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누즈 카민스키, 다리우스 콘지, 엠마누엘 루베즈키, 호이터 판 호이테마. 누구냐고? 할리우드에서 잘나가는 촬영감독들이다. 여기에 한 명 더 추가해야 한다. 절대 빼놓을 수 없는 이름이다. 지난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드디어 오스카 트로피를 받은 로저 디킨스다. 그는 <블레이드 러너 2049>로 무려 14번째 후보로 오른 뒤에 수상의 영예를 안았다.
그동안 로저 디킨스가 후보에 올랐던 작품들은 다음과 같다. <쇼생크 탈출>(1995), <파고>(1996), <쿤둔>(1997), <오 형제여 어디 있는가>(2000), <그 남자는 거기 없었다>(2001),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2007), <비겁한 로버트 포드의 제시 제임스 암살>(2007), <더 리더: 책 읽어주는 남자>(2008), <더 브레이브>(2010), <007 스카이폴>(2012), <프리즈너스>(2013), <언브로큰>(2014), <시카리오: 암살자의 도시>(2015). 눈에 띄는 점은 코엔 형제의 영화가 많다는 점이다. 코엔 형제와의 협업은 1991년 <바톤 핑크>부터 시작됐다. 최근에 로저 디킨스는 <프리즈너스>를 시작으로 드니 빌뇌브 감독과도 호흡을 맞추고 있다.
해외 매체 ‘인디와이어’는 로저 디킨스의 아카데미 촬영상 수상에 맞춰 그가 창조해낸 전설적인 명장면 20개를 선정했다. 다큐멘터리 촬영 감독으로 시작해 1986년 <시드와 낸시>로 할리우드에 입성한 뒤 코엔 형제의 영화로 전설이 된 로저 디킨스의 뷰파인더를 들여볼 시간이다.
<시드와 낸시>
(1986)
<시드와 낸시>는 다큐멘터리 경력의 로저 디킨스가 극영화에서 자신의 장기를 발휘한 영화다. 펑크밴드 섹스 피스톨스의 시드 비셔스와 낸시 스펑겐의 비극적인 실화를 담은 이 영화에서 로저 디킨스는 저항으로 상징되는 두 인물뿐만 아니라 위 사진 같은 멜랑콜리한 뉴욕의 풍경을 담아냈다.

- 시드와 낸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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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독 알렉스 콕스
출연 게리 올드만, 클로이 웹
개봉 1986 영국
<바톤 핑크>
(1991)
코엔 형제와 로저 디킨스는 모두 12편의 영화를 함께 만들었다. <바톤 핑크>가 첫 작품이다. 로저 디킨스는 코엔 형제를 만난 뒤 다큐멘터리적 기법을 버리고 스토리보드에 기반한 코엔 형제의 치밀한 스타일을 받아들였다. 로저 디킨스에게 <바톤 핑크>는 새로운 시대의 시작임에 틀림 없다.

- 바톤 핑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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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독 조엘 코엔
출연 존 터투로, 존 굿맨, 주디 데이비스, 마이클 러너, 존 마호니
개봉 1991 미국, 영국
<허드서커 대리인>
(1994)
<허드서커 대리인>은 코엔/디킨스의 조합 가운데 아마도 가장 유명하지 않은 영화일 듯하다. 어쨌든 로저 디킨스는 자신의 역할을 충실히 해냈다. 소실점을 향하는 사무실 숏에서 로저 디킨스는 관객에게 필요한 모든 정보를 보여준다.

- 허드서커 대리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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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독 조엘 코엔
출연 팀 로빈스, 제니퍼 제이슨 리, 찰스 더닝, 폴 뉴먼
개봉 1994 영국, 미국
<쇼생크 탈출>
(1995)
<쇼생크 탈출>을 본 사람이라면 결코 잊지 못할 이 장면이 로저 디킨스의 카메라로 만들어졌다. 이 한 컷은 영화 역사에도 남을 만하다. <쇼생크 탈출>은 로저 디킨스가 첫 아카데미 촬영상 후보에 오른 영화이기도 하다.

- 쇼생크 탈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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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독 프랭크 다라본트
출연 팀 로빈스, 모건 프리먼
개봉 1994 미국
<파고>
(1996)
<파고>는 코엔 형제와 로저 디킨스의 협업을 영화 교과서에 기록하게 만든 작품이다. <파고>는 흑과 백의 조화가 중요한 영화다. 미국의 미네소타 주를 배경으로 하는 이 영화에는 끝임 없이 설원이 등장하기 때문이다. 위 장면에서 흑과 백의 조화와 구도는 감탄을 자아낸다.

- 파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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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독 조엘 코엔
출연 프란시스 맥도맨드, 윌리암 H. 머시, 스티브 부세미, 하브 프레스넬, 피터 스토메어
개봉 1996 미국, 영국
<쿤둔>
(1997)
<쿤둔>은 <쇼생크 탈출>, <파고>에 이은 로저 디킨스의 세 번째 아카데미 촬영상 후보작이다. 그의 필모그래피에서 유일하게 마틴 스콜세지 감독과 작업한 영화이기도 하다. 티벳의 달라이 라마를 소재로 한 이 영화에서 로저 디킨스는 거대한 자연 속의 인간을 포착했다. 인디와이어는 <쿤둔>을 두고 “로저 디킨스의 마음 속에 데이비드 린 감독(<아라비아의 로렌스>)이 있다”고 말한다.

- 쿤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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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독 마틴 스콜세지
출연 텐진 듀톱 차롱, 규메 테통
개봉 1997 미국
<위대한 레보스키>
(1998)
<위대한 레보스키>의 유명한 꿈 시퀀스다. ‘인디와이어’는 판타지가 가득한 이 시퀀스의 하이라이트인 볼링 레인 장면이 “스탠리 큐브릭과 비교해도 더 재치있고 인상적”이라고 평가했다.

- 위대한 레보스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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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독 조엘 코엔
출연 제프 브리지스, 존 굿맨, 줄리안 무어, 스티브 부세미, 피터 스토메어, 데이빗 허들레스톤
개봉 1998 미국
<오 형제여 어디 있는가>
(2000)
<오 형제여 어디 있는가>는 필름에서 디지털로 전환되던 시기, 로저 디킨스가 최초로 디지털 색보정(D.I.) 작업을 한 영화로 유명하다. 로저 디킨스는 1949년생으로 당시 환갑의 나이였지만 테크놀로지에 대한 관심은 젊은 촬영감독 못지 않다. <오 형제여 어디 있는가>에서 ‘인디와이어’가 선정한 로저 디킨스의 장면에선 보안관 쿨리(다니엘 본 바겐 )의 선글라스에 비친 화염이 핵심이다.

- 오 형제여 어디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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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독 조엘 코엔
출연 조지 클루니, 존 터투로, 팀 블레이크 넬슨
개봉 2000 미국
<그 남자는 거기 없었다>
(2001)
<그 남자는 거기 없었다>의 심문실 장면은 빛과 그림자의 대비를 극명하게 보여준다. 흑백영화인 <그 남자는 거기 없었다>는 컬러로 촬영한 뒤 흑백으로 현상한 영화다. 코엔 형제는 “촬영은 컬러로 한 뒤 흑백필름에 프린트함으로써 섬세한 질감을 표현할 수 있었다. 콘트라스트가 선명하지 않고 부드러운 느낌이 드는 건 그래서일 것이다. 촬영감독인 로저 디킨스와 많은 실험을 했고 그 결과물이다”라고 밝혔다.

- 그 남자는 거기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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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독 조엘 코엔
출연 빌리 밥 손튼, 프란시스 맥도맨드
개봉 2001 미국
<자헤드>
(2005)
로저 디킨스는 코엔 형제와 드니 빌뇌브 말고도 셈 멘데스와 좋은 파트너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이라크 전쟁을 다룬 <자헤드>에서 불이 붙은 석유시추관 장면은 지옥 혹은 악몽 속 이미지처럼 보인다.

- 자헤드 - 그들만의 전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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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독 샘 멘데스
출연 제이크 질렌할, 피터 사스가드, 루카스 블랙, 브라이언 게라그티, 제이콥 바가스, 라즈 알론소, 에반 존스, 이반 펜요, 크리스 쿠퍼, 데니스 헤이스버트, 스콧 맥도널드, 제이미 폭스
개봉 2005 독일, 미국
<비겁한 로버트 포드의 제시 제임스 암살>
(2007)
<비겁한 로버트 포드의 제시 제임스 암살>의 열차 강도 시퀀스의 한 장면이다. 빛과 그림자, 안개까지 완벽한 대조를 이루고 있다. 위의 이미지만 놓고 보면 이 영화의 시대 배경인 서부개척시대에 촬영된 오래된 사진 같은 느낌도 든다. ‘인디와이어’는 이 영화를 로저 디킨스 촬영감독의 21세기 최고의 작품으로 선정한 바 있다.

- 비겁한 로버트 포드의 제시 제임스 암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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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독 앤드류 도미닉
출연 브래드 피트, 메리 루이스 파커, 케이시 애플렉
개봉 2006 미국, 캐나다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
(2007)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는 코엔 형제와 로저 디킨스가 만들어낸 걸작이다. 초반부 사막 장면을 보자. 아래에서 위로 보는 앵글, 푸른 하늘과 검게 그림자 진 지표면, 총을 들고 있는 인물, 헤드라이트를 비추는 자동차. 로저 디킨스가 아니면 만들어내지 못할 장면이다.

-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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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독 에단 코엔, 조엘 코엔
출연 토미 리 존스, 하비에르 바르뎀, 조슈 브롤린
개봉 2007 미국
<다우트>
(2008)
로저 디킨스에 대해 얘기할 때 클로즈업은 거의 언급하지 않는다. <다우트>에서는 다르다. 메릴 스트립, 필립 세이모어 호프만의 연기 대결이 펼쳐지는 이 영화는 캐릭터의 감정을 이끌어내는 클로즈업으로 가득하다. 위 장면은 클로즈업이 아니지만 메릴 스트립에게만 시선이 가게 만들어 캐릭터를 부각시키는 효과를 만들었다.

- 다우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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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독 존 패트릭 샌리
출연 메릴 스트립, 필립 세이모어 호프만
개봉 2008 미국
<레볼루셔너리 로드>
(2008)
샘 멘데스 감독의 <레볼루셔너리 로드>는 로저 디킨스의 역량이 다소 과소평가된 영화다. 멍 하니 정면을 바라보는 에이프릴(케이트 윈슬렛)과 대비되는 뒤쪽의 아웃포커스된 존 기빙스(마이클 섀넌)의 격앙된 모습의 대비가 강렬하다. 로저 디킨스는 이 한 장면으로 감정적인 위기에 봉착한 에이프릴의 심리를 표현해냈다.

- 레볼루셔너리 로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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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독 샘 멘데스
출연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 케이트 윈슬렛
개봉 2008 미국, 영국
<시리어스 맨>
(2009)
거대한 칠판이 시선을 압도한다. <시리어스 맨>의 이 장면은 로저 디킨스의 촬영을 말할 때 자주 언급된다. 로저 디킨스는 카메라를 의도적으로 위에서 아래로 향하게 배치했다. 칠판 앞에 선 래리 고프닉(마이클 스털버그)을 왜소하게 보이게 하고 거대한 칠판을 화면 가득 담았다.

- 시리어스 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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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독 에단 코엔, 조엘 코엔
출연 마이클 스털버그, 리차드 카인드
개봉 2009 미국, 영국, 프랑스
<더 브레이브>
(2010)
<더 브레이브>는 로저 디킨스가 참여한 영화 가운데 전통 서부극에 가장 가까운 영화다. 서부극의 거장 존 포드는 ‘어떻게 하면 훌륭한 감독이 될 수 있냐’고 묻는 소년 스티븐 스필버그에게 이렇게 답했다. “네가 지평선을 프레임의 밑바닥이나 꼭대기에 걸치는 편이 프레임의 중간에 걸치는 것보다 낫다는 것을 깨닫는 날이 온다면, 언젠가 좋은 영화감독이 될 수 있을지도 모르지. 이제 썩 꺼져주게.” 로저 디킨스는 위 사진의 장면에서 지평선을 가운데에 가깝게 걸친 것 같지만, 존 포드도 이 풍경의 아름다움을 부정하기는 힘들지 않을까.

- 더 브레이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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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독 에단 코엔, 조엘 코엔
출연 맷 데이먼, 제프 브리지스, 조슈 브롤린, 배리 페퍼, 헤일리 스테인펠드
개봉 2010 미국
<007 스카이폴>
(2012)
액션블록버스터에서도 로저 디킨스의 카메라는 아름답기만 하다. 샘 멘데스 감독의 <007 스카이폴>의 상하이 격투 장면은 단순한 액션 장면이 아니었다. ‘인디와이어’는 "네온 불빛의 액션 발레를 보는 것 같다"고 표현했다.

- 007 스카이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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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독 샘 멘데스
출연 랄프 파인즈, 다니엘 크레이그, 하비에르 바르뎀, 주디 덴치
개봉 2012 영국, 미국
<프리즈너스>
(2013)
<프리즈너스>는 드니 빌뇌브 감독과 로저 디킨스가 처음 만난 작품이다. 드니 빌뇌브 감독은 “어둠은 이 영화에서 아주 중요한 요소다. 우울하고 흐린 날씨에 밤 장면이 많았는데, 로저 디킨스 촬영감독과 한 작업 덕분에 아주 시적으로 멋지게 표현됐다”고 말했다.

- 프리즈너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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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독 드니 빌뇌브
출연 휴 잭맨, 제이크 질렌할
개봉 2013 미국
<시카리오: 암살자의 도시> (2015)
<시카리오: 암살자의 도시>는 드니 빌뇌브와 로저 디킨스가 만난 두 번째 영화다. 이 두 사람의 조합은 어쩌면 코엔 형제와 로저 디킨스의 조합보다 더 뛰어난 결과물을 내놓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시카리오: 암살자의 도시>의 한 장면이라고 말하지 않고, 위 장면을 유명 사진작가의 사진이라고 해도 믿을 것 같다. 한국을 대표하는 홍경표, 정정훈 촬영감독이 2016년 각각 <곡성>과 <아가씨> 작업을 마친 뒤 나눈 <씨네21> 대담에서 두 사람 모두 '최근에 본 촬영이 뛰어난 영화'로 <시카리오: 암살자의 도시>를 꼽기도 했다.

- 시카리오: 암살자의 도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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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독 드니 빌뇌브
출연 에밀리 블런트, 조슈 브롤린, 베니시오 델 토로
개봉 2015 미국
<블레이드 러너 2049>
(2017)
<블레이드 러너 2049>는 로저 디킨스의 최고작으로 손색이 없는 영화다. 워너브러더스는 영리하게 로저 디킨스가 만들어낸 위 이미지를 마케팅에 사용했다. 이 장면은 2009년 시드니를 강타한 황사 사진에서 영감을 받았다고 알려져 있다.

- 블레이드 러너 20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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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독 드니 빌뇌브
출연 라이언 고슬링, 해리슨 포드
개봉 2017 영국, 캐나다, 미국
씨네플레이 에디터 신두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