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는 아직 우리가 보지 못한 수많은 영화가 있다. ‘오늘은 무슨 영화를 볼까’라는 행복한 고민에 빠진 이들을 위해 쓴다. ‘씨네플레이’는 ‘씨플 재개봉관’이라는 이름으로 재개봉하면 당장 보러 갈 영화, 실제로 재개봉하는 영화들을 소개해왔다. 이번에 만나볼 영화는 10년 전, 2008에 개봉한 <아이언맨>이다.

아이언맨
감독 존 파브로 출연 로버트 다우니 주니어, 테렌스 하워드, 제프 브리지스, 기네스 펠트로 개봉 2008년 4월30일 상영시간 125분 등급 12세 관람가

아이언맨

감독 존 파브로

출연 로버트 다우니 주니어, 테렌스 하워드, 제프 브리지스, 기네스 팰트로

개봉 2008 미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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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화책의 페이지가 촤라락 넘어간다. 마블 스튜디오 로고가 등장한다. 10년 전 개봉한 <아이언맨>의 시작이다. 동시에 마블영화 역사의 시작이기도 하다.

<아이언맨>은 슈퍼히어로 저작권을 가진 마블 코믹스가 마블 스튜디오라는 영화사를 만들고 직접 제작에 나선 최초의 영화다. <아이언맨>이 처음 나왔을 때 지금과 같은 10년 후를 예상한 사람이 얼마나 될까. 사실 슈퍼히어로 영화는 DC코믹스 천하였다. <슈퍼맨>, <배트맨> 시리즈를 다들 알고 있었지만 한국에서 아이언맨을 누가 알았냐 말이다. <스파이더맨> 시리즈가 마블인지 DC 소속인지 아는 사람도 별로 없었다. 지금은 달라졌다. 아이언맨, 캡틴 아메리카를 비롯한 헐크, 토르 등 슈퍼히어로에 대한 정보뿐만 아니라 마블시네마틱유니버스(Mavel Cinematic Universe, 이하 MCU)의 타임라인을 줄줄이 말할 수 있는 팬들이 수두룩하다.

마블 10주년 기념작 <어벤져스: 인피니티 워>가 4월25일 개봉을 앞두고 있다. 기대감은 최고조로 올라 있다. ‘천만 관객은 우습게 넘길 거’라는 이야기도 나온다. 지금 마블영화 역사의 시작점인 <아이언맨>을 다시 보기 딱 좋은 시기인 듯하다. <아이언맨>의 어떤 지점이 마블의 찬란한 10년을 만들어냈는지 살펴보자.


토니 스타크, 완벽히 새로운 캐릭터
<아이언맨>의 첫 장면, 아프가니스탄의 비포장도로를 질주하는 군용 차량에 타고 있는 토니 스타크(로버트 다우니 주니어)가 위스키를 홀짝이고 있다. 그는 방금 자신이 운영하는 군수업체 스타크 인더스트리의 무기를 판매하고 돌아가는 길이다. 차량에 같이 탄 군인들과 잡담을 주고받는다. 그는 “12명의 맥심 모델과 사귄 게 사실이냐"라는 질문을 받고 “좋은 질문”이라며 선글라스를 벗는다. 10년 전 로버트 다우니 주니어의 얼굴이 조금은 낯설다.

당연한 소리지만 지금 로버트 다우니 주니어가 아닌 토니 스타크를 상상하기 힘들다. <아이언맨>의 초반부, 로버트 다우니 주니어가 연기하는 토니 스타크는 이전에 보지 못한 완벽히 새로운 슈퍼히어로라는 점을 분명히 한다. 비교 대상은 역시나 DC의 영웅들이다. 슈퍼맨과 배트맨이 이렇게 말을 많이 했던가. 이렇게 많은 농담을 했던가. 토니 스타크는 ‘말발’이 장난 아닌 캐릭터다. 관객들은 막힘 없이 줄줄줄 흘러나오는 그의 대사에 귀를 쫑긋 세우게 된다. 수다스러운 영웅이라니.

게다가 토니 스타크는 매력적인 너드(nerd)다. 드라마 <빅뱅이론>의 주인공과는 달라도 너무 다르다. 캘리포니아 말리부 해변 절벽 위에 거대한 저택이 있고, 아우디 스포츠카를 몰고, 개인 제트기를 타고 다니는 잘생긴 바람둥이 천재 과학자 캐릭터를 본 적이 있는가.

이 모든 걸 가능하게 하는 건 역시 로버트 다우니 주니어의 힘이라고 밖에 말할 수 없다. 그 대사들은 애드리브가 태반이었다. 감독 존 파브로와 로버트 다우니 주니어가 즉석에서 대사를 만들어냈다. 왜냐면 영화 제작 경험이 없던 신생 영화사 마블 스튜디오가 전체 시나리오를 완성하기도 전에 촬영을 시작했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로버트 다우니 주니어는 단순히 연기만 한 게 아니었다. 마블의 개국공신이라 부르는 게 마땅하다.

개과천선, 영웅의 탄생
<아이언맨>은 단순한 이야기 구조를 가지고 있다. 세계적 군수업체의 개망나니 CEO가 개과천선하면서 영웅으로 거듭나는 이야기다. 말하자면 아이언맨이라는 영웅의 탄생 신화다. 대체로 신화는 말이 안 되지만 재밌는 법이다. 그리스, 로마 신화를 떠올려 보시라. 어느 정도 양념을 쳐야 하는 이야기라는 뜻이기도 하다. <아이언맨>의 ‘MSG’는 슈트 제작기와 동의어다. 아프가니스탄의 테러리스트에게 잡힌 토니 스타크는 동굴에서 가슴에 달고 있는 에너지원인 아크 리액터와 최초의 아이언맨 슈트인 마크1(Mk.1)을 만들고 탈출한다. 동굴에서 아이언맨 슈트를? 약~간 말이 안 되는 것 같지만 넘어가자. 여기서부터가 진짜 ‘MSG’다. 토니 스타크는 마크2 슈트 개발에 착수한다. 실패와 개량의 연속. 슈트의 첫 비행 실험은 CCTV 화면으로 처리된다. “처음이니까 출력을 10%만 하겠다"라고 했지만 토니 스타크는 벽에 부딪히고 만다. 그 정도 세게 부딪치면 병원에 가야 하지만 다음 장면은 또 인공지능 컴퓨터 자비스(폴 베타니)와, 로봇들과 농담을 하면서 슈트를 개량하는 토니 스타크를 볼 수 있다.

김종철 영화평론가는 <아이언맨> 개봉 당시 이렇게 썼다. 
“특히 아머 슈트와 관련한 장면들은 철저하게 원작 코믹스 팬들을 배려했다. 단순 무식하지만 뛰어난 전투 수행 능력을 갖춘 아머 슈트의 초기 모델, 디자인 샘플에서 등장하는 황금빛 아머 슈트, 그리고 기능과 디자인 모두를 만족시키는 최종 결과물까지 팬들에게는 그 자체로 즐거운 구경거리다.” <아이언맨>은 아이언맨을 모르는 관객과 원작 팬들 모두에게 이 영웅이 어떤 캐릭터인지 명확히 보여주면서 성공할 수 있었다. 슈트 제작 과정이라는 MSG가 큰 몫을 했다.

과욕은 금물, 오락영화의 새 기준
<아이언맨>은 크게 욕심이 없는 영화다. 이는 같은 해 8월 개봉한 크리스토퍼 놀란의 <다크나이트>와 비교하면 확연히 드러나는 지점이다. 영웅의 고뇌? 진지함? 그런 거 없다. 아프가니스탄 테러리스트와 테러리스트와 미군이 모두 사용하는 무기를 만든 군수업체라는 지점에서 토니 스타크가 각성한다는 외형을 가지고 있지만 핵심은 다른 데 있다. 시시껄렁한 농담을 하는 바람둥이 CEO와 슈트 제작 과정에서 우당탕탕, 와장창 꼬꾸라지는 천재 과학자와 슈트를 완성한 이후에는 빌런 아이언 뭉거와의 화끈한 대결을 펼치는 신생 영웅이 있다. 정리하면 유머와 액션이다. 재밌고 화끈하다는 말과 같다. <아이언맨>은 영락없는 오락영화다. 단, 기존의 오락영화보다 진화했다. 더 정확하게는 기존 슈퍼히어로 영화보다 진화했다고 해야겠다. <아이언맨>의 마지막 기자회견 장면이 그것을 증명한다. 마지막 토니 스타크 대사는 직접 확인해보길 바란다.

워 머신/제임스 로드 역의 테렌스 하워드(왼쪽에서 세 번째).

덧. <아이언맨>에는 워 머신/제임스 로드 역에 우리에게 익숙한 돈 치들 대신 테렌스 하워드가 출연한다. 마블 스튜디오가 출연료를 너무 깎았든지, 그가 출연료를 너무 많이 요구했든지 뭐가 됐든 MCU에서 하차한 테렌스 하워드는 지금 크게 후회하고 있을 것 같다.