같은 음악을 좋아한다는 건 사실 아무것도 아닌 일일 수 있다. 하지만 이를 운명처럼 받아들이는 남자가 있다. 이름은 톰(조셉 고든 레빗). 운명 같은 사랑을 믿는다. 회사에서 만난 썸머(주이 디샤넬)을 운명이라 생각한다.
톰 같은 남자를 우리는 이미 숱하게 보아왔다. 운명 같은 사랑을 기다리는 순수한 남자. 흔한 로맨틱 영화에서 그만큼 흔하게 볼 수 있는 캐릭터다. 하지만 썸머가 있음으로 <500일의 썸머>는 뻔한 로맨틱 영화의 틀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어떤 이들은 썸머를 ‘썅년(bitch)’이라 부른다. 순수한 톰의 마음을 갖고 장난친 뒤 다른 남자와 결혼한 썸머에게 그 정도 멸칭은 당연한 거라 생각하는 듯하다. 하지만 영화에서 썸머는 톰을 농락하거나 식언하지 않는다. 처음 관계를 시작할 때도 “나는 진지하고 싶지 않아”라 말하고, 일관되게 친구 같은 관계를 원한다.
오히려 서툴고 이기적인 모습을 보이는 건 톰이다. 그는 운명을 말하고 사랑을 말하면서도 썸머의 얘기를 듣기보다는 자신이 하고 싶은 것을 앞세운다(썸머가 비틀스 멤버 가운데 가장 좋아하는 링고스타를 무시하며). 톰은 사랑했으되 사랑할 줄 몰랐고, 그래서 이 영화는 성장영화이기도 하다.
운명을 믿는 톰과 사랑을 믿지 않는 썸머 사이의 매개체는 음악이다. 엘리베이터 안, 톰이 낀 헤드폰 바깥으로 흘러나오는 음악 소리를 들으며 썸머가 말을 건다. “나도 스미스 좋아해요.” 흘러나오는 음악은 스미스의 명곡 ‘There Is A Light That Never Goes Out’이었다. 이 노래가 선택된 건 상징적이다.
“만약 저 이층 버스와 우리가 충돌한다면 그렇게 네 곁에서 죽을 수 있다면 얼마나 멋진 일일까 / 만약 이대로 거대한 10톤 트럭이 우리를 덮친다 해도 너와 함께 죽는다는 건 내겐 차라리 기쁨이고 영광인 일이야”라는 노랫말은 순진하며 운명을 믿는 톰을 대변하는 듯하지만 이런 일은 일어나지 않는다.
사춘기적 감수성을 노래로 표현했다는 평가를 받는 스미스는 톰의 정서를 대변하며 또 영화를 상징한다. 톰의 순수한 정서뿐 아니라 음악으로 보여줄 수 있는 세련된 문화적 감수성을 함께 보여준다. 레지나 스펙터나 스푼, 도브스, 카를라 부르니의 노래도 이야기의 연장에 있고, 썸머와 초야(初夜)를 보낸 뒤 톰의 기쁜 마음을 표현하는 홀 앤 오츠의 ‘You Make My Dream’나 사이먼 앤 가펑클의 ‘Bookends’ 같은 오래된 노래 역시 촌스럽기보단 오히려 힙하게 느껴진다.
미하엘 다나와 롭 사이몬스가 함께 만든 스코어는 사운드트랙에 모두 담겨 있지 않지만 영화에서 감상적인 무드가 필요할 때 중요한 역할을 한다. 스코어와 선택된 노래들 모두 무엇 하나 빠지지 않는다. 특히 템플 트랩의 ‘Sweet Disposition’은 둘 사이의 두근대는 감정의 현장에서 빠지지 않고 등장하며 많은 관심을 모았다.
영화의 연출을 맡은 마크 웹 감독은 뮤직비디오 감독 출신답게 감각적인 연출에 세련된 선곡을 입혀 영화를 완성했다. 영화의 마지막, 썸머와의 500일을 끝낸 톰은 새로 만난 오텀(Autumn)과 1일을 시작했다. 그들이 만날 날들 사이에는 어떤 배경음악이 깔릴까, 부질없는 궁금증이 생긴다. 그만큼 썸머와 톰 사이의 배경음악은 매력적이었다.

- 500일의 썸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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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독 마크 웹
출연 조셉 고든 레빗, 주이 디샤넬
개봉 2009 미국
김학선 대중음악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