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우 그레타 거윅은 <프란시스 하>(2012), <매기스 플랜>(2015) 등에서 커다란 미소로 영화에 활력을 불어넣으며 탄탄한 필모그래피를 쌓아 왔다. 작년 연출 데뷔작 <레이디 버드>까지 내놓으며 보다 폭넓은 스포트라이트를 받게 됐다. 앞으로가 더욱 기대되는 그레타 거윅의 과거와 현재를 간단히 정리했다.


#sacramento

그레타 거윅과 <레이디 버드>의 주인공 크리스틴은 겹치는 면이 많다. 캘리포니아의 주도(州都)지만  L.A.나 샌프란시스코 등에 비해 덜 알려진 도시 새크라멘토에서 자랐다. 거윅의 어머니 아버지 또한 간호사, 컴퓨터 프로그래머였다. 가톨릭 여자 고등학교인 성 프란시스를 졸업할 때까지 거기서 살았다. <레이디 버드>가 발표된 후 모교 학생들이 열화와 같은 성원을 보냈다고 한다. 고향에 대한 애정이 대단한지, 다음 연출작들 역시 크라멘토를 배경으로 한 이야기를 그릴 예정이다.

어머니와 함께

#newyork

어려서부터 발레를 배웠던 거윅은 뉴욕에서 뮤지컬을 전공하고 싶었지만 집안 사정상 포기해야 했다. 하지만 새크라멘토를 떠나 뉴욕의 바나드 대학교에 진학했다. 영문학과 철학을 공부하던 거윅은 극작가가 되고 싶었다. 그러나 극작과 석사과정에 모두 떨어졌다. 뉴욕은 영화 마니아가 되기에 더없이 적합한 곳이었다. 고전/예술영화들을 상영하는 극장들이 즐비했다. 거기서 본 클레르 드니의 <아름다운 직업>(1999), 아녜스 바르다의 <5시부터 7시까지의 클레오>(1962), 샹탈 아케르망의 <잔느 딜망>(1975) 등에 탄복하며 영화에 매료됐다. 그런 와중, 2005년 친구 조 스완버그가 연출한 영화 <LOL>의 단역으로 참여했다.



#mumblecore

<한나는 계단을 오른다>, <백헤드>

'멈블코어'란 초저예산, 비전문배우, 즉흥적이라 할만큼 자연스러운 연기, 2~30대들의 관계를 대화에 집중해 풀어내는 미국 독립영화계의 장르를 뜻한다. 첫 영화 <LOL>로 연기를 시작 거윅은 조 스완버그의 <한나는 계단을 오른다>(2007), 마크/제이 듀플래스의 <백헤드>(2008) 등에서 영화 작업을 이어나간다. 장거리 연애 커플을 그린 <밤과 주말>(2008)은 스완버그와 시나리오/연출을 겸했다. 서서히 거윅은 멈블코어를 대표하는 배우가 됐다.

<밤과 주말>

#noah_baumbach

<그린버그>

2008년과 2009년 사이 7편의 출연작을 내놓은 거윅은, <오징어와 고래>(2005)와 <마고 앳 더 웨딩>(2007)으로 미국 독립영화계 스타로 떠오르던 노아 바움백의 <그린버그>(2010)주연으로 발탁됐다. 남을 경계하지 않고 속도 깊은 가정부 플로렌스 역을 연기한 거윅은 벤 스틸러, 제니퍼 제이슨 리 같은 대배우 사이에서단연 빛나는 존재였다. 그레타 거윅과 노아 바움백의 시너지는 2012년 <프란시스 하>로 극대화됐다. 바움백과 거윅은 번번이 풀리는 거 하나 없는 27살의 무명 댄서 프란시스의 이야기를 써내려갔고, 거윅은 프란시스를 연기해 흑백이 총천연색으로 보일 만한 확연한 생기를 불어넣었다. 연인이 된 두 사람은 <프란시스 하>로 보다 더 탄탄한 커리어를 다지게 됐다. 마찬가지로 공동 각본으로 이름으로 올린 <미스트리스 아메리카>(2015)에서는 허세로 가득 찬 뉴욕의 커리어우먼 브룩 역을 맡아 색다른 모습을 선보였다. 많은 이들이 그레타 거윅을 "노아 바움백의 뮤즈"라 부르지만, 거윅은 그러한 뮤즈라는 호칭을 좋아하지 않는다고 한다.

<프란시스 하>
<미스트리스 아메리카>
노아 바움백과 그레타 거윅

#being_famous

<방황하는 소녀들> / <친구와 연인 사이>

2010년 <그린버그> 즈음부터 배우 그레타 거윅은 점점 바빠졌다. 독립영화는 물론, 메이저에서도 러브콜을 보내왔기 때문이다. 비중도 작품마다 달랐다. 청춘물 <방황하는 소녀들>에서는 주인공 '바이올렛 위스터' 역을 맡는가 하면, 로맨틱코미디 <친구와 연인 사이>에서는 나탈리 포트만의 의사 친구로 나왔다. 우디 앨런의 옴니버스영화 <로마 위드 러브>(2012)는 제시 아이젠버그, 엘렌 페이지와 같이 출연했다.

<로마 위드 러브> / <재키>
<매기스 플랜>

여성 감독 레베카 밀러와 작업한 <매기스 플랜>(2015)에서는 결혼은 하지 않되 아이만큼은 꼭 갖고 싶은 매기를 연기했다. 유쾌하고 사려 깊은 젊은 여자의 표상을 보여주는 데에 거윅 만한 배우가 없음을 다시 한번 증명했다. 재클린 케네디로 분한 나탈리 포트만의 원맨쇼라 할 만한 <재키>(2016)에서는 비서이자 친구인 낸시 터커맨 역으로 짤막하게 등장했다. 1979년 산타바바라를 배경으로 한 <우리의 20세기>(2016) 속 빨간 머리의 포토그래퍼 애비는 화도 많고 흥도 많은 당찬 페미니스트였다. 영화 작업으로 분주한 가운데 2014년엔 페넬로페 스키너의 <빌리지 바이크> 주인공 베키 역으로 연극 무대에 오르기도 했다.

<우리의 20세기>
연극 <빌리지 바이크>

#voice

<차이나 IL>

슬쩍 삑사리가 날 것 같은 중저음의 목소리가 매력적인 거윅은 두 개의 애니메이션에도 참여했다. 미국의 애니메이션 채널 '카툰 네트워크'에서 성인용 방송대(Adult Swim)에 방영된 <차이나, IL> 속 여자 주인공 포니 머크스 역이다. 포니는 작중의 배경이 되는 일리노이 차이나 대학교에서 그나마 '정상적인' 인물로, 사학 조교를 맡고 있다. 총 30개 에피소드 가운데 21개에 등장했다. <차이나, IL>의 작자이자 3개의 캐릭터를 연기한 브래드 닐리, 딘 역의 헐크 호건(왕년의 그 레슬러 맞다)과 함께 2011년부터 2015년까지 호흡을 맞췄다. 한편, <판타스틱 미스터 폭스>(2009) 이후 9년 만에 발표되는 웨스 앤더슨의 신작 애니메이션 <개들의 섬>(2018)에서는 '도그 플루' 바이러스 때문에 송곳니가 있는 개들이 쓰레기 섬으로 추방되는 걸 반대하는 교환 학생 트레이시를 연기했다. 개들이 주를 이룬 이 작품에서 몇 안 되는 인간 캐릭터다.

<개들의 섬>

#director

거윅은 조 스완버그와 공동 연출작 <밤과 주말>을, 노아 바움백과 시나리오를 함께 쓴 <프란시스 하>와 <미스트리스 아메리카>를 발표하며 연기뿐만 아니라 창작에 대한 관심을 꾸준히 보여왔다. 그리고 2017년 9월 첫 (단독) 연출작 <레이디 버드>를 발표했다. 자신의 고향 새크라멘토를 배경으로, 스스로 '레이디 버드'라는 이름을 붙일 정도로 자의식이 한 17살 크리스틴이 고등학교 마지막 학기를 보내는 이야기를 그렸다. "여자들을 위한 (영화사에 손꼽히는 성장영화 중 하나인) <400번의 구타>란 무엇일까?"라는 데서 시작한 작품이었다고 한다. 배우로 참여한 작품들로 연이 닿은 바 있는 촬영 샘 레비, 미술 크리스 존스, 의상 에이프릴 네피어 등을 기용해 또 하나의 근사한 성장영화를 만들었다.

<레이디 버드>

#awards

'골든 글로브' 시상식 당시 <레이디 버드> 팀

<레이디 버드>를 향한 반응은 뜨거웠다. 평단은 앞다투어 '감독' 그레타 거윅에 갈채를 보냈고, 2017년 시상식 시즌을 섭렵했다. 90년 역사에서 단 다섯 명. 75회 골든 글로브 시상식에선 뮤지컬코미디 부문 작품상, 여우주연상, 각본상을 받는 쾌거를 이뤘다. 90회 아카데미 시상식에는 주요 5개 부문 후보에 올랐다. 특히 그레타 거윅은 연출 데뷔작으로 감독상 후보에 오른 점이 화제가 됐다. 오스카 90년 역사에서 여성이 감독상 후보에 오른 것은 <일곱 미녀들>(1977)의 리나 베르트뮐러, <피아노>(1994)의 제인 캠피온, <사랑도 통역이 되나요?>(2004)의 소피아 코폴라, <허트 로커>(2010)의 캐서린 비글로, 그리고 <레이디 버드>의 그레타 거윅까지 총 5명이었다. (그리고 캐서린 비글로만이 수상했다) 그 중 데뷔작으로 노미네이트 된 건 거윅이 유일하다. <레이디 버드>는 비록 무관에 그쳤지만, 그레타 거윅 '감독'의 창창한 커리어를 주목하게 만들기엔 충분했다.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그레타 거윅
레이디 버드

감독 그레타 거윅

출연 시얼샤 로넌

개봉 2018 미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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씨네플레이 에디터 문동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