실패를 거둔 <라스트 에어벤더>를 서비스하다니, 일종의 반사이익을 얻고 싶은 건가 괜한 의구심이 드는 것이다(사실은 그냥 배급사와의 계약 때문이겠지만).

원작 애니메이션 〈아바타-아앙의 전설〉
원작 애니메이션 〈아바타-아앙의 전설〉

 

각설하고, <라스트 에어벤더>는 애니메이션 <아바타-아앙의 전설>을 실사화한 영화다. 이 애니메이션은 공기, 물, 불, 흙을 조종할 수 있는 '벤더'들이 존재하는 판타지 세계를 그린다. 일반적으로 한 원소씩 다루는 벤더들과 달리 유일하게 4원소 모두 다룰 수 있는 '아바타'가 세대마다 한 명씩 등장하는데, 이 아바타가 죽으면 다른 인물로 환생해 세상의 평화를 유지한다는 전설이 있다. 그런데 아바타가 갑자기 사라지고, 100년간 세상은 전쟁의 전조가 흐르며 위태로워진다. 마지막 아바타 아앙이 물의 부족 남매 소카와 카타라에게 발견되면서 이야기는 시작된다.

캐릭터의 복식이나 도시 디자인 등에서 '동양풍의 서구권 애니메이션'이 원작 애니의 가장 큰 특징.
캐릭터의 복식이나 도시 디자인 등에서 '동양풍의 서구권 애니메이션'이 원작 애니의 가장 큰 특징.

보시다시피 <아바타-아앙의 전설>은 판타지라고 하나, 동양적 세계관을 기반으로 하고 있다. 환생하는 아바타의 설정은 티베트 불교의 상징 달라이 라마가 떠올리고, 극중 등장하는 복식이나 양식도 동양풍으로 채워졌다. 전쟁에서의 승리가 아닌 세상의 평화를 가져오기 위해 수행한다는 이야기 구조 또한 사뭇 색다르다. 2005년부터 2008년까지 니켈로디언에서 방영한 <아바타-아앙의 전설>은 동서양을 불문하고 인기를 끌며 자연스럽게 실사화도 논의됐다. 종영 후 2년 만에 빠르게 실사화되며 그 인기를 증명하는 듯했지만 문제는 결과물이 나오기 전부터 결과가 예견됐다는 것이다.


잘못 꿴 첫 단추

〈라스트 에어벤더〉 현장의 M. 나이트 샤말란 감독(왼쪽)
〈라스트 에어벤더〉 현장의 M. 나이트 샤말란 감독(왼쪽)

원작이 있는 블록버스터(이 영화도 제작비 1억 달러가 투입됐다)가 대개 그렇듯 영화가 기대한 만큼 잘 나오는 건 쉽지 않다. 그렇지만 <라스트 에어벤더>만큼 감독 발표부터 "어?"라고 물음표를 수집한 영화는 거의 없다. <라스트 에어벤더>의 수장은 M. 나이트 샤말란이 임명됐다. <식스 센스>로 영화계에 엄청난 반향을 불러온 천재, 그리고 귀신처럼 소포모어 징크스를 겪으며 하락세를 밟은 범재. 그게 당시 샤말란 감독을 향한 평가였다. 특히 이 영화 전의 두 편, <레이디 인 더 워터>와 <해프닝>은 설정만 그럴싸한 속 빈 강정이란 평가로 능수능란한 이야기꾼으로서의 위치마저 무색해진 상황. 무엇보다 그는 이른바 '작은 영화'만 해온 감독이었기에 <아바타: 아앙의 전설>라는 장대한 판타지를 담을 재목으론 보이지 않았다.

원작의 소카-카타라 남매는 누가 봐도 유색인종인데, 영화에서 백인 배우를 캐스팅해 논란이 일었다.
원작의 소카-카타라 남매는 누가 봐도 유색인종인데, 영화에서 백인 배우를 캐스팅해 논란이 일었다.
반면 악역 포지션 불의 제국 캐릭터들은 전부 인도계 배우로 캐스팅됐다.
반면 악역 포지션 불의 제국 캐릭터들은 전부 인도계 배우로 캐스팅됐다.

그럼에도 그가 인도계 미국인, 즉 원작의 동양풍 판타지 감성을 살릴 수 있다는 일말의 희망도 있었다. 캐스팅이 발표되기 전까지는. <라스트 에어벤더> 캐스팅은 팬들에게 굉장한 충격을 안겨줬는데, 원작에서 묘사한 캐릭터들의 인종과 너무 달랐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물의 부족 출신 소카와 카타라는 까무잡잡한 피부로 유색인종이 확실했는데 정작 백인 배우들이 캐스팅됐고, 반면 원작에서 피부가 하얗게 그려진 불의 부족 인물들은 인도계 배우들이 캐스팅됐다. 불의 부족이야 생활양식이 동양풍이니 아시아 문화권 배우들을 캐스팅했다 쳐도 물의 부족은 예상도 못한 캐스팅이었다. 세계의 평화와 균형을 말하는 작품이었기에 특히 반발이 강했고 (당시까지만 해도 그렇게 대중적으로 쓰이지 않은) 화이트워싱 논란까지 따라붙었을 정도다. 정작 아앙을 맡은 노아 링어가 25,000:1 경쟁률을 뚫은 신예라는 건 뒷전으로 밀려났을 정도.

그런 여러 논란에도 <라스트 에어벤더>는 순조롭게 제작에 착수했다. 순조롭다 정도가 아니라, 완성 전부터 속편을 집필할 정도로 내부에서도 작품에 거는 기대가 높았던 모양이다. 시각효과에 ILM이, 음악에 제임스 뉴튼 하워드가 합류하는 등 확실히 '돈 쓰는' 영화인 것이 드러나면서 아주 조금이나마 긍정적인 여론이 생기기도 했다. 그렇게 2010년 여름, <라스트 에어벤더>가 개봉했다.


뚜껑 안 열어봤어도 됐을

8월 19일 개봉(한국 기준)한 <라스트 에어벤더>는 그래도 블록버스터 값을 하긴 했다. 한국에서도 130만 명을 동원해 그때까지 개봉한 M. 나이트 샤말란 감독 작품 중 두 번째로 흥행했다(첫 번째는 당연히 <식스 센스>다). 문제는 이게 그 전 샤말란 감독의 작품과는 '판'이 달랐다는 것일 뿐. 전 세계 3억 달러 돌파에도 성공했지만 1억 달러가 든, 그것도 유명 원작이 있는 영화로선 만족할 수 있는 수치는 아니었다.

그렇게 실패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는 영화가 글자 그대로 '총체적 난국'이었기 때문. 먼저 영화가 너무 짧았다. 103분짜리 영화인데, 엔딩크레딧이 거의 9분은 돼서 사실상 90분대이다. 그런데 원작 애니메이션에서 해당 부분은 20분짜리 에피소드로 20화 분량이다. 그걸 두 시간도 채 안 되는 시간에 어떻게 욱여넣기는 했는데 그러다보니 인물들의 서사에 깊이 빠질 시간도 없이 모든 부분이 “관객 여러분 다 원작 보셨죠? 이거 원작 그 부분입니다, 아시죠?”라고 설명하고 넘어가듯 스피디하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배우들은 재능은 있어도 연기에 능숙하진 않은 편이라 곳곳에서 국어책 읽기 장면이 터져 나오니 몰입을 깨는 순간이 잦았다. 거기에 현실성을 높이기 위한 디자인 변경 등도 아쉬운 지점이다. 애니메이션에서 공기의 유목민을 상징하는 파란 화살표는 문양으로 변경됐고, 각 캐릭터를 단번에 보여주는 원색에 가까운 의상도 대체로 어두운 톤이 돼 영화를 더욱 무겁게 만들었다.

오자이(위), 아이로(아래)의 원작-영화 〈라스트 에어벤더〉 캐스팅
오자이(위), 아이로(아래)의 원작-영화 〈라스트 에어벤더〉 캐스팅

 

 

 

 

또 영화의 캐스팅은 주연진뿐만이 아녔다. 특히 원작 팬들이 굉장히 아쉽다고 말한 캐스팅은 바로 불의 제국 제왕 오자이와 주코의 삼촌 아이로였다. 원작에서 가장 강력한 카리스마를 뽐내는 제왕 오자이는 클리프 커티스가, 인자한 모습으로 주코를 돌보는 아이로는 샤운 토웁이 맡았는데 원작과 이미지가 정반대였던 것. 클리프 커티스는 오자이의 다소 신경질적으로까지 보이는 외형과 달리 선한 얼굴이었고, 샤운 토웁은 언제나 빙긋 미소를 지어보이는 여유로운 모습의 아이로와 달리 중후한 느낌이 강했던 것. 물론 원작과 꼭 유사한 이미지로 국한할 필요는 없다. 캐릭터를 재해석하거나 배우에게 좀 더 많은 시간을 할애할 거라면. 하지만 <라스트 에어벤더>는 각 캐릭터들을 깊이 있게 재해석하는 장면이나 깊이 있게 들여다보는 장면이 거의 없었기에 '찰떡같은' 배우가 더욱 아쉬울 수밖에 없었다.

〈라스트 에어벤더〉 원작 애니메이션을 재현한 오프닝 장면
〈라스트 에어벤더〉 원작 애니메이션을 재현한 오프닝 장면
〈라스트 에어벤더〉 그 어렵다는 물 CG도 꽤 잘 구현돼있다.
〈라스트 에어벤더〉 그 어렵다는 물 CG도 꽤 잘 구현돼있다.

그 와중 시각효과는 꽤 그럴싸해서 극중 벤딩 장면들은 꽤 볼 만하다. 다만 액션 설계가 좋은 편은 아니라 어디까지가 물, 불, 공기, 흙 벤딩 묘사만 볼 만하다는 것이다. 영화의 클라이맥스에서 보여주는 카타라(워터벤딩)와 주코(파이어벤딩)의 대결은 강렬한 인상을 남기는데, 정말 놀랄 만큼 장면이 짧은 것도 특징이라면 특징. 그 외의 장면들도 시각효과 퀄리티는 훌륭한데 액션의 속도감이 전혀 없다는 점에서, 액션영화를 해본 적 없는 샤말란 감독의 한계가 두드러진 셈이다.

이렇게 열심히 깠지만 그래도 90분대라서 궁금증이 생긴다면 한 번쯤은 '찍먹'해볼 만하다. <트와일라잇> 시리즈 잭슨 라스본의 또 다른 모습이나, 훗날 <베이츠 모텔>에서 활약하는 니콜라 펠츠의 풋풋한 모습, 그리고 믿고 보는 배우 데브 파텔의 초창기 모습을 보는 재미도 쏠쏠하다(데브 파텔의 주코를 더 못 보는 것은 확실히 아쉽다). 물론 이 시리즈에 입문하겠다고 이 영화를 보겠다면, 가급적 원작 애니메이션이나 넷플릭스 실사화 시리즈를 추천하고 싶은 건 당연하다. “그런 영화를 왜 추천하세요”라고 한다면 이렇게 말하고 싶다. 필자는 이 영화가 개봉했을 때 극장에서, 그것도 3D로 봤다. 그렇다, 된장인지 똥인지 찍어 먹은 추억을 독자 여러분과 함께 나누고 싶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